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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제13회](마)<조침령 - 단목령>

by 박달령 2007. 10. 7.

◎ 백두대간 종주기 [제13회] (마)

○ 단기 4335년  5월 31일 (금) 맑음. (제36일) - 금일 산행구간 : 조침령 → 단목령

 

00 : 30  잠이 깨어 오늘 갈 길에 대한 자료와 지도 예습을 한 후 어제 저녁 조명호씨 부인이 준 월간 "산" 6월호에서 "새나드리" 취재기사부터 읽어 보고서야 부인의 성명이 "장은경"씨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에 대한 열정이 강한 40대의 조명호씨는 히말라야 트레킹까지 다녀온 사실과 7년 전 서울 살림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한 사실 등등의 내용들이 기억난다.
밖에서는 어제 저녁부터 내리던 비가 계속되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03 : 00  비가 그쳐 빗소리가 서서히 조용해져 가는 것을 들으며 다시 취침

 

05 : 00  기상.  - 면도, 세수

05 : 20  짐을 꾸려 마당으로 나가니 조명호씨 부부는 벌써 나와서 신축 한옥 공사 일을 하고 있다.
조명호씨와 인사를 나눈 후 장은경씨에게 물어 숙박료, 식대, 운송비 등 일체의 합계 금 40,000원을 지불하다.

 

조명호씨에게 멧돼지로 인한 대간길 초토화 현상이 금년 들어 더욱 우심하여진 현상을 말하고 농작물의 보호 차원에서라도 어느 정도 멧돼지의 개체수 조절을 위한 도태의 필요성을 설명하니, 그렇지 않아도 금년 겨울에 강원도 지역이 수렵 허가의 차례가 돌아오는 해라며 이에 대하여 큰 기대를 하고있는 듯 하다.

 

05 : 30  조명호씨와 작별하고 장은경씨가 운전하는 갤로퍼 지프에 승차하고  쇠나드리 마을의 새나드리 민박집 출발.

 

05 : 50  조침령 도착.
장은경씨의 갤로퍼 지프에서 하차

 

06 : 00  조침령(770) 출발
어제밤에 내린 비가 이슬로 맺혀 바지와 신발이 젖는다.
진드기는 어제보다 공격빈도가 뜸하기는 하나 여전히 공격해 온다.
멧돼지의 쟁기질도 여전하다.

 

06 : 50  900. 2봉 도착.
신발 속으로 이슬이 들어와 양말이 흠뻑 젖어든다.

 

07 : 15.  943봉 도착.

07 : 30  잠시 휴식을 하는데 왼편 서쪽 비탈 아래에서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중장비의 굉음이 들리나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진다.

 

07 : 50  진드기 공격의 염려가 없는 풀 없는 공터에서 주먹밥 1개를 꺼내 "새나드리" 민박집에서 얻은 김치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다.

 

08 : 25  왼편 서쪽으로 전망이 트이는 지점 도착
전망이 트여 내려다보니 남서쪽 바로 아래 비탈에 양수발전소가 흉물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중장비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한 시간쯤 전부터 들려오던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중장비의 굉음이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추풍령 위의 금산 채석장을 내려다 볼 때 받았던 충격의 상처가 다시 도지는 듯 마음이 아프다.
양수발전소가 남서쪽으로 조망이 되는 곳이라면 지도상 1018봉과 962봉 등은 모르는 사이에 지나온 것 같다.

 

08 : 50  멍석바위 도착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다.
멍석바위는 원래 불리우던 이름이 아니고 내가 즉흥적으로 보이자마자 붙인 이름이다.  진드기가 준동하는 구간에서 멍석을 깔아 놓은듯 좀 옹색하긴 하나 5 - 6 인정도 둘러앉아 진드기 걱정 없이 휴식 및  식사를 할만한 편편한 바위라서 붙여본 이름이다.
한쪽 끝이 약간 쳐들려 있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09 : 15  이제부터 양수발전소 중장비 굉음이 들리지 않는다.

