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기 [제12회] (가)
◇ 제12회 총 산행 기간 : 단기 4335년 5윌 20일 (월) - 5월 23일 (목) 4일간
◇ 제12회 총 산행 구간 : 화방재 → 삽당령
◇ 배낭 중량 : 약 13 Kg
◇ 산행지로 출발
○ 단기 4335년 5윌 19일 (일)
20 : 30 집을 나서서 수원역으로 가다.
20 : 45 청량리행 전철 승차.
22 : 20 청량리 지하철역 도착.
청량리역에서 삶은 계란 4개 구입 (1,400원)
23 : 00 청량리 발 태백행 무궁화호 일반실(주말임시열차) 승차(13,600원)
조금 전 구입한 계란을 안주하여 소주 마시고 잠들다.
○ 단기 4335년 5월 20일 (월)
03 : 26 태백역 하차
시외버스 터미널 쪽으로 걸어 내려오는데, 야간근무를 하던 태백역 직원들 둘이 터미널 맞은편 "양지기사식당"에 들어간다. 주변 야근하던 이들이 새벽에 들어가는 식당이면 음식이 먹을 만 하겠다고 판단하고 나도 길을 건너서 같은 식당으로 들어선다.
해장국(4,000원)을 시켜 먹으면서 혼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주야간 교대로 24시간 철야영업을 하는 식당이라 한다. 이 근처 바가지 안 씌우는 여관을 물으니 식당 바로 윗층인 가든장 여관이 좋다 한다.
식당 아주머니의 양해를 얻어 수도에서 식수 0. 5리터들이 5병을 받아 배낭에 넣다.
◇ 산행
○ 단기 4335년 5월 20일 (월) 맑음. (제28일) - 금일 산행구간 : 화방재 → 건의령.
04 : 05 태백터미널 앞에 대기중인 택시 승차.
화방재로 가자고 하니 "『어평재』말씀인가요 ?" 하고 반문하기에 그렇다고 대답하다. 부산에서 몇 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와서 살고 있다는 택시 기사는 이곳 원주민들은 『화방재』보다 『어평재』라는 이 름이 더 익숙하다 한다.
우리나라는 지도에 표기된 지명과 원주민이 호칭하는 지명이 다른 곳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 비좁은 나라에 말이다.
04 : 20 화방재 도착
경찰관 초소는 상근(常勤) 초소가 아닌지 외등만 켜져 있고 근무자는 없이 텅 비어 있다.
외등 불빛 아래에서 손전등을 꺼내 켜다.
04 : 25 화방재 출발
지난번 화방재에서 산행 마감을 할 때에 보아둔 두번째 빈집 왼쪽 처마 밑에서 뒤꼍으로 나가는 산길로 접어들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05 : 00 수리봉(1214) 도착.
창옥봉(1238)을 지나면서 해가 돋는 장관을 바라보다.
키 작은 산죽에 맺힌 이슬에 바지가랑이가 조금씩 젖어든다.
완만한 오르막을 한참 오르니 산봉우리에 철망 울타리가 보이고 이어서 국가시설물이 보인다.
05 : 45 국가시설물 도착
방사능 위험 경고문이 울타리 여러 곳에 붙어 있다.
울타리 옆을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니 큰길에서 국가시설물로 진입하는 검은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를 약 400미터 진행하자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만항재다.
고도가 많이 높아졌는지 약간 쌀쌀한 한기가 느껴지고 손이 조금 시렵다.
05 : 55 만항재(1330) 도착.
414번 포장도로에 나서서 좌측 만항재 정상을 보니 휴게소는 셔터를 내린 채로 영업을 개시하지 않고 있고, 우측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간이화장실이 보이자 갑자기 변의(便意)를 느껴 화장실 바로 뒤쪽에 있는 묘지 잔디에 배낭을 벗어놓고 대변을 보고 나오다.
배낭을 메면서 묘지를 보니 상당히 오래된 묘지 같은데, 바로 2미터 정도 떨어진데다 간이화장실을 세워 앞을 가로막아 놓았으니 후손들이 성묘를 올 때마다 울화통이 터지고 눈물이 나겠다.
