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기 [제11회] (하)
○ 단기 4335년 5월 14일 (화) 맑음 (제27일) - 금일 산행구간 : 도래기재 → 화방재
03 : 20 기상
면도, 세수 후 냉장고의 김밥을 꺼내 배낭에 넣고 방바닥의 빨래를 만져보니 다 말랐는데 등산양말만 두꺼워 덜 말랐다. 양말만 따로 배낭의 다른 주머니에 넣다.
여관방 화장실에서 0. 5리터 페트병으로 5병을 식수로 받아 준비하다.
04 : 00 개인택시 정재범씨를 호출(011 - 806 - 3355)하니 여관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 한다. 여관 밖으로 나가니 바로 도착한다.
04 : 10 택시 승차하고 춘양 출발
백두대간 종주 중이라 하니 정재범씨도 50여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춘양태백산악회" 회원인데 태백산 - 소백산 구간 등산을 자주 하고 있으며, 선달산 - 구룡산 간의 이정표와 구룡산 정상석 등도 자기네 산악회에서 설치한 것이라 한다.
어제 본 나무에 못박아 붙인 이정표들인 모양이다.
구룡산 정상에서는 북쪽 등산로로 직진하지 말고, 남쪽으로 급하게 휘어지는 길이 대간길이니 주의하라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04 : 25 도래기재 도착(택시비 15,000원)
04 : 30 도래기재 출발
절개지 오르막은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데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하늘이 부옇게 먼동이 터 오고 있으나, 발 밑이 어두워 손전등을 켜들고 숲길로 접어드는데, 출발부터 얼굴에 거미줄이 감긴다. 오늘도 거미줄과 전쟁하는 하루가 되겠다.
바람이 불지 않아 후텁지근하여 땀이 나기 시작한다. 남방셔츠를 반팔로 걷어올리고 천천히 산길을 오르다.
05 : 00 날이 완전히 밝아져 손전등을 끄다.
05 : 05 첫 번째 임도 도착.
길 건너 대간길 우측에 속리산 정이품송을 연상케 하는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휴식을 취하면서 얼굴에 썬크림을 바른 후 비타민 1정을 먹다.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다가 덜 마른 등산양말 생각이 나서 배낭에서 꺼내 여벌로 가지고 다니는 등산화 끈으로 묶어 배낭 뒤쪽에 매달고 출발하다. 몇 시간 후면 마르겠지.
어제 저녁에 삼겹살을 포식하여서인지 배는 고프지 않다.
06 : 20 두 번째 임도 도착
잠시 휴식 후 출발하니 바로 발아래 남쪽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오는 차 소리가 나서 숲 사이로 내려다보니 1톤 트럭 1대가 고개마루 길가에 주차하는 듯 하더니 여러 사람의 남녀들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어제의 박달령 고개에서처럼 나물이나 약초 채취꾼들인 것 같다.
이 후 이 남녀들의 말소리는 구룡산 정상 부근까지 내 뒤를 따른다.
거미줄은 극성스럽게 얼굴을 휘감는다.
아름드리가 넘는 춘양목들이 우람한 자태로 서 있다. 춘양목은 소나무의 별개 종류가 아니고, 이 곳 춘양 일대의 소나무가 곧고 큰데다 목질이 좋아 대궐이나 관아의 토목공사용으로 벌채하면서 타지방 소나무와 구분하여 지명을 따서 춘양목이라 이름하였다 전한다.
1256봉은 정상에 오르지 않고 약 100여미터 아래에서 멀리 우측으로 마루금을 피하여 우회하게 되어 힘이 덜 든다. 1256봉을 우회하여 마루금에 접어들자 바위가 나타나는 게 자료에서 읽은 "집채만한 바위"인 모양이고 구룡산 정상이 가까워지는 것 같다. 더워서 땀이 많이 흐르니, 어제처럼 식수 절약을 위하여 천천히 가자고 나 자신에게 다시 속삭여 본다.
