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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 후기 - 종주를 마치고 …

by 박달령 2007. 10. 7.

O 백두대간 종주 후기 - 종주를 마치고...

dl제 나는 그간 비록 전체 구간의 반 토막에 불과한 진부령까지나마, 지리산 천왕봉에서 백두산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능선으로만 연결되어 있다는 내 조국 국토의 등뼈인 백두대간을 바라보고 걸으면

서  밟아보고  만져보고 때로는 바위 위에 드러누워 보기도 하고, 흙 냄새도 맡으며 그 실체를 확인함

으로써 열망하던 소한 가지를 이루었다.


종주의 방식은 구간종주와 연속종주의 절충형태를 선택하여, 2일 내지 3일 혹은 4일 내지 5일간 진행

하고 귀가하여 2~3일간 쉬면서 체력을 회복한 후 다시 종주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하여 총 14회에 걸쳐

순수한 종주 산행일만 꼭 40일이 걸렸다.

이제 종주를 끝내고서 몇 가지 생각나는 사항에 대하여 결산을 하는 의미에서 되돌아보고자 한다.

 

[1] 백두대간이 나에게 준 것들.

백두대간은 나에게 이 땅이 내 조국임을 실감하게 하여 주었고, 더욱 진한 애착심을 갖게 하여 주었다.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넘어야 하는 산봉우리를 만나 오를 때에 처음에는 힘들고,

괴롭고, 짜증이 나는 일이었으나, 계속하여 오르고 넘고, 또 오르고 넘기를 반복하다보니 나중에는 산

봉우리를 오르고 넘는 일을 즐기는 경지에까지 도달하면서, 백두대간은  앞으로 인생 길에서 어떠한

역경이라 할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투지와 용기와 자신감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오히려 내리막길을 만나면 내려간 만큼 또 올라야 함을 걱정하게 되어, 태평성대에 환란을 염려, 경계

하며 대비하여야 하는 삶의 지혜도 얻게 해 주었다.

 

또한 매번 목표한 구간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많은 자료를

다방면으로 발굴 후에 선별하여 기록하고, 평가, 분석, 종합, 해석하여 정보화를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

서 사전 정보수집의 중요성을 체득하게 하여 주었음은 물론 치밀성도 같이 길러 주었다.

 

무인지경을 혼자 걷는 길이므로 질병이나 부상으로 산중에서 쓰러지게 된다면 구원의 손길을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열차 역이나 버스터미널 또는 여관 화장실 수돗물을 식수로 받아 준비하여

마시는 한이 있더라도, 혹시나 불결한 손끝에서 대장균을 비롯한 세균이 번식 하였을지도 모를 우려가

있는 산 속의 고인 샘물은 절대로 마시지 않고, 파이프 끝에서 흘러 떨어지는 위생적인 물만 마시며,

산행 길에서는 속도에 집착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발 디딤을 신중하게 하여 안전에 최우선을 두며 풀숲에

길이 가려져 보이지 않으면 지팡이로 헤쳐 길바닥을 확인함으로써 뱀이나 기타 독충을 밟지 않고 피하는

등 잠시도 한눈 팔지 않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계속함에 따라 백두대간은 나에게 산과 같이 무거우면서도

조용한 신중성을 발휘하는 자세를 길러  주었다.

 

[2] 커닝 구간에 대한 심경의 변화.

대간 산행 중 ① 벽소령의 1426봉,  ② 돼지령에서 노고단 정상으로 하여 코재, ③ 코재에서 종석대

를 거쳐 성삼재, ④ 문장대 ~ 밤티재, ⑤ 조봉 ~ 이화령, ⑥ 묏등바위 ~ 황장산1077. 3) 정상, ⑦ 대청봉

~ 희운각 산장 등 7개소에서 커닝 우회를 하였다.  그 중 문장대 ~ 밤티재 구간은 후에 땜질 산행을 하여

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구간도 본래는 나중에 땜질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진부령에서 이 결심은 바뀌어

이 땜질산행에 집착하지 아니하기로 하였다.  벽소령, 노고단, 종석대, 이화령 정도의 커닝 우회로는

그 후 이와 유사한 대간길을 여러차례 걸으면서 굳이 땜질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의미가 없어지지는 않

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묏등바위 ~ 황장산 정상 구간에서는 바위 위에 두텁게 앉은 서리가 빙판을 이루어 추락을 염려하여

바위와 흙이 만나는 지점을 따라 정상 아래로 약 500여미터를 우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의

우회 역시 그 후 몇 군데 겪으면서 오히려 내가 지나온 그 미개척 경로가 아예 공식적인 우회로로 개척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대청봉 ~ 희운각산장 구간은 나란히 달리는 소청봉쪽 능선을 걸으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내내 바라보

면서 샅샅이 눈요기를 하면서 걸어갔다.  그러나 눈요기를 한 것만도 직접 걸은 것이나 마찬가지로 다행

이라는 생각이다.  백복령을 지나 없어져버린 자병산 때문에 꿩 대신 닭이라는 식으로 구렁이가 담을 넘듯

질러가도록 새로 낸 대간길, 흘리에서 진부령 구간처럼 엉망이 되어버려 대간 마루금을 눈요기조차 하지도

못하면서 멀리 떨어진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 구간 등을 생각하면 눈요기를 한 것만도 어디인가 ?

