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완도(莞島) 상황봉(象皇峰)을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상황봉은 15년 전에 가보았던 곳인데,
좌우 양편으로 바다를 보면서 산행을 할 수 있는 다른 산들은 대부분 200 ~ 300여m의 낮은 산들인데 비
해, 상황봉은 표고가 645. 1m나 되는 높은 산이다.
게다가 오봉능선에 올라서서 심봉을 지나 상황봉에서 백운봉, 업진봉을 지나 숙승봉까지 이어지는 능선도
장쾌하다. 이 종주코스는 완도 섬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경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찾겠다고 마음 먹은 산인데 15년이나 지난 지금에야 상황봉 생각이 난 것이다.
그래서 산행 이틀 전에 호남선 열차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단기 4343년(2010) 3월 26일
드디어 23:40에 출발하는 광주행 호남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싣고 남도땅을 향하는 고독한 방랑자의 마
음은 설레임 그 자체였다.(차비 19,500원) 열차는 밤새 달리고 달려 광주역(光州驛)에 도착한 시각이 이튿
날인 3월 27일(토) 새벽 03:30경이었다.
광주역을 나서서 주변 여기 저기를 돌아다녀 보아도 새벽에 문을 열은 식당은 아무데도 없었다. 왕래하는
사람도 없고 자동차들만 드문드문 다니고 있는데, 문을 연 가게라고는 역 부근에 24시간 편의점 한군데밖
에 없다.
할 수 없이 편의점에 들어가 컾라면 1개와 삼각김밥 두개를 사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1,800원) 역에 돌아
와 의자에 앉아 잠시 텔레비젼을 시청하다가 04:30경에 다시 역을 나서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타고 시
외버스 터미널로 간다.(택시비 3,500원)
매표구에서 완도행 첫차(05:20) 차표를 1장 사서 버스를 기다린다.(차비 14,400원)
옛날에 왔을 때에는 첫차가 04:40이었는데, 버스 이용객이 점점 줄다 보니 05:20으로 된 것 같다.
05:10경이 되니 완도행 첫버스가 홈으로 진입한다.
버스에 승차하니 출발 직전에 기사가 안전띠를 매라고 주의를 준다.
05:20이 되니 버스는 어둠을 뚫고 달리기 시작한다. 버스는 영산포, 나주, 영암, 강진, 해남, 남창, 성전, 그
리고 완도섬의 초입인 원동 정류장을 거쳐 2시간 20분만인 07:40경에 완도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원래 직행버스의 소요시간은 3시간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새벽에 교통체증이 없는 길을 달리느라 막히지
않고 운행을 해서 빨리 도착한 것 같다. 터미널에 하차하니 산행 들머리 대구리 방면으로 곧바로 출발하는
07:45 군내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배가 고파 아침 식사를 하여야 하므로 08:35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고 마음을 고쳐먹고 터미널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백반을 주문하여 식사를 한다.(6,000원)
▼ 상황봉 산행 개념도
▼ 상황봉 산행 지도
▼ 완도 버스터미널
완도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군내버스는 여러 노선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섬 동쪽 해안을 먼저 돌아 일주하는 <동부> 노선과, 섬 서쪽 해안을 먼저 돌아 일부하는 <서부> 노선이 주류를 이룬다. 내가 산행 들머리로 가고자 하는 대구리는 터미널을 기점으로 하여 섬 서쪽방면이므로 서부 노선에 승차하여야 한다.
▼ 군내버스 동부, 서부 노선별 시각표
▼ 완도 버스터미널 내부
아침 식사를 끝내고 터미널로 다시 돌아와 08:35에 출발하는 군내버스 서부행에 승차한다.(1,000원)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 기사에게 상황봉 등산을 할거라고 말하고 대구리를 지나가는지 물으니 잘
안다고 걱정 말라고 한다.
이윽고 군내버스는 약 15분을 달려 대구리 마을에 도착하여 기사가 일러주는대로 하차한다.
길가의 산행 들머리에는 완도군청에서 세운 상황봉 가는 이정표와 등산 안내도가 반겨준다.