07 : 20 구룡산(1345. 7) 도착.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한쪽에 개인택시 정재범씨 설명대로 "춘양태백산악회"에서 세운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 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 일대에는 나무그늘이 없어 그늘을 만나는 적당한 곳에서 휴식과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고 남쪽으로 휘어지는 대간 표지기가 매달린 길을 따라 내려서다.
30여 미터쯤 내려가니 멧돼지가 대간길 양쪽을 파헤쳐 놓았는데, 작은 곳은 직경 20센티미터쯤, 깊이 30센티미터쯤 되게 시추공을 뚫은듯 한 구멍이 뚫린 곳부터 시작하여 어떤 곳은 쟁기질하여 완전히 갈아엎어 밭으로 개간하여 놓은 듯한 곳도 있다. 흙의 상태를 보니 오래 된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오늘 새벽에 파헤친 듯 젖은 흙이 전혀 마르지 않은 곳도 간간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 비탈 아래에서 약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비릿한 짐승 내음이 어렴풋이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새벽에 풀뿌리를 포식한 멧돼지들이 저 아래 비탈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멧돼지는 밤중에 농가까지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야행성 동물이니 주로 밤중이나 새벽에 이렇게 파헤치나 보다.
그런데 해발 1,300미터가 넘는 이 높은 곳을 멧돼지들이 힘들게 올라와 더욱 힘들게 쟁기질을 해대며 캐 먹는 풀뿌리나 나무뿌리는 무엇일까 ? 능선 아래 계곡 쪽 토양이 비옥한 지대에 먹을게 더 많을 터인데 척박한 마루금까지 멧돼지를 유인하는 먹이는 무엇인가 ?
그 먹이의 성분에는 혹시 아편이나 필로폰같은 마약처럼 멧돼지를 환장하게 만드는 성분이라도 있는 것인가 ? (대간 마루금의 멧돼지 초토화 현장은 태백산까지 계속된다.)
구룡산 정상에서 약 500여 미터 진행하니 지도에 표시된 대로 방화선이 시작되는데 길 오른쪽에 간간이 보이는 방화선 구축 당시 벌채하여 쌓아놓은 통나무 더미들이 거의 썩어 부스러지기 직전 상태인 것으로 보나, 방화선 길바닥에 사람 키가 훨씬 넘는 나무들이 새로 자라고 있고 풀밭으로 식생이 복원되어 있는 상태로 보아 이제는 방화선의 기능은 상실한 것 같다. 산불이 어느 쪽에서 발생하더라도 방화선의 역할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방화선이 나타나면서부터는 길이 넓어져 거미줄이 얼굴에 감기지 않아서 좋다.
07 : 50 멧돼지의 쟁기질이 좀 뜸해지고 구들장 같은 넙적한 돌이 두어개 있어 앉기 좋고 그늘이 진 곳이 나타나 김밥 1인분을 꺼내어 소주 반주하여 된장, 북어포, 생마늘 등의 반찬으로 아침 식사를 하다.
08 : 10 아침식사 및 휴식 끝내고 출발.
좀 뜸해진 것 같던 멧돼지의 쟁기질은 얼마 안가 또 다시 조금 전보다 더 처참한 몰골을 대간 마루금에 드러내고 있다.
길 오른쪽에 쌓인 썩어가는 통나무 더미를 몇 군데인가 지나는데 오른 쪽 비탈 아래로 토끼 한 마리가 여유 있는 속도로 달려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도상에 표시된 고직령, 1,231봉 등은 어디인지도 모르고 지나쳤고, 산령각도 눈에 띄지 않는다.
08 : 50 "참새골 입구" 라는 이정표 설치지점 도착
이정표는 철제인데 많이 삭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지도에 없는 임도 규모의 넓은 길이 남쪽에서 올라와 대간을 넘어 북쪽 비탈로 내려가는 4거리이다. 길이 훼손된 곳만 없다면 4륜구동 차량은 통행할 수 있을 만큼 넓다.
이곳이 지도상 "곰넘이재"인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잘 모르겠다.
