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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11회](상)<고치령~도래기재>

by 박달령 2007. 10. 11.

◎ 백두대간 종주기 [제11회] (상)

◇ 제11회 총 산행 기간 :  단기 4335(2002)년  5월 13일 (월) - 5월 14일 (화)  2일간
◇ 제11회 총 산행 구간 : 고치령 → 화방재
◇ 배낭 중량 :  약 13 Kg ◇ 산행지로 출발
 
○ 단기 4335년(2002)  5월 12일 (일)
 11 : 45  집 출발(친지 김진태 승용차 편승 수원역으로)

작년 11. 11. 고치령에서 멈추었던 대간길을 이어가기 위하여 오랫만에 집을 나서다. 12 : 00  청량리행 전철 승차
 
13 : 30  청량리역 도착
역 앞 식당에서 순대국밥(4,500원) 점심식사
 
15 : 00  청량리역에서 풍기행 무궁화호 일반실 승차(10,600원) 18 : 50  풍기역 도착
작년에 죽령까지 승차하였던 택시기가 양정찬씨(011 - 522 - 7802, 054 - 636 - 2878)를 호출하여 고치령 택시비 인상여부 문의하니 금년에 5,000원 인상하여 35,000원이라 한다.
 양정찬씨에게 내일 새벽 03 : 00에 전화하여 달라고 부탁하다.
 
(※ 주 ; 후에 알게된 사실인데, 4335.  5. 26. 풍기에서 고치령까지 개인택시 안벽수씨{011 - 533 - 6805}는 25,000원에 갔다 한다. 양정찬씨가 택시비를 너무 많이 받은 것이다. 대략 30,000원이 적당한 가격  같다.) 작년에 숙박하였던 역 근처 "한국장 여관"에 들어가 숙박비 25,000원을 지불하고 여장을 풀다.  숙박비는인상되지 않았다. 19 : 15  여관을 나가 역 앞의 "딸 야식집"에서 된장찌개(4,000원)로 저녁식사를 하고 내일새벽 김밥 3줄(6,000원) 예약분까지 합하여 10,000원 식대지불하다.  김밥은 1줄에 500원이 인상되어 2,000원씩이다. 20 : 00  한국장 여관으로 돌아와 배낭에서 0. 5리터 페트병 5개를 꺼내어 수도물을 받아 넣은 다음 취침 ◇ 산행
 
○ 단기 4335년(2002)  5월 13일 (월) 맑음. (제26일) - 금일 산행구간 : 고치령 → 도래기재

02 : 00  기상

면도, 세수,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고 여관을 나서다.

02 : 50  "딸 야식집"에서 라면 1개, 김밥 1줄을 시켜 아침식사(4,000원)를 하는데, 양정찬씨 전화가 와서 야식집에서 식사중이라 대답하다.

조금 있으니 양정찬씨가 야식집으로 들어와 인사를 나누고 밖에 택시에서 기다리겠다 한다.  어제 저녁에 예약한 김밥 3줄을 받아 배낭에 넣고 "딸 야식집"을 나서다.

03 : 20  양정찬씨 택시에 승차하고 문경 출발 고치령으로 향하다.

양정찬씨 말이 어제 일요일 새벽에 열차로 내리는 대간 손님이 자신을 호출하여 고치령을 갔는데 인터에서 전화번호를 알아냈다고 하였다 한다.  그래서 내가 OK마운틴 홈페이지에 올린 산행기에도 썼고,며칠 전 어느 질문에도 답변하고 두번을 전화번호를 올린 일이 있는데 아마도 그걸 본 모양이라 하니 고맙다고 한다.

 

03 : 45  고치령 도착 (택시비 35,000원)

고치령 넘어 북쪽에 샘터가 있다는데 찾아보려 한다 하니 양정찬씨가 택시를 몰고 뒤따라 온다.  약 50미터 정도 도로를 따라가니 길 좌측에 파이프 끝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리는 샘터가 보이고  바가지 두 개, 종이컵 등이 놓여있다.  위생상태가 괜찮아 보여 배낭의 수돗물을 버리고 샘물을 받으려다 귀찮아 그만 두고 양정찬씨와 작별인사 후 손전등을 꺼내어 켜다.

