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기 [제14회] (나)
○ 단기 4335년 6월 4일 (화) 맑음 (제38일) - 금일 산행구간 : 한계령 → 희운각산장
04 : 20 기상 - 면도 및 세수 후 창틀에서 주먹밥을 챙겨 배낭에 넣다.
05 : 30 밖에 차가 왔다고 한다.
한계령에서 식수를 준비할 수 있는지 물으니 안 된다 하여 차를 운전하고 온 이의 양해를 얻어 잠시 기다리라 하고 민박집 마당 수도에서 식수를 준비하다.
05 : 40 갤로퍼 지프에 승차하고 오색 민박촌에서 한계령으로 향하다.
지프를 운전하는 50대 남자에게 물어보니 그의 집에서 민박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분통을 터트리며 어제 밤 식당에서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민박 따로, 차량 따로 소개한 불쾌한 소행을 이야기하니 빙긋 웃기만 한다.
05 : 50 한계령(920) 도착
박재훈씨의 양해를 얻어 휴게소 마당가에 앉아 얼굴에 썬크림을 바르면서 곰곰 생각해 보니 어제 밤에 판단 착오를 한 것 같다.
오늘 진행할 구간은 한계령 - 희운각산장으로 짧은 구간이어서 늦게 출발하여도 되는데 괜히 일찍부터 서두른 것 같다.
오색에서 가까운 여관에 들어가 잔 다음 느긋하게 일어나 07 : 30에 지나가는 첫차를 타도 되는데 공연히 시설 열악한 민박집에서 자고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별도의 교통비까지 지출하였다.
또한 아예 오색에서 하차하지 않고 양양까지 가서 거기서 여관에 들어 갔더라면 해장국집에서 더운밥을 먹고 나올 수 있었으며, 오색에 07 : 30에 지나가는 버스라면 양양에서는 07 : 00 전후하여 출발할 것이 니 그렇게 하여도 좋았을 것을 후회가 된다.
모 증권회사에서 연수를 나왔다는 수십 명의 젊은 남녀들이 모여 서서 구호와 함성을 외쳐대며 발악을 하고 있는 모습이 거슬린다.
06 : 05 한계령 출발
매표소 옆에는 10월 한 달간 입산예약제를 실시한다는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단풍철 등산객 폭주시 통제를 하는 것이다.
매표소에는 매표원이 없어 무료로 통과하다.
뒤를 이어 증권회사 연수팀은 3개조로 나뉘어 뒤따라오다가 나와 박재훈씨 등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오른다.
설악산은 자주 산행을 하지 못한 탓에 이 길은 처음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지도를 보며 생각하기를 한계령에서 서북능선 갈림길 까지는 계속하여 오르막길인줄 알았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여 오르니 다시 긴 내리막길이 나타나고 안부에 내려서니 다시 오르막길이 되기를 두 번이나 반복한다.
아마 지도상 1307봉과 1310봉을 이렇게 오르내리나 보다.
오르다 만나는 암릉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암봉은 9부능선으로 우회하기도 한다. 한계령에서 비슷하게 출발한 증권회사팀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는데 그들이 질러대는 "야호 !" 소리가 소음 수준으로 귀에 거슬린다.
지도상 샘터 표시 지점에는 땅바닥에 습기만 축축할 뿐이고 물은 나오지 않는 상태이다.
밧줄을 잡고 암릉을 오르고, 비박굴을 지나니 서북능선 갈림길이다.
여기까지 험난하거나 크게 위험한 길은 없다.
08 : 00 서북능선 갈림길 삼거리 도착
박재훈씨와 주먹밥 한 개씩을 꺼내 멸치볶음, 황태채볶음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비타민을 꺼내 먹으며 박재훈씨에게도 한 알 권하다.
08 : 40 서북능선 갈림길 삼거리 출발
대청봉을 향하여 가는 길은 봉우리의 오르내림이 반복되나 험난한 구간은 없다.
09 : 55 이정표 설치지점 도착
이정표에는 한계령 4. 1 Km, 중청대피소 3. 6 Km라 쓰여 있다.