어제 도래기재에서 승차한 버스 기사의 말이 생각난다. 기사 말대로라면 대간 남쪽의 실두동, 진조동이라는 지도상 지명을 이곳 원주민들은 "참새골"이라 부르고, 대간을 가로지르는 이 임도는 남쪽의 참새골 에서 북쪽의 "천평" 마을로 가는 길이 맞나보다. "천평" 마을은 지도상에도 표시되어 있다.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데, 내가 백두대간 종주의 대장정에 올라 여기까지 온 줄을 어떻게 알았을까 ?
공군 전투기들의 축하비행이 시작된다. 비행음이 크고 형체도 크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저공비 행을 하는 것 같다. 북쪽 골짜기에서 멀리 간혹 들리는 드드드득 하는 파열음은 기총사격음인가보다. 축하비행에 예포까지 발사하여 나를 맞아준다.
09 : 40 방화선 끝나는 지점 도착.
방화선이 끝나는 곳의 마루금에 있는 "처사 덕수이공" 묘지 봉분 앞쪽과 그 주변은 군데군데 파헤친 훼손 흔적이 있는데 아마 작년 이전의 멧돼지 소행 같다. 구룡산에서 이곳까지는 굴곡이 심하지 않은 능선길을 편안하게 왔는데, 묘지 옆을 지나면서부터는 신선봉을 향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별로 험하지도 않은 길인데 정상을 향하여 밧줄이 길게 매어져 있다.
그늘 없는 땡볕에 가파른 오르막을 만나니 숨도 차고 땀도 많이 흐른다. 화방재에 20 : 00까지만 도착하면 되니 땀을 덜 흘려 식수를 아끼기 위해 천천히 걷기로 다시 한번 결심한다.
10 : 10 신선봉(약 1300) 도착.
표지석은 없고 정상 한복판에 "처사 경주손공" 묘지가 있는데, 봉분과 주변 묘역은 멧돼지 피해를 받은 듯한 흔적이 보인다. 북쪽 능선 헬기장 너머로 "등산로 없음" 경고판이 보인다.
동남쪽으로 급히 휘어지는 대간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다.
군데군데 산죽의 저항이 있으나 힘들만큼 심하지는 않다.
물은 5병 중 2병을 마시고 이제 3병 남았다.
11 : 10 "차돌배기(1200)" 이정표 설치지점 도착.
태백산 10 Km, 3시간 10분, 석문동 6 Km, 1시간 40분이라 쓰여있다.
조금 전의 "참새골입구" 이정표와 같은 재질이다.
이곳이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석문동"은 지도상 남쪽방향에 있는데 지도에 등산로 표시는 없다. 주변에 차돌로 되었거나 차돌이 박힌 바위라도 있는지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연고로 이러한 지명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차돌배기"는 "차돌박이"의 다른 발음으로, "제비추리" "아롱사태" 등과 함께 쇠고기의 3대 특급부위 중 하나이다. 소 한 마리에서 2 - 3근 정도 나온다는 차돌박이는 차돌색깔의 기름진 고기로, 소 가슴 양지머리뼈에 붙어있고, 제비추리도 2 - 3근 정도 나온다고 하는데 등쪽 안심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위이며, 아롱사태는 사태살에서 소 한 마리당 3 - 5근 정도 나온다고 하는 고기로 이 세가지 특급부위들은 모두 식도락가들이 즐기는 고기들이다.
지도상 각화산 갈림길은 어디인지 모르고 지나치다.
길은 북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면서 마루금을 비껴서 왼쪽 9부능선으로 가다가 다시 마루금을 넘어 오른쪽 9부능선으로 접어드는 고개에 이른다.
차돌배기 이정표 지점에서 약 1 Km 정도 진행한 거리인데 이 고개에 선답자들이 "엉터리 이정표"라고 칭하는 "깃대봉"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이다. 차돌배기 4 Km, 태백산 6 Km라고 쓰인 곳이다.
12 : 00 전투기들의 축하비행이 멈춘다. 점심식사를 하나보다.
