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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야화

★ 한국민담 수렵사 - 산막(山幕)의 이야기들 (상)

by 박달령 2008. 11. 7.

★ 한국민담 수렵사 - 산막(山幕)의 이야기들 (상) - (글 : 김왕석)

1921년 겨울에 이윤회포수는 함경도 무산 잣나무골 주막에 들렀다.
12월 초였는데 몹시 추운 날이었으며, 산에는 눈이 한 자나 쌓여 있었다.

그 주막은 무산에 사냥하러 온 포수라면 으례 들르게 되어 있는 집이었으며 비록 흙바닥에 거적을 깔아놓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절간방보다도 넓은 방이었다.

이포수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방에 석유등이 켜 있었고 문을 열자마자 온돌에서 나오는 열기와 사람의 체온 등이 함께 물큰하게 느껴졌다.

방안에는 7, 8명의 선객(先客)들이 있었다. 이랫목에 자리잡고 있는 세사람은 안면이 있는 지방포수들이었고 그 옆에는 머리가 반백인 스님이 건장한 체구의 50대 영감과 같이 있었다.

그리고 윗목에는 험상궂은 얼굴들을 한 사람들이 옷을 벗고 화로를 가운데 끼고 앉아 있었다.
그 친구들은 몰이꾼들 같았는데 모두 이사냥을 하고 있었다.

옷을 화로 위에 펼쳐놓고 뜨거워서 기어나오는 이들을 잡고 있었다.
산골 주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며 별로 창피한 일도 아니었다.

"어서 오시오, 이포수님 !"
지방포수들이 유명한 장안포수에게 아랫목 자리를 비워 주면서 인사를 했다.

"뭘 좀 잡았소 ?"
"저 친구들에게 속아 곰을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뻔했지요."

저 친구들이란 윗목에서 이 사냥을 하던 몰이꾼들이었다.
"아, 글쎄 저 친구들이 커다란 불곰이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기에 오늘 새벽에 같이 가 봤지요."

그들은 산길을 30리나 걸어서 겨우 그 동굴 입구를 찾아냈는데 어쩐지 좀 이상했다. 곰이 겨울잠을 잘 때는 동굴 입구를 나뭇가지들과 잡풀로 꽉 막아놓는 법이었는데 그 동굴에는 썩은 나뭇가지들이 조금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몰이꾼들이 계속 틀림없다고 우겼기 때문에 사냥꾼들은 곰사냥을 시작했던 것이다.
동굴에 들어가 있는 곰을 잡을 때는 너구리 잡는 것처럼 불을 피워 화기와 연기로 곰을 쫓아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곰이 언제 뛰어나올지도 몰랐고 동굴 속에 불을 던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바람 방향에 따라서는 동굴 속에 던져넣는 불붙은 나무들이 이내 꺼져버렸고, 피워오른다고 해도 연기가 바깥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도 그런 경우가 되어 곰보다도 사람들이 연기에 시달려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야단법석 끝에 동굴 속에서 겨우 불이 붙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곰의 기척은 없었다.

"곰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야, 틀림없이 있어. 나무를 더 던져 넣어."

그때 동굴 속에서 뭣인가 시커먼 짐승이 튀어나왔다.
"곰이다 !"

물이꾼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아났고 포수들은 얼른 총을 겨냥했으나 동굴 속에서 튀어나온 놈은 곰이 아니라 족제비 두 마리였다고 했다.

"곰이 있다는 굴속에서 족제비가 뛰어나왔고 곰 잡으러 간 놈들이 족제비를 보고 놀라 오줌을 싸면서 도망을 가?"

지방포수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화를 내자 몰이꾼들은 자기네끼리 말다툼을 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했어 ? 그 굴이 아니고 옆 산에 있는 굴이라고 했지않아."

"시끄러워. 그 굴은 곰은 커녕 너구리도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굴이야."
"뭐라고 ? 이 엉터리 자식아 ! 네놈은 작년에도 살쾡이를 호랑이라고 우기다가 포수양반에게 혼나지 않았어 ?"

그때 마침 저녁밥상이 들어왔다. 그걸 보더니 몰이꾼들의 싸움이 딱 멈췄다.
하긴 누구에게도 주막집 밥상은 반가운 것이었다.

비록 쌀알 한톨 없는 조밥이었으나 꿩을 뼈째로 두들겨 이겨 감자와 같이 볶은 찌개가 별미였다. 된장을 푼 시래기국도 구수했다.

이포수는 언제나 하는 버릇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술을 돌렸고, 그 술은 방안 분위기를 한결 다정하게 만들었다.
술이 돌아가자 체격이 건장한 영감이 고무래 정(丁)씨라고 통성명하면서 말했다.

"난 곰을 잘 알지요. 산길에서 몇번이나 만나 인사를 했죠."
그는 그곳에서 서쪽으로 백 리나 떨어진 수림골에서 심마니들이나 약초 캐는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곳은 무산령의 산기슭이 태고의 밀림 속으로 뻗어 있는 지역이었으며 인근에는 서두수의 급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정영감은 그곳에 통나무와 흙으로 산막을 지어 놓고 그 일대에서 산삼을 캐러 돌아다니는 심마니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쯤은 무산마을까지 나와 식량과 생활용품들을 구입해 갔으며 그때도 석유와 소금들을 구해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무산과 산막 사이를 자주 오고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곰들과 자주 만난다는 말이었다.
"곰들은 처음에 만났을 때는 험상궂은 표정으로 으르렁거렸으나 덤벼들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다음 만났을 때도 상을 찌푸렸으나 으르렁거리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세번째 만났을 때는 그저 모른 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영감과 곰들은 서로 만나도 모른 체하기로 하고 지내왔는데 그들의 관계는 언제나 그렇게 원만하지는 않았다.

한 달쯤 전에 정영감이 어느 산을 막 넘어섰을 때 저쪽 편에서 산을 넘어오던 커다란 불곰과 산정에서 딱 마주쳐버렸다. 거리는 열 발 정도였다.

서로 못 본 체하고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고, 이젠 죽었구나."

황소만한 괴물을 보고 정영감은 기겁을 했으나 불현듯 옛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곰을 만나거든 죽은 시늉을 하라.'
그는 벌렁 드러누웠다. 멀쩡하게 걸어오던 사람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도 사람이었지만 곰도 곰이었다. 그 곰은 슬그머니 다가와서 누워 있는 사람 꼴을 살펴보더니 헛기침을 한 번 했다. 그리고 그대로 지나가버렸다는 것이다.

"아휴, 그때는 정말 십 년 감수를 했습니다."
그때 물이꾼들이 물었다.

"거기가 어디요 ? 곰이 어디서 살고 있는지 아시오 ?"
"알다마다요."

그러자 지방포수가 얼핏 술잔을 그에게 건네 주면서 제의했다.
"영감님이 그곳에 우리를 안내해 주면 사례를 하겠소."


- (하편에 계속) -


◎ 저자 김왕석 님의 약력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상대 중퇴.
〈대구일보〉〈대구매일〉〈서울신문〉〈경향신문〉〈신아일보〉등 기자.
경제과학심의회의 연구원. 문화공보부 전문위원.
〈스포츠서울〉에 「맹수와 명포수」를 〈경남신문〉및〈강원일보〉에「세기의 사냥꾼」,
〈광주일보〉에 「사냥꾼이야기」, 〈대전일보〉에 「수렵야화」등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