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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록(追憶錄)

☆ 용화교(龍華敎) 이야기 (9회)

by 박달령 2011. 1. 22.

[9] 서교주의 또 다른 아들


나의 고등학교 동창생 중에 전주 노송동에 살던「한상협(韓相協)」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전라북도의 최고 명문고교였던 [전주고등학교] 재학 당시 농구선수였는데, 도중에 일신상의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놀다가 내가 금산상업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내가 다니던 시골 농촌의 [금산상업고등학교]로 편입해 온 친구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상협]이가 해병대에 지원 입대하여, 근무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소식을 듣지 못한 친구이다.


한상협이는 먼 곳에 있는 전주의 집에서 통학할 형편이 안되어 내가 다니던 금산상업고등학교 근처에 셋방을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와 친하게 된 나는 그의 자취방에 자주 놀러 가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며 한담을 하곤 하였었다.


하루는 그의 방에서 엎드려 뒹굴며 잡담을 하던 끝에 화제가 용화교에 이르렀을 때 한상협이로부터 서교주의 아들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상협이의 말에 의하면, 서교주의 몇 번째 처에게서 태어났는지, 몇째 아들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한상협이와 전주고등학교 동창생이며, 당시에도 재학중이고 상당히 친했다고 말을 하였다.


그 서교주의 아들 이름은「서OO」이었으며 한상협이는 처음에 서교주의 아들인줄도 모르고 어느 날 노는 자리에서 그 당시 뉴스거리였던 서교주의 여승 간음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비난하고 욕을 하였더니 한상협의 얼굴이 벌개 지면서 고개를 떨어트리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서교주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실토하더란다.


서교주의 아들은 언제나 주머니에 용돈이 두둑하였던 탓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자리에서 푸짐하게 돈을 써서 인기가 좋았었으며 상협이의 기억으로 짜장면을 특히 많이 얻어먹었다고 했다.


서교주는 평소 신도들에게 설교를 통하여 장차 미륵세계가 도래하여 극락정토가 열리면 현대 학교교육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학교에 보낼 필요가 없다고 교육무용론을 역설하였던 까닭에 용화교 신도들은 자녀들을 의무교육인 국민학교(초등학교)만 졸업시키고 그 후에는 상급학교에 진학시키지 않았음은 물론 재학 중이던 자녀들까지도 중퇴하도록 하였었다.


그것은 아마도 대중을 우민화(愚民化)시켜 교주에게 맹종만을 행하게 할 의도였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자녀들에게 학교 교육을 시켰으며, 상협이의 동창처럼 1류 명문 고등학교에도 진학을 시키는 등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