12 : 05 1174봉을 넘어 안부 4거리 갈림길 도착.
왼편 서쪽은 춘시리골과 만나는 길이겠고, 오른편 동쪽은 장바위골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은데 지도상 등산로 표시는 없다.
왼편 길 나뭇가지에 2리터 짜리 플래스틱 물병이 꽂혀있고, "우물 200보, 컵 필요"라는 "바람나그네" 님의 메시지가 매직펜으로 쓰여 있다.
깃대배기봉을 향하는 오르막길 마루금에 둥글고 봉긋하게 솟은 흙더미 위에 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고 있어 자세히 살피니 고총(古塚)이다. 봉분 위에는 직경 10 - 15센티미터 정도, 키 5 - 6미터 정도의 20여년생 참나무 2그루, 직경 7 - 8센티미터 정도, 키 3미터 정도의 철쭉 3그루가 자라고 있다. 적어도 20년 이상 돌보지 않는 묘지로 추측 된다.
묘지 자리가 좋지 않아 자손이 끊겼는가 ?
아니면 너무 명당이라서 자손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출세하여 미국 같은데 이민을 가서 번창하면서도 거리가 멀어 돌보지 못하는 묘지인가 ? 묘지 자리가 너무 나빠도 절손이 되는 바람에 고총이 되고, 너무 좋아도 자손이 똑똑하여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이렇게 고총이 된다고 한다.
갑자기 동풍이 서늘하게 불어오며 땀을 식혀준다.
깃대배기봉 정상 직전에서 길은 깊이 2미터가 넘는 교통호(交通壕)같은 골짜기를 지나간다.
길 오른쪽에서 노랑 색 몸통의 왕벌 한 마리가 날아다닌다.
13 : 10 깃대배기봉(1370) 도착.
봉화군청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다.
그냥 앉으면 풀이 훼손될 것 같아 적당한 장소를 찾다 못하여 낙엽이 깔린 길 가운데 그냥 앉아 김밥 1인분을 꺼내 소주 반주하여 점심 식사를 하다. 이제 물은 1병 반(0. 75리터)정도 남았다. 도중에 물이 떨어지면 태백산 아래 망경사에서 보충하면 되니 걱정은 없다.
식사하면서 생각해 보니 아까 잘못 세워졌다는 "깃대봉" 이정표는 이 곳에 세워야 하는데 제작 수송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하여 엉뚱한 장소에 세운 것이 분명하다. 지도를 꺼내보니 그 이정표에 기록 된 차돌배기 4 Km, 태백산 6 Km는 지금 이 깃대배기봉에서의 거리와 거의 일치한다. 공사 감독자의 착오인가 ? 아니면 감독 없는 상태에서 일꾼들끼리 수송하다가 아무데나 세워버린 것일까 ?
13 : 30 전투기들의 축하비행과 예포 발사가 재개된다.
13 : 50 깃대배기봉 출발.
오르내림은 여러 번 반복되나 낙엽이 깔려 푹신한 부드러운 길이 계속된다.
부소(쇠)봉을 약300 - 400미터 앞둔 지점에서 마루금 오른쪽 비탈 약 50미터 아래로 큰 포장마차 크기의 파란색 비닐이 씌워진 농막같은 구조물이 하나 보인다. 내려가 확인하고 싶으나 귀찮아 그냥 진행하다.
나뭇잎이 완전히 피어 가리면 마루금에서는 보이지 않겠다.
지도에는 길이 부소(쇠)봉(1546. 5) 정상을 거쳐가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00여 미터 앞두고 왼쪽 비탈로 멀리 우회한다. 우회하여 한참 가니 마루금과 만나는 문수봉 갈림길 3거리에 이른다.
15 : 05 문수봉 갈림길 3거리 도착.
멀리 천제단 앞에는 40 - 50여명의 등산객들이 오가는 것이 보인다.
천제단 주변에는 철쭉이 만발하였는데 진한 빨강 색이 곱기도 하다.