04 : 05  고치령 출발

거추장스러운 머리띠전등은 혹시 암릉이나 만나면 꺼내기로 하고 간편한 손전등을 켜고 가는데 보행에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길은 좋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주고 길바닥은 낙엽이 깔려 부드럽다.  

그러나 거미줄이 계속하여 얼굴에 눌어붙어 발걸음을 방해한다."구름나그네" "김인태" 등등 낯익은 표지기들이 반갑다.

950봉으로 가는 능선이라 생각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대간 표지기는 좌측 갈림길에 붙어있다.  표지기가 없으면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겠다.

04 : 30  먼동이 터 오면서 서서히 날이 밝아져 온다.

그러나 손전등을 끄기에는 발 밑이 좀 어둡다.
철쭉이 만발하여 반긴다.

05 : 00  날이 완전히 밝았으므로 손전등을 끄다.
877봉으로 생각되는 정상을 밟지 않고 길이 좌로 우회하므로 일부러 정상을 올라보니 지난 한식 때 새로
사초를 하였는지 봉분에 잔디를 새로 입혀 깨끗이 단장한 묘지가 있다.

05 : 25  미내치 도착

이정표가 서 있다.  햇살이 퍼지기 시작하나 나뭇잎에 가려 일출은 볼 수가 없다.  더워지기 시작하여 남방셔츠 소매를 반 팔로 걷어올리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나, 양쪽 계곡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나 있는 사거리다.  좌측 길은 마락리에서 고치령을 넘은 도로와 만나겠고, 우측 길은 달터마을 계곡으로 내려 설 것으로 추측된다.

잠시 휴식 후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걷는 길은 낙엽이 깔린 푹신한 길이 내내 계속되므로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대간길 양쪽으로는 취나물을 비롯한 풀이 무성하고, 가냘프게 피어난 이름 모를 갖가지 야생화의 애잔한자태가 눈을 즐겁게 하여준다. 앞을 보면 만발한 철쭉, 발 밑을 내려다보면 야생화가 지천이다.

해가 뜨니 얼굴을 괴롭히던 거미줄에 날파리까지 가세하여 눈앞을 맴돈다.미내치에서 약 1. 5 Km쯤 진행하니 길 오른쪽 숲 속에서 산토끼 두 마리가 후다닥 비탈 아래로 달려간다.

1096. 6봉 헬기장을 넘어서니 아름드리 소나무 밑에서 청설모 1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디로 인지 사라진다.

고치령 7 Km, 마구령 1 Km 라고 쓰인 이정표를 지나 한참 가니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가 쓰러진 위를통과한다.  소나무 1그루는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고, 한 그루는 약 2미터 높이에서 중동이가 부러져 있것으로 보아 습기를 머금은 눈이 너무 많이 쌓여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람을 맞아 쓰러진 것으로 추측된다.

07 : 10  마구령 도착.

비포장 도로이기는 하나, 고치령보다 노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도로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 절개지이나, 위험하지는 않다.

도로를 건너 나무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하며 비타민 1정을 꺼내 입에 넣고 물과 함께 삼키려다 그냥 입안에서 깨물어보니 맛이 시큼한 액체다.  황급히 물을 머금어 액체는 삼키고 질긴 캅셀은 따로 씹어 삼키다. 

장거리 산행에 짐이 될까 하여 과일종류를 준비하지 않는 방편으로 묘책을 찾는답시고 동네 약국에 가서비타민 C와 E를 주성분으로 하는 영양제가 없겠느냐고 물으니, 일동제약의 『헬파』를 권하기  에 100정들이 1병을 14,000원에 구입하여 우선 20정을 사진 필름통에 덜어넣어 가져온 것이다.

1회 1캅셀씩 1일 2회 복용으로 용법, 용량이 쓰여 있으니, 과일 대신에 하루 2 - 3개를 산행 도중 적당한시각에 먹으면 되겠다.

이러한 캅셀 한정에 사람에게 필요한 한끼 분의 영양소를 포장한 압축식량이 개발되면, 하루 산행에 조그만 알약 서너 개만 삼키면 되고, 100정들이 조그마한 약병 하나면 한달 식량은 되지 않겠는가 하는 다소 허황된 생각도 하여 본다.  그러면 먹는데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니 산천경개를 감상하며 음미할 시간이 더 많아지고 산행도 더욱 즐거워지지 않을까 ?

