추억록(追憶錄)46 사카린 탄 물에 밥말아 먹다가 구토한 이야기 이 글을 쓰는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아주 오래 된 추억담이다. 당시에 단맛의 최고 지위에「사카린」이 있었다. 사카린은 주로 석유류 제품에서 추출한 톨루엔이라는 물질을 원료로 하여 화학반응을 통해 만든 인공감미료로서 설탕에 비해 300배나 강한 단맛을 내는 .. 2013. 12. 22.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의 추억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는 말이 있다. 동물들이 사람의 말을 알아 들을 수도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로 생각된다. 이제 지금부터 내가 실제로 경험하였거나, 간접적으로 들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ㅡ 제1편. 내가 직접 보고 겪은 사례 ㅡ [1]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돼지 이야기 내가 청소년기를 보낸 시골 농촌 고향집에 살 때의 일이다. 어느날 집에서 돼지를 사육하게 되었다. 키워서 팔아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돼지를 키운지 약 1년 쯤 되어 성돈(成豚)이 된 어느 날 부모님은 돼지를 팔기 위해 마을에서 6Km 떨어진 면소재지에 소재하는 정육점 주인에게 돼지를 사러 와달라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 시골 읍. 면단위 지역.. 2012. 12. 19. 갑자기 생각나는 황당한 유언비어 인구 15만 명쯤 되는 소규모 지방도시인 ○○시(市)에 살던 때였다. 이 ○○시에서 5년간을 살았는데, 그 첫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시에는「△△외과」 라는 병원이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외과」 병원을 두고 해괴 망칙한 유언비어가 시내에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 유언비어인즉, 어느 마을에서 형수와 시동생이 몰래 간통을 하다 현장에서 들키는 순간 충격을 받아 남녀 모두 신체에 경직현상이 일어나 시동생이 삽입하였던 성기가 형수의 몸에서 빠지지를 않고 두 몸이 서로 붙어버렸는데 마을 이웃사람들이 아무리 떼어내려 해도 극심한 통증만 일어날 뿐 분리를 하지 못하고「△△외과」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소문이었다. 그런데「△△외과」병원 의사의 진단이 불륜을 저지른 두 남녀 중에서 한 사람이 죽은 후에 라.. 2012. 9. 17.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귀었던 친구의 추억 나는 육군에 입대하여 꼬박 34개월 15일간을 복무하고 만기제대를 한 이후 약 3년간 무직으로생활하다 보니 호구지책 으로 건설공사현장(속칭 노가다판)에서 막노동일을 하면서 한 세월을 보낸 적 있었다. 그때에 같이 노동일을 하게 된 최O원 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으며 약2년간을 술친구 로 보내게 되었다. 최O원은 나보다 한살 위였으며, 고졸 학력에 고향은 충남 대전(당시는 광역시가 아니었음)으로 기억된다.부모 형제가 고향에 살고 있는데도, 서울에 방 한칸을 세를 얻어서 살면서 서울 및 수도권의 건설공사 현장을 나하고 같이 따라다니며 노동일을 하였다. 그 당시 최O원에게는 한 가지 괴퍅한 습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왜 그러한 습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건설공사장에서는 15일 정도 일하면 인부들에게 속칭.. 2012. 6. 20. X-마스이브 한밤중에 울린 한발의 총성ㅡ<상관살해사건> 내가 상등병때 군생활을 한 부대는 사단 직할중대였다. 사단 직할중대들은 사단사령부를 중심으로 산개하여 중대별로 주둔하고 있었다. 때는 강원도 최전방의 한겨울 혹독한 추위가 고통스러운 크리스마스 이브한밤중 24:0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취침 중에 약 500여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생각되는 방향에서 고요한 시각에 "타~앙" 하고 길게 여운을 끄는 총성 한 발이 울리는 소리를 잠결에 들었으나, 조금 있다가 사령부 상황실에서 통신중대에서 오발사고가났다는 전통이 중대 행정반에 하달되어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취침들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전해 들은 소문에 의하면 그 총성 한 발은 통신중대에서 들린 것이 맞긴 했으나 오발 사고가 아니고, 어느 병사가 그날 밤 주번사관(당직사관)을 살해한 총성이.. 2012. 2. 6. [경북 안동 <문화극장> 내의 [수류탄 [보복 투척]에 의한 살인사건]의 추억 내가 1967년 4월 초에 육군에 입대한 뒤에 강원도 △△군에 주둔하는 최전방 [○○사단] 에서 [상등병]으로 진급하고, 얼마 되지 않은 1968년 초여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단사령부의 시딘장 특별 지시로 사단 각 부대 총기, 탄약 검열이 시행되고, 정훈교육을 실시한다. 중대장이 부대원 개인 면담을 한다. 소원수리를 받는다 하는 등등의 일을 하느라고 사단 전체가 어수선한 가운데 몇 달을 보낸 일이 있었다. 