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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28화

by 박달령 2007. 10. 23.

♡ 늙는데는 약도 소용없다. (老子藥亦無用)

어떤 나이든 재상(宰相)이 젊은 첩을 두고 심히 사랑하여 밤마다 잠자리를 같이 하였으나 그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함을 한탄하다가, 신묘하다는 가루약을 구하여 베개 곁에 두고 아침마다 따뜻한 술에 타서 마시기를 몇 달 동안 하였으나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그런데 재상에게 한 종이 있어 주인이 아침마다 약 먹는 것을 엿보고는 틀림없이 좋은 약이리라 생각하여 한번 먹어보아야 하겠다고 노리던 중 어느 날 재상이 아침 일찍이 공무로 출타한 틈을 타 그 약을 따뜻한 술에 두어 숟갈 타 마시고 나서 며칠 후부터 십여 일 간 나타나지 않았다.

재상이 다른 종에게,

"마당쇠가 십여 일이나 되도록 보이지 않으니 괴이한 일이로다. 곧 불러 오너라."

하였다. 잠시 후 마당쇠가 와서 뵈옵자 재상이,
"너에게 그 동안 병이 있었는가 ? 십여 일이나 보이지 않았으니 이상하구나."

하고 물었다.

그러자 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인이 감히 무엇을 속이겠습니까 ? 대감마님께서 아침마다 베개 곁의 약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소인이 지난번에 그 약을 두어 숟갈 훔쳐 따뜻한 술에 타서 마셨는데, 며칠 후 갑자기 양기(陽氣)가 크게 성하여져 참을 수가 없어 소인의 처와 밤낮으로 화합하여 십여 일이 지나도 조금도 굽힐 줄 모르니 이대로 가다가는 곧 죽을 것만 같아 참으로 후회막급입니다."

하고 말하니 재상은 그 말을 듣고,

"원래부터 이 약은 늙은 사람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는 약이로구나. 내가 몇 달 동안 복용하여도 추호의 효험도 없었는데 너는 두어 숟갈의 복용으로도 그 효험이 이렇듯 웅장하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는가 ? 만약 이 약을 그대로 두어 두면 늙은 사람에게는 효험이 없고 젊은이는 죽게 되니 잠시도 두어 둘 수 없다."
하고 약을 모두 분뇨(糞尿)속에 부어 버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