이정표를 지나 지도상 1474. 3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 부근부터 멀리 남쪽으로 어제 지나온 단목령, 점봉산, 망대암산, 1157. 6봉을 연결하는 대간 능선이 조망된다.
용아장성릉의 기암괴석이 보이기 시작하며 설악산의 진면목이 하나씩 나타난다.
11 : 20 끝청봉 (1604) 도착
이 길이 처음인 나에게 박재훈씨는 북쪽으로 보이는 용아장성릉, 봉정암, 어렴풋이 보이는 공룡능선자락, 그리고 앞길의 중청봉 등을 설명해 준다.
12 : 00 중청산장 도착.
캔맥주 생각이 나서 물어보니 팔지 않는다 한다. 국립공원 직영산장이라서 그러한 모양이다.
북쪽 마당가 목책에 서니 계곡 아래 멀리 하얀색의 집이 내려다보여 박재훈씨에게 물으니 희운각산장이라 한다.
잠시 휴식 후 대청봉으로 오르니 정상 직전에 좌측으로 갈라지는 대간 능선쪽에 세워진 출입금지 경고판 뒤로 원형 철조망과 낮은 철조망이 쳐져 있다.
12 : 30 대청봉 (1707. 9) 도착
사방으로 단목령, 점봉산, 서북능선, 용아장성능, 공룡능선, 화채능선 등등 설악산 일대가 모두 조망된다. 소주를 꺼내 캬라멜을 안주로 박재훈씨와 정상주 한 모금씩을 하다.
13 : 00 대청봉 출발
※일곱번째 커닝을 결정하다.
정상 바로 아래 출입금지 경고판 뒤의 낮은 철조망을 넘어 공룡능선으로 연결되는 대간 마루금 길로 들어서니, 지금까지의 대간길과는 달리 길바닥에도 가녀린 풀이 자라나 산들바람에 나부끼는 애잔한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차마 그 풀을 그냥 밟고 지나가기가 망설여진다.
얼핏 인터넷 등산싸이트에서 읽은 누군가의 글이 생각난다. 이 곳을 몰래 지나가면서 관찰한 어떤 대간 종주객이 이 곳은 출입을 통제하고 식생을 보전하여야 할 가치가 충분한 구간이어서 두 번 다시 들어 가지 않겠다는 고백의 글이었다.
다시 되돌아 나와 북쪽 계곡을 내려다보니, 대간 능선과 소청봉으로 우회하는 능선은 희운각산장에서 거의 맞붙어 있어 만나고 있다.
대간 종주객들 중에는 소청봉으로 우회하여 희운각산장에서 대간 마루금과 다시 만나는 이들도 있다는 소문도 들은 터이라 나도 그들처럼 커닝을 하기로 결정하고 중청산장으로 내려가다.
13 : 20 중청산장 도착.
박재훈씨와 앉아서 주먹밥을 꺼내 멸치볶음, 황태채볶음 등과 함께 점심식사 후 비타민을 꺼내 박재훈씨에게도 한알을 권하다.
식사 후 그늘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하다. 오늘은 희운각산장에서 하루를 마감하니 이제 갈 길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느긋해져 편안해진다. 조침령에서 한계령은 하룻길로 충분하겠지만, 한계령에서 미시령까지는 산행길의 난이도로 보아 나의 체력으로는 좀 벅찰 것 같아 어중간하지만 희운각산장에서 하루를 끊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다.
14 : 05 중청산장 출발
중청봉 오른쪽 비탈 우회로로 하여 소청봉으로 길은 굽이돈다.
14 : 25 소청봉(1550) 도착
소청봉에서 길은 삼거리로 갈라진다.
왼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은 소청산장, 봉정암 사리탑을 지나 용아장성능으로 이어지며 도중에 봉정암에서 수렴동계곡으로 내려서서 백담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기도 한다. 수렴동계곡으로 하여 백담계곡으로 가는 길은 두 번이나 지난 길이다.
오른쪽 능선길로 하여 희운각산장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돌계단이 잠시 계속되다 보통의 산길로 바뀌고 중간중간 서너 곳의 험난한 곳에는 철계단을 설치하여 놓았다.