도로를 벗어나 산길을 따라 함백산을 향하여 오르니 산죽과 풀잎에 맺힌 이슬 때문에 허벅지까지 젖고, 신발 안의 양말도 약간 축축해지는 듯 하다.
흰색 페인트로 도색한 10여 평 규모의 단층 슬래브 건물이 나오는데 빈집 같고, 이 건물 마당에서 우측으로 돌아 조금 가니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약 30여 미터 떨어진 좌측의 갈림길에 안내판이 보여서 가보니 『대한체육회 선수촌 태백분촌 1. 1 Km』라고 쓰여 있다.
비포장도로를 건너 산길로 접어들면서 올려다보니 함백산 정상의 국가시설물들이 보이고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산죽을 베어내 청소를 하였는지 바지가 젖지 않는다.
우측의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며 멀리 선수들이 마당을 뛰는 모습이 조망된다.
함백산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움푹한 곳마다 2 - 3 ㎝정도씩 하얗게 쌓인 것이 처음에는 눈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콩알만큼씩한 우박이다. 택시기사의 말이 어제까지 태백에 비가 많이 내렸다는데 이 곳은 고도가 높아 추워서 우박으로 변하여 쏟아졌나보다.
50여 미터의 너덜과 2개소의 밧줄 설치지점을 지나 오르니 함백산 정상이 나온다. 바람이 거세어진다.
07 : 10 함백산(1572. 9) 도착
뒤돌아보니 태백산에서부터 이곳까지의 대간 마루금이 조망된다.
바람이 너무 거세어 추워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대간길을 재촉하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면서 처음 만나는 땅바닥이 검은 빛으로 보이는 첫번째 헬기장 옆 도로에는 승용차 1대가 서 있고, 같은 형태의 두 번째 헬기장 옆 도로에는 승용차가 3대 세워져 있다.
헬기장을 지나니 길은 대간 마루금 좌측 9부능선쯤에 설치된 주목보호 철망울타리 왼쪽을 따라간다.
주목보호 철망울타리가 끝나고도 9부능선길을 따라가는데 길 오른편에 쉬기 좋은 넙적한 돌이 많이 깔 린 곳에는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다. 스티로플도시락, 댓병 소주병, 2홉들이 소주병, 음료수 페트병 등등이 널브러져 있다.
이제는 쓰레기에 대하여 달관한 자세로 관조할 뿐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한지 오래다. 전에는 산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바위, 돌, 흙, 나무, 풀, 계곡, 물, 야생동물과 곤충 등 7가지 뿐 인줄 알았는데 오랜 산행에서 관찰한 결과 쓰레기와 저질산꾼 등 2가지도 추가하여 산의 9대 구성요소 중 하나이려니 하고 포기하니 마음이 편하다.
그 많은 쓰레기를 장거리 산행에서 일일이 주워 담아가며 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보이는 대로 마음 고생을 하자니 스트레스만 가중될뿐이니 아예 이제 마음 속에서 훌훌 털어 버리기로 한 것이다.
07 : 45 대간 마루금에 올라서서 조금 가니 구상나무 두 그루가 그늘을 좋게 드리우고 있는 중함백 직전의 안부에 쉬기 좋게 넓적한 돌이 여러 군데 깔린 쉼터가 나온다.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지만 이만한 쉼터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 앉아 휴식을 하면서 소주에 호박엿을 10개쯤 안주로 간식을 하다.
08 : 10 중함백(1505) 도착.
중함백을 지나 내리막을 한참 가서 제3쉼터 안내판 설치지점을 지나고도 한동안 움푹한 곳마다 우박이 쌓여 널려있다.
함백산에서 여기에 이르는 구간에서 "구름나그네" "바람나그네" "겨울나그네" 등 같은 "나그네" 항렬 세분 선답자(先踏者)들의 표지기를 보게 되다.
"나그네" 항렬의 별명이나 필명은 참 고운 이름들이 많다. 이번 차제에 아예 미개척 "나그네" 항렬 별명을 도메인으로 등록을 하여 장사를 해볼까 ?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떠오른다. 등록할 이름은 생각해 보면 많이 떠오를 것 같다. 예를 들어 "별빛나그네", "달빛나그네", "눈길나그네", "취중나그네", "사랑나그네", "강변나그네", "산길나그네", "방랑나그네" "가을나그네" "석양나그네" "노을나그네" 등등 뭐 주옥같은 이름들이야 무궁무진하다.