 

오히려 문장대 아래 개구멍바위 험난구간을 피하여 시어동 계곡길 일반등산로로 멀리 우회하여 버리

거나,  버리미기재에서 장성봉으로 오른 후 악휘봉을 거치지 않고 봉암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은치재로

질러가거나, 조령삼관문 - 하늘재 사이에서 동암문에 이르러 부봉쪽으로 돌아가지 않고 골짜기로 내려

섰다가 평천재로 질러가거나, 심한 경우 단목령에 이르러서는 점봉산 ~한계령 ~ 서북능선쪽으로 돌기가

힘이 드니까 오색초등학교로 내려서거나 또는 점봉산 못 미쳐 갈림길에서 오색으로 내려선 후  설악폭포를

경유 후 바로 대청봉으로 올라버리는 등 『무늬만 종주』를 하는 꾀 많은 이들이 있다는 소문을 중간 중간

만나는 이 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전하여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럴 양이면 차라리 진부령 표지석 앞에서 백두대간 종주 기념 사진이나 한장 찍은 후, 인터넷 여기 저기

른 이들의 백두대간 종주기들을 뒤져 분해, 재조립의 과정을 거쳐 짜집기를 하여 그럴 듯한 백두대간

종주기나 하나 조작해 낸 다음 자랑하면 힘도 , 돈도 안들 터인데 무엇하러 그러한 고생들을 한단말인가 ?

 아무튼 이렇게 심경의 변화로 인하여 커닝구간의 땜질 산행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 심경의 변화도 나중에 어떻게 다시 바뀔지는 모르겠다. 

 

[3]산행 형태의 변동과 산행 비용

처음 천왕봉 ~ 성삼재 ~ 여원재 ~ 새맥이재 구간의 4일간은 비박장비까지 챙기느라 배낭의 중량이

22 Kg 정도나 되었다.  그러나 연령에 비하여 너무 무거운 배낭은 체력이 도저히 감당을 해 낼 수가

없었다.  그대로 강행할 경우 무릎이 결딴나고 몸 어디엔가 고장이라도 일어난다면 나중에 그 치료비

가 엄청나게 소모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한지라, 집에 돌아와 며칠동안의 긴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고심 끝

에 그 다음 구간에서 부터『가볍게 짊어지고 멀리 뛰기』로 산행 방식을 바꾸었다.

 

그래서 배낭 중량을 그 절반인 12 Kg 정도로 줄여버리고 구간 마디마다 만나는 도로 등에서 대중교통

수단이 없으면 택시를 이용하더라도 여관이나 민박집으로 가서 숙식을 해결하고 김밥이나 주먹밥을

준비하여 다음날 산행을 함으로써 취사장비까지도 과감히 생략하고서야 비로소 진부령까지 진행이 가

능하였다.

 

이렇게 산행 형태를 바꾸어 하루 이틀 지나니 대간 마루금의 진행뿐 아니라 어느덧 저녁에 시간이 나

는 대로 백두대간 주변의 마을이나 도시 시가지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주점에 들어가 원주민들과

접촉하여 대화도 가져 봄으로써 각 지역 인심을 몸소 체험하는 일도 산행 과정의 일부분이 되어 산행과

여행이 병행되는 형태로 바뀌어져 버렸다.

 

따라서 나의 이 기록은 이제 "종주기"라는 이름보다는 "백두대간 여행기"나 또는 "백두대간 견문록"

이라는 등의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렇게 하다보니 산행 경비는 산행일 하루 평균 75,000원 정도가 소모되었다.

산행기간 전일의 접근시간과 산행기간 후일 귀가시간 경비까지 포함해서이다.
그래서 1일 75,000원 × 산행일 40일 = 300만원의 총 경비가 소모된 것이다.
이는 보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상당히 많은 금액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야영이나 비박(bivouac), 산중 취사를 강행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이보다 몇 배의 치료

비용이 들어갔다고 가정다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비용은 외국에 호화 보신관광이나 다니면서 외화를 낭비한 것이 아니고 국내에서 소비하

여 대한민국 사람들끼리 나누어 가진 셈이니 국가적으로 손해날 일도 아니다.

 

또한 이날 이때까지 골치 아파가며 뼈빠지게 일하여 돈을 벌어 성실하게 처자식 부양하였으면, 이러

한 용도에 이 정도의 돈은 쓸 권리가 있다고 보며, 이것이 무슨 법에 저촉되거나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

을 일은 니라고 생각한다.

 

[4] 자연휴식년제 구간 통과의 위법행위

점봉산 ~ 한계령, 마등령 ~ 미시령 등 두 군데의 자연휴식년제 구간을 법규를 위반하여 가면서 통과한

실과 그 이유는 이미 종주기에 쓴 그대로이다. 물론 이는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정당화 될 수는 없는

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나는 우리나라에 몇 개인가 존재한다는 산악연맹 단체와 산하 산악회 등에 대하여 바라는

것을  말하여 본다.

 백두대간상에 시행하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나 기타 명목의 통제구간을 대간 종주자들에게 한하여

개방 하도록 연대하여 건의하고 관철시키는 운동을 할 수는 없을까 ???  물론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개방을 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은 알고 있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 해당 구간의 훼손 복구비 명목으로 입장료를 별도 징수하거나, 혹은 어떠한

테스트를  통한 면허제나 허가제를 시행하고, 그 구간 통과 후 자연 식생상태 등을 관찰케 한 다음에

소정의 양식으로  기록 보고케 하여 매일 이를 수집하여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오히려 백두대간의 상

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관리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 할수는 없는 일인가 ?

 

산꾼들의 백두대간 종주 열망은 식을 줄 모르는데, 이에 부응하는 활동을 하여줄 것을 기대하고 바라

는 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