우회 커닝길을 내려가면서 계곡 건너 오른쪽을 바라보니 대청봉에서 내리뻗은 대간 마루금은 그 전체가 바로 가까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인다. 희운각산장에 이를 때까지 수십번도 더 오른편으로 눈길을 돌리며 대간 마루금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계곡쪽으로 지루하게 기나긴 철계단 길을 내려서서 철다리 위로 개울을 건너니 희운각산장이 나타난다. 이 우회로와 대간 능선은 여기서 약 50여미터 정도의 사이를 두고 개울을 건너 맞닿다시피 하며 만나는 곳이다.
15 : 35 희운각산장 도착
일곱번째의 커닝을 끝내다.
50세쯤으로 보이는 산장 주인이 어서 오시라고 인사하며 반갑게 맞아준다. 배낭을 벗은 다음 오늘 이곳에서 자고 내일아침 공룡능선으로 가겠다고 산장 주인에게 말하고 막걸리 1병(9,000원)을 사서 박재훈씨와 산행 뒷풀이주를 들다.
단목령에서 "설피민국" 대통령 예방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서 산장 주인에게 대간 종주를 하는 노인봉산장 주인이 이곳을 지났는지 물으니 3일전에 지나갔다고 한다.
산장에는 막걸리 외에 팩소주, 캔맥주 등도 팔고 있다.
산장에 처음에는 나와 박재훈씨 둘뿐이었는데, 막걸리를 거의 다 마실 즈음하여 한두 사람씩 도착하기 시작한다. 1인당 산장 입실료는 3,000원이라 한다. 박재훈씨가 입실료를 지불하고 숙박부에 인적사항을 기재하다.
산장 뒤편으로 돌아가니 대청봉으로 오르는 대간 능선길은 출입금지 팻말이 세워져 있다.
개울은 오래 가물었는지 산장 위쪽으로는 물이 말라있고, 철다리 바로 아래에 두 군데서 물이 솟아나 흐르기 시작하고 있다.
소청봉능선쪽에서 솟는 물은 식수로, 그리고 희운각산장쪽에서 솟는 물은 세수 등 씻는데 쓰고 있었다. 개울에서 세수를 하다.
박재훈씨가 취사장비를 꺼내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다른 등산객이 밥을 많이 하여 남는다며 나눠주는 것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다.
식사 후 다른 등산팀에 두어번 초대받아 소주 몇 잔을 얻어 마시다.
산장에 담요 대여를 요청하니 담요는 낡아 폐기하고, 지금은 얇은 캐시미론 이불 한장에 2,000원씩 대여 한다고 한다. 추울 것 같아 4장(8,000원)을 빌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마루침상은 2층으로 되어 있 는데 아래층은 여자들이 선점한데다, 원래 따뜻한 공기는 위쪽으로 올라오는 현상을 알고 있어 2층을 선호하는 나는 잘됐다 싶어 2층으로 올라가니 2층은 다시 70여센티미터 높이로 2단으로 되어 있다.
윗단에 배낭과 양말을 벗어놓고 이불을 펴놓은 다음 밖으로 나가니 석양이 가까워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여져 외투를 꺼내 입다.
개울로 가서 머리를 감고 발도 씻으니 개운하다. 주머니에서 치솔을 꺼내 맹물로 양치질을 하다.
산행시 비누와 치약을 지참하지 않는 것은 나의 산행 철칙이다. 산 속에서 세수나 양치질, 발 닦기 등을 안 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맹물에 씻는다면 몸에서 벗어져 냇물에 섞인 정도의 오물은 물고기가 먹어 치우는 등의 과정을 통하여 자정작용으로 정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비누와 치약을 사용한다면 이건 대책이 없다.
산속에서 며칠간 비누를 안쓴다고 피부가 썩어 문드러질 것도 아니요, 맹물로 칫솔질한다 하여 당장 충치가 먹어 이빨이 삭아 없어질 것도 아니며, 화장지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식기를 세척한다 하여 배탈이 날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부 몰지각한 자들은 거울같은 계곡물에 비누거품을 부옇게 풀어놓으며 세수를 하는가 하면, 세제 거품을 풀어놓으며 식기를 닦고, 치약 거품을 퉤퉤 뱉어 물위에 띄워 보내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들은 도대체 그 나이를 먹도록 보고 배운 게 무어란 말인가 ?