08 : 50 제2쉼터 안내판 설치지점 4거리 도착
이곳이 지도상 4거리 안부인 모양인데 앞뒤로 있다는 샘터는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치다.
여기서부터 200 - 300미터 간격으로 단순히 "등산로"라고만 쓴 스테인리스 재질의 안내판이 수시로 나타나는데, 돈은 많이 들였으되 어떤 것은 쓰러지고 어떤 것은 뽑혀서 거꾸로 쳐 박혀 있기도 하고, 또 어 떤 것은 파손되어 기둥과 안내판이 분리 방치 후 쓰레기가 된 것도 있어 관리상태에 전혀 성의가 없어보인다
09 : 10 제1쉼터 안내판 설치지점 도착.
함백산에서 은대봉까지는 대간 마루금이 일반등산로에 나물꾼과 약초꾼, 밀렵꾼들의 통로가 겹쳐 그러한지 쓰레기더미가 수시로 나타난다.
은대봉 직전에서 마주 오는 "태백여성산악회" 회원 아주머니들 둘을 만나다. 대간을 끝내고 요즈음은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중이라 한다. 설치한 표지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치하의 인사를 하고 헤어지다.
09 : 40 은대봉(1412. 3) 도착
은대봉을 지나 내리막길에서 첫 번째 만나는 임도를 건너 두 번째 만나는 임도에서 마루금을 왼쪽으로 벗어나 임도를 따라 걸으면 양쪽 끝이 어디인지 모르게 철조망이 쳐져 있고, 38번 포장도로로 나가는 임도 입구는 철문에 자물쇠를 채워 놓았다. 배낭을 벗어 미리 앞으로 밀어낸 후 철조망 밑을 기어서 통과하다.
10 : 05 두문동재(싸리재)(1268) 도착.
임도 입구 철문에서 좌측으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보이는 매점은 영업중이고 옆에 화장실도 보인다.
매점 앞 공터에는 승용차 몇 대와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다.
포장도로를 건너 맞은 편 임도 입구에도 철문이 있는데 그 양쪽으로 철조망은 설치되지 않았다. 철문 옆을 돌아 표지기는 임도를 700 - 800미터가량 따라 가다가 금대봉에 거의 이르러서야 산길로 접어든다.
금대봉 정상 직전 왼쪽 30여 미터 아래 비탈에는 나물이 가득 들은듯 불룩하게 가득 찬 큰 쌀포대가 놓여있고 그 위에 모자를 벗어 놓았다.
길가에 취나물이 지천인 것으로 보아 나물 채취꾼들이 일대를 쓸고 다니는가 보다.
10 : 30 금대봉(1418. 1) 도착.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양강발원봉(兩江發源峰)" 말뚝도 서있다.
한쪽에는 가로 세로 30센티에 높이 50센티 정도의 흰색 플래스틱으로 만들어 "대덕산 금대봉 생태보전지역"이라 쓴 환경부가 설치한 사각형 기둥이 서 있다. 이 기둥은 비단봉을 지날 때까지 길가에 수시로 나타난다. 대덕산(1307. 1)은 여기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3. 5 Km 떨어진 곳에 있고, 금대봉보다 낮은 산인데 왜 "대덕산 금대봉"이라 하였는지 이상한 생각이 든다.
10 : 40 점심식사 및 휴식
엊저녁 집에서 싸온 얼린 떡과 멸치조림, 생마늘, 된장 등으로.
11 : 10 휴식을 끝내고 쑤아밭령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취나물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길은 계속하여 편안하게 진행한다.
11 : 55 용연동굴 주차장 1. 4 Km 안내판 설치지점 안부 도착
이 곳이 아마 지도상 "쑤아밭령" 쯤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조금 오르다 3미터 가량 되는 암릉을 오르니 비단봉이 나타난다.
12 : 30 비단봉(1279) 도착
지도상 비단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은 못보고 지나쳤다.
비단봉에서 700여미터 정도 내려가니 대간 마루금은 마치 말등에 안장을 얹어놓듯 고냉지(高冷地) 채소밭으로 개간이 되어 있고 대간길은 끊어져 없어져 버렸다.
