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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야화

-- 한국민담 수렵사 - 사냥개 훈련(하)

by 박달령 2008. 11. 6.

★ 한국민담 수렵사 - 사냥개 훈련(하) - (글 : 김왕석)

- (상편에서 계속) -

손노인은 자기에게 덤벼드는 잡견을 몽둥이로 힘껏 후려쳤는데 그 때문에 그 잡견은 죽어 버렸다. 대가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개는 눈이 뒤집어져 거품을 품더니 얼마 후에 숨이 끊어져 버렸다.
손노인은 그 잡견이 죽는 것을 냉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초훈련은 2 개월만에 끝났고 다음부터는 실습이 시작되었다.
손노인은 개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영도견인 청룡만 풀어놓고 다른 개들에게는 목줄을 걸어 김포수가 끌고 가도록 했다.

청룡은 사람들을 전혀 무시하고 제멋대로 이산 저산을 돌아다니더니 그날 하오 늦게 산 너머에서 요란스럽게 짖고 있었다.

"멧돼지를 찾아냈어. 사람들이 갈 때까지 붙들어 놓고 있을 거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김포수는 개들을 데리고 천천히 오게."

김포수는 다섯 마리의 개들을 끌고 약 한 시간 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청룡이 30관(약 110 Kg) 정도의 중돼지 한 마리와 싸우고 있었고 손노인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청룡은 훌륭한 사냥개였다. 온순했고 어찌 보면 게으르게 보였던 개였지만 사냥터에 나서자 전혀 다른 개가 되었다. 눈빛이 달라졌고 온몸의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거동이 민첩했다.

청룡은 무서운 살기를 풍기면서 멧돼지를 압도하고 있었으나 성급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멧돼지가 정면공격을 해 오면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덤벼들어 멧돼지의 뒷다리를 물어뜯었다.

청룡은 계속 그 뒷다리만을 공격했기 때문에 상처가 점점 벌어져 멧돼지는 그 다리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손노인은 벌써 그 멧돼지를 죽일 수 있었으나 젊은 개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개들은 청룡이 멧돼지와 싸우는 광경을 보더니 미친 듯이 날뛰면서 짖고 있었다. 그들의 몸 속에서 잠자고 있던 살육의 본능, 사냥의 본능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그러나 김포수는 그들의 목줄을 콱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손노인은 한참 후에 창을 들고 일어났다. 그는 창으로 멧돼지의 목덜미를 찔러 쓰러뜨렸다.
그리고 멧돼지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더니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젊은 개들은 좀 전에 본 참혹한 광경에 질렸던지 선뜻 내장을 먹지 않았으나 영도견인 청룡이 그걸 먹는 걸 보고 비로소 내장에 입을 댔다.

손노인은 첫날에는 젊은 개들에게 멧돼지 사냥의 구경만 시켰으나 다음 훈련 때는 멧돼지의 시체에 덤벼들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엔 반쯤 죽여 놓은 멧돼지에게 덤벼들도록 했다.

청룡은 그런 과정에서 무자비하게 젊은 개들을 독려하고 징계했다. 대장인 자기보다 앞서 가려는 건방진 놈이나 동료들보다 뒤떨어지는 비겁한 놈들은 사정없이 덤벼들어 물어뜯었다.

기초훈련에 2 개월, 실제훈련에 2 개월이 소요되었다. 이젠 개들도 늠름한 모습이 되고 있었다.
그날밤 손노인은 오랜만에 술상을 차렸다.

"이젠 내가 해야 할 기초훈련도 끝났고 청룡이 맡았던 실제훈련도 끝났어. 그러나 훈련은 이제부터야. 저 개들 스스로가 이젠 경험을 쌓아올려야 하네. 그건 위험하지. 아주 위험해. 상대가 반죽음을 당한 큰 돼지도 아니고 힘없는 중돼지들도 아니기 때문이지. 그들은 이젠 바위처럼 억센 늙은 돼지들과 싸워야 되네."

멧돼지는 맹수였으며 큰 놈은 무게가 100관(약 380 Kg)이나 나갔다. 개의 일곱 배 내지 여덟 배가 되는 무게였으며 그만치 힘도 강했다.

멧돼지는 발로 차기도 하고 입으로 물기도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그 송곳니였다. 저돌(猪突)이라는 말과 같이 멧돼지의 돌진은 번개처럼 빨랐다. 만약 개들이 거기에 부딪치면 즉사를 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사냥개는 그런 멧돼지의 공격을 피해야만 했고 그것을 피하면서도 멧돼지가 달아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어야만 했다.

"다른 일들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훈련을 시킬 수 있지만 멧돼지와 싸우는 재주만은 훈련을 시킬 수가 없어 ! 그 재주는 혈통으로 타고 나든가 아니면 개 스스로가 경험으로 배워야 하지 !"

손노인은 그로부터 이틀 후에 거대한 늙은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하고 젊은 개들을 풀어놓았다.
김포수가 데리고 온 바우가 청룡과 나란히 달려가고 있었다. 여섯 마리의 개들이 달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산이 떠나갈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개들이 멧돼지를 발견한 것이다. 포수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개들은 북쪽에 있는 구릉 뒤쪽에서 짖고 있었는데 포수들이 그 구릉을 넘어섰을 때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개 한 마리를 발견했다.

