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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13회](라)<구룡령 - 조침령>

by 박달령 2007. 10. 8.

◎ 백두대간 종주기 [제13회] (라)

○ 단기 4335년  5월 30일 (목) 흐리다 맑음. 저녁 20 : 00부터 비 (제35일)
    금일 산행구간 : 구룡령 → 조침령

 

01 : 30  잠이 깨어 오늘 갈 길에 대한 자료와 지도 예습을 하다 다시 취침

04 : 00  기상.  - 면도, 세수

 

05 : 00  "기분 좋은날" 민박집 출발
방문을 열고 나가려하니 민박집 주인 박철규씨가 문을 두드리며 일어났느냐고 묻는다.  바로 나가서 승용차에 타는데 부인 최경숙씨도 동승하면서 구룡령 휴게소에 가서 차나 한 잔 하러 함께 간다고 한다.

마당을 보니 승용차가 여러 대 주차된 것으로 보아 내가 도착한 후에 숙박객이 들어와 다른 방을 다 채웠나보다.

 

05 : 20  구룡령 휴게소 도착
새벽 네시 반이면 문을 연다고 하더니 아직도 문을 안 열었다.
한참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어 박철규씨가 승용차 경음기를 몇 차례 울려대니 그제야 2층에서 식당 아주머니가 내려온다.

 

박철규씨 부부는 차를 마시고, 나는 비빔밥(5,000원)과 구운계란 두개(10,00원)로 아침식사를 하다.

식당 아주머니가 써비스로 더 먹으라고 내놓는 밥 한 공기는 비닐랩을 얻어 포장을 하여 주먹밥으로 준비 후 배낭에 넣고 식당 수도에서 물을 받아 식수를 준비하다.

 

어제 저녁에 친절을 베풀어준 휴게소 사장의 성명이라도 알고 싶어 식당 아주머니에게 휴게소 명함 한장을 얻어 주머니에 넣고 가다가 나중에 꺼내보니 성명은 없고 주소와 전화번호만 있어 끝내 성명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 구룡령 휴게소 - 홍천군 내면 명개리 산 1 - 35
 - 033 - 434 - 8539, 011 - 466 - 7247

 

설악산지구 일기예보를 청취하니 오후 한때 비가 온다하여 걱정이다.
식당 아주머니와 박철규씨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휴게소를 나서다.

 

06 : 10  구룡령(1013) 출발.
휴게소 문밖을 나서니 날씨는 잔뜩 흐린데 서풍이 상당히 세게 불기 시작하여 서늘하다.
육교 아래를 지나 육교 오른쪽으로 어제 저녁에 보아둔 대간 들머리에 진입하여 숲길로 들어서다.

동물 이동 관찰용 무인카메라가 보인다.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이 거센데도 진드기가 공격해 온다.

 

06 : 35  1100. 3봉 도착.
봉우리를 넘어 1121봉 직전 안부의 길 왼편에 멜빵을 부착한 쌀포대 2자루에 나물이 4분의 1정도씩 담겨 놓여있다.  아마 어제 채취한 나물 중 자루가 찬 것은 집에 가져가고 오늘 작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그냥 놓아두고 간 것 같다.

 

06 : 50  1121봉 도착
정상은 삼거리 갈림길인데 오른편 북쪽 능선으로 향하는 길도 상태가 양호하나 지도에 없는 길이다.  대간 표지기가 달린 왼편 서쪽 길로 진행하다.  지도에는 길가에 샘터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보이 않는다.

 

07 : 20.  1121봉에서 서쪽으로 800여 미터 진행하니 지도상 "길주의" 표시가 된 남쪽으로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한다.  여기서 남쪽 능선으로도 상태 양호한 길이 나 있다.

 

07 : 50  "치밭골령" 말뚝 설치지점 도착.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어제 본 "신배령" 말뚝과 똑 같은 형태이다.
어제보다 진드기가 몇 배나 심하게 공격하는 바람에 보행 속도가 매우 느려진다.