바로 만난 농로를 따라 조금 가다가 첫 번째 만나는 농기계보관창고 앞에서 갈라져 우회전하는 농로를 오르니 농막 앞에 50대 아주머니가 휴식을 하고 있어 길을 물으니 농사일 하는 이들 점심과 새참 만들어 주러 이웃 마을에서 일하러 와서 잘 모른고 한다.
부근 일대의 드넓은 고랭지 채소밭에서는 드문드문 경운기와 포크레인 기타 중장비가 밭을 갈고,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수시로 끊어지는 대간길은 멀리 보이는 표지기를 향하여 밭을 가로지르기를 무수히 한다. 지금은 농작물이 없으니 밭을 통과하지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면 주민들과 싸움하기 십상이겠다.
유선방송 안테나처럼 보이는 시설물 있는 봉우리가 매봉산인줄 알고 올라섰더니 아니고 안부 건너 맞은편 통신안테나가 서 있는 봉우리가 더 높은 것으로 보아 그 곳이 매봉산이겠다.
13 : 30 매봉산(1303. 1)(일명 천의봉) 도착.
정상 주변은 여러 개의 참호를 교통호로 연결시켜 놓았다.
매봉산 북쪽 일대 수십만 평은 됨직한 넓은 산비탈이 모두 고냉지 채 소 밭으로 개간이 되어 있다.
매봉산을 지나고도 계속하여 수시로 대간길은 고냉지채소밭으로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다.
1145봉을 지나 조금 가니 이번에는 축산목장의 철망울타리가 가로막고 "등산객은 왼쪽 농로를 따르시오" 라는 안내판과, 울타리 파손으로 가축 도주 시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판이 서 있는 곳이 나타나 가까운 좌측 길로 내려서니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다. 길은 대간 마루금을 10 - 20미터 떨어져 올려다 보이면서 9부능선 따라 피재까지 계속 내리막길이다. 자료와는 다르게 언제 포장이 되었는지 피재까지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피재에 이르기 직전에 길 오른쪽으로 목장 입구 진입로가 보이고, 목장 입구에는 "분수령목장" 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좀 전의 그 경고판 내용으로 보아 이 목장에서 울타리 안으로 진입하는 대간 종주객들과 상당한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법석을 떠느라고 낙동정맥이 갈려 나가는 삼거리는 알지도 못하고 지나쳐 버렸다.
(비단봉 지나서 처음 만나는 농로에서부터 피재까지는 말안장 걸쳐놓기식 개간지와 목장으로 인하여 대간길이 수시로 끊어지고, 멀리 밭 너머 숲으로 가물가물 펄럭이는 표지기를 보고 간신히 이어가기를 무 수히 하였으나,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러한 고생을 하지말고 차라리 마루금을 포기하고 8 - 9 부능선으로 나 있는 농로로 유선방송 안테나와 통신안테나 등을 바라보고 이를 기준 삼아 어림짐작으로 따라가야 함을 깨달았다.)
밭작물이 자라고 있을 때면 밭을 가로지르다 주민들과 싸움이 나기 십상이겠다. 이 구간에서는 야간산행이나 비 오는 날, 안개 낀 날은 길을 제대로 가기가 참으로 힘들겠다.
14 : 10 피재(삼수령)(920) 도착
길 건너 팔각정 정자 아래쪽 길가에 조립식 건물로 지은 매점에 들어가 요기 거리를 찾으니 라면이 된다하여 1개를 시켜 삶은 계란 3개에 소주 1병(합계 4,700원)과 함께 먹다가 남은 소주 반병은 물병에 넣어 간수하다.
요기를 마치고 식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으니 길 건너 맞은 편 절개지 길가에 설치된 수도꼭지를 가르쳐 준다. 길을 건너서 물을 받아 가지고 와 50세 가량으로 보이는 가게 아주머니에게 이 수돗물에 혹시 분수령목장 축산폐수가 흘러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매점에서 쓰기 위하여 목장 반대편 천의봉골 북쪽 산비탈에 간이 상수도 시설을 하여 끌어온 것을 행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길가에 한쪽 가지를 쳐서 설치한 것이니 안심하라고 한다.
