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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1회](하)<벽소령 - 성삼재>

by 박달령 2007. 10. 16.

◎ 백두대간 종주기  [제1회] (하)

○ 단기 4334년(2001)  9월 23일 (일) 맑음 (제2일)
-  금일 산행 구간 : 벽소령산장 → 성삼재

 

03 : 30  단체산행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다시 잠들다.

"뭉치면 개판치고, 헤어지면 도덕군자" 가 되는 한심한 작태를 언제나 안보게 될지 참으로 짜증 난다.

 

04 : 30  다시 한 떼의 단체산행객들이 일어나 떠드는 소리에 완전히 잠이 깨다.

침낭 속에서 한참 뭉기적거리다 일어나 짐을 챙기다.

 

06 : 00  취사장에 가보니 취사객들로 만원이어서 아침식사를 생략하고 연하천산장으로 그냥 출발하다.
도중에 연하천산장 쪽에서 오는 산행객이 벽소령에서 잤다는 나의 말에 자신들은 연하천에 일찍 도착하였

는데 벽소령산장이 만원이어서  잠을 잘수가 없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아 그곳에서 고생스러운 칼잠을 자고

오는 중이라며 벽소령산장 숙소가 절반도 안찼다는 말에 놀란다.

 

08 : 00  연하천산장 도착, 팩소주 2개(6,000원) 구입, 식수 보충.
라면에 인절미떡을 넣고 끓여 팩소주 1개로 반주하며 아침식사.
사진작가로 보이는 30대 남자도 유언비어에 속아 연하천에서 칼잠을 잤다는 하소연이다.

 

40대 후반 - 50대 초반 남자 2명, 30대 전후 남자 2명, 20대 중반 남자 1명 등 5명 일행 등산객들이 비누,

세제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쓰인 게시판 바로 아래의 샘터에서 식기를 세제로 씻고 치약을 사용하여

칫솔질을 하다가 치약 거품을 퉤퉤 뱉어내어 개울을 오염시키는 꼴불견을 목격하다. 한글도 제대로 읽지못

하는 문맹자들인가 보다.

 

09 : 45  연하천산장 출발
무게 20 Kg이 넘는 배낭을 어제부터 짊어지고 걸었더니 이제는 100 미터만 전진하여도 주저앉아 퍼져 쉬

고 싶어진다.  이제는 이 정도 무게를 지탱하기에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나이가 되었으니 서글퍼진다.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에 실려 있는 한무제(漢武帝)의 "아 ! 내 늙었구나 !" 하고 장탄식 하는 추풍

사(秋風辭) 한 귀절이 생각난다.

 

11 : 10  토끼봉(1534) 도착.
연하천 산장에서 이곳 토끼봉에 이르기까지의 능선 남쪽 골짜기가 빗점골이라는 계곡인데 지도에는 이 계

곡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빗점골을 알게 된 까닭은 지금부터 50년 전인 1950.  6. 25.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

생활을 하였던 이우태씨가 "이태" 라는 필명으로 1988년 7월 출간한 빨치산 수기 "남부군(南部軍)" 하권

(下卷)의 지리산 개관도에 빗점골이 표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남부군"은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朝鮮人民遊擊隊 南部軍)" 의 약칭으로서,  9. 28 수복으로 북한군이

패하여 후퇴한 후 지리산을 중심으로 3년간이나 남한 전역의 빨치산을 지휘하면서 게릴라 활동으로 남한

의 군경부대를 괴롭히면서 공포에 떨게 하였던 빨치산 부대의 명칭이었으며, 남부군 총사령관은 이현상

(李鉉相)이었는데, 이 이현상이 1953.  9. 18. 11 : 05경 전투경찰 제2연대 소속 경사 김용식이 지휘하는

33명의 매복조에 걸려들어 10여 발의 총탄을 맞고 벌집처럼 되어 사살된 곳이 바로 이 빗점골이었던 것

이다.

 

이현상이 지리산 인근 일대를 얼마나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 공포의 인물이었는지 지금도 지리산 인근의

6. 25를 겪은 노인들은 이현상을 축지법을 썼다던지, 지리산을 훨훨 날아다녔다던지 하는 등의 전설적인

불사신의 인물로 기억하고 있는 정도이다.

 

이 남부군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하여 무려 3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으며, 지리산 포위 수색에

동원된 토벌군이 한창 많을 때에는 일시에 4만 명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당시 남부군 빨치산의 위

력을 가히 짐작할만 하다.

 

남부군 소속 빨치산이었던 이우태씨는 이현상이 사살되기 1년 반쯤  전인 1952.  3. 19. 경찰에 자수 하

였다.

 

그런데 이 "남부군"에는 기록이 되지 않았으나, 이현상에게는 산중처(山中妻) 겸 빨치산으로 동행하여 시

중을 들던 여인이 있었는데 임신을 하게 되자 이현상이 생전에 귀순을 권고하여 하산시켰다 하며, 그 여인

이 낳은 이현상의 아들이 남한 어딘가에 생존하고 있다는 기록을 다른 책에서 읽은 기억이 얼핏 난다. 

사실이라면 50세 전후의 연령쯤 되었겠다.

 

13 : 00  임걸샘 도착, 식수 보충.
샘물 아래 물이 흐르는 곳에 밥알 찌꺼기 등이 널려 있다.
여러 사람이 청결하게 사용하다가도 한두 사람이 이렇게 불결하게 만들면 더러워진다.