 

08 : 20  갈전곡봉(1204) 도착
정상에는 왼편 가칠봉 능선으로 가는 길이 선명하고 오른편의 대간길처럼 일반 산행 표지기도 달려있어 악천후시나 야간에 자세히 읽어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진행시 길을 잘못 들기 쉽겠다.
흐렸던 날씨가 잠시 햇볕이 반짝 난다.
갈전곡봉을 지나서 부터는 여러 개의 봉우리를 넘고 또 넘는데 봉우리 수를 헤아리다가 잊어버렸다.

 

09 : 00  흐려있던 하늘이 구름이 말끔하게 걷히고 햇살이 밝게 퍼진다.
한참 진행하다 어느 봉우리에 이르러 갑자기 100여 미터의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서 안부에 이르니 4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09 : 55  왕승골 갈림길 4거리 도착
길가의 왼편 큰 나무에 비닐이 감겨 묶여있고, 처음에는 빨강색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색으로 희미하게 열십자로 사거리가 그려져 있고, 동쪽은 "왕승골", 서쪽은 "물"이라는 글씨 흔적만 간신히 알아보겠고 그 외의 글씨는 알아볼 수 없다.

매직펜을 꺼내 사거리를 덮어쓰기로 그려 넣고, "왕승골"과 "물"이라는 글씨도 덮어쓰기로 써 넣다.

동쪽이나 서쪽의 길 모두 상태가 양호한 4거리인데 그렇다면 이곳은 지도상의 왕승골 갈림길 3거리가 아니고 그 곳에 올라서기 500여미터 직전에 왼편에 지도에 샘터가 그려진 안부 지점인 모양이다.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4거리인 것 같다.

 

오늘은 허기가 빨리 찾아온다.  주먹밥을 꺼내 멸치볶음과 함께 소주 반주하여 1차 점심식사를 하고, 스테인리스 반찬통에 누룽지를 넣고 물을 부은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출발.

 

구룡령에서 여기까지 구간에서는 시간당 평균 10마리 정도의 진드기 공격을 받았다.  진드기가 어떻게 바지가랑이에 붙는지 관찰하여 보려고 하여도 볼 수가 없었다.  아마 풀섶이나 나뭇잎에 붙어 있으면서  예민한 후각을 동원하거나 초음파 등을 발사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접근을 탐지한 다음 근접한 거리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 몸을 향하여 뛰어 내리면서 눌어붙는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될 뿐이다.

 

11 : 00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대간 마루금에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묘지에 묘비명만 쓸쓸히 서 있다.  곧 홍수 때 유실될 것 같아 보인다.
- 유인평해손씨지묘(孺人平海孫氏之墓)이다.

 

왕승골 갈림길 4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진드기의 공격이 좀 뜸해진다.
묘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밀림이 사방을 가려 시야가 전혀 트이지 않고 지질펀펀한 지형에 대간길 양쪽을 멧돼지가 쟁기질하여 초토화 시켜놓은 지대를 진드기와 전쟁을 치르느라 조침령에 도달할 때까지 지도  상의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 것인지 전혀 분간을 못하고 진행하다.

 

오늘의 구간도 작년 이전의 멧돼지 훼손면적 전체를 합친 것보다 금년에 파헤친 면적이 더 넓은 것으로 보아 최근 멧돼지의 개체수가 급격한 증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멧돼지의 상위 먹이사슬에 위치하여야 하는 호랑이, 표범, 시라소니, 늑대 등의 육식 맹수류가 남한에는 없으니 그 개체수가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실전 백두대간에는 표시되지 않았으나, 시중 서점에서 판매하는 도로교통지도에는 모두 동쪽 56번도로변의 연내골에서 비포장도로가 갈려나와 대간을 가로질러 넘어 서쪽의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로 연결  되고 있어 오늘은 이 비포장도로가 실제로 있는지 마음에 새겨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 본다.