산행에서 먹거리와 이 먹거리 조리를 위한 기구들이 배낭의 중량과 부피를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서 때로는 산행에 괴로움을 주니 이렇게 허황된 생각이 드나보다.

07 : 20  마구령 출발

오르막길을 10여분 오르니 길가에 노랑색 손수건이 하나 떨어져 있는데 깨끗한 상태인걸 보아 흘린지 얼마 안 되는 것 같다. 

다시 10여분 진행하니 이번에는 길바닥에 스테인리스 물컵이 한 개 떨어져 있다.  그런데 모양이 처음 보는 좀 독특한 형태이다.  항아리처럼 아래쪽이 볼록하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 제품이다.  주워서 배낭에 매달고 다시 길을 재촉하다.

894봉을 지나 1057봉을 오르는 길가의 바위에 집 없는 길쭉한 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있다.  좀 멀리서 보면 뱀처럼 보인다.

08 : 10  1057봉 도착.

아침에 사 넣은 김밥 한 줄을 꺼내 된장, 생마늘과 함께 아침 식사.

 

08 : 25  1057봉 출발.
갈곶산까지 철쭉의 저항이 있다고 하였는데 실제로는 거의 없다.
만발한 철쭉사이를 꽃을 바라보며 걷는다.
안부에 내려섰다가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갈곶산은 눈앞의 고지를 올라서면 되겠지 하고 올라서면 또 다시 오르막이 나타나고 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느지막이 힘겹게 나타난다.

 

09 : 30  갈곶산(966) 도착
봉황산 경유 부석사 방향과 대간길이 갈라지는 삼거리다.
이정표에는 "봉황산 갈림길" 이라고만 되어있다.  누군가가 선답자가 이정표 기둥 꼭대기에『갈곶산』이
라고 유성 매직펜으로 써놓았다.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북쪽으로 쓰러진 고목을 넘어 약 1 Km 정도 내려가니 늦은목이다.

 

09 : 55  늦은목이(800) 도착
좌우 양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4거리다.
지도상 샘터는 확인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다.

선달산을 향하는 길은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길 양쪽에 만발하였던 철쭉은 사라지고, 이제
봉오리를 맺은 철쭉만 보이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고도가 높아진 것을 느끼겠다. 그뿐 아니라,대간길 마루금에 서 있는 나무들이 이제야 새싹을 내밀고 있어 그늘이 없는 땡볕인데다 갑자기 바람도 멎어 숨이 차고 땀이 비오듯 흐른다.  선달산까지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보행 속도를 확 늦추고 내가 나 자신에게 속삭여 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라 !"
"그래야 땀을 적게 흘리고, 물을 덜 소모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날씨, 이만한 거리에 2리터 대병으로 2 - 3병정도의 물을 준비한다는데, 너는 겨우 0. 5리터 페트병으로 달랑 5개만 짊어지고 가지 않느냐 ?  도래기재까지 물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천천히 걸어 땀을 적게 흘려야 물 소모량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다른 선답자들의 도래기재까지 기록은 10시간 - 12시간 정도이지만 이 산행기록에 구애받지 말라 !  기상청이 발표한 오늘의 일몰시각은 19 : 30 경이니 20 : 00쯤 되어야 날이 어두워진다.  그때까지만 도래기재에 도착하면 된다.  땀이 거의 안 날 정도로 천천히 걸어라.  땀을 많이 흘리면 물이 일찍 떨어져서 고생하게 된다." 라는 속삭임이 끝나고 나니 길을 서두르고 싶은 욕심이 사라진다.

11 : 05  선달산(1236) 도착.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세운 이정표는 이제 없다.
(여기서부터 도래기재까지 중요 지점마다 가로 60여㎝, 세로 20여 ㎝ 정도 되는 둥근 널판지에 라카칠을
한 이정표를 중요 지점마다 나무에 못질을 하여 붙여 놓았다. 나무에 못질을 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조금씩이나마 피어나는 새싹 잎이 겹치고 겹쳐 눈앞을 가리니 먼 곳의 전망이 나빠져 그런지, 높은 곳을 걷고 있다는 고도감각도 상실되고 마치 전에 지나온 길 상주의 중화지구대 낮은 곳 마루금을 걷는 것과 다름없이 그게 그 길 같은 생각이 든다.