아주머니는 백두대간 종주객들이 이 매점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건의령이나 매봉산으로 오간다고 하며, 건의령까지 두시간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매봉산 아래 고냉지 채소밭이 해마다 넓어진 흔적 이 있는 것 같다 하였더니, 그럴 것이라 한다. 이유는 매봉산 고냉지 채소밭에서 생산된 채소는 단단하여 쉬 물러 썩지를 않고 보관기간이 길어 서울 가락동시장에 가기만 하면 불티나듯 팔리기 때문이라 한다.
14 : 40 피재 출발
대간길은 팔각정 정자 왼쪽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몇 발짝 가다가 자료와는 다르게 콘크리트 포장 농로를 따라 조금 가다 산길로 접어든다.
길은 잡목의 저항이 약간 있으나 진행에 크게 방해가 될만한 정도는 아니고 비 오는 날이나 이슬이 내린 날 이른 아침에는 옷과 신발이 많이 젖을 정도가 되겠다.
자그마한 봉우리를 5 - 6개정도 넘으니 널찍한 안부 4거리가 나오고 마루금 길 왼쪽 바로 옆에 20여 평의 습지에 물이 많이 고여 있다.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다.
바람도 없는 한낮 더위에 땀이 너무 나서 보행 속도를 늦추다.
이른 아침에 함백산 일대에서는 추웠는데 여기는 한여름이다.
봉우리 하나를 올라 넘으니 고도는 50 - 60미터 정도 낮아지면서 다시 안부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16 : 15 새목이로 생각되는 삼거리 안부 도착.
우측으로 갈라지는 지도에 없는 산길은 어디로 가는 길인가 ? 여기가 새목이가 맞는다면 조금 내려가다 북동쪽의 둘밭 마을로 가거나 아니면 점리초등학교 쯤으로 가는 길이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중간닭 정도 크기의 새들이 날지는 않고 인기척에 퍼덕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달아나는 것을 3 - 4차례 보았는데 무슨 새인지 모르겠다.
17 : 10. 가짜 건의령 도착
비포장 임도가 가로지르는 건의령으로 생각되는 4거리가 나온다.
피재에서 여기까지 오는 6 Km 정도의 길에는 쓰레기 하나도 볼 수 없고 길도 훼손된 곳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이 구간은 나물이나 약초등이 생산되지도 않고 일반등산로도 아니라서 순수한 대간 종주객만 드나들어 깨끗하였나보다. 보기 드물게 깨끗한 구간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이르니 쓰레기 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다.
도로 건너 대간 마루금에는 큰 묘지 한 개가 가로막고 있고, 그 오른쪽으로 대간길은 이어진다. 묘지 앞쪽은 수십 평은 됨직한 공터이다.
이 곳이 지도상의 그림과 일치하는 건의령과 꼭 같다. 그러나 지도상에 표시된 "백인교군자당" 이라는 당집을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의심이 나서 100여미터 정도 전진하여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여 보아도 앞길에 비포장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당집은 소백산 고치령 산신각처럼 무슨 곡절이 있어 철거되었을 것이며 이 곳이 건의령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선다.
잠시 휴식 후 왼쪽 상사미동 쪽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대간 종주객들의 하산 표지기가 간간이 붙어있는 것을 보니 더욱 건의령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35번 도로 큰길에 거의 이를 무렵 우측 북서쪽 능선에서 지금 내려온 것보다 노면상태도 양호하고 노폭(路幅)도 더 넓은 비포장도로가 뻗쳐 내려와 합쳐진다.
아차 싶어 새로 보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다시 올라가는데 바로 뒤 따라 50대 부부가 탄 승용차 한대가 오더니 도계읍 고사리로 넘어가는 길이 맞느냐고 하기에 실전백두대간 지도를 보여주며 이 길 따라서 건의령 고개를 넘으면 고사리로 가는 비포장도로가 지도에 표시는 되어 있는데 길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길인지 여부는 고개 정상에 가봐야 알겠다고 하니 차에 타라고 한다.
17 : 45 건의령 정상에서 하차.
