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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5회](하)<궤방령 - 갈현>

by 박달령 2007. 10. 15.

◎ 백두대간 종주기 [제5회] (하)


○ 단기 4334년(2001) 10월 17일 (수) 맑음 (제12일)

-  금일 산행 구간 : 궤방령 → 갈현(큰재까지 계획하였다가 중간 탈출)

 

04 : 45  기상.
면도, 세수 후 라면에 누룽지 넣고 끓여 아침 식사

 

05 : 40  황간 출발
어제 저녁 명함 받아둔 택시 호출하여 청수장 여관 앞 길가에서 승차

 

06 : 00  궤방령 도착. (택시비 15,000원)
고개마루에 도착하니 먼동이 터 오면서 사방이 훤해지기 시작한다.

 

06 : 10  궤방령(약 330 m) 출발. 
어제 물을 건너지 않는 실전 백두대간에 설명된 대간 들머리 찾기에 실패하였으므로 다시 경운기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혹시나 능선 쪽으로 난 길이 있는지 찾아서 약 300여미터 전진하였으나 진입로는 찾

을 수 없었다. 다시 궤방령 큰길로 나와 논두렁길 지나 물이 말라있는 개울을 건너 어제 보아둔 대간

지기 달린 길로 진입하려니 찜찜하다.


오늘도 어제나 그제와 마찬가지로 밤사이 바람이 불었는지 나뭇잎이나  풀잎에 이슬이 맺혀있지 않아

옷과 신발이 젖지 않으니 기분이 좋다.  급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지루하게 한참 올라 가성산에 이르다.

 

08 : 10  가성산(710) 도착
장군봉, 그리고 중간에 작은 봉우리, 663봉 등 고만고만한 봉우리 서너 개를 넘으니 눌의산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보인다.

 

10 : 00  눌의산(743. 3) 도착
눌의산 정상 지나서 급경사 내리막을 한참 내려 쏘니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추풍령 마을이 바로 앞에 보

인다. 실전 백두대간 지도상 송라마을을 통과하는 비포장도로는 나타나지 않고 밭과 묘지 가운데로 대

간 표지기는 이어진다.

 

묘지가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로 내려서니 거기서 바로 50여m 앞에 고속도로 밑으로 지나

가는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대간 표지기는 지하통로 입구에 붙어있다. 대간 표지기가 두개나 땅에 떨어

져 있기에 주워들고 지하통로를 들어가 중간쯤에 이르니 사람 키가 넘는 높이에 짧은 철사가 콘크리트

벽에 솟아나와 있어 두 군데에다 대간 표지기를 철사에 비끌어 매어 후답자들이 이곳을 지나야 함을

실하게 표시하여 놓다.


지하 통로를 지나서 좌회전하여 대간 표지기를 따라 철길 건널목을 건너 다시 우회전하니 일반 국도가

나타난다.

 

11 : 00  추풍령(약 220 m) 도착.
예전에는 이 곳의 지명이 황금면(黃金面)이었는데 『추풍령면』으로 바뀌었다.  이 곳 추풍령은 추풍령

면의 면소재지이다.


추풍령을 안 가본 사람들은 "구름도 자고 가는…" 어쩌고 하는 노래를 연상하며 대단히 높은 고개인 것

으로 잘못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해발 200여 미터의 아주 낮은 고개이며 그 일대가 대단히 큰 시가지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큰길을 건너서 사방을 둘러보니 곳곳에 식당과 여관, 민박집 간판이 보인다.  맛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오랫 동안 대충 때워온 점심을 오늘은 편안하고 느긋하게 식당에서 포식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니 군

침부터 먼저 돈다.

 

고개마루에서 처음 만나는 여관과 겸업하는 규모가 큰 식당 마당에 나와있는 아주머니한테 식사 할 수

있는지 물으니 아직 안 된다 한다.


다시 충북 영동군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며 구멍가게 같은 식당은 마땅치 않아 3 - 4군데나 지나치면

서 살피니 규모가 큰 식당이 문을 열었기에 들어가 신발 끈까지 풀고 된장찌개(5,500원)를 시키다.