신발끈을 조이고 자팡이를 꺼내는 등 산행 준비를 마치니 09:00이 되어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의 논밭에는 새봄을 맞이하는 파란 잡초 풀잎이 돋아나기가 한창이다.
수십마리의 소를 키우는 커다란 축사 옆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 400여m 진행하니 좌측으로
상황봉 갈림길에 이정표가 서있고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 산행 들머리에 있는 대구리 군내버스 정류장
▼ 산행 들머리에 있는 대구리 마을 표지석
▼ 산행 들머리의 등산로 안내도
▼ 상황봉 이정표
▼ 산행 들머리의 콘크리트 포장도로
▼ 길가의 논밭에 돋아난 잡초가 새봄을 알리고 있다.
▼ 새봄을 알리는 야생화
▼ 축사(우사) 옆으로 난 들머리 포장길
▼ 새봄을 알리는 논바닥의 잡초
▼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드는 이정표
▼ 이정표 옆에 서있는 산행 안내도
이정표 옆에는 완도군 보건소에서 세운 쯔쯔가무시병을 예방하자는 표어가 적힌 표지판이 서 있다.
유행성출혈열과 비슷한 병인데 유행성출혈열과 쯔쯔가무시병의 차이는 유행성출혈열은 잔디에 사는 쥐의
배설물에서 옮기는 바이러스이고 쯔쯔가무시는 쥐속에 사는 벼룩이 사람의 몸을 물어서 생기는 병이라서
잔디밭에 구르는 것도 위험하고 잔디 옆을 지나다니는 것도 위험하다는 병이다.
쯔쯔가무시는 감염되면 1~2주 잠복기를 지나 배나 가슴에서 피부발진이 생겨 얼굴, 팔, 다리로 번지고
고열 오한 두통 등이나타난다. 그리고 겨드랑이임파선이 커지면서 통증이 나타난다 . 치료하지 않으면 열
이 2주일 계속되고 . 고령자의경우 사망률이 높기때문에 빨리 치료해야 하는 병이다 .
▼ 완도군 보건소의 쯔쯔가무시병 예방 홍보 안내판
▼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산길
▼ 점점 좁아지는 산길
▼ 사철 늘푸른 잎이 피어있는 활엽수 나무
소나무 숲길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길로 들어서니 사철 푸른 활엽수 나무가 우거져 하늘을 가려 대낮인데
도 어두컴컴하다.
▼ 남해안지역에 자생하는 사철 푸른잎의 나무숲
▼ 하늘을 가리는 나무들로 어두운 숲의 입구
▼ 후미가 수거하지 않아 쓰레기로 전락한 산악회 안내문
어두운 밀림을 지나자 사방이 밝아지면서 전망바위가 나타나 사방을 휘둘러보니 날씨는 맑으나 개스가 끼어서 전망이 좋지 않다.
▼ 어두운 숲을 벗어나자 나타나는 전망바위
▼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본 남쪽 바다 다도해의 풍경
▼ 대구리 남쪽 간척지
▼ 가야 할 심봉
한참을 오르니 갓 피어난 진달래꽃이 반겨준다.
간식거리가 마땅치 않던 국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는 뒷동산에 친구들과 몰려 올라가 흐드러지게 피
어난 진달래꽃을 양손에 한웅큼씩 훑어서 우적우적 씹어먹기도 했던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 새봄을 알리는 갓 피어난 진달래
대구리 들머리에서 상황봉을 향하는 능선이 등산지도에 오봉능선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처음 만나는 310봉이 1봉, 385봉이 2봉, 460. 5봉이 3봉, 그리고 심봉이 4봉, 상황봉이 5봉인 것 같다. 3봉 이후에는 이정표를 못본채 상황봉에 도착했으니...
1봉 능선에 올라서자 나무의 키는 작아지고, 그 대신 키 작은 조릿대숲 사이로 길이 지나간다.
