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기 [제6회] (다)
○ 단기 4334년(2001) 10월 22일 (월) 비 (우천으로 산행 중단)
05 : 30 기상. 산행일지 초안 정리 후 면도, 세수
여관 카운터에 맡긴 김밥 찾아 1인분으로 아침 식사, 1인분은 점심으로 하기 위하여 배낭에 수납.
여관 밖을 살피니 비가 내리고 있다. 방으로 돌아와 휴대전화로 054 - 131을 호출하여 상주지방 일기
예보를 청취하니 하루 종일 비가 올 것 같다.
07 : 00 터미널 앞에 나가 개인택시 한영수씨를 호출하니 운행을 거절한다.
(나중에 추측하여 보니 화령재까지 4,000원짜리 단거리 요금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 귀찮아 그런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터미널에서 청소하는 노인에게 화령재 가는 버스편이 있는지 물으니 터미널 옆의 택시 부르러 갔다 헛
탕치고 와서는 07 : 30에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라고 한다. 시내버스가 들어오기에 물어보니 화령재
에 정차한다고 한다.
시내버스는 출발하여 조금 가다가 우회전하더니 중앙선 없는 좁은 포장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가
어느 마을에서 되돌아 나오는 것이 아마 서당골쯤 들어갔다 나오는가보다. 그러더니 우회전하여 화
령재로 오르다가 고개마루에서 정차하여 내려준다.
07 : 50 화령재에 하차하니 빗발은 점점 거세어 진다.
배낭커버를 꺼내 배낭에 씌우다.
우산을 받고서 어제 저녁에 찾지 못한 대간 들머리를 쓰러진 나무를 넘으며 다시 찾아 보았으나 찾지
못하고 고개에서 화령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약 400여미터 걸어가다가 지도상에 그려진 4거리에 이
르니 수청거리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좁은 길이고, 넓은 2차선 포장도로는 실제로는 삼거리로 보인다.
우회전하여 내리막길을 100여미터 내려가니 "화령골가든" 간판이 좌측에 보인다. 지도를 꺼내어보니
"화령골가든 식수보충 가능"이라고 볼펜으로 내가 표시한 것이 보인다.
실전 백두대간에서는 수청거리 민가까지 가야 식수를 얻을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인터넷에서
이종원씨의 백두대간 종주기를 읽으며 표시해둔 것 같다.
아무튼 대간 들머리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는 발견되었으므로 가든을 지나치면서 길 좌측의 산비탈을
유심히 살피며 대간 표지기가 걸려 있는지 확인하면서 약 500여 미터를 진행하니 가파른 내리막 저 멀
리 큰마을이 보인다.
예감이 이상하여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다시 되돌아 나오며 화령골가든을 지나 삼거리길 모퉁이 조립식
농가 두 채가 있는 옆으로 어렴풋이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 속에 표지기 같은 것이 흐릿하게 보인다.
조립식 농가 옆을 지나 산길로 올라서니 대간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다.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면서 수없이 보아왔던 "백두대간 단독종주 김인태", "함양산악
회", "은령회", "자유인산악회" "분실물 김종길" 등등 낯익은 표지기들을 어제 저녁부터 헤매다 고생끝
에 만나게 되니 너무 반갑다.
조금 더 들어가 30여미터를 가니 연한 초록색 바탕에 커다란 글씨로 수작업(手作業)을 하여 쓴 "구름
나그네" 표지기가 보인다.
구름나그네님은 인터넷 오케이마운틴 홈페이지에서 재미있는 대간 종주기를 드문드문 올려주사어 나
에게 많은 산행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분이다. 종주기 뿐 아니라 다른 재미있는 글도 자주 올리시는 분
이다. 자세한 인적사항과 어디에 사는 분인지는 모르나 여기서 표지기를 만나니 정말 반갑다.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추풍령 지나 묘함산 아래 콘크리트 길을 따라 내려와 작점고개를 넘을 때까지도
보았던 것 같았던 "백두대간 가족산행"이라는 노란색의 넓고 짧은 표지기가 안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어
디서부터였는지 그 지점은 잘 모르겠다.
