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단기 4341년(2008) 10월 18일(토) 07 : 30 ~ 15 : 30 (8시간)
날씨 : 맑음 (개스가 끼어 원거리 전망 좋지 않음)
- 산행인원 : 박달령 단독
- 산행지 : 지리산(智異山) 피아골 → 노고단(老姑壇) 정상 → 성삼재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 산행경로 : 직전(稷田)마을 → 피아골산장(789m) → 피아골 삼거리(1,336m) → 노고단 고개 → 노고단
정상(1,507m) → 노고단 고개 → 노고단 대피소 → 무넹기 → 성삼재
- 산행 거리 : 약 12 Km
<산행 후기>
1주일 전인 지난 주 토요일 반야봉과 뱀사골계곡의 단풍 상태로 보아 오늘쯤 피아골 계곡의 단풍을 감상할수 있을 것 같아 피아골을 찾기로 하고 야간열차에 몸을 싣고 구례구역으로 달려왔다.
이른 새벽 03 : 23
구례구 역에서 전라선 열차를 내려 역 대합실로 들어서니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택시 기사들이 시끌벅적하게 성삼재를 오르는 승객들을 상대로 호객과 흥정을 벌이는 소리가 요란하다.
지난주에는 잘 모르고 구례버스터미널까지 택시를 탔지만, 오늘은 역 광장 앞 길건너에서 대기하고 있는 군내버스에 올라 구례 터미널로 향한다.(버스요금 1,000원) 03 : 40 구례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하차한다.
성삼재로 갈것이라면 그냥 그 버스에 타고 있으면 되지만 오늘은 피아골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피아골행 버스로 갈아타려고 터미널에서 하차한다.
터미널 임시 가건물 대합실에 들어가 버스 시각표를 보니 피아골 입구인 직전(稷田)마을 가는 첫차는 06 : 40이니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대합실 벤치에 배낭을 베고 누워 한잠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05 : 10 이되었다. 부시시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려고 구대합실로 건너가 대합실 안의 식당을 들어가려니 발걸음이 내키지 않아 구대합실 후문을 나서서 길가 여기 저기를 둘러보니 해장국 설렁탕집이 눈에 띈다.
들어가니 등산복장 차림의 20여 명 손님들이 이미 여기 저기 흩어져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선지해장국을 시켜 아침식사를 하는데 양도 많고 맛이 괜찮은 편이다.(6,000원)
그래서 터미널 안의 구내식당은 손님이 없고 이곳 식당으로 다 몰려온 모양이다.
▼ 구례 버스터미널 밖 길건너편의 동바리 해장국 설렁탕집 - 아침식사를 여기서 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가건물 대합실로 돌아오니 05 : 40이다.
젊은 산행객 둘이서 대합실에 앉아 있기에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두번째 성삼재행 06 :00 버스를 기다리
는 중이라 한다. 나하고 같은 열차에서 내렸는데 동작이 늦어 내가 탄 버스가 만원이 되어 못타고 구례구
역전에서 여기까지 걸어왔다 한다.
택시를 타지 않고 그 먼길을 걸어왔느냐고 하니 6Km 거리라는 말을 듣고 평지길이니 40 ~ 50분쯤이면 될
것 같아 걸어보았더니 1시간 반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 젊은 산행객들은 오늘은 벽소령 대피소, 내일은 장
터목 대피소, 그리고 모레 천왕봉 일출을 보고 중산리로 하산할 예정이라 한다. 2박 3일의 한가한 산행일정
이 되겠다.
피아골행 첫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 대합실 벽에 걸려있는 버스 시각표와 요금 안내판을 촬영해 본다.
▼ 성삼재(노고단)행 버스 시각표
▼ 피아골행 버스 시각표
(종점 이름이 "연곡사"로 표시된 버스는 직전마을까지 안가고 직전마을 약 2Km 못미쳐 연곡사가 종점)
▼ 쌍계사 방면 버스시각표
▼ 성삼재까지 버스요금은 3,200원이다.
▼ 피아골 직전마을 종점까지는 2,500원, 쌍계사까지는 2,050원
아침 06시 40분에 출발하는 피아골행 군내버스에 승차하여 끄덕끄덕 졸다가 종점인 <직전[稷田]>마을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07시 20분이다. 하차하여 몇 걸음 걷지 않아 피아골 산행 입구가 나타나 07 : 30부
터 산행을 시작한다.
