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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5회](중)<우두령 - 궤방령>

by 박달령 2007. 10. 15.

◎ 백두대간 종주기 [제5회] (중)


○ 단기 4334년(2001) 10월 16일 (화) 맑음. (제 11일) - 금일 산행 구간 : 우두령 → 궤방령

 

00 : 30  밤중에 잠이 깨다. 
사타구니와 항문에 땀띠분을 다시 두둑하게 바르고, 발바닥이 거북하여 살펴보니 물집이 생겨 옷핀을

풀어 핀 끝으로 물집을 찔러 구멍을 내고 물을 짜내다.
방이 너무 더워 주인 아주머니에게 난방을 꺼줄 것을 부탁하다.

 

02 : 30  다시 잠들다.

 

05 : 00  기상.
면도와 세수 후 라면에 누룽지를 같이 넣고 끓여서 소주 반주로 아침식사를 하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

기 위하여 코펠을 가장 작은 것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서 밥 짓는 시간 절약을 위하여 이렇게 라면에 누

룽지를 같이 넣고 끓여먹는 것이 대간 종주 시작 후 꽤 오래 되었다.

 

반찬은 된장과 고추장 섞은 것하고, 마늘, 그리고 참치 아니면  꽁치 통조림 등이다.  그야말로 죽도 밥

도 아닌 식사를 하다보니 지금부터 35년 전의 군대시절 급식이 생각난다. 그때는 병참부대에서 수령하

여 온 부식을 취사병 기분 내키는 대로 조리를 하던 시절이라 어떤 때는 큰 가마솥에 된장을 풀어 미역,

도루묵 등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다가 농촌의 똥바가지 만한 커다란 국자로 휘휘 저어가며 퍼놓으면 도

루묵은 풀어져 생선가시가 미역에 박혀 먹을 수도 뱉을 수도 없이 만들어버린 국에 밥을 말아먹었었다.

 

밥은 또 어떠하였는가.  군대 부정이 극심하여 쌀은 계통을 따라 지휘관들 손을 거치면서 점점 줄어들

어 사병들이 먹는 밥은 쌀보다 보리 알갱이의 수가 훨씬 많아 밥의 색깔은 시커멓고, 밥에서는 보리쌀

군내가 확확 풍겼는데 그나마 양도 넉넉지 못하여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밥을 질게 하면 양이 적어지므로 고두밥을 만들어 식기에 살살 날려서 엉성하게 한 그릇 퍼주면 국 한

그릇과 함께 받아서 식탁에 가지고 가 국식기에 담긴 국을 밥식기 위에 들어부어서 두 그릇이 한 그릇

이 되어 버렸다.

 

바로 "고구마 한 가마 위에 좁쌀 한 가마를 부으면 도로 한 가마가 되어버린다" 는 속담과 같은 현상이

었던 것이다.  김치 따위도 없이 밥 한 식기와 국 한 식기로 끼니를 때우던 그 때에 훈련이 되어서 지금

이렇게 죽도 밥도 아닌 음식을 아무 거부반응 없이 먹게 되나보다.

 

그런데 그 때에도 육군정량을 어김없이 떼어먹지 않고 원칙대로 보급 받는 부대가 있었으니 비무장지

G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었는데, 거기 근무하던 친구 말을 들어보니, 정량 보급을 받으면 배불리

먹고도 식량이 남아 가끔씩 후방 상급부대에 업무연락차 나가는 인편에 쌀을 가지고 나가 민간 방앗간

에서 떡을 해다 먹기도 하였다 하니 일반부대의 부정이 심하였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신세대 병사들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라는 자유급식을 하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금할

없기는 하나, 근래의 보도를 보면 이러한 방향으로의 부정은 없어져 가되 이제는 "율곡비리"니 "린

다김 사건"이니 하여 군납비리와 부정부패가 대형화되어 가는 듯 하여 안타깝게 만든다.

 

가끔 명절 같은 때면 먹었던 "황우도강탕(黃牛渡江湯)"도 생각난다.
쇠고기 국이라고 끓여 주는데 건더기는 없고 기름만 둥둥 떠 있으니, 황소가 강을 건너가고 난 후에 소

의 몸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뜬 강물을 잽싸게 떠다가 끓인 국이라는 뜻으로 어느 병사가 기지를 발휘하

여 붙인 이름이 바로 "황우도강탕"이었다.


여하튼 등산은 사람을 모든 악조건 하에서도 잘 참고 잘 견디게 만든다. 
화장실의 수돗물을 받아 식수를 준비하고 여인숙을 나서다.
밖에 나가 걸어보니 밤사이에 바른 땀띠분 덕택으로 사타구니와 항문이 보송보송하여져 개운하다.

 

07 : 10  황간 터미널에서 흥덕마을행 농어촌버스 승차

07 : 30  상촌면 임산리에서 하차하여 상촌택시에 승차.

 

07 : 45  우두령 도착 (택시비 15,000원)

 

07 : 50  우두령 출발
밤사이에 바람이 불었는지 이슬이 없어 옷과 신발이 젖지 않아 아침부터 쾌적한 산행이 된다.

길 상태도 걷기 좋다.


1,030봉에 올라서니 내리막길에 임도가 나오고 군부대 시설로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 옆의 도로를 따르

다가 내리막 지름길 들머리에 서니 바람재가 보인다.  지름길로 바람재로 향하다.

