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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록(追憶錄)

트럭 바퀴에 갈리고도 살아난 전우의 추억

by 박달령 2011. 1. 17.

문득 육군에 복무하던 당시의 사고 하나가 생각난다.

소속 중대원 중에 전남 출신의 김경배라고 하는 나보다 3~4개월쯤 후임병이 있었다.

내가 복무하던 지역의 부대는 어느 부대나 막론하고 막사(幕舍)를 비롯하여 연병장(練兵場) 기타 시설물 등에 보수나 증, 개축 등의 공사를 위하여 모래가 자주 사용되었는데 그때마다 부대에서 멀지 않은 한탄강의 모래를 채취하여다 쓰곤 하였다.

 

내가 상등병 시절인 1968년 여름 삼복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 날도 부대 공사에 필요한 모래를 채취하기 위하여 사역병(使役兵) 지원자를 차출하였는데, 나는 이 모래채취 사역에 나가지 않았고, 경배를 비롯한 3명의 중대원들이 지원하여 수송부 운전병이 운전하는 2.5톤 군용트럭에 승차하여 10여Km 떨어진 한탄강변으로 갔다.

 

사역병 일행들은 한탄강변에 도착 후 삽질을 하여 트럭에 모래를 퍼 담은 다음 무더위에 흘린 땀을 강물에 씻고서 그늘을 찾아 낮잠을 한 숨 자면서 휴식을 하기로 하였다. 힘든 작업에 사역병으로 지원하는 이유가 이렇게 작업이 끝나고 나면 한 두시간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특혜가 있기 때문이었다.

 

운전병을 비롯한 사역병들은 근처 나무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워 잠이 들었는데, 경배 이 친구는 누운 자리의 나무 그늘이 햇볕을 완전히 차단시키지도 못하고, 바닥이 울퉁불퉁하여 잠을 잘 수 없자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모래를 실은 트럭 밑으로 들어가 잠을 자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에 트럭 밑에 들어가 드러누워 있으면 무척 시원하였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날씨에도 트럭 밑은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게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시원하였는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시원한 맛을 잘 모른다. 아무튼 경배는 트럭 밑에서 달콤한 잠에 취하여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트럭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그늘 밑에서 잠자던 중대원 하나가 먼저 잠이 깨어 다른 중대원들을 깨워서 이제 쉴만큼 쉬었으니 부대로 복귀하자고 말하고서,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 경배를 찾아보자고 흩어져 찾는 사이에 운전병은 강변의 트럭의 방향을 돌리기 위하여 시동을 걸고 트럭을 후진 시키는 찰나에 무언가 차바퀴 밑으로 물컹하는 감촉과 함께 처참한 비명소리가 들리자 기겁을 하여 차를 원위치로 약간 전진하여 멈추고 하차하여 트럭 밑을 바라보니 그곳에 경배가 차 바퀴에 왼쪽 어깨에서부터 왼편 갈비뼈를 지나 복부까지 갈려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트럭 밑에서 자고 있던 경배를 운전병이 확인하지 않고 차를 움직이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사역병과 운전병들은 경배를 황급히 트럭에 태우고 사단 의무중대로 달려가 입실을 시킴과 동시에 중대본부에 사고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의무중대에서 응급조치를 마친 경배는 서둘러 육군 항공대의 헬리곱터에 실려 서울의 수도육군병원으로 긴급 후송이 되었다.

경배의 상처는 왼쪽 갈비뼈가 부숴져서 생존의 가능성마저 희박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그렇게 처참한 사고가 나고 약 8개월 정도의 세월이 흘러 그 이듬해 초봄에 경배는 수도육군병원에서 퇴원하여 중대에 복귀하였다.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이 구리빛으로 건강미가 넘치던 경배는 얼굴이 야위고 창백하여 병색이 완연하였고, 몸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리고 우렁차던 말소리도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작아졌고, 말 몇 마디 하는데도 상당히 힘들어 했다. 당당하게 걷던 발걸음도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생존의 가능성조차 희박하다던 소문에 비하면 그래도 많이 회복된 편이었다.

 

더 이상 군복무를 계속할 수 없다는 수도육군병원의 진단에 의하여 군에서 의병제대(依病除隊)를 하기 위해일시 원대복귀를 한 것이었다. 며칠 후 경배는 제대특명을 받고 우리 부대원들에게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고향집으로 떠났고, 그 후로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김경배가 지금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귀향 후 재활치료를 하여 다시 건강을 되찾아 보람찬 삶을 살았기를 기원해본다. 제대특명을 받고 부대를 떠나던 날의 쓸쓸한 전우의 뒷모습이 다시금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