다시 허기가 져서 김밥 1줄을 된장을 반찬 삼아 먹으며 쥘부채를 꺼내 얼굴을 부쳐 더위를 식혀본다.이 부채는 17년 전인 1985년 여름에 선물 받은 것인데 산행 때 배낭에 가지고 다니다가 앉아 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꺼내서 부치다 보니 종이가 해져 떨어지고, 그러면 다시 문종이 한지를 적당히 잘라 땜질하여 붙이고 하기를 해마다 반복하여 누더기가 된 부채이다.워낙 누더기가 되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마다 신기해하는 부채이다.

11 : 30  선달산 출발

내리막을 조금 내려가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가니 3 - 4미터 높이의 암릉이 나타난다.  그리고 암릉 아래 우측으로도 길이 나 있는데 양쪽으로 모두 표지기가 달려 있다.  그렇다면 암릉길은 마루금 길이고, 오른쪽 길은 우회로일 것이다.

암릉쪽 나뭇가지에는 산행 출발시부터 몇 번 보아왔던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컸던 최민규 학생의 대형 표지기가 펄럭인다.  가로 7㎝, 세로 25㎝가량 되는 대형 표지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있다.

- 안산 중앙중 3년 최민규.  백두대간 종주(무지원)
- 이모부(46세) 동행. 2001. 10. 20. 시작. 제39일째.
              
이 암릉이 지도상의 1236봉인지 아니면 1236봉을 더 지난 지점인지는 잘 모르겠다.  암릉으로 오르지 않
고 오른쪽 우회로로 진행하니 암릉의 마루금 길과 약 5 - 10미터 간격을 두고 두 갈래 길은 나란히 한참을 진행하다 200여미터쯤 가서야 다시 만난다.

밋밋한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니 고도가 낮아졌는지 다시 만발한 철쭉이 반긴다.대형 헬기장이 나타나고 헬기장 한 가운데에는 무슨 농기계 같은 것이 비닐천막이 씌워진 채 놓여 있다.

그리고 헬기장 끝이 박달령 임도(林道)다.

선달산에서 1 Km 되는 곳에 지도에 표시된 북쪽 칠룡동계곡과, 남쪽 왕바우골이 갈라진다는 4거리 안부는 못보고 지나쳤다.  아마 그 곳을 지날 때 무슨 잡념에 빠졌었나보다.

13 : 10  박달령(1009) 도착

선달산에서 그다지 고도가 급격히 낮아지지 않았는데 박달령 도로가 나타나 이상하다 했는데 역시 고도가 1000미터 넘는 곳이다.

『박달령』은 내가 인터넷 OK마운틴 홈페이지에서 필명으로 사용하는 이름이라 이 곳에 이르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이 곳은 처음 와 보는 곳이고,『박달령』이라는 필명은 청옥산과 두타산 사이에 있는『박달령』에서 따온 이름이다.  아직 그『박달령』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길가 공터에는 1톤 트럭 1대, 갤로퍼 지프 1대, 코란도 지프 1대 등이 주차되어 있고, 이 자동차들을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7 - 8인의 남녀가 산비탈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나물과 약초를 채취하고 있다.   산림을 보호 육성한답시고 만든 임도가 나물과 약초 채취꾼들의 기동력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으니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약초꾼 남자에게 샘터의 위치를 물어보니 지도에 표시된 곳과 같은 방향으로 가라고 일러준다.길 건너 바라보이는 산령각(山靈閣)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니 나무에 "박달령 성황신 신위" 라고 새겨 쓴 위패를 중앙에 세워 놓았다.

제단에는 빈 소주병과 술잔이 있어 배낭에서 소주를 꺼내어 술 3잔을 올리고 지금까지의 무사 산행을 감사하고 다음 길의 무사산행을 비는 절을 올린 후 음복을 하여본다.

실전백두대간 81면에 있는 사진이 바로 이 산령각인데, 사진 아래 설명에는 "산령각이 있는 고치령 고갯마루"라고 잘못 표시한 곳이다.

