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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록(追憶錄)

골목길 가득히 안개를 만들어 피웠던 추억

by 박달령 2010. 4. 10.

세상을 살다 보니 별게 다 추억으로 떠오른다.

 

군에서 제대하고 마땅한 직업을 잡지 못한채 2년 가까이 건설현장에 일용노동을 다녔었다. 젊잖은 표현으로 건설현장 일용노동자이지 속칭 "노가다판"이다. 그 노가다판 일터에서 비슷한 연배끼리 친구가 되어 의기 투합하여 저녁에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사발로 피로와 시름을 달래며 잡담, 한담을 하다가 헤어지기도 하고, 가끔 가다가 술맛이 땡기는 경우에는 밤중 12시 통금시각 가까이까지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는 밤 12시(0시)부터 새벽 4시 정각까지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 있던 시절이었다.

통금단속에 걸리면 파출소(지금의 지구대)에 연행되어 경찰서 보호실에 유치되었다가 그 다음날 법원 즉결심판에 회부되어 구류 아니면 과료(소액의 벌금) 처분을 받기도 했었다.

 

술맛이 나던 추운 겨울 어느날 역시 밤 11시경까지 상당량의 막걸리를 소비하고 통금시각이 되기전에 귀가를 서두르던 길에 집 근처 골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막걸리를 배가 부르도록 마신 후 배설을 못하고 그냥 걷던 길이었는데, 골목길 옆 공터 후미진 곳에 이르니 소변이 급작스럽게 마려워 길을 벗어나 공터로 서너발짝 걸어들어가자 이웃집에서 버린 연탄재가 무더기를 이룬 곳이 나타나 그곳에다 바로 소변을 갈겨대었다.

 

그러자 아직 완전연소가 되지 않은 소변벼락을 맞은 연탄재에서 "피~ㅅ 쓔우~욱" 하는 거센 소리가 계속하여 나면서 오줌이 수증기로 변하여 뭉클뭉클 안개구름을 일으키면서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곧 그치겠거니 하면서 약  1분 이상으로 기억되는 긴 시간을 그냥 선채로 대량의 소변을 갈겨대었지만, 어느 집인가 불길이 어중간하게 많이 남은 연탄을 갈고서 버렸는지 소변이 끝날때까지 그치지 않고 오줌안개는 계속하여 피어났다.

 

때마침 하늘엔 구름이 잔뜩 낀 저기압의 날씨라서 오줌안개는 공중으로 비산 소멸되지 못하고 땅바닥에 낮게 깔린채 공터에서 약한 바람을 타고 골목으로 그 영역을 확산해 가기 시작하여 약 10여미터의 골목길을 희부옇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아래 귀곡성이 들릴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며 안개바다로 만들어 마치 지리산 노고단에서 그 아래 운해를 바라볼 때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골목길 운해의 장관을 감상하다가 소변이 끝나 몸을 추스리고 나니 그때야 취중에도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어 이런 꼴을 보면 창피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발걸음을 재게 놀려 급히 그 현장을 벗어나느라 오줌안개가 사라지는 장면도 못본채 귀가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피워낸 골목길 오줌안개의 장관을 그 안개가 사라질때까지 감상 못하고 말아버린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그렇다고 지금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 구할 수 없는 연탄재를 찾아다 다시 실습을 하여 볼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할 수가 있다 해도 노년기 초입에 접어들은 내가 망녕되이 이런 실습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닌 것 또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