지금부터 꼭 일주일 전에 관찰한 반야봉과 뱀사골계곡의 단풍으로 봐서는 피아골 계곡의 그 눈부신 단풍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레인다. 피아골 단풍은 내장산 단풍과 견준다는 절경인지라 가슴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피아골>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 이름의
음운이 와전되어 <피아골>이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도 피아골 입구의 마을 이름이 "피밭"의 한자표기인
직전(稷田)으로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 같다.
▼ 피아골 입구
▼ 피아골 자연관찰로 안내 표지판
▼ 표고막터의 이정표
▼ 표고막터에서 개울을 건너는 철다리
▼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은 초입의 계곡
그런데 아풀싸 !!!
피아골 단풍의 백미라 일컫는 삼홍소에 이르니 아직 삼홍소까지는 단풍이 내려오지 않고 그냥 푸른 잎새인
채 그대로이다. 삼홍소까지 단풍이 내려오려면 앞으로 1주일은 더 기다려야 하겠다.
산이 붉어 산홍(山紅), 물에 비친 단풍 그림자로 물속도 붉어 수홍(水紅), 이곳을 지나는 사람의 얼굴도 붉어
인홍(人紅) 하여 삼홍소(三紅沼)라는 이름을 가진 절경인 이 곳을 며칠 앞당겨 온 까닭에 푸른 잎새만 바라
보고 허탈감에 빠지고 만다.
▼ 단풍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피아골 삼홍소
▼ 허탈한 가슴을 달래며 삼홍교를 건넌다.
▼ 계곡물은 무심히 흐르고...
▼ 삼홍소를 지나 한참이나 올라가서야 단풍을 감질나게 볼 수 있었다.
▼ 감질나게 하는 단풍
▼ 출렁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조금씩 보이는 단풍
▼ 피아골 산장에 가까워지자...
▼ 서서히 나타나는 단풍...
▼ 피아골 단풍...
▼ 드디어 눈이 시리도록 붉어지는 단풍
▼ 붉다 못해 검게도 보인다.
▼ 선녀교를 만났으니 피아골 산장이 멀지 않았다.
▼ 햇볕에 반사된 노랑색 단풍
▼ 드디어 피아골 산장이다. 선등객 5 ~ 6명이 산장에서 커피를 사 마시고 있다.
▼ 파아골산장을 중심으로 서쪽 노고단 방면 계곡쪽의 피아골산장에서 쌓은 돌탑
(이 돌탑 바로 뒤가 산장 샘터이다.)
▼ 피아골산장 동쪽 계곡의 단풍
피아골산장에서 캔맥주 1개(3,000원)를 사서 마시면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한 다음 반야봉쪽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가 임걸령에서 흘러내린 지능선으로 붙어 오른다.
▼ 피아골산장 옆에 세워진 임걸령 이정표(피아골 산장 해발고도 789m)
피아골산장을 출발하자 마자 등로 주변의 단풍이 현란한 색깔로 자태를 뽑내며 고독한 방랑자의 발걸음을유혹하기 시작한다. 과연 <피아골 단풍>이라는 말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실감케 한다.
직전마을에서부터 피아골산장에 이르는 동안 너무 일찍 찾아온 탓에 단풍다운 단풍을 못보다가 산장을 출발하자 마자 이제야 보게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계곡 상류여서 단풍나무의 개체수가 많지 않아 군락을 이루지 못한 점이다.
▼ 피아골 단풍(1)
▼ 피아골 단풍(2)
▼ 피아골 단풍(3)
▼ 피아골 단풍(4)
▼ 피아골 단풍(5) - 현란한 색깔에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다.
▼ 피아골 단풍(6)
▼ 피아골 단풍(7)
▼ 피아골 단풍(8)
▼ 피아골 단풍(9)
▼ 피아골 단풍(10)
단풍의 현란한 잔치에 정신이 팔려 해찰하며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떡도시락 한 개를 비우느라 피아골 산장에서 출발하여 불과 2Km의 거리를 2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지리산 주능선인 임걸령 약 300여m 서쪽에 위치한 <피아골 삼거리>에 이르니 곰 출현에 주의하라는 현수막이 고독한 방랑자를 맞이한다.