식사 기다리는 동안 집의 처와 서울 친지 윤용하, 안양 친지 임문현 등에게 지금 추풍령에 도착하였노

라고 전화하고, 식수도 보충하다,
식사가 나와 소주 반주에 점심을 맛있게 들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경상도 말씨를 쓰기에 여기는 충청도 땅인데 어찌 경상도 말씨냐 물었더니 경상

도 사람인데 이곳으로 와서 영업중이라 한다.  백두대간 종주하는 손님들이 가끔 들러 식사를 하고 간

다고 한다.

 

11 : 40  추풍령의 식당 출발
고개마루로 올라와 대간 들머리로 갈라지는 곳에 이르니 길 건너편에 추풍령 표석이 서있다.  대간 들

머리에서 5 - 6 미터 경상도 쪽으로 스테인리스 안내판(가로 약 1미터, 세로 약 70여센티미터정도)이

경상 도를 향하여 설치되어 이쪽에서 보면 뒷면으로는 아무 글씨가 없다.


매직펜을 꺼내어 안내판 뒷면 우측 끝에 백두대간이라 크게 쓰고 그  밑에 좌회전 화살표를 그려 놓다.

이제 후발 종주객들이 멀리서부터  이 표지판에 쓴 글을 보고 길을 더 쉽게 찾을 수 있겠다.
마을길을 지나 포도 과수원 옆길로 가니 숲으로 들어서는 길이 나타난다.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12 : 10  금산(370) 정상 도착. 
정상을 오르는 순간 북쪽사면을 내려다보니 여러 선발주자들이 종주기에 써 놓은 바와 같이 현기증이

일어나는 천길 절벽 아래 채석장이 보인다.  칼로 사과를 쪼갠 듯이 정확하게 대간 마루금을 반쪽내어

 절벽을 만들면서 돌을 파먹은 수 십만 평은 됨직한 채석장.


대간 종주자들이 출입통제지역을 들어섰다가 발각되면 이런 사소한 위반행위는 어김없이 처벌한다면

서,  인허가 권한을 가진 관청의 공권력과 임야 소유자와 채석업자들 간의 야합으로 무참하게 박살을

내어 버린 백두대간 !  이제 백두대간은 척추 디스크에 걸려 신음하는구나.

 

대간 종주 등산객들이 대간길을 훼손한다고 하나, 이곳 금산 채석장을 보고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뀐다.

만약 1년에 100만 명의 종주객들이 100년동안 계속하여  연인원 1억 명이 백두대간을 종주한다 한들

이곳 금산채석장 10만 분의 1만큼이라도 훼손시킬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백두대간의 보전을 위해서는 대간 종주를 자제 하여야 한다는 논리에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수긍하는 입장이었으나 이곳 금산 채석장을 보고는 생각이 180도 달라진다.  대간 종주자들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겠다.

 

그러면 그 중에는 공권력이 직접 또는 민간업자와 야합하여 백두대간을 파괴하는 행위를 감시하고 규

탄하고 문제를 제기하여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이 생기고 그렇게 되면 백두대간 보전에 대한

홍보가 널리 되어 사회 여론의 비등으로 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오히려 대간 보전에 커다란 보

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산을 좋아하고, 산을 사랑하시는 산꾼 여러분 체력이 허용하시는 모든 분들은 가능한 한 빠짐없이 백

두대간 종주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소유자나 공권력이 백두대간을 짓이기는 행

위를 발견하시는 대로 많은 분들이 사회문제화 시키시기 바랍니다. 대간 종주의 참여가 백두대간을 훼

손하는 일이 아니라, 종주의 참여야 말로 진정으로 백두대간을 보전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12 : 30  금산 출발
사기점고개로 내려섰다가 다시 표지기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 한참 올라가니 묘함산 통신시설로 올라

가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묘함산(卯含山)』은 본래 이름이 『난함산(卵含山)』인데, 지도를 작성하는 이들이 "알란(卵)"자를

점 두 개를 빼고 잘 못 읽어 "토끼묘(卯)"자로 착각하여 "묘함산"이라고 지도에 표기하는 바람에 "묘

함산"으로 와전되었지만 현재도 이 곳 원주민들은 "난함산"이라고 부른다 한다.  지도 표기를 바로 잡

아야 할 것이다.