▼ 오봉능선의 제1봉(310봉)을 알리는 해남소방서의 이정표
▼ 능선으로 올라서자 나타나는 낮은 조릿대숲
▼ 점점 가까워지는 심봉과 상황봉
▼ 잡아당겨본 심봉(좌)과 상황봉(우)
▼ 고도가 높아지자 이제 봉오리를 맺은 진달래
▼ 맺힌 봉오리 중에서 수줍은듯 피어난 두 송이 진달래
▼ 길바닥을 더럽혀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산악회 안내지 (바로 1주일 전에 다녀갔다)
▼ 가끔씩 나타나는 암반
▼ 오봉능선의 3봉 정상을 알리는 해남소방서의 이정표
▼ 3봉 정상의 암릉
▼ 다시 하늘을 가리는 무성한 숲
심봉에 이르기 직전 서쪽 당인리 방면으로 갈라지는 능선 삼거리에 "세트장 3. 7Km" 이정표가 서있다.
신라 말기 이곳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한중일 삼국의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해상왕 장보고 일대기를
드라마로 촬영한 세트장을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 셋트장 가는 갈림길의 이정표
▼ 유명했던 드라마 해신(海神) 촬영 셋트장 안내 이정표
▼ 셋트장 갈림길에 걸린 표지기들
▼ 활짝 피어나 새봄을 알리는 생강나무꽃
▼ 심봉 전위봉 암릉
▼ 심봉 전위봉을 넘어서자 멋있게 서있는 나무
▼ 심봉에 올라서기 직전의 암릉
이윽고 심봉(등산지도에는 쉼봉)이 나타난다. 커다란 사발을 엎어놓고 그 위에 촛대심지를 세워놓은 것 같
은 표지석이 보인다. 길가에 심봉을 올라서라고 높이 약 3~4m의 직벽에 밧줄이 늘어져 있다.
그러나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이곳 직벽을 매달려 오르지 않아도 된다.
길을 따라 밧줄 반대편으로 돌아가면 쉽고 안전하게 오를 수 있는 비탈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안전한 길로 오르내리면 힘도 훨씬 덜 들고 편하다.
심봉은 지도책에는 "쉼봉"이라 적혀있고, 높이도 지도에는 590m로 되어 있으나 표지석에는 598m이다.
▼ 드디어 나타난 심봉
▼ 심봉에 올라서라고 매달아놓은 높이 약 3 ~ 4m의 직벽 밧줄
▼ 심봉 정상 표지석(지도에는 "쉼봉"인데 표지석은 "심봉"으로 되어있는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심봉을 지나치자 야생화 군락이 나타나고, 애잔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 심봉을 넘어서자 보이는 야생화
▼ 가까이 다가가본 야생화
▼ 상황봉 200m를 앞둔 이정표
▼ 심봉에서 상황봉 가는길에 지나가는 바위사잇길
드디어 오늘의 정상인 상황봉에 도착한다.
상황봉에는 30 ~ 40여 명의 산행객들이 연신 드나든다. 그중에 완도에 거주하는 한 산행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즉, 날씨가 쾌청한 날은 이곳에서 지리산, 광양 백운산, 제주 한라산 등이 조망되는데 오늘은 개
스가 잔뜩 끼어 아무데도 안보인다고 한다.
정상 표지석 뒤로는 이곳이 옛날 봉화대였던 듯 봉수대 표지석이 서있다.
잠시 머물다가 상황봉을 출발하여 백운봉을 향한다.
▼ 상황봉 표지석 (표지석에는 해발 644m로 되어 있으나, 어떤 지도책은 645. 1m로 되어 있다.)
▼ 상황봉 표지석 옆의 봉수대 소개 표지석(이곳은 옛날 봉화대 였던 모양이다.)
▼ 지나온 심봉
▼ 상황봉에서 내려다본 남해안 전망(날씨는 맑으나 개스가 끼어 전망이 신통치 않다.)
▼ 대구리 남쪽의 간척지
▼ 상황봉 서편의 죽청저수지
▼ 완도 서편의 바다
▼ 백운봉을 향하는 이정표
▼ 위 이정표 옆에 서있는 등산 안내도
▼ 백운봉 가는길의 조릿대 숲길
백운봉 가는 길은 비교적 순탄한 길이다. 한참 진행하니 목조 전망대가 나타나 올라가 사방을 조망해 본
다음 다시 출발하여 조금 더 가니 완도를 동서로 관통하는 넓은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라 하기에는 넓고
바닥이 잘 다듬어져 있는 비포장도로급이다. 이곳에서 서편으로 내려서면 완도자연휴양림으로 가는 길
이다.