손노인이 구입해 온 진도개였다. 아랫배가 찢겨 내장이 쏟아져나와 있었다.
"죽은 놈은 내버려 두어 ! 빨리 가봐야 하네."

아마도 70관(약 260 Kg)은 될 것 같은 커다란 멧돼지가 노기충천하여 개들과 싸우고 있었다.
개들 중의 한 마리는 겁을 먹은 듯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끄럽게 짖어대기만 했다. 그러나 네 마리의 개들은 멧돼지와 싸우고 있었다.

두목인 청룡이 멧돼지와 정면대결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세 마리는 좌우에서 멧돼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싸워라 싸워."

손노인이 소리를 질렀다. 청룡은 그의 적을 잘 알고 있었다. 7년동안에 수십마리의 멧돼지와 싸웠던 그는 멧돼지의 단점도 잘 알고 있었다.

멧돼지는 앞으로 돌진할 때는 무서운 속도와 힘을 갖고 있었으나 몸이 유연하지 못했다. 멧돼지가 돌진할 때는 갑자기 정지를 할 수 없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청룡은 그걸 잘 알고 그것을 이용했다. 청룡은 앞길을 막아서 돌진을 유도한 다음 돌진해 오면 멧돼지의 콧등 앞에서 번개처럼 옆으로 피해 버렸다.

멧돼지는 허공을 달려온 여세로 계속 앞으로 나갔고 청룡은 그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다.
청룡은 언제나 그렇게 싸웠고 멧돼지는 그런 헛수고를 되풀이하다가 힘이 빠져 동작이 뜨게 되면서 더이상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다.

청룡은 그때도 그런 작전으로 멧돼지를 지치게 만들어놓았으나 현장에 도착했던 손노인과 김포수는 멧돼지의 숨통을 거둘 마지막 조치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의 사냥은 멧돼지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젊은 개들을 훈련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젊은 개들은 멧돼지가 피를 흘리면서 지쳐 있는 것을 보고 사나워졌다.
"덤벼… 덤벼…"
손노인이 미친 듯이 양팔을 앞으로 내밀면서 젊은 개들을 독려했다.

개들은 멧돼지의 뒷다리를 물고 늘어졌으나 멧돼지는 마지막 힘으로 개들을 뿌리쳤다.
그리고 앞을 막고 있는 바우에게 돌진했다. 바우는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맞부딪쳤다가 멧돼지의 송곳니에 받혔다.

바우는 낑하는 비명을 지르면서 다섯 자쯤이나 공중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아차 당했군 !"

바우는 어깨에 뼈가 드러날 정도의 상처를 입고 쓰러져 버렸다.
"그놈은 죽을 거야. 살아도 병신개가 될 것이고."
손노인이 냉혹하게 소리쳤으나 김포수는 얼핏 갖고 있던 술을 상처에 퍼붓고 바우를 안고 일어났다.

그때쯤에는 청룡이 멧돼지를 쓰러뜨려 그 목줄을 끊어버리고 있었으나 김포수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 길로 바우를 안고 마을로 돌아왔다.

김포수는 포수마을 사람들이 열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할 때 쓰는 방법으로 바우를 치료했다.
벌겋게 달군 쇠붙이로 상처를 지져 소독과 지혈을 시킨 다음 상처에 붕대를 감고 찬 물로 몸의 열을 식혀 주는 방법이었다.

다음날 아침 바우는 눈을 떴다.
도저히 살아날 것 같지 않았으나 젊은 짐승의 질긴 생명력으로 큰 상처를 이겨냈다. 바우는 약 보름 후에는 완전히 치료되어 다시 멧돼지 사냥에 참가했다.

멧돼지에게 한 번 혼이 난 개는 그 다음부터는 겁을 먹고 멧돼지에게 덤벼들지 않는 법이었으나 바우는 그렇지 않았다.

바우는 용감하게 멧돼지에게 덤벼들었으나 전번의 경험을 살려 멧돼지와 정면충돌을 하지 않았다. 멧돼지의 장점을 알고 멧돼지를 경계할 줄 알았던 것이다.

손노인이 그걸 보고 말했다.
"저 개는 쓸만한데."
그는 개들을 좀처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바우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그는 사낭개의 혈통을 그리 중요시하지 않았으나 바우가 갖고 있는 풍산개의 혈통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우와 같은 혈통인 화순이도 멧돼지와 싸우는 바우를 측면에서 잘 도와주고 있었다. 손노인은 화순에 대해서도 합격점을 주었다.
"역시 풍산개구만…"

손노인이 데리고 온 개들은 두 마리는 이미 훈련 도중에 죽었고 한 마리는 너무 겁이 많은 개였기에 시장에 데리고 가서 팔아버렸다.

결국 그 네 마리의 개중에서 검둥이라는 개만 사냥개로서 쓸만하다는 판정을 내렸는데 그 개는 바로 개장국이 될 직전에 구출된 잡견이었다.

손노인의 덕택으로 그 잡견은 무사히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고, 손노인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훌륭한 개로 더욱 더 각광을 받았다.
검둥이는 그 이후 사냥개로서 톡톡히 한몫을 하여 손노인에게 보은을 한 셈이 되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