대간 표지기들은 도로에서 3 - 40미터가량의 거리에 걸려 있어 날씨 좋은 밝은 낮에나 쉽게 눈에 뜨이
겠다. 표지기를 찾고 나서 뒤돌아서 대간 산길을 어림짐작하여 보니 화령재 광장의 서쪽 산길을 도로
와 거의 평행으로 서진하다가 마주 보이는 밭둑 어디로인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되나 어디로
나오는 것인지 비가 내리고 있어 짐작을 할 수 없다.
어제저녁 한시간, 오늘 아침 한시간 등 두시간을 대간 북진 들머리를 찾느라 과외수업을 하였다.
08 : 50 표지기를 찾고 나니 아홉시가 다되어 가는데, 비는 그치지 않는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강해졌
다 할 뿐 구름의 상태로 보아 하루 종일 그칠 것 같지가 않다. 오늘 산행은 포기하기로 결정하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간 종주 중 야간산행과 우중산행은 하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산길 걷는데 위험도도 높지만 대간 종주의 목적을 개가 바위 건너뛰듯 전후 좌우 안 살피고 내달리기
만 하는 데에 둔 것이 아니고 쉬엄쉬엄 산천 경개도 바라보며 음미하고 견문도 넓히면서 주유천하(周
遊天下)를 하는 쪽에 중점을 둔 탓이다.
기왕에 하루 포기하는 산행이니 이제 시간은 넉넉하겠다, 후발 종주객들이 길이나 찾 기쉽게 하자는
생각이 들어, 북진 들머리에 많이 걸린 표지기 중 15개 정도를 한 손에 우산을 쥐고 한 손으로 떼어서
바지 주머니에 넣으며 도로로 내려오면서 10 - 20미터 간격으로 길가의 적당한 곳에 붙여 나가다 삼
거리에 이르러서는 길을 건너 남쪽으로 붙여 가면서 화령재 쪽으로 올라갔다.
도로 북쪽 길가로는 나무를 베어 쓰러뜨린 것으로 보아 그 쪽으로 도로 확장을 한다면 표지기가 다시
수난을 겪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뭇가지가 없으면 길가의 교통표지 나사못에까지 촘촘히 걸면서 올라가니 중간쯤에서 징발한 표지
기가 다 소모된다. 어제 나온 남쪽 길로 올라가 다시 15개쯤을 징발하여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내려오
면서 방금과 같은 요령으로 촘촘히 붙여 나가다 중간지점 표지기를 만나다.
그리고 길 건너 화령재 광장 나뭇가지와 숲 속의 쓰러진 나뭇가지에 붙은 표지기를 모두 수거하여 길
가에 붙인 장소 중 특별히 두개 이상 붙여 눈에 잘 띄게 할 필요가 있는 곳 서너 군데를 택하여 붙이다.
이제는 누가 길가의 표지기를 일부러 제거하는 심술만 부리지 않는다면 400여미터 떨어져 보이지 않
는 곳에 있는 대간 들머리를 찾기 위해 후발종주자들이 나처럼 헤매지는 않겠다 생각하니 나도 모처럼
좋 은 일을 한 번 한 것 같다. 30분 정도 걸려 유도 표지기 설치작업을 끝내다.
버스는 언제 올지 모르고, 택시를 부르자니 안 올 것 같고 그냥 화령버스터미널로 우선 걷기로 하고 조
금 걸어 내려가니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민가 두어 채가 나타나 한 집에 들어가 버스가 언제 오는지 물
으니 화령까지는 2 Km 남짓밖에 안되어 20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니 걷는 게 빠를 거라 한다.
지도를 보니 정말 그렇다. 택시가 운행을 거절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어제 밤에도 그냥 걸어도 되는 거리를 초행길이라 지리를 잘 몰라 택시를 부른 것이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니 20분도 채 안 되어 화령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다.
보은까지 차표를 사서(1,900원) 09 : 50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다.
10 : 30 보은 터미널 도착
속리산에서 나오는 수원행 버스를 타고 귀가할까 하다가 내일 산행의 편의를 위하여는 여기서 가까운
옥천군 안내면에 있는 아우의 절 서광사(瑞光寺)에 가서 1박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터미널 밖에 나가 택시 기사에게 화령재까지 얼마에 가느냐 물으니 20,000원이라 한다.