▼ 곰 출현 주의 현수막
▼ 지리산 주능선상에 서있는 피아골 삼거리 이정표
피아골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고단쪽으로 향한다.
▼ 돼지평전에서 -> 왕시리봉 능선으로 가는 길 초에 세워진 출입금지 팻말
( ↑ 이 길로 들어서면 지리 10대 중 하나인「문수대」로 가는 길이라 한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노고단고개에 이른다. 시간은 14 : 00, 그냥 하산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노고단 정상을 바라보니 출입문이 열려 있고, 노고단 탐방은 옛날처럼 예약 방문제가 아니라 인원 무제한으로 매일 개방되어 있다. 다만 하루 중 오전 10 : 00 ~ 오후 16 : 00까지 6시간만 개방한다.
지정된 탐방로를 이탈하지 않는 조건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지리산 종주를 10번을 했는데, 단 한 차례도 노고단 정상을 밟아보지 못했다.
시간도 이른데 오늘은 노고단 정상을 밟기로 하고 오른다. 오늘로 노고단 정상 밟기 숙원사업 한가지가 해결되는 순간이다.
▼ 노고단 고개에 세워진 이정표 (반야봉이 정겨운 배경으로 찍혔다.)
▼ 매일 개방되는 노고단 정상 입구의 안태판
▼ 노고단 고개에서 노고단 정상 오름길의 목재계단길
▼ 노고단 정상의 돌탑(생애에 처음으로 노고단 정상을 올랐다.)
▼ 노고단 정상 표지석 앞에서 감격의 증명사진 한 장..
▼ 노고단 정상 표지석 (표지석 뒤로 공단에서 무슨 공사인가를 하고 있다. 아마 전망대를 짓는 듯...)
▼ 노고단 정상에서 내려다 본 종석대
▼ 지리산 서북릉 고리봉과 만복대
▼ 왕시리봉 능선과 그 끝자락에 우뚝 솟은 왕시리봉(,1243m)
▼ 노고단 정상에서 멀리 보이는 천왕봉과 중봉, 그리고 오른편으로 뻗은 남부능선(낙남정맥)
▼ 남부능선과 왕시리봉능선 가운데에 끼어 뻗어있는 불무장등능선
▼ 형제봉 능선
▼ 형제봉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의 국가시설물과 그 뒤의 백두대간 종석대
▼ 노고단의 유래 설명 안내판
노고단 정상을 뒤로 하고 노고단고개로 되내려와 돌계단길을 내려가자 노고단 대피소가 나온다.
노고단 대피소를 포함한 일대 넓은 평지는 일제시대 남한지역의 서양 선교사들이 50여채의 별장을 지어
여름 한철 피서를 즐기던 별장촌이었다 한다.
▼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 대피소 앞마당을 지나 몇 발짝 성삼재 방면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길가에 "저 건물은 무엇일까요?" 라는 제목의 안내판이 보인다. 전쟁 폭격을 맞은 듯 한 폐허의 건물 사진과 함께...
▼ "저 건물의 흔적은 무엇일까요?"
▼ 그리고 안내판 오른편으로 폐허 건물이 언뜻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는 좁은 오솔길이 보인다.
▼ 가까이 본 폐허건물 유래 안내문
이 비좁은 돌계단길을 20여m정도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폐건물 잔해를 둘러본다.노고단 대피소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데, 숲에 가려 잘 안 보이는 건물 잔해다.이 잔해만 남은 폐건물은 교회 건물이라 한다. 건물 끝벽 한쪽 가에 높이 솟은 부분은 십자가를 얹어 놓았던 첨탑이다.
이 부분을 십자가 첨탑이라는 전제하에 현재 남아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관찰하면서 이 콘크리트 잔해 벽체 목조 부분과 지붕의 목조 부분을 상상하여 보면 불타 없어진 교회의 그림이 대강 그려진다.
일제 강점으로 인한 한일합방 직후 건축된 이 교회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건물이다. 교회는 현재의 노고단 산장 앞쪽으로 질펀하게 형성된 평지와 다름없는 일대에 목조 억새풀지붕을 한 별장 50여채와 함께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큰 마을을 이룬 별장촌이었으며 여름 한철 이곳에서 피서를 하던 수백명 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피서기간동안 예배를 보던 교회였던 것이다.
