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록(追憶錄)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오해에 의한 표정
by 박달령
2011. 1. 5.
육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제대)을 하기 위하여 삼 년 간(정확하게 34개월 15일) 복무하였던 강원도 철원군 전방의 군부대를 떠나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향토예비사단으로 간 날은 1970년 2월 20일이었다. 예비사단에 도착한 수 백 명의 얼룩무늬 예비군복을 입은 우리 제대장병들은 연병장에 집결하여 근무부대 에서 받은 전역에 필요한 서류뭉치들을 예비사단에 접수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그 중『복무기록카드』와 [펀치카드』라는 두 종류만 접수시키고, 나머지 많은 분량의 서류는 모두 오물 소각장에 버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하여 수 백 명이 버리는 서류뭉치는 커다란 오물 소각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갔었는데 계절적 으으로는 입춘(立春), 우수(雨水)는 지났으나 아직도 겨울 바람이 가시지 않아 추운 날씨였으므로 누군가가 이 서류 더미에 불을 붙여 수 십 명이 둘러서서 따뜻한 불을 쬐며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는 서류더미를 미친 듯이 작대기로 헤쳐가며 무언가를 찾는 까닭에 불길 이 꺼지면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까닭을 물은즉 서류더미를 헤치던 그 제대장병의 답변이 착오로『복무기록카드』대신에『교육 훈련 카드』
를 챙기고『복무기록카드』를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접수대에『교육훈련카드』를『복무기록카드』로 잘못 알고 접수시키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카드는 지질(紙質)이나 크기와 색깔이 엇비슷하여 착각하기 꼭 알맞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복무기록카드』로 말할 것 같으면 국민들의 호적부나 주민등록부 이상 가는 중요한 서류였는데
순간적인 착각으로 불에 타버리게 만든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제대장병이라는 정리로 타다 남은 서류뭉치
들을 여럿이 같이 뒤적이며 찾았으나 이미 불타고 없어져 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소동은 연병장 한쪽에서 제대장병들의 뒤치다꺼리 업무를 보던 보충중대의 인사계 상사에게 보고가 되었
던지 오물소각장으로 달려온 인사계가 자초지종을 묻더니 카드 분실 당사자에게 하는 말이『그 복무기록카
드는 군인의 생명인데…, 그거 없으면 제대 못하네.』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장본인인 그 제대장병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얼굴색이 누렇게 질려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인상
은 중키에 약간 뚱뚱한 체격, 구부정한 허리며 어깨, 네모지게 길쭉하면서 볼에 살이 약간 찐 편인 까무잡잡
한 얼굴에 작은 눈이었던 게 기억에 생생하다.
인사계 상사의 질문에 답을 하는 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집은 전라북도 남원이라 했다. 그의 얼굴빛은 초조
하게 울상이 된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도 누렇게 질린 표정은 내가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정황이었다.
급작스럽게 큰 충격을 받았을 때 인간의 얼굴이 그렇게도 샛노랗게 질려버린다는 사실도 처음 목격하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슬픔과 오뇌(懊惱)에 찬 표정이었다.
보충중대 인사계 상사는 이러한 사실을 중대 사무실에 들어가 상부에 전화로 보고한 다음 한 시간 가까이 되
어 연병장으로 나오더니 카드 분실 당사자인 그 제대장병에게 전달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다행히 육군본부에서 복무기록카드 사본을 보존하고 있다 하니 그것을 다시 사본 해오면 되므로 크게 염려
할 것은 없으나, 당사자 본인이 육본에 왕복하는 여비와 기타 경비가 필요할 것인바, 지금 수중에 돈이 없으
면 집에 가서 가지고 오라는 말을 들은 그는 그제야 얼굴빛이 본래의 색깔로 돌아오면서 부랴부랴 집으로
소요 경비를 마련하려고 떠나는 모습을 본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지어지게 되었다.
이상이 내가 극한상황에 처한 인간의 오뇌에 찬 생생한 모습을 처음 보게 된 사건의 전모였다.
ㅡ 끝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