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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야화

★ 한국민담 수렵사 - 사냥개 훈련(상)

by 박달령 2008. 11. 6.

★ 한국민담 수렵사 - 사냥개 훈련(상) - (글 : 김왕석)

강원도 평창 서쪽에 있는 산간마을에 사는 손노인은 사냥개 사육사로서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다. 강원도뿐만 아니라 한성의 사냥꾼들도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김포수는 서른 두 살 때 어렵게 풍산개 두 마리를 입수하여 그 훈련을 손노인에게 맡기려고 했다.

김포수는 손노인이 살고 있다는 마을을 찾아가 주막에서 손노인의 집을 물었으나 주막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시무룩한 표정들이었다.

"손노인을 모르십니까. 여기서 물으면 다 알 거라고 하던데 …"
주막집 주인이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알기는 알지요. 그러나 그 노인에게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거요."

"그건 왜요 ?"
"그 노인은 늘 술만 마시고, 술만 마셨다고 하면 주먹을 휘두르지요. 상대를 가리지 않아요. 개하고는 상대하지만…"

김포수는 뭔가 일이 어렵게 됐다고 직감했으나 거기까지 와서 그대로 되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김포수는 술주정을 받을 각오를 하고 독한 술 한 병을 사들고 손노인을 찾아갔다. 손노인이 살고 있는 오두막은 험준한 산들 사이를 깊숙이 들어간 계곡에 있었는데 집주위에는 높은 돌담이 쌓여 있었다.

김포수가 열려 있는 통나무 문으로 들어서니까 개 한 마리가 마당에 누워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입이권미(立耳卷尾 : 귀가 서고 꼬리가 말려있는…)의 대형 백구였으며 풍산개와 비슷했으나 어딘지 잡피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개는 낮선 사람을 보고도 그저 한 두 번 짖다가 귀찮다는 듯이 다시 누워 버렸다. 가까이에서 보니 몸 전체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의 상처투성이였고 꼬리의 끝도 잘려 있었다.

서너 평쯤 되는 초가집에는 분명 인기척이 느껴졌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김포수는 몇번이나 소리를 질러 주인을 찾았으나 전혀 대꾸가 없었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일까.'

김포수가 반쯤 열려 있는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한 명 누워 있었다.
"손포수이십니까."
"이 집에 손가 놈 말고 다른 놈이 또 있었던가."

듣던대로의 기인(奇人)이었기에 김포수도 배짱을 부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포수마을에서 왔습니다."
"포수마을 ? 거기엔 털보영감이 살고 있지 !"

"네, 제가 바로 그 털보영감의 자식이올시다."
그 말에 손노인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갖고 온 것이 뭐지 ? 이리 내놔 !"

손노인은 우선 술을 병째로 꿀컥꿀컥 마시더니 방바닥에서 말리고 있던 노루고기를 안주로 씹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어. 설마 저 개를 팔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재떨이가 날아올 것 같았다.

"저도 저런 개를 기르고 있어요. 죽은 장노인의 개였지요."
"장가 놈의 개를…. 그 개 같으면 풍산개일 텐데…."

손노인이 부엌으로 나가더니 사발 하나를 가져다가 김포수에게 내밀었다. 마시라는 말인 것 같아 김포수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 개는 다리가 부러졌죠. 그래서 그 개의 새끼 두 마리를 얻었는데 아직 어리죠."
"몇달 됐어 ?"
"여섯달째 됩니다."
"그래서."

"전 그 새끼들을 훌륭한 사냥개로 만들고 싶은데 저는 개를 길들일 줄 모릅니다."
"포수마을에는 그런 놈이 없지. 강원도 내에서도 없고…"
"그래서 어르신네를 찾아 뵙습니다."
"싫어."
더 이상 두말 못하게 만드는 거절이었다.

김포수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술잔을 손노인에게 넘겨주고 술을 철철 넘게 따라 주었다.
손노인은 그건 마다하지 않고 죽 들이키더니 다시 잔을 돌려 주면서 말했다.

"도대체 포수마을 놈들은 개도 없이 사냥을 어떻게 하지 !"
'아차 이제부터 술주정이 시작되는구나.'
"개는 없지만 사람이 개처럼 뛰지요. 개처럼 냄새도 맡고."

멋지게 받아넘긴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손노인이 껄껄 웃었다.
주객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고 독주만 마시다가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김포수가 잠에서 깨어나보니 장을 보러 갔던 손노인 아들 부부가 돌아와 김칫국을 끓여 내놓았다.

김포수가 그 김칫국을 마시고 바깥으로 나가보니 손노인이 개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털도 뽑지 않은 돼지 뒷다리 하나를 몽땅 주고 있었다.
"좋은 개입니다. 우리 집 강아지도 저렇게 만들고 싶습니다."

손노인이 휙 하고 되돌아서 김포수를 노려봤다.
"그게 쉬운 일인 줄 아느냐 ? 개 한 마리를 길들여 사냥개를 만드는데는 반 년이 걸리고 그동안에 개가 죽을지도 몰라. 열 마리를 훈련시키면 반년 후에 살아남는 개는 고작 한 두 마리 정도이지. 나머지는 죽거나 병신이 돼."

"그래도 훈련을 시키고 싶습니다. 풍산개가 똥개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그 말이 손노인의 마음에 든 것 같았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와.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빨리 가서 데리고 와. 그러나 훈련을 받다가 죽을지도 몰라. 세 마리 중에 두 마리는 죽는 법이니까. 그리고 개들뿐만 아니라 개 주인이나 내가 죽을지도 몰라."

