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렵야화

★ 한국민담 수렵사 - 장백산맥의 홍호자(紅胡子)(상)

by 박달령 2008. 11. 7.

★ 한국민담 수렵사 - 장백산맥의 홍호자(紅胡子) (상) - (글 : 김왕석)

매년 5 - 6월이 되면 백두산과 이어지는 만주의 장백산맥 일대의 원시림에는 무서운 살기가 감돈다.
그 일대에는 미록(미鹿 ; 사슴의 종류)들이 살고 있었고 그 때쯤에는 그들 미록의 머리에 새뿔이 솟아나기 때문이었다.

잔털이 덮인 연한 새뿔이 바로 녹용(鹿茸)이었으며 그 녹용은 산삼·웅담과 함께 3대 영약의 하나로 부르는 것이 값이었다. 그래서 그때쯤의 한만(韓滿)국경을 이루는 삼림지대에는 미록을 잡기 위해 사냥꾼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몽고인, 타타르인 등 여러나라의 사냥꾼들이 미록을 추적했는데 그곳에 모여드는 사람은 사냥꾼들만이 아니었다.

사냥꾼들은 미록을 잡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그 사냥꾼들을 잡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사냥꾼들이 또 있었다.

산적(山賊)과 홍호자(紅胡子 ; 서양인 산적)들이었다. 산적들은 대개가 중국인들이었는데 수십명의 범법자들이 작당을 하여 노략질을 했고, 홍호자는 대개가 러시아인들이었는데 주로 군대에서 탈영한 자들로서 2, 3명 때로는 5, 6명이 작당하여 산중을 돌아다니면서 노략질을 했다.

그들은 미록을 추적하는 사냥꾼들을 추적하여 사냥꾼들이 잡은 미록과 그들이 갖고 있는 총들을 약탈했다. 때로는 그런 약탈을 한 산적들을 다른 산적들이 또 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쯤의 한만국경의 원시림 속에서는 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법도 없고 경찰도 없는 그곳에서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 남았다.

1916년 6월 초에도 역시 백두산 북쪽 장백산맥 기슭에서는 한국포수들과 홍호자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그때 한국포수 이윤회, 조필국, 이삼수, 강용권 등은 미록을 쫓아 백두산을 넘어 장백산맥 기슭에 있는 원시림 속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미록 한 마리를 잡아 그 대가리를 갖고 있었으나 새로 발견한 미록의 발자국을 보고 그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자기들이 잡은 미록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것이었다.

그들이 잡은 미록도 큰 가지가 다섯 개나 되고 잔가지가 두 개나 되는 놈이었는데, 그보다도 더 큰 놈이란 희귀한 거물이었다.

미록은 생후 3년이 되면 처음으로 뿔에 가지가 생기는데 그 가지는 1년에 하나씩 5년동안 다섯 개가 생긴다. 그리고 그후부터는 이미 생긴 가지에서 잔가지가 또 벌어진다.

뿔의 수로 봐서 그들이 잡은 놈은 생후 10년이 넘는 놈이었고 추적을 하고 있는 놈은 20년이 넘는 놈이었다.

값으로 치면 천 원이 넘을 것이며 포수들이 좀처럼 만져볼 수 없는 거금이었다.
네 사람의 포수 중에서 최연장이었고 그곳 일대의 지형에 가장 밝은 사람이 강포수였다.

그는 이미 네 번이나 그 일대에서 미록을 사냥한 경험이 있었고 2년 전에는 다른 한국포수 4명과 함께 그곳에서 산적들과 싸워 10여명의 산적을 몰살시킨 일도 있었다.

그는 키가 여섯자나 되는 거구였고 맨손으로 표범과 싸운 일도 있는 담대한 포수였는데 그 때만은 극히 신중한 태도였다.

미록의 대가리를 들고 돌아다닌다는 것은 산적이나 홍호자들에게 "우리를 공격하시오." 하고 드러내놓는 것과 다름 없었다.

4명의 포수들은 주위를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발자국 소리를 죽여 걸어가고 있었다. 저쪽 구릉지 밑에는 까치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수십마리나 되는 것으로 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앞서 가던 강포수가 그리로 가보자는 눈짓을 하자 네 사람의 포수들은 흩어져 그쪽으로 갔다.
함께 몰려가면 기습을 받았을 때 한꺼번에 전멸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쪽에는 서너마리의 이리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말라는 위협소리였으나 그깐 이리들을 무서워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리와 까치들은 도망가버렸지만 이리들이 버티고 있던 자리에는 사람들의 시체가 있었다.
두 사람이었는데 복장으로 봐서 중국인 포수들 같았다.

"총에 맞았어 ! "
한 사람은 이마에 다른 사람은 가슴에 탄환을 맞은 자국이 있었다.
"어젯밤이야, 어젯밤에 들었던 그 총소리야. "

네 사람은 전날밤 야영을 하다가 그 총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그게 살인을 한 총소리일 줄이야.

시체 옆에는 불을 피워 식사를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중국인 포수들은 불을 피워 밥을 지어먹다가 기습을 당한 것 같았다.
"누구의 짓일까 ?"

노련한 발자국꾼인 조포수가 그 일대를 조사하더니 단정했다.
"네 놈이야. 네 놈 모두 커다란 구두를 신고 있어."
그렇다면 그들은 홍호자(紅胡子 ; 서양인 산적)들이었다.

가장 무서운 살인자들이다.
그놈들은 본디 러시아 군인들이었기에 군용총들을 갖고 있었고 사격 솜씨도 비상한 자들이었다.

네 사람의 포수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어떻게 할까 ?"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가느냐 아니면 계속하느냐였다.

"놈들도 네 명, 우리도 네 명 그렇다면 싸워볼만 하군."
두려움을 모르는 강포수가 총의 안전장치를 풀면서 일어났고 다른 세 사람도 머리를 끄덕였다.

본래 만주 일대의 사냥터에서는 한국인 포수들이 독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조국이 없는 민족이었기에 믿는 것은 오직 자신들 뿐이었다.
그래서 성격이 대담하고 과격했다.

그때도 한국포수들은 자기들의 능력을 믿고 목숨을 건 한판 싸움을 각오했다.
하지만 그들은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한 사람이 뒤로 돌아가 미행자가 있는지를 살피기도 했다.
미행자는 없는 것 같았고 산야는 조용하기만 했다.

그래서 미록도 안심한 듯 삼림 속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날 하오 늦게 일행은 미록이 좋아하는 들감자 밭을 발견하여 포식을 한 흔적을 발견했다.
짐승이란 본디 포식을 하면 잠을 자는 버릇이 있는 법이었으며 미록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놈은 분명 여기 어딘가에서 잠을 자고 있어 !"
미록을 포위하기 위해 포수들은 소리없이 흩어졌다.
약 10분 후에 포수들은 미록을 완전히 포위하여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갔다.

포위망 속에 있는 잡초 숲이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잡초 숲속에 날파리떼들과 모기떼들이 들끓고 있었다.

"저기다."

이포수는 다른 동료포수들에게 신호를 보낸 다음 그쪽으로 기어갔다.
숲속에서 뭣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 (하편에 계속) -


◎ 참고 : 저자 김왕석 님의 약력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상대 중퇴.
〈대구일보〉〈대구매일〉〈서울신문〉〈경향신문〉〈신아일보〉등 기자.
경제과학심의회의 연구원. 문화공보부 전문위원.
〈스포츠서울〉에 「맹수와 명포수」를 〈경남신문〉및 〈강원일보〉에「세기의 사냥꾼」
〈광주일보〉에 「사냥꾼이야기」, 〈대전일보〉에 「수렵야화」등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