이 노고단 별장촌은 한여름에는 찬 샘물이 솟고 기온이 서늘하며 경치가 아름다워 당시 동양 제일의 피서지로 알려졌다 하는데, 미국인 선교사들은 화엄사나 천은사 방면에서 이곳 별장촌을 오를때 구례읍내에서사인교를 세내어 타고 오르고, 사인교의 차례가 미쳐 오지 않은 사람들은 지게꾼의 지게등에 타고 앉아 오르기도 하였다 한다.
건장한 미국인들의 체중은 80 ∼ 100 Kg은 될것이다. 옛날 쌀한가마 무게는 쌀 150근 + 가마니 5근 등 합하여 155근이었으니 93 Kg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껏해야 20Kg 남짓한 배낭을 메고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숨이 턱에 차서 헐떡러리며 올라야 하는 화엄사 → 코재의 그 험한 길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몇푼의 품삯을 벌기 위해 그 네 배가 훨씬 넘는 쌀 한가마 무게의 코쟁이 미국인 선교사를 지게에 짊어지고 비오듯 흐르는 땀에 절어 꼬질꼬질해진 베잠방이 핫바지 차림으로 헉헉대었을 당시의 우리 민초들의 몰골을 지금 상상을 해보면서 기층민중들의 설움을 생각하며 솟아오르는 처연한 마음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성삼재를 관통하는 종단도로 자체가 없었고 화엄사에서 코재로 오르는 길이 노고단을 가장 빨리 오르는 유일한 길이었으니까...
이 별장촌은 해방 후까지도 존속하다가 6. 25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 동양제일의 별장촌을 잊지 못한 미국인 선교사들은 노고단 일대가 점점 불어나는 등산객으로 소란해지자 노고단에서 10여Km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 왕시리봉(1243)의 1 Km 남서쪽 아늑한 곳에 몇 채의 별장, 교회, 테니스코트, 간이풀장 등 별장촌을 재건하여 "외국인별장" 이라는 이름으로 지도에 표시된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거의 모두 표시되어 있다.)
▼ 노고단 대피소 바로 옆의 교회 건물 잔해(1)
▼ 교회 건물 잔해(2)
▼ 교회 건물 잔해(3)
노고단 별장촌 교회 건물 잔해를 둘러본 후 다시 발길을 성삼재 방면으로 옮기면 비포장도로와 돌계단 지름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 지점은 한참 더 성삼재 방면으로 내려가다 보면 만나는 <무넹기>라는 곳으로 백두대간 북쪽 심원계곡으로 흘러야 할 계곡물을 대간을 넘겨 남쪽 화엄사계곡으로 인위적으로 넘어가게 하는 공사를 한 진원지점이다.
▼ 성삼재 비포장도로와 돌계단 지름길이 만나는(성삼재에서 오르면 갈라지는) 삼거리
이 무넹기라는 곳은 백두대간의 북쪽 남원 방면 심원계곡으로 흘러야 하는 개울물이 오늘도 억지로 대간 마루금을 넘어 남쪽 구례 화엄사계곡으로 졸졸 흘러넘어가고 있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명분은 화엄사계곡의 수량을 풍부하게 한다 하였지만, 대간 마루금을 잘라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였다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곳이다. "물넘기는곳"의 호남 사투리 "무넹기"라는 이곳의 지명도 인위적인 공사에 의해 억지로 물을 넘겼다 해서 이 때부터 얻어진 이름이다.
몇번의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면서 이 인위적인 수로를 관찰한 결과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봇도랑 물길이 이어지다가 무넹기 직전에서 땅밑으로 토관을 묻어 횡단한 다음 도로 왼편을 약 5 ∼ 10 m 가량 사이를 두고 나란히 진행하다가, 굽어돌게 되는 도로를 버리고 노고단 산장으로 질러가는 돌계단 지름길 갈림길 직전에 만나는 큰 개울이 수로가 만나는 지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무넹기 수로의 시작점은 산사태 방지를 위하여 도로 아래로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로 보를 설치한 곳인데 노고단 산장쪽 계곡에서 흘러오는 개울로, 큰 비가 내려 수량이 불어나면 수로 제방 너머로 넘치는 물이 남원방면 심원계곡으로 흐르고, 평상시에는 인위적 수로를 따라 무넹기로 흘러 화엄사계곡으로 넘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 백두대간 북쪽 노고단 북사면에서 발원하는 계곡물
▼ 가까이서 다가가 본 계곡물
▼ 비포장도로를 횡단하여 설치된 암거를 통해 위의 계곡수를 무넹기로 넘기기 위해 콘크리트 구조물인
보를 설치하여 물길을 막아 돌리고 있는 현장
▼ 돌린 물길은...