"산령각이 있는 박달령 고갯마루"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82면의 "고치령 산신각"이라는 설명을 달아놓은 사진이 없어진 옛날 고치령 산신각이 맞는 듯하다. 산령각 처마 밑 그늘에서 김밥 남은 것 1줄을 북어포에 된장을 찍어 반찬으로 하여 먹다.  5병 준비한 물은 3병이 소모되었다.

박달령의 샘물은 어떠한지 궁금하여 약초꾼이 가리켜 준 고갯길 북서쪽으로 산길을 약 50여 미터 내려가니 큰 밤색 플래스틱 함지박을 엎어놓은 옆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는데 식수로는 부적합하고, 20여미터 아래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비닐장판 조각이 덮여있는 곳이 보이고 옆에는 큰 바가지가 놓여 있어비닐장판 조각을 열어보니 사각형으로 벽돌을 쌓아올려 시멘트를 발라놓은 샘물인데 역시 그냥 식수로 쓰기에는 좀 꺼림칙하고 끓여야만 안전하겠다.

단독산행을 하는 처지에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므로 떠 마시지 않고 그냥 자리를 뜨다.

 

14 : 00  박달령 출발
조금 오르니, 풀밭에 습지에서 볼 수 있는 길이 3㎝ 정도의 가냘픈 코발트색 몸통의 실잠자리 1마리가
날아다닌다.  아마 이 박달령 근처에 습지가 있나보다.  아니면 아까 본 샘터 일대가 습지인가보다.
바람도 없고 직사광선 땡볕이 내려 쪼이니 땀이 많이 난다.  천천히 걸으라고, 서두르지 말라고 다시 속
삭이며 보행 속도를 늦추다.

 

지도에 표시된 흰병이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은 못보고 지나쳤다.
옥돌봉이 가까이 바라보이는 오르막은 가파르다.
옥돌봉을 오르는 동안 땀을 덜 흘리기 위하여 아마 5 - 6번은 더 쉬었나 보다.

 

옥돌봉 직전의 주실령으로 내려가는 갈림길 능선은 표지기가 없으면 대간길로 착각하기 쉽겠다.  좌회전 길로 대간 표지기가 달려 있다.

 

15 : 35  옥돌봉(1242) 도착
소주를 꺼내 정상주 한잔에 초컬릿을 안주하며 휴식을 취하다.
나뭇잎 새싹이 가려서 전망은 별로 좋지 않다.
준비한 물 5병 중 4병을 마시고 한병 남았다.  이제 물 걱정은 없다.
이 한 병 가지고 3 Km 남짓한 도래기재야 못 가겠는가.

 

16 : 05  옥돌봉 출발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내리막이어서 힘이 들지 않아 땀도 별로 나지 않는다.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내려다보인다.  도래기재인가 보다.

 

16 : 55  도래기재(734. 2) 도착.
고개길 도로로 내려서는 길이나 맞은편 오르막 길이나 모두 실전백두 대간에 설명한 사진처럼 위험하
는 않고 통나무를 걸쳐 묻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 사진 촬영 이후에 길을 고쳤나보다.

도로에 내려서서 양쪽 절개지를 올려다보니 어림짐작으로 10층건물 높이는 됨직 하게 대간 마루금을 끊어 놓았다.  30미터 이상은 되는 높이다.  터널을 뚫고 마루금을 살려야 할 곳을 또 보게 되니 심경이착잡하다.

 

고갯마루 서쪽 길가에는 "백두대간 산장"(054 - 672 - 4050, 4159) "민박, 차량, 식사. 3 Km 아래지점"이라는 내용의 간판이 서있고, 동쪽 길가에는 "금정쉼터"(054 - 672 - 3468), "민박, 식사, 영월 쪽  2  Km" 라는 내용의 간판이 서 있다.  그러니까 백두대간산장은 도래기재 남쪽에 있고, 금정쉼터는 북쪽에있다는 뜻이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송수신 상태를 가리키는 막대기 표시는 양호하다.우선 가까운 금정쉼터에 전화를 하여 위치를 물어보니 하금정 마을이라 한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이는나이 많은 할머니인지 숨이 차서 간신히 대답하는 목소리라서 그쪽으로 내려가기는 꺼려진다.
그리고 백두대간산장은 거리가 3 Km라고 하나 그보다 더 멀 것 같은데 내일 새벽에 다시 걸어 올라오려면 힘이 들어 안되겠다는 생각이든다.