 

09 : 20  "속초 24번" 삼각점 설치지점 도착.
역시 지도상 어느 지점인지 모르겠다.
햇살이 더워지면서 이슬이 걷히다.


산봉우리를 넘어 안부로 내려서면서 한참 진행하니 50여 평 가량의 넓은 면적을 멧돼지가 완전히 한꺼풀 뒤집어 갈아엎어 황무지로 만든 곳이 나타나고 이어서 10여평, 5 - 6 평, 2 - 3평짜리 쟁기질 현장은  수시로 나타난다.

 

09 : 40  북암령 도착
조침령에서 여기까지 진드기는 시간당 평균 1마리 정도가 공격하여 왔다.  어제에 비하면 현저히 줄어든 공격 빈도이다.

진드기 공격 우려가 없는 풀 없는 공터에 앉아 신발을 벗고 양말을 짜니 물이 줄줄 흐른다.  다시 깔창을 꺼내 비틀어 짜니 역시 많은 물이 줄줄 흐른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

 

북암령은 4거리 갈림길이다.  남쪽 길은 대간 남진길이며, 왼편 남서쪽으로 난 길은 선명하고, 북서쪽 길은 이에 비하여 약간 희미하며, 가장 오른쪽에 나 있는 길로 대간  표지기는 달려 있다.
표지기가 달린 길로 한참 진행하니 길이 왼쪽으로 심하게 휘어지는 것이 단목령이 가까워 오는 것 같다.

 

10 : 55  왼편 비탈 아래에서 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다.

 

11 : 05  길 왼편 남쪽으로 수량이 풍부하게 흐르는 냇물이 보이고, 길에서 20여미터 떨어진 냇물로 물을 뜨러 다닌 듯한 흔적이 뚜렷한 길이 나 있다.  지도상의 샘터 표시는 아마 이 냇물을 두고 한 것 같다.

 

11 : 10  단목령 도착.
백두 대장군, 백두 여장군 등 두개의 장승이 나란히 서 있다.
그 옆의 이정표에는 점봉산 5 Km 2시간 30분, 오색 3 Km 1시간 이라 쓰여있다.

 

전화선 목조전주 중간에 못을 박아 매달은 나무팻말에는 한자로 단목령(檀木嶺)이라 새기고 그 아래 열십자로 사거리를 그린 다음 북쪽은 오색, 남쪽은 설피밭, 동쪽은 지리산이라 하여 백두대간 남진길로, 서쪽은 백두산이라 하여 백두대간 북진길로 각 방향 표시를 새겨 놓았다.

 

단목령(檀木嶺)이라는 한자 표기를 보면 옛날에는 이 일대가 박달나무 군락지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도중에 식생의 천이(遷移)현상이 있었던지는 몰라도 지금은 단풍나무 군락지대여서 현재의 상태와 걸맞지 않는 이름으로 생각된다.

 

단목령에서 길은 다섯갈래로 갈라지는 5거리이다.  동쪽은 북암령, 조침령으로 가는 백두대간 남진길, 서쪽은 점봉산으로 가는 백두대간 북진길, 북쪽은 오색초등학교로 가는 길임은 명확하게 알겠다.  그러나 남쪽 길은 선명하기는 하나 표지기가 매달리지 않고, 썩어가는 통나무 두개를 길 입구에 가로 걸쳐놓은 것으로 미루어 등산로는 아니고 냇가에 물 뜨러 다니는 길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멀리 표지기가 하나 보이는 서쪽 길과 남쪽 길 사이로 남서쪽을 향하여 대각선으로 뻗은 길은 설피밭으로 하여 쇠나드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인 모양이다.

 

그러나 지도상에는 단목령에서 남쪽이나 남서쪽으로 가는 산길은 표시되지 않았다.  지도의 오류인 것 같다.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통화 불능지역이다.
북암령에서 이 곳까지는 진드기의 공격이 없었다.