승용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건의령에서 도로는 동쪽으로 가는 길과 우측 남쪽으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다 대간 산길까지 합하면 5거리이고, 남쪽 갈림길 도로에는 "둘밭마을"이라는 초라한 안내판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지도상의 건의령이 맞기에 다시 지도를 꺼내 보여주며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고사리 가는 길이 맞다고 설명해 주니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내려간다.
당집은 지도상의 위치를 둘러보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당집 찾기를 포기하고 표지기를 따라 대간길을 남진 역주행하여 아주자그마한 봉우리 두어 개를 넘어가며 500 - 600미터 정도 진행하니 아까 착각하였던 가짜 건의령이 나온다. 대간길에 처음으로 역주행 기록을 세운 짤막한 구간이다.
혹시나 후답자들 중 나처럼 여기 가짜 건의령에서 하산하는 종주객들이 생기면 안되겠다 싶어 사방을 둘러보니 쓰레기 더미에 길이 1미터, 두께 3센티, 넓이 10센티 정도의 상태가 비교적 깨끗한 각목이 있기에 주워다 매직펜으로,
"주의. 이곳은 건의령이 아닙니다. 약 500미터 진행 요망"
이라고 쓴 말뚝을 만든 다음 대간길을 남쪽에서 올라올 때 보이도록 임도 건너 묘지 못 미쳐 공터 좌측 낙엽송 밑에다 세운 다음 큰돌을 주워서 각목 말뚝을 약 50센티미터 정도 두들겨 박아 놓다.
[박달령이 제작하여 돌멩이로 박아 세운 <가짜 건의령>을 알리는 말뚝]
무심코 지나는 사람 눈에는 잘 안 띄겠지만 이 곳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하산하려는 종주객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방을 둘러보면 눈에 띌 만한 말뚝이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시 상사미동으로 하산하다.
18 : 15 35번 포장도로 상사미교 앞 도착.
휴대전화 상태가 양호하여 자료에 나온 하장버스정류소(033 - 552 - 0553)에 전화하여 문의하니 태백행 시내버스는 17 : 40이 막차인데 진즉 출발하였다 한다. 실전 백두대간에 나온 막차시간 18 : 25은 틀린 자료이다.
상사미교 남서쪽으로 농가 1채가 있고, 그 다음에 있는 수석식당 마당에 들어가 물으니 하장에서 출발하여 이 곳을 17 : 50에 지나가는 시내버스 막차는 조금 전에 갔다고 40대의 주인아주머니가 대답한다.
가짜 건의령에 속아 생쑈를 하지만 않았으면 충분히 탈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실전백두대간 자료에 나온 태백 택시 전화번호 080 - 581 - 6404로 호출하니 휴대전화는 써비스가 되지 않는 번호이므로 일반전화번호를 이용하라고 응답한다.
033 - 114에 문의하여 알아낸 개인택시조합 033 - 581 - 2555번에 전화하니 여직원이 받기에 수석식당 주인 남자가 일러준대로 "상사미 수석식당"으로 택시 한대를 보내 달라고 한 다음 주인 남자와 백두대간 이야기를 나누는데, 오늘 내가 하산한 그 곳을 건의령으로 착각하여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심한때는 일주일에 몇 명씩 되기도 한다 하며, 그 곳이 가짜 건의령이라고 일러주면 대단히 실망을 하면서 안내표지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내가 오늘 급조한 어설픈 안내말뚝이라도 세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8 : 40 태백 택시 도착 승차.
새벽에 식사를 한 양지기사식당 앞에 도착하니 미터기 요금은 12,000원이 나왔는데 며칠 전 인상전의 요금만 받겠다며 10,000원만 받는다.
양지기사식당에 들어가 제육볶음과 소주 1병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 새벽 야간근무 하던 아주머니 소개대로 윗층 가든장여관(033 - 552 - 9307)에 온돌방 하나 부탁하여 달라고 새로 바뀌어 주간근무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하니 전화를 하여주며 식사하고 바로 올라가라고 말한다.
저녁식사 후 2층 가든장여관으로 올라가 숙박료 25,000원을 지불하고 3층 302호실에 들어가 세탁과 샤워 후 TV를 보다.
21 : 00 취침
23 : 00 잠에서 깨었다 다시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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