길 건너 옹벽을 친 콘크리트벽에 리본 두개가 붙어 있다.   길을 건너서 리본을 보니 백두대간 좌회전

하라는 글과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나도 되돌아서 적당한 리본 하나를 징발하여 글씨가 안쓰인

반대 쪽에 "백두대간 좌회전" 이라는 글과 화살표를 유성매직펜으로 쓴 다음 두개의 리본 옆에 나란히

콘크리트 벽에 솟은 철사를 이용하여 붙였다.  이런 리본은 많을수록 신뢰감을 줄 테니 하나를 더 붙여

놓은 것이다.

 

등산지도에는 여기서 길을 건너 숲으로 진입하여 능선을 올라섰다가 능선에서 좌회전하는 것으로

산로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러한 들머리길은 보이지 않아 다시 작점고개 세밀도(細密圖)를 찾아본다.


작점고개 세밀도에 보면 이곳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다가 좌회전하는 능선을 타고 북서쪽으로 가도 되

고, 능선 밑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 가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드는 길을 만나 진입하여도 되는 것으

로 표시되어 있는데 능선으로 올라붙은 길은 보이지 않아 도로를 따라 내려 가기로 결정하다.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아랫 쪽으로 내려가니 드문드문 계속하여 대간 표지기가 나타난다.  표지기 중

에는 "가족산행"이라는 제목을 붙인 노랑색 표지기가 눈길을 끈다.


내려가다가 콘크리트 옹벽이 높게 쳐진 커브길에서는 배낭을 벗고 쉬면서 옹벽에다가 매직펜으로 "백

두대간 계속하여 도로 따라 가세요" 라고 써 본다.  이 곳은 등산지도의 독도법으로는 설명이 잘 안되

는 구간이 되겠으므로 후답자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지도상의 대간 마루금으로 붙지 않고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 1 Km가량 내려가니까 얼마나 큰

양계장이 있는지 우측 울타리 넘어서 닭똥 냄새가 코를 찌른다. 닭똥 냄새를 맡으며 계속하여 약 300

m가량 진행하면서 주의 깊게 좌우를 살펴 보았더니 길 좌측 숲속으로 진입하는 들머리에 7 ∼ 8개의

대간 표지기가 매달려 있다.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겠다.  되돌아서서 보니 길 우측에 전선주가 서 있어 이곳에 매

직펜으로 "백두대간 전방 5 m 앞에서 좌회전" 이라고 크게 쓴 다음 좌회전 화살표를 그리고 숲속의 들

머리로 진입 하였다.  아마도 이 전선주에 쓴 글이 보인다면 후답자들은 길을 찾기가 한결 쉬울 것이다.

 

숲으로 진입하여 조금 가니 경운기 길 같은 길이 나타나고 이 길을 따라 좌측으로 조금 가니 우회전하

면서 대간 표지기는 묘지 옆으로 올라선다.  이 길을 따라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작점고개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이 나타나는데 이때에 남진하는 40세 전후의 부부 종주객을 만나 인사를 나누다.


서로 지나온 길의 정보를 나눈다.  내가 가려는 북진 길은 물어보니 큰재까지 별로 험난한 곳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나온 사기점고개까지의 길이 산길은 찾지 못하였음을 설명하고, 그들이 지참

한 복사본 지도의 뒷면에 이곳에서 콘크리트 길을 따라 묘함산 쪽으로 올라가다가 묘함산 직전에서 산

비탈 옹벽에 표지기 세개를 붙인 지점까지 약도를 그려주고 숲으로 진입하는 들머리를 설명하여 준다.


이 부부들에게 오늘 추풍령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고 말하였더니 도중에 야영을 한다고

한다.  부부 종주객들과 헤어져 내리막길을 조금 전진하니 포장도로  작점고개가 나온다.  작점고개를

통과하여 다시 숲으로 진입하다.