▼ 성삼재 방면의 비포장도로 오른편으로 난 봇도랑 수로를 따라 나란히 흐르다가...
▼ 이 오른쪽 공터 같은 곳에서...
▼ 콘크리트 토관을 묻어 비포장도로를 횡단하고...
▼ 비포장도로 밑을 횡단한 물길은 몇 발짝 더 흐르다가...
백두대간을 넘어 남쪽 화엄사계곡으로 떨어지니, 이곳이 바로 <물넘기는 곳>이라는 뜻의 호남 사투리로<무넹기> 라는 이름을 일제식민지 시대서부터 얻어 오늘에 전하고 있는 지점이다.
물길이 대간을 넘어가는 곳을 보면 물을 억지로 넘기기 위해 바위를 쪼아내어 공사를 한 흔적이 엿보인다.한국의 명산 꼭대기마다 주술적 의미로 쇠말뚝을 몰래 박아넣은 왜놈들이 무슨 장난인들 못했을까 ?
오호 통재라 !
산경표를 지으신 선현께서 말씀하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는 글귀가 공염불이 되었도다 !!!
선현들께 더욱 망극한 일은 이러한 사실을 바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이 극소수에 불과하여 이를 바로잡아원상회복 조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씨가 먹히지 않고 있음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되는 낙남정맥도 해방 이후 진주에 진양호를 만들면서 남해바다로 바로 빠지는 수문을 내기 위해 정맥 줄기를 잘라 가화천으로 물길을 냄으로써 정맥 종주자들은 산길을 걷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가화천 위의 다리를 건너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
▼ 백두대간 북쪽으로 흘러야 할 물이 대간 남쪽으로 인위적 공사로 억지로 넘어가는 현장「무넹기」
고독한 방랑자는 오늘도 무심한 물줄기가 백두대간을 잘라먹고 넘고 넘어 흐르는 현장을 착잡한 심정으로비라보며 발걸음을 성삼재로 향하여 옮긴다.
▼ 화엄사와 성삼재 갈림길「코재」의 이정표
▼ 코재에서 올려다 본 종석대
▼ 코재에서 종석대 사이 대간길 출입금지 경고판(여기데도 <무넹기>라는 지명이 쓰여 있는 게 보인다)
▼ 종석대로 가는 대간길을 막아놓고 있다.
▼ 무분별하게 길바닥에 흩어놓아 오염시키고 있는 단체산악회 길 안내 전단지들
▼ 아예 바람에 날려 숲속까지 오염시키는 쓰레기가 되었다.
▼ 길바닥에도 떨어뜨려 놓고...
▼ 한참 걷다 보니 진분홍 단풍나무 한 그루가 눈이 부시게 하며 발길을 붙든다.
▼ 바로 지척에 보이는 고리봉과 만복대 더 가까이 당겨서 본 고리봉과 만복대
▼ 노고단 북사면
▼ 단풍에 물든 고리봉
▼ 노고단 북사면의 단풍과 멀리 반야봉의 정겨운 모습 ▼ 백두대간을 가로막으며 파고 들어앉은 성삼재 휴게소
▼ 성삼재 휴게소 홀 안에 붙여놓은 성삼재 -> 구례 간의 버스 시각표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하니 15 : 30이 되었다.
휴게소에서 캔맥주 1개(2,000원)를 사서 마시며 1시간가량 긴 휴식 끝에 구례행 시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에 승차하니 정확하게 16: 40에 출발하여 17 : 10에 구례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구례구역으로 나가는버스 시각표를 살펴보니 어중간하여 택시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향한다.(택시비 5,500원)
구례구역에 서 택시를 하차하여 역광장 길 건너편 식당에 들어가 비빔밥(5,000원) 한 그릇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18 : 20 출발 전라선 열차에 올라 자리에 앉자 마자 나른한 잠결에 빠져들며 귀가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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