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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록(追憶錄)

박달령의 완전범죄 - 살구 횡령사건

by 박달령 2009. 10. 26.

내가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인 10세때 초여름 6월 어느 일요일의 일로 기억된다.

농촌인 우리 집의 텃밭가 돌담밑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는데, 보통 살구보다 크기가 두세배나 컸는데 사람들은 이 살구를 "호박살구"라고 불렀던 품종으로 맛이 아주 좋았다.

 

그 해에 살구 추수를 끝낸 어머니께서 점심식사 후 살구를 함지박에 가득 50 개 정도 담아 보자기에 싸주시며 선친과 친분이 두터우셨던 산 넘어 '비장골 마을' 이선생님(이동옥) 댁에 갖다 드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므로 살구 함지박을 싼 보따리를 받아들고서 집을 나서는데 한 마을 친구 순성이, 현철이, 명곤이 등 세명의 친구들이 길에서 놀다가 어디 가느냐고 나한테 묻기에 심부름을 간다고 대답하고 나서 나 혼자 그 먼길을 가기에는 심심할 것 같아 같이 가자고 친구들을 꼬드겼는데 이게 사단이 된 것이다.

 

마을에서 비장골 이선생님 댁까지 약 2 Km쯤 되는 길을 10여세 어린것들이 살구 함지박을 교대로 낑낑대며 들고 갔으니 발걸음이 빠를리가 없었다.  더딘 걸음으로 산 고개마루에서 '비장골 마을' 갈림길로 접어들어 호젓한 곳에 이르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하여 앉아 쉬면서 보자기를 풀고서 살구를 꺼내어 나를 포함한 네 명의 악동들이 하나씩 나눠 먹으니 달콤하기가 꿀맛이었다.

 

그렇게 가다 쉬면서 한 개씩, 또 쉬면서 또 한 개씩 넷이서 살구를 먹어대니 결국은 함지박 속의 살구는 산 넘어 비장골 마을 이선생님 댁에 도착하기도 전에 산모롱이 중간에서 증발하여 네 명의 악동들의 뱃속에서 거름(대변)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살구를 모두 먹어 치우고 나자 우리 네 명의 악동들은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을 하기 시작하니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넷이서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나중에야 어찌 될망정 우선은 심부름을 충실하게 한 양 시치미를 떼고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중론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산속 개울가 바위 위에서 실컷 노닥거리며 놀다가 빈 함지박만 보자기에 싸들고 집에 돌아가 시치미를 뚝 떼고 어머니께 비장골 이선생님 댁에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 심부름을 제대로 잘 갔다 온양 능청을 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이 살구 횡령사건은 그 후로 발각이 되지 않고 수십년 세월이 흘러 공소시효가 수차례나 지나고 부모님께서 세상을 뜨시고 난 지금까지도 완전범죄 사건이 되어 세상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만약 그 당시에 발각이 되었더라면 아마 엉덩이에서 먼지가 나고 초죽음이 되도록 매를 맞았을 것이다.

 

그 후 우리 친구들 넷은 커서 제 갈길을 가느라 상면도 못한채 세월만 흘러갔다.

명곤이만 해병대에 입대하여 월남전에 청룡부대 파병을 갔다가 젊은 청춘에 전사하고 말았다는 소식만 듣고 다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이제 인생의 황혼녘에 불현듯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의 한토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