주먹밥 나머지 한 개를 마저 꺼내어 "새나드리"에서 얻은 김치와 멸치 볶음, 된장, 생마늘 등과 함께 소주 반주하여 점심식사를 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어디에서인가 단목령 남쪽 가까운 곳에『설피민국』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어슴프레 생각이 나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식사를 마치고 한번 가보기로 결심하다.  5일째 계속된 산행으로 피로하여진 심신에 휴식을 주기 위하여 오늘은 귀가를 하기로 한 날이니 시간여유도 넉넉하여 급할 것도 없다.

 

12 : 00  『설피민국』을 찾아서 단목령에서 남서쪽 길로 들어서다.
보통걸음으로 약 150보 가량 진행하니 큰 나무가 쓰러져 사람 가슴 정도의 높이로 길을 가로막고 있어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하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조심하여 나무 아래쪽으로  통과하도록 예절교육을 시키고 있다.  예절을 갖추지 않으면 나무에 박치기를 하여 대낮에 별을 보게 되는 불상사를 겪어야 한다.

 

길은 100여 미터 진행할 때마다 고도가 1미터 가량 낮아지는 정도여서 그 높낮이를 거의 느낄 수 없는 평지 같은 길이고 길 좌우 일대는 평평한 고원지대의 지형인 밀림이다.
도중에 장마철이 아님에도 수량이 풍부한 냇물을 3번 건너게 된다.

 

시간당 10 - 20 ㎜, 하루 100여 ㎜ 정도의 집중호우라도 쏟아지면 일시적으로 길이 막히는 구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길을 단목령에서 보통걸음으로 20분쯤 진행하니 길가 왼편 동쪽으로 수백 평은 됨직한 밭이 나타나고 밭 가운데 집이 보인다.  그리고 산길은 여기서 끝나고 자동차 한대가 운행할만한 임도나 농로    수준의 비포장 도로와 연결되어 있다.  여기가 지도에 쇠나드리, 설피밭을 거쳐 북상하여 삼거리를 지나 끝나는 것으로 표시된 비포장도로 끝 지점인가 보다.  드디어 설피민국인 것이다.

 

12 : 20  『설피민국』도착
비포장도로가 시작되는 길 왼편에는 통나무를 세워놓고 나무 팻말을 매달았는데 팻말에는『설피민국』이라 새겨져 있다.

『설피민국』의 영토로 들어서서 집으로 다가가다.
본채는 산골 오지 치고는 규모가 큰 편인 목조이고, 30여 미터 떨어진 맞은편 밭가에 조그마한 별채의 목조 건물이 또 하나 있다.

 

본채의 안방 문은 열려 있고, 방문 입구에는 30대로 보이는 깔끔한 차림의 청년이 앉아 있다가 나를 바라본다.  인사를 하고 주인 되시느냐고 물으니 아니라 하며 자신은 주인의 후배인데 놀러온 손님이라 한다.  그러자 방 안쪽에서 중키에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기른 40대로 보이는 보통체격의 털털한 차림인 남자가 인사를 하며 나온다.  

 

『설피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백두대간 종주 중인데 오늘은 휴식차 단목령에서 오색으로 하산하여 귀가하려던 중 호기심이 일어서 예방을 하게 되었노라고 설명하니 반가워한다.

 

길가의 팻말에 새긴 『설피민국』은 무슨 뜻인지 물었더니 이 곳이 독립국이라는 뜻이라 한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필요도 없다.  지도에 깨알처럼 표시된 프랑스 남단의 "모나코 왕국" 과 같은 독립국이라는 뜻이겠다.

 

점심식사를 하겠느냐고 대통령이 묻기에 단목령에서 이른 점심을 하였다고 대답하니 그럼 술이나 한잔 대접하겠다며 집 앞마당의 평상으로 안내한다.
큰 페트병에 담긴 붉은 색의 술을 등산 코펠에 딸린 손잡이 달린 알미늄 작은 그릇 두개에 3분의 1정도씩 따르더니 물을 가득 부어 희석하여 그 중 한잔을 내게 권한다.