 

12 : 25  좌측으로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도착.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13 : 35  드럼통 함정 매설지점 도착.
대간길 좌측(서쪽)에 산길에 바로 붙여서 땅바닥보다 약 5센티미터 정도 낮게 드럼통 한 개가 수직으로 묻혀 있다.  아마 밀렵꾼이나 농작물 피해에 시달리던 부근 원주민이 야생동물을 포획하기 위하여 함정 의 용도로 설치한 것 같다.

 

오래 전에 함정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는데 입구는 좁으면서 깊이는 약 2미터 이상 되도록 수직으로 파내려 간 다음, 함정 바닥에 먹이를 놓아 뛰어들도록 유인을 하거나 또는 함정 위를 삭은 나뭇가지 등을   얼기설기 걸쳐놓고 낙엽 등으로 덮어 위장한 다음 먹이를 올려놓아 이곳을 디디는 순간 함정 속으로 빠지도록 하는 형태였었다.  그런데 이 드럼통은 아래 막힌 부분을 잘라 터 버린 다음 함정 상단부가 허물어져 내리지 않도록 수직으로 박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드럼통이 녹이 슬어 있는 상태로 보거나, 드럼통속에 60여센티미터 정도 깊이까지 낙엽이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에 설치된 함정인데, 지금은 쓰지 않고 버려진 것 같다.  눈이 쌓여 빙판이 되었   을 때 미끄러져 빠지면 잘못하면 부상을 입을 위험성이 있어 보인다.

 

14 : 00  풀이 자라지 않고 있는 공터에서 2차 점심식사.
불린 누룽지를 꺼내 황태채 볶음과 함께 소주 반주하여 식사를 하다.

 

15 : 00  955봉 안내 표지 걸린 지점 도착.
자그마한 골판지에 비닐을 입혀 만든 어설픈 표지가 나무에 걸려있다.
1061봉 50분, 쇠나드리 40분이라 쓰여있다.
지도상에 표시되지 않은 봉우리라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다.

 

16 : 50  56번도로에서 갈라져 나오는 조침령 비포장도로 짧은 한 자락이 멀리 나뭇잎 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17 : 15  조침령 비포장도로에 내려서다.
여기에 이를 때까지 56번 도로 연내골에서 갈라져 대간 마루금을 가로 질러 서쪽으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는 목격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시중 서점의 도로교통 안내지도에 표시된 연내골 -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 간의 비포장도로 표시는 오류인 것이 확인된 셈이다.  
이제 의문이 풀렸다.

 

왕승골 갈림길 4거리에서 이곳까지는 진드기가 시간당 1 - 2 마리 정도 출현 공격해 왔다.
도로에 내려서고 보니 고개 정상이 아니다.
북쪽으로 약 5분쯤 걸어가니 정상이 나타난다.

 

17 : 20  조침령(770) 도착
도로 남쪽으로 돌로 만들어 세운 대형 표지석에는 군부대에서 세운 내용이 쓰여 있다.
휴대전화를 꺼내 열어 보니 송수신 상태가 양호하다.  민박집 조명호씨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 곳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측정해 보기 위하여 걸어가기로 하다.
내일 진입할 들머리의 표지기를 확인하고 돌아서다.

 

17 : 25  조침령 출발 - 쇠나드리로 하산 시작
구불구불 휘도는 비포장도로 길가에는 "절대감속" "미끄럼주의" "추락 위험" 등의 경고 표지가 수시로 나타난다.

삼거리에 이르니 북쪽 설피밭으로 올라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있고 남쪽으로는 포장이 되어있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나중에 양수발전소 측에서 이렇게 토막포장을 하여 주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여기서 "쇠나드리" 마을이 시작되는 것이다.
상당히 오래 전에 어느 잡지에서인가 "쇠나드리" 마을은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인데 옛날에 황소가 바람에 날려 절벽아래 떨어져 죽은 사건이 일어나 그때부터 소가 날아갔다는 뜻으로 마을 이름이 "쇠나드리"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마을로 강원도에서도 가장 오지라는 글을 읽은 일이 있어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이 자그마한 소원이 이루어지게 된 뜻깊은 날이 된 것이다.