아니, 이건 국가의 책임이다. 한국이 일제 식민지치하에서 광복을 찾은 지가 반백 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동안 국민교육을 책임져야 할 역대 문교부장관, 교육부장관, 교육인적자원부장관들은 무얼 하였는가 ? 장관 이하 소속관료들은 미군정이 끝나고 한국정부 수립 이후 54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공중도덕과 공공예절을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국민교육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세워 변변한 교육을 시키지 못하고 외국인들 앞에 삼천리강산이 쓰레기강산으로 되어버린 낯뜨거운 작태가 연출되도록 하고 있단 말인가 ? 그러다 보니 결국 자연휴식년제 같은 미봉책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
이것은 국방부장관이 효율적인 국토방위정책을 수립 시행하지 못하여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케 한 것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
장관이라는 자리가 죽은 다음 자손들이 제사 지내려고 지방을 쓸 때에 "학생(學生)부군신위" 대신 "○○부 장관 신위" 라고 벼슬자랑 하는데나 써먹으라는 자리더란 말인가 ? 산하 각급학교에 감독자로 군림하는 것만을 직분으로 알고 있다가 때가 되면 물러나는 자리였단 말이던가 ?
54년동안 교육분야에 천문학적인 혈세를 썼으면서도 오늘날 국민교육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하여 공공질서와 공중도덕이 아직도 선진국 수준에 이르지 못하도록 한 현실에 대하여 우선 역대 교육 담당 부서의 장관들에게 해당 분야 총수로서 그 무능과 과오에 대하여 어떠한 형태로던지 연대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씻기를 마치고 내일 쓸 물을 0. 5리터 페트병으로 5병 준비하여 침실에 갖다 놓다. 내일 아침 출발에 임박하여 준비하면 물이 너무 차거워 물병 표면에 이슬이 생겨 배낭 속에 물이 흘러 젖을 것 같아 미리 준비한 것이다.
물 받기를 마치고 잠시 개울가에 앉아 쉬고 있는데, 늦게 도착하는 60세 전후의 여자들 5인이 개울물에 세수를 하더니 발을 물에 푹 담그고 씻다가 나온다. 봉정암 사리탑 참배를 마치고 산장에서 1박한 다음 내일 천불동으로 내려가는 불교신자들이라 한다.
장난끼가 발동하여 여자들에게 "아주머니들 이제 큰 일을 저지르셨군요. 백담사 스님들께 발씻은 물을 드시도록 했으니 이제 어찌할 겁니까 ?" 하고 농담을 건네니 왜 그러냐고 반문하기에, 지금 발씻은 물이 가야동계곡으로 해서 내일 새벽쯤이면 백담사 간이상수도 수원지에 도착할 것이므로 백담사 스님들은 아주머니들 발씻은 물을 내일 아침 공양으로 드시게 되었다 하니, 이 물이 백담사로 흘러가는 것이 참말 이냐, 진즉 말해주지 그랬느냐 하므로 내가 말렸더라면 발도 못씻고 불쾌하게 주무실까봐 차마 그럴 수 없었노라고 대답하니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럭저럭 산장에는 20여인의 남녀 산꾼들이 들어왔다.
오늘이 월드컵 한국 대 폴란드전이 열리는 날이라,
"저녁에 공놀이하는 거 활동사진으로 구경할 수 있나요 ?"
하고 산장 주인에게 고색창연한 말투로 물어보니 우스웠던지,
"활동사진 기계가 고장났습니다. 라디오만 들어야합니다.."
하고 껄껄 웃으며 대답한다.
20 : 30 취침
다른 등산객들은 라디오로 축구중계를 듣는다고 산장 매점 앞에 모이는데 피로하여 혼자 2층 침상으로 올라가 잠이 들다.
한참 자고 있는데 폴라드전 축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2 : 0으로 이겼다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산장 안으로 들어와 잠자리를 펴느라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니 이불을 너무 많이 덮어 땀이 났다.
한장 깔고, 한장 덮으면 될것을 추울까봐 3장이나 덮었더니 땀이 난 것이다. 3장을 깔고 한장만 덮은 후 다시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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