임도 고개를 건너서 200여m가량 진행하니 우람하게 세워놓은 목조 전망대가 나타나 올라가 사방을 조망
해본다. 날씨만 개스가 끼지 않았더라면 장관을 이루었을텐데 많이 아쉽다.
▼ 백운봉 가는 길 중간의 제1전망대
▼ 제1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대야저수지
▼ 전망대에서 건너다 보며 당겨서 바라본 백운봉
▼ 가야할 능선과 그 끝의 백운봉
▼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달마산에서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 지도에 없는 완도의 동서를 관통하는 넓은 임도
▼ 넓은 임도를 지나 시작되는 산길(사철 푸른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 어둡다.)
▼ 고개에서 완도 수목원으로 내려가는 임도
▼ 고개에 서있는 이정표
▼ 백운봉을 향하다 만나는 작은 산에 어울리지 않게 우람하게 지은 제2전망대
▼ 제2전망대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
▼ 제2전망대에서 바라본 가야할 백운봉
▼ 잡아당겨 바라본 험준한 백운봉 암벽
▼ 백운봉을 0. 5Km 남겨놓은 이정표(그런데 백운봉이 1. 5Km 남은 것으로 잘못돼 있다.)
▼ 백운봉에서 뒤돌아본 지나온 상황봉과 장쾌한 능선
▼ 백운봉(白雲峰) 정상 표지석(지도책에는 표고가 600m로 되어 있으나 여기는 601m로 되어있다.)
▼ 백운봉에서 내려다 본 바다.
▼ 백운봉에서 업진봉을 향하는 도중의 암릉에 설치된 철계단
▼ 바위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바다
▼ 대야리 하산길과 숙승봉 갈림길
▼ 백운봉과 숙승봉 사이의 업진봉(業盡峰)(지도책에는 545m로 되어있으나 표지석은 544m이다.)
▼ 업진봉에서 내려다본 바다.
▼ 잡아당겨 바라본 가야 할 숙승봉
▼ 숙승봉 앞바다.
▼ 숙승봉 가기 전의 불목리 하산 갈림길 이정표
▼ 지나온 업진봉
이윽고 숙승봉(宿僧峰)이 바로 코앞에 다가선 지점에 도착하여 바라보니 그 암괴의 규모가 무지하게 크다.
이 바윗덩이의 모양이 스님이 좌선을 하다가 졸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해서 숙승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정상 봉우리에는 사람 20 ~ 30명이 한꺼번에 올라서도 될만큼 넓다고 한다.
숙승봉 바위 밑을 돌아 정상에 오르는 지루할만큼 기나긴 철사다리 앞에서 잠시 갈등을 겪는다. 이 봉우리
를 오를까 말까 하고 말이다. 철계단을 여러 개 지나서 오르는 암릉길은 경사가 45 ~ 50도가량의 급경사
인데다, 바람이 약간 세게 불어 오르기가 꺼려진다.
게다가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만든 철계단은 오를때는 부여잡고 오르겠으나, 내려올때 거센 해풍에 몸의
중심을 잃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라 숙승봉 정상을 60 ~ 70여m 앞두고 포기하고 원불교 훈련원이 있는
불목골로 하산을 한다.
▼ 가까이 다가온 숙승봉(宿僧峰 ; 465m)
▼ 숙승봉 아래에서 바라본 업진봉과 능선
▼ 산을 헤집어놓은 임도
▼ 숙승봉을 오르는 길고 긴 급경사 철계단(이러한 철계단을 여러개 지나야 한다.)
숙승봉을 출발하여 지루한 내리막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날머리에 가까워지니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봉오리를 맺고 있다. 날머리에는 검정색 이정표가 서있고, 이정표를 지나 저수지 제방옆을 지나 한참 걸으
니 돌담이 정겹게 둘러쳐진 원불교 훈련원 건물이 나타나고 길가에는 원불교 교리의 가르침 글귀를 새긴
바위돌이 약 100여m 계속된다.