 

산행자료를 뒤적여보니 도래기재를 거쳐 춘양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두번이 있다고 하여 054 - 114에 춘양버스터미널 전화번호를 물어보니 054 - 672 - 3477이라 한다.  춘양버스터미널에 전화하여 문의하니 춘양에서 상금정 가는 막차는 17 : 20에 춘양을 출발하고, 이 버스가 상금정에서 되돌아 나오기 위하여 출발하는 시간은 18 : 00이라 한다. 
길가에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1톤 트럭 한대가 춘양쪽 에서 넘어오다 정차하면서 40대 후반의남자가 내려와 인사를 하고 옛날에는 이 고개 밑으로 굴을 통하여 지나다녔는데 굴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대간산행 자료에서 읽은 대로 지나온 고개 밑의 팔각정 정자 있는 곳이 금정굴 입구인데 막아버리고 지금처럼 고갯길을 새로 낸것 같다고 대답하여 주었더니 굴이 없어져 아쉬운 표정이다.

이 남자는 본래 고향이 하금정 마을인데 30년 전에 봉화로 이사를 하고난 후 마침 부근에 볼 일이 있어 왔다가 처음으로 고향을 한번 다녀 가려고 춘양 쪽에서 오르다 보니 어렸을 때에는 분명히 길이 굴을 통하여 지나갔는데 없어져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올라왔다고 한다.

 

남자가 차를 운전하여 떠난 후 실전백두대간 지도를 꺼내 보니 도래기재 부근의 대간길 표시가 잘못 되어있다.  실제로는 대간길이 도로를 건너 바로 연속하여 이어져 있는데 지도에는 팔각정으로 내려섰다가 길따라 올라와 임도가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 들머리가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양쪽 등산로가 어긋나게 표시되어 있다.

 

054 - 131에 전화를 하여 봉화, 춘양 지역 일기예보를 청취하여 보니 내일 날씨는 흐리기만 하겠다 한다.비가 오지 않는다니 안심이 된다.

 

17 : 45  춘양쪽에서 시내버스가 올라오기에 손을 들어 정차시키고 승차하다.
상금정에서 되돌아 나오느냐고 물으니 그렇다 한다.
상금정 종점까지 650원, 상금정에서 춘양까지 2,160원인데 2,600원만 요금통에 넣으라 한다.
버스는 하금정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비포장도로를 따라 상금정마을의 공터에서 되돌아나가기 위하여돌려 정차를 한다.

 

17 : 55  상금정 마을 도착.
버스는 18 : 05에 출발한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 승차하는 승객은 없다.  마을 건물은 10여 채가 보이는데 반 정도는 빈집으로 폐가가 되어
있고, 지도상의 새마을 부녀회관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적적한 마을이다.

 

하금정에서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가의 계곡 물이 참 좋다고 버스기사에게 말하였더니, 이 마을은 일제시대부터 금광을 하던 광산촌이어서 금광에서 채취한 광석을 분쇄하는 작업을 할 때에 속칭 "싸이나"라고 하는 청산카리 덩어리를 넣고 작업을 하였기 때문에 그 독극물 성분이 아직 정화가 안되었지 않은가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어 그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마을 계곡으로 놀러오지 않는다고 한다.

 

18 : 05  나 혼자만 승객으로 탄 버스는 상금정 마을을 출발한다.
비포장도로를 다시 터덜거리며 하금정 삼거리로 나와 포장도로에 올라서니 차체의 소음은 그제야 조용
해진다.

 

18 : 15  도래기재 통과
춘양 쪽으로 조금 내려가니 길 왼쪽으로 팔각정 정자가 보이고 정자 아래 마당 가운데에는 7 - 8 평가
량으로 보이는 조립식 건물이 한 채 보이는데 문이 열려 텅 빈 안쪽이 보인다.  아마 사무실 용도로 지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항상 문이 열려 있다면 비박장소가 되겠다.