"개 주인이요 ?"
"개뿐만 아니라 그 개를 부릴 주인도 훈련을 받아야 해."

김포수는 비로소 개를 훈련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중대한 일인지를 알았다. 김포수는 그 길로 포수마을로 달려가 사흘 후에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돌아왔다.

두 마리의 풍산개는 수컷은 바우, 암컷은 화순이라고 불렀는데 모두가 당당한 체격들이었다. 전신이 순백색이었고 눈과 콧등만 검었다. 몸무게가 벌써 10관(약 38 Kg)이나 되는 개였다.

김포수가 되돌아왔을 때 손노인은 없었고 아들 부부들만이 있었다. 아들 부부들은 김포수에게 손노인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손포수님은 어디로 가셨지요 ?"
"그 어른이 어디로 간다고 말을 남기는 분입니까."

손노인은 그로부터 사흘 후에 돌아왔는데 네 마리의 개를 데리고 왔다.
모두가 생후 여섯 달 전후의 개들이었다. 그중 한 마리는 풍산개, 한 마리는 진도개 같았으나 나머지 두 마리는 잡견인 것 같았다.

손노인은 어느 마을에 어떤 개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을들을 찾아가서 쓸만한 개들을 물색했다는 것이다.

"난 개들의 핏줄은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않아. 좋은 핏줄의 개들에게도 못난 놈들이 많고 보잘것없는 잡견중에서도 훌륭한 놈들이 있지. 저기 저 얼룩 잡견은 이웃집 염소를 물어 죽였다고 해서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 옆에 묶여 있던 것을 내가 사왔지 ! 내가 간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개장국이 될 신세였어. 좋은 사냥개란 뭣보다도 용감해야 해 ! 겁이 많은 개, 수줍은 개, 신경질적인 개는 사냥개가 못돼 ! 사람이건 개건 간에 상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기분이 틀어지면 덤벼들겠다는 기백이 있어야 해."

김포수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그가 데리고 온 네 마리의 개들이 모두 그런 기백을 가진 개라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놈들이었으며 끌려온 주제에 그집 주인격인 풍산개에게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손노인은 잡피가 좀 섞인 그 풍산개를 청룡이라고 불렀는데 그놈은 이미 멧돼지를 수십 마리, 곰을 여덟마리, 표범을 두 마리나 잡은 개였다.

청룡은 방금 주인이 데리고 온 풋나기 개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품을 하고 있었으나 건방진 개 한 마리가 바로 옆에까지 다가와서 귀찮게 도전을 하자 앞발로 가볍게 후려쳐 버릇을 고쳐 주었다.

"자, 이놈들 조용해."
손노인은 넓은 마당에 여섯 개의 굵은 말뚝을 박아놓고 거기에 자기가 데리고 온 네 마리 개와 김포수가 데리고 온 바우와 화순이를 매어 두었다.

손노인은 다음날부터 어린 개들에게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개들에게 뭣보다도 먼저 '그것은 안된다.' '그것은 좋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손노인은 눈을 부릅 뜬 성난 얼굴로 머리를 크게 좌우로 흔들면서 '안돼.' 라고 소리쳤고 부드럽게 웃는 얼굴로 머리를 끄덕이면서 '좋아.' 라고 소리쳤다.

어린 개들은 그 몸짓과 소리의 음향으로 주인의 의사를 알아들었는데 그게 사람과 개의 의사가 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수단이었다.

오래도록 그런 수단으로 주인인 손노인과 의사를 통해 온 청룡의 경우에는 '안돼.' '좋아.' 라는 말이 필요없이 머리의 움직임으로 그게 통하고 있었고 다른 명령들도 거의 몸짓으로 통하고 있었다.

'추적을 해.' 하며 앞으로 개를 내밀면서 엉덩이를 툭 쳤고, '덤벼.' 는 양손을 앞으로 내밀면서 덤비는 시늉을 했고 '조용히 해.'는 살그머니 앉으면서 손을 아래 위로 서서히 흔들었다.

손노인과 청룡의 몸짓 대화의 예외가 되는 것은 호각이었다. 청룡이 너무 멀리 짐승을 추격했을 때는 손노인은 호각을 불어 청룡을 불러들였다.

손노인의 사냥개 훈련은 가혹했다.
그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긴 매를 갖고 개들이 명령을 어겼을 때는 사정없이 후려쳤다. 개들의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어린 개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여 주인의 명령을 이해 못했으나 영도견인 청룡이 하는 것을 보고 차츰 그 뜻을 알아들었으며 나중에는 영도견인 청룡이 없어도 단독으로 주인의 명령을 이해했다.

손노인은 근 한 달 동안이나 집에서만 그런 훈련을 시켰다. 개들은 전신이 상처투성이에다 뼈와 근육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훈련 한 달이 되던 날에 최초의 희생이 생겼다.
잡견 한 마리가 손노인의 매질에 견디지 못하고 이빨을 내밀면서 손노인에게 덤벼들었던 것이다.

- (하편에 계속) -

◎ 참고 : 저자 김왕석 님의 약력
1927년 대구 출생. 서울대학교 상대 중퇴.
〈대구일보〉〈대구매일〉〈서울신문〉〈경향신문〉〈신아일보〉등 기자.
경제과학심의회의 연구원. 문화공보부 전문위원.
〈스포츠서울〉에 「맹수와 명포수」를, 〈경남신문〉및〈강원일보>에
「세기의 사냥꾼」,
〈광주일보〉에 「사냥꾼이야기」, 〈대전일보〉에 「수렵야화」등을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