 

10 : 40  바람재 헬기장 도착
지역 예비군 중대장이 방위병(지금도 호칭이 방위병 맞는지 모르겠다) 1명을 데리고 헬기장 보수작업

중이었다.  쉬었다 가라기에 앉아 중대장이 꺼내어 주는 송편을 먹으면서 등산지도를 보면서 이런 저런

야기를 나누다.

 

11 : 00  바람재 출발

 

12 : 10  황악산 도착.
황악산은 전에 두 번이나 와 보았던 곳이라 반갑다.  
취사를 하기가 귀찮아 참치통조림 1개, 초콜렛, 소주 등으로 점심을 때우다.  황악산은 일반 등산객들

왕래가 많은 곳이라 평일인데도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다.


황악산에서 운수봉 사이 군데군데 등산로가 황폐화 된 곳에 철도 폐침목을 자른 나무로 계단을 설치하

공사를 하고 있다.  아마 김천시청에서 하는 것 같다.


여시골산과 궤방령 사이의 약 300여미터 구간은 급경사 내리막으로 나뭇가지를 붙들고 의지하며 힘들

하산하다.


목장 울타리로 보이는 낮은 철조망이 쳐진 옆길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 다시 숲길로 들어서서 한참을 가

궤방령을 넘어가는 도로가 나타난다.

 

15 : 30  궤방령 도착.
초여름 20 : 00 훨씬 넘어 해가 질 때라면 추풍령까지 가도 될 시간이지만 낮이 짧아 오늘 일정을 여기

마감하려니 아쉽다.


길 건너 내일 진입할 대간 들머리 표지기를 찾으니 실전 백두대간에는 경운기 길을 따라 가다가 오른쪽

능선으로 붙는다 하였는데,  이 길은 발견할 수가 없고 고개마루 부근에서 생긴 개울을 따라 우측 경

으로 100여미터쯤 내려가다가 논두렁과 개울을 건너서 대간 표지기가 붙어있고 들머리가 시작된다.

 

지금은 갈수기라 개울물이 흐르지 않지만 비가 조금만 와도 대간길이 물을 건너는 곳이 되겠다. 

내일 아침 물을 건너지 않는 들머리를 다시 한번 더 찾아보고 싶다.

 

옛날 조선왕조 시대 영남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길을 갈 때에 추풍령(秋風嶺)을  넘어가면 추풍

낙엽처럼 낙방을  하고,  이곳 궤방령을 넘어가면 합격의 방이 걸린다 하여 처음에는 『괘방령(掛榜嶺)』

이라 불렀다 하는데 언제 어떠한 연유로 『궤방령』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궤방령은 백두대간 능선상의 고개 같지가 않다. 영동군 쪽으로 궤방령 마루금과 큰 표고 차이 없이 농경

지가 이어지고 있다.


다시 왔던 길을 건너와 영동군 매곡면 쪽으로 약간 돌아가니 산비탈  밑에서 40대 전후의 남자 7 - 8

이 농사일을 하고 있어 이곳이 충북땅이 맞는지 물으니 맞다 한다.


새참 마시던 막걸리를 권하기에 3잔이나 받아 마시다.
차편을 물으니 천덕마을(공수리와 어촌리를 합한 이름)에서 영동행  농어촌버스가 16 : 30 경에 있을것

이라 한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는 벌판 가운데로 도로를 따라 천덕 방향으로 약 2 Km를 걸어가니 천덕 버스종점이

나온다.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딱딱한 포장도로를 걷기가 산길보다 힘들다.

 

16 : 00  천덕 버스종점 도착. 
영동으로 나가려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가 시동도 끄고서
길 한쪽 공터에 정차해 있다.

주변 마을이 꽤 크다.  천덕식당(043 - 743 - 0075) 주인에게 물으니 16 : 40에 나가는 버스라 한다.

시간여유가 있어 식당에 동동주와 안주 약간 시킨 후 내일 쓸 식수를 식당 수돗물에서 받고 나서 동동주

를 마시다.  그러나 동동주를 거의 다 마시고 마무리를 하려는데 버스가 떠나 버린다.


식당 주인이 자기가 착각하여 16 : 30 차를 40분으로 잘못 가르켜 주었다고 미안해한다.
다음에 들어오는 19 : 00 버스를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17 : 30경 갤로퍼 지프가 서면서 나더러 타

라고 한다.  보니 천덕식당 주인이다.  황간으로 나가는 길이라 한다.

 

17 : 50  황간 도착, 지프에서 하차.
황간 버스터미널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 중 개인택시를 피하여 회사택시 운전기사에게 내일

아침 05 : 00 경 일찍 운행이 가능한지 물으니 하겠다하여 명함 1장 받아놓다.  이제부터 아침 일찍 출발

시에는 회사택시가 있는 곳에서는 가능하면 개인택시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  역시 회사택시들이 사납금

때문에 새벽에도 운행을 한다.

 

18 : 00  청수장 여관 도착 (숙박비 20,000원)
방에 들어가 양말과 셔츠, 팬티를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고 샤워 후 잠들었다 깨어보니 21 : 30이 되어간다.  두시간 이상을 잤나보다.


여관을 나와 터미널 옆 큰 식당에서 갈비탕에 소주 반주 식사 후 여관으로 돌아오며 편의점에서 손톱깎이 1개를 1,000원에 구입하다.

 

22 : 30  청수장 여관으로 돌아와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