원불교는 1916년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박중빈(朴重彬, 호는 少太山. 1891~1962)대종사가 일원
상(一圓相)의 진리를 깨닫고 세운 종교로서, 단군성조님을 교조로 하는 대종교, 최제우가 세운 동학(천도교)
강일순이 세운 증산도와 함께 한국에서 일어난 4대 민족종교 중 하나인데, 다른 종교는 무속화가 되다시피 했지만 원불교만은 건전한 종교로 건재하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원불교는 <불교>라는 글귀로 인해 불교의 아류(亞類)로 오해가 되는데, 실은 창시자의 깨달음이 석가의 구
도과정이나 깨달음에 일치할 뿐, 불교는 물론 어떤 기성종교의 영향을 받은바 없는 새로운 시대종교, 대중
종교로서의 신흥 민족종교이다.
박중빈 대종사는 깨달음을 얻은 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절망과 빈곤에 시달리던 영광지역 민중을 교
화하여 그들과 함께 금주, 금연, 공동작업등의 결심으로 저축조합을 결성하여 이를 근간으로 8만여평에 이
르는 대규모 농지를 1년만에 간척해내는 기적을 이루어 민중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다음 전국적 포교
에 착수하여 오늘날의 교세를 이루게 된다.
▼ 숙승봉을 내려서자 보이기 시작하는 동백꽃봉오리
▼ 하산이 끝나고 날머리에 서있는 이정표
▼ 원불교 훈련원의 정겨운 돌담길
▼ 원불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새겨놓은 바윗돌들
▼ 원불교 훈련원 입구 간판
▼ 길가에 보이는 붉은 꽃나무
▼ 흐드러지게 핀동백꽃
원불교 훈련원을 지나 약 1. 5Km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어 군외동초등학교 앞 삼거리 가게에 들러 캔맥
주 한개를 사서 벌컥벌컥 들이켜니 피로가 가신다. 시각은 16:30...
가게 주인남자에게 완도터미널로 가는 군내버스 시각을 물어보니 16:45에 지나가니 길건너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된다고 하기에 버스표 1장(1,200)원을 사가지고 길을 건너가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정시에
완도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온다. 승차하여 완도터미널로 향한다.
17:15경 완도터미널에서 하차하여 광주행 직행버스표를 1장(14,400원)을 구입하여 광주행 버스에 오르
니 검표를 하는 직원이 내 차표를 보더니 광주까지 가는 사람들은 5분후에 출발하는 직통을 이용하라고
한다. 그 버스는 아침 첫차마냥 여러군데를 거치므로 시간이 30분 이상 더 걸려 지루하다고 한다.
하차하여 17:35에 출발하는 직통버스를 타고 졸다 깨다 하다보니, 20:00이 조금 지나 광주터미널에 도착
한다. 터미널에서 하차하여 터미널 구내에 있는 전문식당가에 들어가니 여러 종류의 식당들이 연쇄점의
형태로 늘어서 있는데 한식당으로 들어가 육개장을 주문한다.(식대 6,000원)
이 한식당의 특징은 밥그릇에 담은 밥이 산처럼 높이 올라간 고봉밥이다. 옛날 어려서 농사 지을때 밥그릇
위로 그 밥그릇만큼 높이 올라간 그 고봉밥 말이다. 그러고도 밥이 부족하면 얼마든지 서비스 할테니 말씀
만 하시란다. 보통의 식당에서는 밥르릇 높이 이하로 조금만 담아 양이 덜차는데, 이렇게 고봉밥을 담아주
는 것도 상술의 하나일 것이다.
배부르게 포식을 하고나서 21:00경 택시를 타고 열차표를 예매하여둔 광주역으로 간다.(택시비 3,800원)
예매한 열차는 23:30 출발이라 시간이 많이 남아 역구내에 있는 개방형 PC방에 앉아 15분에 500원씩 주
화를 열심히 넣어가면서 인터넷 여기 저기를 두어시간 넘나들다가 출발시각이 되어 열차에 승차한 후 귀
가길에 오른다.(열차비 19,500원)
완도까지는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편도 6 ~ 7시간을 차를 타야하는 멀고도 먼 여정이다.
▼ 고독한 방랑자를 수송하여준 열차표와 버스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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