 

잔을 들어 입에 대고 혀끝에 한 모금 적시니 그윽하게 풍기는 주향(酒香)이 일품이다.  술이라면 나도 산전, 수전, 공중전에 해저 수중전, 지하 땅굴전까지 두루 섭렵해 보았는데 내 일생에 몇 번 느껴보지 못한 향기이다.  술 담근 재료가 무슨 나무나 약초인지 은은한 향에 정신이 팔려 미쳐 물어보지도 못하였다. 

가끔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1. 8리터 페트병 하나에 50,000원씩 받고 파는 술이라 한다.

 

나도 답례로 배낭을 뒤져 행동식으로 남아있던 1,000원짜리 초컬릿 3개, 큰 봉지에 남아있는 호박엿 반 봉지 정도 등을 모두 털어 내 놓았다.  등산시 비상식량을 다 내놓으면 어찌 하느냐는 대통령의 걱정에   오늘 휴식을 위한 귀가를 하니 집에서 다시 준비하면 된다고 하였다.

 

대통령은 10년쯤 전에 백두대간 종주를 끝내고 그 후 몇 차례 여기를 드나들다 정이 들어 5 - 6년 전 이곳으로 들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한다.  가족들과 함께 정착했는지 물으니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고 있다 한다.  더 이상의 사생활에 대한 신상정보는 실례가 될 것 같아 성명과 연령조차도 묻지 않았다.  알아서 무얼 하겠는가 ?

 

(며칠 후 OK마운틴 싸이트의 "송비"님의 글에서 대통령이 이상곤씨 라는 것과 금년 45세이며 서울 도봉산에서 매점을 경영하였고, 산과 산꾼에게 지극한 애정을 가진 이라는 정도의 사실을 알게 되다.)

 

어제 밤 "새나드리" 에서 민박을 하였다고 하니 대통령도 조명호씨를 알고 있다.  노인봉산장 주인도 안다 하며 어제 오대산에 도착하였는데 가능하면 오늘밤에 이곳에 도착하겠노라는 전화 연락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노인봉산장 주인이 15일 계획을 하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OK마운틴 홈페이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백두대간 종주객들이 지나다가 이곳에서 민박을 할 수 있겠는지, 그리고 이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도 되겠는지 여부를 물으니 대통령 관저인 본채에 방이 두개, 그리고 건너편 작은 건물에 방이 하나가 있어 여유가 있다며 흔쾌히 승낙한다.  숙박료가 얼마인지는 묻지 않았다.  속세를 떠나 초연하게 살아가는 대통령이 피서철 관광 행락지처럼 무자비한 바가지야 씌우겠는가 ?

 

『설피민국』대통령에 대한 짤막한 예방을 마치고 작별 인사를 하니, 대통령은, 다음에 종주를 이어갈 때 오색에서 오후 느지감치 단목령으로 올라와 『설피민국』에서 하룻밤 쉬며 묵어가라는 당부를 한다.

 

12 : 40  『설피민국』출발
천천히 걸어나와 『설피민국』의 영토를 벗어나 국경을 넘어 대한민국 영토로 진입한 다음 아까 걸어 내려온 단목령으로 향하다.
단목령으로 올라가는 길도 오르막이라고는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평지에 가까워 전혀 힘들이지 않고 단목령에 도착하다.

 

13 : 00  단목령에 다시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다.

 

13 : 20  단목령을 출발하여 북쪽 오색초등학교로 하산 시작.
지도에 보면 단목령에서 오색초등학교까지 도상거리 불과 2. 5 Km 정도의 사이에 계곡선(計曲線)이 6개나 지나면서 고도를 700미터가량 낮추는 것으로 되어 있어 대단한 급경사길로 생각하였으나 실제 내 려가보니 그렇게 심한 급경사는 아니다.

다만 산비탈을 가로지를 때 한쪽 면이 절벽을 이룬 곳이 간간이 나타나므로 실족 추락의 실수를 조심하여야 하겠다.

 

13 : 40  단목령을 오르는 대간 종주객을 만나다.
40대 중반의 경상도 말씨를 쓰는 남자 등산객이 혼자 개울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인사를 하고 나도 배낭을 벗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니, 대간 종주를 위하여 단목령으로 오르는 길이라 한다.  47세의 이 종주객은 처음에는 등산에 문외한으로서 변변한 장비도 없이 운동화 차림에 소풍가는 수 준의 복장이었다고 한다.