잠시 쉬면서 아침에 배낭 뒤에 매달고 온 양말이 다 말랐으므로 끌러서 배낭 속에 집어넣다.
주목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철쭉은 이제 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는데 더 높은 곳의 천제단의 철쭉은 벌써 만발하였으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15 : 15 하단(下壇) 도착
하단에 올라 단군성조님께 4배를 올려 참배하다.
천제단이 가까워지면서 살펴보니 저 아래서 철쭉으로 보았던 꽃은 진달래였다. 이렇게 넓게 군락을 이루어 완벽하게 만발하여 그 붉은 자태를 자랑하는 진달래의 장관은 처음이다.
15 : 25 천제단(天祭壇, 1560. 6) 도착
천제단에 올라 다시 단군성조님께 4배를 올리다.
천제단 안에는 무속인으로 보이는 여인 둘이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태백산 산신령의 기를 내림 받고자 하는 남녀 무속인들이 모여들어 망경사에 하숙을 정하고 상당기간씩 기도를 하는 곳이 이곳 천제단, 장군단, 단종사당 등이라 한다.
태백산 신령의 기는 워낙 세어서 대가 세지 못한 무속인은 그 기를 받지 못하여 기도를 끝내지 못한다는 소문도 있다. 무당 하면 통상 여무(女巫)를 일컬으나 광의적으로 남녀를 모두 통칭하며, 남자 무당은 "박수", 여자 무당은 "만신"으로 세분하여 부른다.
무당들은 각자가 모시는 신이 제각각 다르다 한다. 이들이 모시는 신을 "몸주"라 하며, 예를 들면 어떤 이는 관운장을, 어떤 이는 최영장군을 몸주로 모시기도 한다 하는바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상당히 오래 전에 어느 신문에서 읽은 기억으로는 대구인가 부산인가에서 사는 어떤 무당은 "맥아더 장군"을 몸주로 모시기도 한다는 기사를 읽고 포복졸도를 한 일도 있었다. 귀신까지도 외제를 선호하는 건지 원.
아뭏든 국조 단군성조님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는 천제단이 무속인들의 신내림 기도터로 점령되고 있으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15 : 35 태백산(1566. 7) 장군단(將軍壇) 도착
장군단에 올라 또 다시 단군성조님께 4배를 올리다.
장군단 안에는 무속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사람이 앉아 기도를 하고 있다. 장군단 내부의 돌은 언제 무슨 까닭으로 화재가 났는지 불에 까맣게 그슬려 흉물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다.
천제단에서 시작된 진달래 군락은 여기까지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장군단 뒤에 앉아 소주를 꺼내 정상주로 마시며 휴식.
물은 이제 반병(0. 25리터) 남았는데 화방재까지는 견딜 수 있겠다.
16 : 00 태백산 출발
여기서부터는 흙이 패어나가 너덜과 바위가 드러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대간 표지기는 눈에 잘 안 띄고 일반 표지기만 많아 혹시 길을 잘못 들지나 않았는지 의심이 날만한 구간이다.
자갈 너덜길이 끝날 즈음 유일사의 화물 인양기(引揚機) 시설이 보인다.
16 : 35 유일사 화물인양기 시설 설치지점 도착
유일사 매표소에서 갈라져 올라온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이다. 길에 갤로퍼 지프 한대가 주차되어 있다. 대간길은 인양기 우측을 돌아 표지기가 보이는 숲길로 접어들어 철망 울타리가 쳐진 탑 옆으로 이어진다.
한참 진행하니 4거리 안부가 나온다. 왼편 서쪽 길은 군부대에서 설치한 출입금지 대형 경고판이 서 있는데 그쪽에서 산나물을 채취한 여자 둘이 올라온다. 지도상 1,174봉이니 사길치니 하는 곳은 어디인지도 모르고 지나쳐 한참 진행하니 자그마한 마당에 작은 기와집이 서 있는 안부가 보인다.
