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29화

by 박달령 2007. 10. 23.

♥ 때가 묻어 있었다. (何而有垢)

제주도에 사는 어떤 어부가 많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여관에 투숙하였다. 그 여관 주인 부부는 원래 성품이 간악하여 간계를 써서 어부가 가진 돈을 빼앗고자 하여 그 처에게 나그네가 깊이 잠든 사이에 살짝 나그네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곁에 눕도록 하였다.

남자 주인은 나그네가 잠이 깰 때를 기다렸다가 짐짓 노발대발하며 큰 소리로,
"너는 남의 아내를 유인하여 객실로 끌어다 간통을 하였으니, 세상에 이런 사악한 나그네가 어디에 있는가 !"

하며 관가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짐짓 자기 처를 때리니 그 처가 울며불며,
"나그네가 꾀어 방으로 끌고 가 강제로 겁간(劫姦)을 하였소."

라고 하였다.

나그네는 깊은 밤에 생각지도 않았던 봉변을 당하게 된 셈이나,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니 나그네의 결백을 누가 변명을 하여 줄 것이며, 누가 증인으로 나서 주겠는가.
드디어 주인 남자가 관가에 고소하려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나그네에게,
"관가에 고소당하게 되면 돈을 잃고도 망신을 당하게 되니 지금 곧 돈으로써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이 어떻소 ?"

하였는데 이는 필시 여관 주인 남자가 시켜서 하는 일이었다.


나그네는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돈을 내놓고 사과하기도 저어하여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더니 아침나절에 관가에 소환을 당하게 되었다. 나그네는 사또 앞에서 변명할 말이 없던 중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방사(房事)를 한 양물(陽物)에 때(垢)가 끼어있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

하고 묻자 사또가,
"어찌 때가 묻어 있을 수가 있겠는고 ? 절대로 때는 묻어 있지 않다."

하고 대답 하였다.

이에 힘을 얻은 나그네가,
"그러면 저의 양물을 검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자신의 양경(陽莖)을 꺼내어 보이는데 사또가 자세히 보니 때가 잔뜩 끼어 있고 고약한 냄새까지 났다.
이로써 곧 나그네가 애매한 것을 알게 된 사또는 오히려 여관 주인 부부를 국문 하니 나그네의 돈을 탐내어 무고(誣告)를 한 것이라 자백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