 

14 : 00  돼지령 도착.
제2차 커닝을 결정하다.
돼지령을 지나 조금 가면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출입금지 간판이 가로막고 서 있다. 그 간판 뒤로

사람이 통행한 흔적이 있다.

 

지도를 보면, 이 곳을 지나 오르면 노고단(1,507) 정상이요, 정상을 넘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코재를 만

나야 대간 마루금이다.  그러나 출입통제구간을 들어섰다가 이 나이에 어떠한 망신과 수모를 당할지 알수

없는 일이라 이 구간을 커닝하기로 결정하다. 등산지도상에는 대간길이 이쪽으로 그어지지는 않았으나 지

도의 등고선을 보면 이리로 가야만 대간 마루금이 되겠기에 일단 커닝구간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그리고 산행객들이 일상적으로 다니는 마루금 우측 8부능선 등산로로 발길을 재촉한다. 길 왼쪽으로 높다

랗게 보이는 마루금을 걷지 못하니 웬지 찜찜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물론 이 구간도 다른 대간 종주자들도 출입하지 아니하고 일반 종주자들이 통과하는 코스로만 간다면 커

닝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14 : 30  노고단산장 도착.
취사장에서 식수 보충.  작년에 노고단 오르는 길가 우측에 설치 되었던 수도는 철거되어 없어지고 그 자

리에는 마대자락을 깔고서 초목을 식재하여 식생복원 작업을 하여 놓아 식수는 취사장에서만 받을 수있

다.  라면 1개에 인절미떡을 넣고 끓여 팩소주 1개를 반주로 점심식사를 하다.

 

15 : 40  노고단산장 출발

 

15 : 55  코재 도착
목조 전망대에 올라 화엄사쪽을 바라보며 잠시 휴식 후 내려와 전망대 바로 아래를 흐르는 무넹기를 바라

보니 심정이 착잡하다.

날씨가 상당히 오래 가물었는데도 많은 양의 개울물이 대간 마루금을 넘어 화엄사 쪽으로 철철 흘러내리

고 있다.

 

- 뒤늦게 찍어 올려보는 <무넹기> 현장 사진(인위적 공사로 물이 대간 마루금을 넘고 있다.)

 

이 무넹기는 노고단산장 근처에서 대간 북쪽 심원, 달궁계곡을 경유하여 남원으로 흐르던 개울물을 일제

시대에 화엄사계곡의 수량을 풍부하게 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억지로 대간 마루금을 넘겨 남쪽으로 흐르

게 하였다 하여 이때부터 "무넹기"라는 지명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는 곳이다.

 

"물넘기기"라는 말의 호남지방 사투리가 "무넹기"였는데  이 말이 그대로 지명이 되어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산을 넘지 않고, 산은 물을 건너지 않는다" 라는 백두대간의 대원칙이 여지없이

깨져버렸으니 이 곳을 지날 때마다 항상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어떤이는 일제가 이 무넹기를 만든 것 또한 한반도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산봉우리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넣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제3차 커닝을 결정하다.
무넹기 전망대를 지나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가니 종석대 방면 산길로 들어서는 갈림길에 경고판이

서있다.  무넹기 - 종석대 - 성삼재 구간을 영구 출입금지 조치하고, 위반시에는 뭐 어쩌고 하는 공갈성

문구가 쓰여 있다.  발각되었을 때의 망신과 수모를 생각하여   커닝을 하기로 결정하고, 도로를 따라 성

재로 향하다.


그러나 내려가면서 보니 종석대를 거치는 대간 마루금 길도 성삼재 약 300여미터 못미친 곳에서 마루금

을 포기하고 우측으로 도로로 내 려서는 길이 나 있다.  대간 마루금은 이곳으로 내려서지 않고 성삼재 휴

게소 건물 바로 뒤편의 절개지로 내려서서 건물 지붕을 넘어야 할 것 같다.

 

16 : 20  성삼재 도착
주차장에서는 구례행 버스 시간표 게시물을 찾을 수 없어 휴게소에 들어가 캔맥주(2,000원) 1개를 사 마

시며 물으니 게시물은 없고, 막차  가 18 : 00에 있다는 답변을 듣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도

로 건너편 철망 가운데에 나 있는 출입문이 대간 마루금 고리봉 쪽으 로 들어서는 입구임을 매달린 표지

기에 의하여 확인하고 돌아오다.

 

◇ 귀가
○ 단기 4334년(2001)  9월 23일 (일)


18 : 00  구례행 군내버스 승차 출발 (요금 : 2,950원)
기사에게 버스 시간표 게시물이 안 보이는 이유를 물으니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제지하기 때문이라 하

며, 어떤 때는 주차장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비좁은 도로에서 차를 돌려놓은 다음 마이크 방송을 하여

승객을 태우고 간다는 대답을 들으니 버스회사와 공단 간에 모종의 이해관계가 얽힌 암투 같은 것이 있

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18 : 45  구례 TR 도착 - 근처의 동경장 목욕탕에서 목욕

 

20 : 35  구례구 역전으로 가는 20 : 30 버스 막차를 목전에서 놓치고 택시 승차 (택시비 4,600원)
구례구 역전 삼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에 소주 1병으로 저녁식사

 

23 : 10  구례구역에서 무궁화호 일반실 승차 → 수원까지 14,000원

 

○ 단기 4334년(2001)  9월 24일 (월)


04 : 00  수원역 도착 - 도보로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