 

17 : 00  갈현 도착. (나중에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샛재라고도 함)
등산지도상에는 우회전하여 도치량 또는 능점마을로 나가는 갈림길만 표시된 삼거리이나 실제로는 좌

회전하여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죽전리 마을로도 내려갈 수 있는 4거리 길이다.


지도를 꺼내어 확인하여 보니 오늘 계획한 큰재까지 가기에는 아무리 서둘러도 두시간 반 이상이 걸리

겠다.  사흘간 연속된 산행으로 피로하여 여기서 중간탈출을 하여 귀가하여 2 - 3일 간 쉬기로 결정하

다. 후일 내가 중간탈출을 하였던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가장 큰 비닐 표지기 뒷면에 나의 OK 마운틴

에서의 필명 "박달령"을 매직펜으로 기록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닌 인적이 있는 길을 따라 우측의 도치량쪽으로 하산하면서 계속하여 글씨를 쓸만

한 나무나 돌 등에 "박달령"이라는 필명을 매직펜으로 쓰다.


하산길에 묘지를 몇 차례 지난 다음 좌측으로 콘크리트 포장 농로가 나타나고 이 길을 따라가다가 아

스팔트포장길이 나타나 또다시 좌측마을 쪽으로 올라가니 가게가 나타난다.

그 맞은편은 마을회관이다.

 

17 : 30  도치량 마을 도착.
가게에 들어가 병맥주 1병과 과자 안주 시켜서 마시면서 물어보니
이곳이 도치량마을이란다.  지도를

보니 맞다.  18 : 00 조금 지나면 용문산 기도원에서 김천행 시내버스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맥주를 마시고 나서 가게 젊은 여주인에게 마을 내력을 물어보니 자신은 이사온지 얼마 안되어 마을의

내력을 잘 모르겠단다.


가게를 나와 길을 건너 맞은편 마을회관 마당에서 일하는 남자들에게 내가 비상탈출 한 "갈현" 에 대하

여 물으니 갈현이라는 지명은 잘모르고 그곳을 "샛재"라고 부른다 하며 그 고개를 넘으면 충청도땅 죽

전리 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도를 다시 보니 그들의 말이 맞는다.  그러니까 지도상에는 "갈현"이

고 원주민들은 "샛재"라고 부른 곳에서 비상탈출을 한 것이다.

 

◇ 귀가
○ 단기 4334년(2001) 10월 17일 (수)


18 : 10  도치량 마을 출발
용문산 기도원에서 나오는 김천행 좌석버스 승차 (버스요금 1,050원).
용문산 기도원은 큰 마을이 형성되어서인지는 모르나, 김천행 시내버스가 평균 1시간 반 정도마다 한

번씩 들고나는 대중교통이 빈번한 곳이다.

 

18 : 35  김천 시내버스 주차장 도착.
용문산 기도원행 아침 첫차는 이곳에서 06 : 20에 출발한다 한다.
김천역 가는 길을 물으니 여기에 기록하기에는 지리상 설명이 좀 까다롭기는 하나 골목길과 육교를 한

번 건너 약 3 - 400여 미터 물어물어 건너가니 김천역이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8 : 45  김천역 도착.
20 : 03에 출발하는 상행선 열차표를 구입하고 역 옆에 있는 식당에서 따로국밥을 주문하여 저녁식사.

"따로국밥"이란 국에 밥을 말아서 내놓는 국밥이 아니고 국 따로 밥 따로 주는 음식인데 충북 영동군과

경북 김천시 등지에서 만드는 음식이다.  5 - 6년 전 집의 처와 황악산 등산을 위하여 김천역에서 내려

따로국밥을 먹겠다고 하였더니 처가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름이라고 신기해하였던 기억이 난다.


식사 후 목욕탕이 있는 곳을 물어 육교길 건너가서 대중목욕탕에 3,500원에 들어가 샤워를 하다.

배낭속의 새 내의와 바지, 남방셔츠를 갈아입으니 아주 개운하다.

 

20 : 03  김천역 발 수원행 무궁화호 일반실 승차(8,600원)
이제 3일간의 산행으로 소진된 체력을
집에 가서 보강하기 위하여 귀가하다.

 

22 : 35  수원역 도착
시내버스로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