내일 새벽 아우더러 보은 터미널까지 태워다 달라하여 여기서 택시로 화령재로 가면 되겠다.
옥천으로 가는 농어촌버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좀전에 화령재 택시요금을 문의하였던 택시에 승차
하여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소재 "동대 휴게소"까지 가다. (택시비 미터기 요금 8,000원)
이 동대 휴게소는 도로에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전망 좋은 곳에 지어진 곳이며, 넓은 마당이 있고,
2층으로 된 팔각정은 아래층은 빙둘러 유리창을 설치하여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설을 한 홀이고, 1
층 실내에서 나무 계단을 통하여 오르게 되어있는 2층도 마찬가지로서 전망대를 겸하여 테이블을 몇
개 놓은 홀이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는 조립식 건물로 식당을 지어 놓았는데 이 휴게소는 옥천의 육(陸)씨 문중 소유
이다. 이 일대의 드넓은 산도 육씨 문중 선산이라 한다.
옥천의 육씨 문중의 인걸은 육종관 씨이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이다.
지금부터 약 25년쯤 전에 육종관씨가 살았다는 저택 옆을 차를 타고 가면서 동승한 일행의 설명을 들
으며 바라보니 1만여평은 넘어 보임직한 편편한 언덕 위의 넓은 땅에 울타리가 빙 둘러 쳐져 있고 그
안에 띄엄띄엄 여러 채의 집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터였던 곳이었다.
육종관씨는 일제시대부터 대지주로서 만석꾼 부호였다 하며 인품이 후덕하여, 옥천 일대에서 보리고
개에 식량이 떨어진 농민이나 가세가 궁핍한 서민들이 찾아가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 하고서 쌀이나
돈을 빌려달라고 호소하면 장부에 기록한 다음 차용증을 받고서 선선히 빌려주곤 하였었는데, 나중
에 스스로 갚으면 변제를 받되 변제 기한이 넘었다 하여 빚을 갚으라고 독촉을 하는 일이 절대로 없
었다 한다.
동대 휴게소에서 약 1 Km 쯤 걸어서 서광사(瑞光寺)로 가다.
11 : 40 서광사 도착
아우를 만나고 법당에 참배한 후 식당에서 배낭 속의 김밥을 꺼내어 따끈한 국물과 함께 점심 식사
를 마치고 건너편 요사채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낮잠에 빠져들다.
이틀동안 산행에 피로했던지 어둠이 깃든 초저녁에야 잠에서 깨어 저녁식사를 하다. 식사를 하며 내
가 화령재에서 백두대간 들머리를 찾지 못하고 과외수업으로 고생을 하며 헤매던 생각이 나서 길을
유도하는 표지기로는 좀 미흡할 것 같아 양쪽 들머리에 표지판을 설치하고 싶어진다.
식사 후 법당 뒤의 창고에 가서 가로 30cm, 세로 40cm 정도 되는 합판조각 2개와 3 - 40센티미터
길이의 전화선 토막 4개를 찾아서 물을 끼얹어 닦은 다음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 매직펜으로, 도로 확
장공사로 인한 산림파괴로 백두대간 길이 지도와 달라졌다는 글을 쓰고, 그 아래에 도로 약도를 그린
다음 화령재광장, 화령골 가든, 조립식 농가 두채 등등을 그려넣고 점선 화살표로 대간 북진 들머리를
별을 그려 표시하였다.
그리고 나니 안내판이 조잡하여 혹시 누가 장난으로 걸어놓은 것으로 오인할까봐 그 아래 여백에 나
의 실명과 휴대전화 번호 및 인터넷 오케이마운틴의 필명 "박달령"까지 적어 넣고도 여백이 있어 대
간 종주의 안전과 성공을 빈다는 글귀까지 써넣다.
나머지 합판조각 1개는 같은 요령으로 대간 남진 들머리 안내판을 만들고 난 후 상단 양쪽 귀퉁이에
칼로 구멍을 내어 전화선 토막 하나씩을 묶어놓다.
이제 내일 아침 산행 시작할 때에 나무에 걸기만 하면 되겠다.
내일 아침 아우가 06 : 00에 식사를 하고 바로 출발하여 화령재까지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한다.
21 : 00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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