 

아무려면 그 체중이 무거운 소가 바람에 공중으로 날려 갔겠는가만, 절벽 옆을 지나거나 매여져 있던 소가 갑자기 불어오는 태풍같은 바람에 중심이 흔들려 비실거리며 5 - 10여미터 옆걸음을 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을만한 일은 일어남직한 사건이니 소가 바람에 날아갔다는 전설이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닐 법하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남쪽을 바라보니 바로 옆에 대형 목조건물의 민박집이 보이고 그 옆에 이어서 또 한채의 민박집이 보인다.
"쇠나드리" 간판이 없으므로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하여 내려가다.  한참을 내려가도 보이지 않아 길가에서 만난 주민에게 조명호씨 댁이 어디쯤인지 물으니 남쪽 산모롱이를 가리키며 저기만 돌아가면 된다고 이제 다 왔다 한다.

 

일러주는 곳으로 걸어가니 도로 왼쪽 길가에 통나무가 세워져 있고, 통나무에 매달린 나무 표지판을 보니 쇠나드리가 아닌 "새나드리"라고 쓰여 있다.

 

17 : 55  "새나드리" 민박집(조명호씨 댁 ; 033 - 463 - 7790) 도착
조침령에서 보통걸음으로 꼭 30분 걸렸다.
길에서 밭 가운데로 난 진입로를 걸어 2층 목조 통나무집 마당으로 들어가니 조명호씨 부인이 맞아준다.  어제 저녁 전화를 한 백두대간 종주객이라고 인사를 하고 조명호씨를 찾으니 현리에 나갔다 한다.

 

본채 옆에는 큰 규모의 민박용 한옥을 신축중인데 내일 지붕의 기와를 덮을 준비공사를 방금 끝내고 일꾼들과 함께 회식하러 간 것이라 한다.  조명호씨 부인도 나의 저녁식사를 차려주고 딸 한솔이와 아들   한얼이를 데리고 나가서 저녁식사를 한 다음 조명호씨와 함께 들어올거라 한다.

 

안내하여 주는 방에 여장을 풀고 19 : 00에 저녁식사를 하기로 악속하고 세탁 및 샤워를 하다.  화장실에 세탁기가 있기에 조작방법을 물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탈수를 하여 방에 갖다 널다.
조침령에서는 되던 휴대전화가 쇠나드리 마을에서는 안 된다.

 

19 : 00  저녁식사
엊그제 신축 한옥의 상량식 때 고사를 지낸 돼지 수육이 한 접시 가득 놓여 있어 소주 1병과 함께 정신 없이 먹어 치우다.

팻말이 "쇠나드리"가 아닌 "새나드리"인 이유를 묻자 조명호씨 부인은  "새가 날아드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한다.

조명호씨 부인도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아이들과 함께 종주를 한 일이 있었는데 11시간 걸렸다고 하니 내가 오늘 걸은 속도와 같다.

가족 전부가 산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보인다.
내일 아침 05 : 00 ∼ 05 : 30 사이에 조침령에 차량편의 의사를 타진하니 쾌히 승낙한다.

식사를 마치고 은박지를 얻어 밥 2그릇으로 주먹밥 두개를 만들다.

조명호씨 부인은 마침 이번 월간 "산" 6월호에 이곳 새나드리 취재기사가 게재되었다며 읽어보라고 주고는 한솔이, 한얼이 모두 데리고 조명호씨 회식장소로 떠나고 빈집에 혼자 남게 되었다.

밖을 내다보니 바람은 불지 않는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궂은비가 내리는 무인지경의 적막한 깊은 계곡에서 밤을 맞으니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배낭에서 짧은 피리를 꺼내 밖으로 나가 새로 짓는 한옥 처마 밑 기둥에 기대어 주춧돌에 앉아 10여분간 불어본다.
구슬픈 피리가락은 밤비 내리는 쇠나드리 계곡으로 애잔한 여운을 남기며 멀리멀리 안개처럼 퍼져 나간다.

 

20 : 30  피곤하여 조명호씨 가족들 돌아오는 것도 못보고 취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