17 : 20 산령각 도착
조선조 단종의 혼령을 모신 산령각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내일 산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통화상태가 양호하여 033 - 131에 걸어 일기예보를 청취하다.
내일은 20 - 50밀리의 비가 오는데 비 올 확률은 오전 60%, 오후 90%이며, 모레는 비가 오다가 차차 개이겠다고 한다. 비 예보로 내일과 모레 산행을 못하게 되니 귀가하기로 하다.
산령각을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니 갑자기 대간 마루금에 몇백평은 됨직한 밭이 나타나고 밭가운데로 가로질러 30여미터 맞은편 나무에 달린 대간 표지기가 보인다. 밭에는 군데군데 수십포대의 농용석회가 놓여져 있다. 며칠 후 파종을 하고 밭농사를 시작하면 후답자들은 어디로 돌아서 대간길을 이어가야 할지 걱정이다.
대간 마루금 오른편 동쪽 바로 아래에는 지도에 없는 절이 있다.
밭가운데로 걸어서 대간 표지기가 있는 숲길로 들어가 한참 진행하니 가파른 내리막이 나타나고 화방재 포장도로가 보인다. 어평휴게소가 대간 마루금 오른쪽을 깊이 절개하고 건축되어 들어 앉아 있고, 휴게소 부지 경계 철망울타리 옆으로 길이 나 있다.
17 : 40 화방재(950) 도착
도로를 건너 다음날 진행할 들머리를 찾아본다. 도로변의 슬레이트지붕 농가와 경찰초소 사이로 농로 비슷한 골목길이 나 있고 이 길로 첫 번째 농가를 지나 두 번째 빈집 왼편 처마 밑으로 대간 표지기가 붙여져 들머리 표시를 하고 있다.
다시 길 건너 어평휴게소 2층에 민박집 간판이 붙어있어 2층에 올라가니 민박은 아래층 "기사님식당"(033 - 553 - 3455)에 문의하라는 쪽지가 붙어있다. 1층 식당에 문의하니 숙박료는 방 1개에 20,000원이며 욕실도 있다고 한다.
매점에 들어가 병맥주 1병, 과자 1봉(2,100원)을 사서 마시며 매점 주인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영월쪽에서 넘어오는 태백행 시내버스가 18 : 00경 통과한다고 한다. 매점을 나와 길가에서 잠시 기다리니 시내버스가 도착한다.
◇ 귀가
○ 단기 4335년 5월 14일 (화)
18 : 10 화방재에서 태백행 시내버스 승차
18 : 40 태백 터미널 도착
태백은 버스 터미널과 열차 역이 이웃하여 있어 연계교통이 편리하기로 전국에서 몇 곳 안 되는 도시이다.
태백역으로 가서 열차 시간표를 보니 청량리행 열차는 이미 끝났다.
나중에 통리역으로 가기로 하고, 어느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 터미널에서 내리막 도로를 따라 100여미터 가다가 우측에 있는 "보명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다. (목욕비 3,000원)
19 : 50 목욕탕을 나와 터미널에 가서 물으니 통리역 가는 시내버스는 20 : 15에 출발한다고 한다.
20 : 15 통리역행 시내버스 승차
20 : 40 통리역 하차
5월 15일 00 : 26 출발 청량리행 무궁화 일반실 열차표 1장(13,600원) 구입후 역을 나와 근처를 돌아보니 시간이 늦어 중화요리집 밖에 문 열은 곳이 없어 들어가니 영업이 끝날 시간이어서 짜장면밖에 안 된다고한다. 할 수 없이 짜장면을 곱배기로 소주 1병과 함께 시켜먹다.
21 : 30 역으로 돌아와 대합실 벤치에서 배낭을 베고 누워 한잠 자다 깨니 23 : 30이다. 두시간을 잔 것이다.
○ 단기 4335년 5월 15일 (수)
00 : 26 통리역 출발 무궁화호 일반실 승차 출발
06 : 05 청량리역 도착
06 : 30 수원행 지하철 승차
07 : 50 수원역 도착 시내버스로 귀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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