그 이유는 1968년 5월 18일 밤 10시20분경 경북 안동시 운흥동 소재 [문화극장]에서 영화 [복수]를 관람하고 나오던 4백여 명의 안동 시민들에게 [육군 신영식 하사] 가 만취상태에서 관객에게 수류탄 2개를 투척하여 안동 시민 5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44명이 중경상을 입은 [묻지마 테.. 2012. 1. 12. 와송(瓦松) 이야기 단기 4344년(2011) 7월 15일 아침 6시 MBC에서 방송하는 와송(瓦松)에 대한 보도를 시청 하였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오래된 기와 지붕 위에서 자라는 [와송]이라는 식물이 있다. 이 와송에 항암효과가 탁월한 물질이 있다 는 사실이 국내 대학 연구진에 의해서 밝혀졌다. 오래된 재실 지붕위의 이 식물은 기와 위에 서 자라는 모양이 소나무 잎이나 꽃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와송]이다. 과거에는 기와나 바위틈에서 자란 자연산을 약용으로 활용했지만, 지금은 인공 재배를 통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여졌다. 이 와송의 함유 물질을 분석한결과 탁월한 항암효과가 있는것이 확인이 됐다. 인제대 이동석 교수팀의 연구 결과, 와송이 대장암이나 폐암, 위암, 간암, 자궁경부암의 암세포를 파괴하면서 면역 .. 2011. 7. 16. "워카(군화)에다 네 발을 맞춰라." 내가 육군 논산훈련소 28연대에 입대하여 6중대 1소대로 소속이 결정된 첫날 피복창고 앞에 줄을 서서 군복과 내의, 모자, 군화, 통일화(군용 농구화) 등의 피복을 창고 관리병이 던져주는대로 지급받아 끌어 안고서 소대 내무반으로 돌아와 훈련소 기간병 병장인 내무반장의 지시로 침상.. 2011. 6. 10. 문맹자였던 어느 병사(兵士)의 이야기 내가 육군에 입대하여 모 사단 직할중대에 배속되어 상등병이 되었을 때였다. 사단 직할중대면 보병이 아닌 특수병과로 구성된 부대이다. 하루는 키가 작달막하고 체격이 빈약한 이등병 하나가 우리 중대로 전속을 왔 는데 사회에서 목공(木工) 기술을 배워 군대에서도 그 특기를 살려 중대 영선병(營.. 2011. 6. 2. 군대를 세번이나 갔다 온 남자 이야기 1. 어렸을 때 고향 마을에 [김해권]이라는 이가 살았다. 지능이 IQ검사를 해보았다면 아마 70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될만큼 낮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모자라는 사람이었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한글도 해독하지 못하 는 문맹인이었다. 체격은 건장하여 힘도 좋고 농사일을 비롯한 육체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잘 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모자라는 사람인데다 부모형제 친인척도 없는 외톨이 신세라, 주로 고향 마을 위에 있는 절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살았으며, 그러다 보니 누가 배필을 주선해주는 사람도 없어 장가도 못들고 30고개를 넘기고도 한참 지나서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그 당시 30세 이하의 청년들은 국군에 징집되어 나갔고, 30세 이상 40세로 기억되는 연령층의 남자들은 군노무자 속칭 '보국대(.. 2011. 4. 27. ☆ 용화교(龍華敎) 이야기 (1회) [1] 서교주(徐 敎主)와 용화교(龍華敎)의 신도(信徒)들 용화교(龍華敎)라고 하면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고 없겠지만 수십년 전에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신흥 사이비종교였습니다. 그 본부가 나의 고향 이웃마을 이었고, 그래서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용화교의 흥망성쇠를 생각이 나는대로 추억을 더듬어보려 합니다. 따라서 내가 잘못 기억하는 사실도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이야기 합니다. 전라북도 김제군(지금의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에 「제비창골」이라는 산골짜기가 있었습니다. 이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능선 바로 밑에 비교적 널찍한 개활지가 나오고, 규모가 상당히 큰 용화사(龍華寺)라는 20여 동(棟)으로 구성된 사원이 건축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이 곳을「성화대(聖華臺).. 2011. 1. 22. ☆ 용화교(龍華敎) 이야기 (2회) [2] 서교주의 호색(好色) 서교주는 성화대라고 칭하는 용화교의 본부 용화사 말고도, 전주시 완산동에 원각사(圓覺寺)와 남일사(南一寺)라는 절을 마련하여 포교의 전진기지 겸 자신이 현대문명과 함께 유입된 현대적 향락을 맛보는 별장처럼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전주의 원각사와 남일사 등에는 수백의 남자 용화승들이 거주하였고, 본부 용화사(성화대)에는 150여 명의 여승(女僧)들이 거주하였다. 이 여승들은 그녀들을 지휘통솔하는 간부급 20여인은 30~50대의 고령층이었고, 나머지는 모조리 10대 후반에서 20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묘령의 꽃다운 처녀들이었다. 물론 이 방년의 여승들은 용화교 신도의 딸들이었다. 용화교 신도들의 서교주에 대한 신앙심은 절대적이었다. 옛날 봉건시대 전제군주가 무색하리만큼 그랬다. 자.. 2011. 1. 22.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