 

일마다 제대로 풀리는 것은 없고 전후좌우로 막히는 답답한 일 뿐이라 이 괴로운 갑갑증을 견디다 못하여 우발적 충동으로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하였다 한다.

 

대간길을 하루하루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듣고 관찰하여가며 산행지식을 쌓고,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하산하여 물어 물어가며 하나 둘씩 장비를 마련하고 써보다 시원치 않으면 다시 품질 좋은 고급 장비로 바꾸고 하면서 산행을 계속하다 보니 지금은 80리터 배낭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거의 끝나가는 무렵인 이제야 산길에 익숙하게 되었고 그러느라 지금까지 종주비용이 1천 만원 가까이 들어갔노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배낭을 보니 과연 우람하게도 크다.

그러니까 이 종주객은 등산에 문외한인 상태에서 대간 종주로 등산에 입문하여 대간길을 걸으면서 장비를 하나 둘씩 사 모아가며, 등산을 배우고 익히고 숙달되어가는 과정에서 노련한 산꾼으로 성장한 처음  보는 아주 대단히 희귀한 사례이다.

 

그렇다면 이 종주객이 소모한 종주비용 1,000만원은 결코 많이 썼다고 볼 수 없는 비용이라 하겠다.

수년 또는 수십년간 등산을 통하여 산을 배워서 하나의 산꾼으로 성장한 다음에 대간 종주를 끝낸 이들은 그 기간동안 1,000만원만 들어갔겠는가 하고 생각하면 결코 많이 소모한 비용은 아닐 것이라는 생   각이 든다.

 

이 종주객은 이제 며칠 후 대간을 완주하고 나면 대간길에서 축적한 삶의 에너지와 왕성한 투지로 인생의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의 앞길에 불운은 가시고 행운이 깃들기를 마음속  으로 빌어주다.

 

종주객이 그동안 다른 종주자들로부터 들은 말은 지리산에서 단목령에 이르는 동안 심신이 극도로 피로하여져 점봉산으로 마루금을 따라 돌지 않고, 단목령에서 오색으로 하산하여 바로 대청봉으로 질러 오르면서 커닝을 하는 종주자들이 상당수가 된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종주객과 작별하고 하산하여 고도가 아주 많이 낮아진 지점에 지도에 없는 민가 두 채가 나타나고 여기서부터 역시 지도에 없는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잠시 후 비포장도로에서 다시 숲길로 접어들더니 이  내 오색천 냇물이 나타나고 냇물을 건너 비탈을 오르니 44번 도로이다.
길 건너편에 자료에서 본 "박달상회" 민박집이 보인다.

 

14 : 50  오색초등학교 앞 도착
휴대전화를 열어보니 송수신 상태가 양호하다.
길가의 박달상회에서 맥주 1병, 멸치 1봉지(합계 3,000원)를 사서 갈증을 달래며 주인에게 물으니 양양에서 오색으로 올라가는 시내버스는 매시 25분경에 이곳을 지나 오색으로 갔다가 다시 금방 되돌아 나오니 버스가 오색으로 올라가거든 길 건너편 벽돌 슬래브 구조물인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라 한다.

 

15 : 25  박달상회 주인 말대로 시내버스가 오색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리다.

 

◇ 귀가
○ 4335.  5. 31. (금)

15 : 45  오색초등학교 앞에서 양양행 시내버스 승차 (1,290원)
16 : 05  양양 버스터미널 도착
16 : 15  강릉행 버스 승차 (3,900원)

 

17 : 15  강릉 버스터미널 도착.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서 2층의 중화요리집에 들어가 짬뽕(3,500원)을 시켜 소주 반주하여 먹으니 속이 후련해진다.

 

18 : 10  수원행 직통버스 승차 출발 (13,200원)
21 : 20  수원 버스터미널 도착  시내버스로 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