 

한참을 내려와 서벽초등학교를 지나서 길 오른쪽에 "백두대간산장" 간판이 붙은 건물이 보인다.  지도를꺼내보니 도래기재까지 도상거리만 4 Km가 넘겠다.  만약 이 민박집 차를 불렀더라면 내일 새벽 일찍이민박집 주인을 깨우지 못하여 실거리 5 - 6 Km 쯤 되는 도래기재까지 걸어 오르다 기운이 다 빠질 뻔하였다.  춘양의 여관으로 가기로 결정을 잘한 것 같다.  도래기재의 안내판 3 Km는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버스는 애당초등학교 앞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간다.
이 곳으로 들어가 마을 한곳을 더 들렀다 나온다고 기사가 설명한다.
약 2 Km쯤 가니 포장길이 끝나고 비포장도로를 다시 3 - 4 Km쯤 더 가서야 작은 마을이 나오는데 여기
서 차를 돌려 다시 나간다.

 

버스 기사는 여기서부터 참새골이라는 마을이라 하며 길따라 올라가다가 산길을 가면 강원도 천평마을이라는데로 넘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이 곳은 지도상 진조동, 실두동으로 표시된 마을 같은데 기사는 이러한 마을 이름은 모르고 있으니, 원주민들은 여기를 참새골로 부르는 모양이다.

 

19 : 00  춘양 버스터미널 도착
버스는 봉화읍으로 간다기에 여기서 하차를 하다.
터미널 근처에 여관 간판이 두 군데 보인다.  태백여관은 신장개업 축하화환이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
으로 보아 근래 새로 생긴 듯 하고, 좀 떨어진 동아여관은 지은 지 오래 된 듯 외벽 건물이 낡아 보인다.

 

터미널 마당 맞은편 길 건너에 "맛깔분식"집이 보여 들어가 물어보니 21 : 00까지 영업을 하고, 김밥은2줄 1인분에 2,500원이라 한다.  저녁 식사 후 다시 오겠다고 하고 나오니 바로 옆에 개인택시조합 사무실이 있고 앞마당에 개인택시 3대, 법인택시 1대가 주차되어 있다.

 

법인택시 기사를 찾으니 개인택시 기사 한사람이 나서서 잠시 볼 일 보러 어디 갔는데 무슨 일이냐 묻기에 내일 새벽에 도래기재를 가려고 예약을 하려 한다고 했더니 왜 굳이 법인택시를 찾느냐고 한다.

 

그래서 사실은 백두대간 종주 중인데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겪어보니 시골일수록 개인택시는 새벽 일찍 일어나기를 꺼려함을 경험했기 때문이라 하였더니, 내 말을 시인하면서 그러나 이곳 춘양에서는 저녁에 미리 예약을 하면 새벽운행을 해준다고 하며 몇 시에 가느냐고 묻기에 새벽 04 : 00에 출발한다 하였더니 염려 말라며 명함을 건네주는데 보니 정재범씨(011 - 806 - 3355, 경북 16바 6619호)다.

 

춘양택시는 미터기로 가는지 목표지점별로 정한 요금으로 가는지 물으니 도래기재까지 15,000원을 받는데 미터기를 작동해도 그 정도 나온다 한다.  여관을 아직 못 정했다 하니 동아여관으로 가라 권한다.

 

동아여관으로 가서 숙박비 20,000원을 지불하고 여장을 푼 후 허기가 져서 그냥 나와 터미널을 지나 큰길로 나가 둘러보다 가까운 정육점을 겸하는 "종점식육점식당"으로 들어가 삼겹살 2인분(10,000원)에 밥 한공기(1,000원) 소주 1병(2,000원)을 시켜 포식을 하다.

 

동아여관으로 돌아와 양말, 상의 남방셔츠, 속옷, 수건 등을 빨아 따뜻해지는 방바닥에 널고 샤워를 한 새 옷을 갈아입으니 개운하다.

 

카운터로 나가 김밥을 주문하기 위해 "맛깔분식" 전화번호를 아는지 물어보니 직접 전화를 걸어 바꿔주기에 김밥 2인분을 스치로플도시락에 담지 말고 비닐랩으로만 1인분씩 포장해 달라고 주문하니 20분쯤있다 배달해 주기에 5,000원을 지불하고 여관방 냉장고에 넣어 두다.

 

21 : 30  취침23 : 30 방안이 더워 잠이 깨서 옷을 모두 다 벗고 팬티만 입은 채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