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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야화

-- 한국민담 수렵사 - 응방(鷹坊)의 후예(하)

by 박달령 2008. 11. 6.

★ 한국민담 수렵사 - 응방(鷹坊)의 후예(하) - (글 : 김왕석)

- (상편에서 계속) -

그러나 그 자그마한 매는 전신에 투혼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매는 발로 독사의 몸과 땅을 같이 강하게 차면서 나래를 힘껏 퍼득였다. 그때 독사는 감았던 매의 몸을 풀어 주고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매는 끽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추격을 하여 발로 할퀴고 부리로 대가리를 찍었는데 싸움은 그것으로 끝났다.

"이겼다. 우리 매가 이겼다."
소년은 그렇게 고함을 질렀으나 신영감의 얼굴은 창백했다. 독사가 매의 발을 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영감은 얼핏 매를 잡아 독사에게 물린 곳에 입을 대로 빨기 시작했다. 신영감은 몇 번인가 계속해서 그곳을 빤 다음 매를 집으로 데려가서 독사의 독을 제거한 다음 약초를 발라주었다.

그 매는 몇시간이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분명 독사에게 물렸는데 독이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신영감의 치료가 주효였을까 ? 아니다. 독사의 독은 매의 다리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매는 무적이야 ! 하늘과 땅에서 매를 겁주는 짐승이 없지. 매는 날개가 없는 범이나 여우 따위는 우습게 생각하고 있지."

매는 정말 무적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김소년이 그곳을 떠나 고향에 돌아간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에 신영감 집 하인이 급히 달려왔다. 그 늙은 매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매가 꿩 한 마리를 덮쳐 짓누르고 있을 때 그곳을 지나가던 나무꾼 한 사람이 지게 작대기로 매를 때려죽이고 꿩을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하인이 온 것은 매 때문이 아니라 신영감 때문이었다. 신영감은 사람들을 풀어 기어이 그 나무꾼을 잡아 심한 매질을 한 다음 곳간에 가두어버렸다. 나무꾼은 사흘동안 갇혀 반죽음이 되었다.

반죽음이 된 것은 신영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시 자기 방에 들어박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는 말이었다.

"소인이 여기에 온 건 도련님을 모셔가려는 것입지요. 영감마님은 도련님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계시니 도련님이 가서 위안을 해드리면 심기가 풀릴 것 같습니다요."
소년의 아버지 털보영감은 김소년을 그곳으로 보냈다.

신영감은 혼자 어두운 방에서 누워 있었으나 소년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그 늙은 매가 죽었다. 그러니 내일 젊은 매를 받으러 가자."
매를 받는다는 것은 사냥에 사용할 매를 잡는다는 것을 뜻했다.

신영감은 다음날 아침 곳간에 가두어두었던 나무꾼을 풀어 주고 김소년과 털이꾼 두 사람을 데리고 먼 곳으로 떠났다. 죽은 매 대신에 새로운 매를 잡으러 입암산으로 떠난 것이었다.

입암산은 강원도와 황해도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 지점에 있는 산이었다. 신영감은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매를 좋아했다.
그곳의 매들은 해동청(海東靑)보다는 좀 체구가 작았으나 성질이 사나웠고 또 민첩했다.

신영감 일행은 그날 늦게 현지에 도착, 어느 오두막집에 머물렀는데 그곳에는 신영감의 옛 부하였던 박노인이 살고 있었다.

박노인은 그곳의 매를 받아서 다른 매꾼들에게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때도 네 마리의 매를 잡아놓고 있었다.

그러나 신영감은 그 매들을 살펴보더니 머리를 가로저었다. 두 마리는 너무 늙었고 다른 두 마리는 씨가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박노인 자신도 그걸 시인했다.
"어르신네께 드리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죠."

신영감은 다음날부터 사흘 동안이나 그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매들을 살펴봤다. 그리고 어느 매 한 마리를 점찍었다.

그 매는 다른 매들보다 체구는 좀 작았으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보라매(어린매)였다.
"저 매를 받아야 해(잡아야 해). 다른 매들은 쓸데가 없어."

신영감은 다음날 그 매가 커다란 장끼(수꿩의 별칭)를 덮치는 것을 봤다. 그 매는 창공에서 마치 폭탄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면서 어느 잡목림 안으로 들어갔다.

신영감은 그걸 멀리서 봤지만 자신있게 말했다.
"저 매는 꿩을 덮쳤어 ! 아마도 꿩을 잡았을 거야. 저렇게 빠르게 습격을 당하면 꿩은 도망가지 못해 !"

신영감과 소년은 매가 꿩을 처치하는데 방해가 안 되도록 한참 후에 그곳에 가봤다. 과연 핏자국이 있었고 꿩의 털과 대가리와 발목 등이 남아 있었다.

"대단한 매다. 보통매들은 그렇게 빠른 급강하를 못하지 ! 잘못하다가는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땅에 추락해 죽게 되니까."

신영감의 마음에서는 이젠 죽은 매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고 새로운 매에 대한 기대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신영감은 그 보라매를 자기 손에 넣을 작전을 신중하게 세웠다.
"우선 꿩을 잡아야 해 ! 저 매를 잡을 미끼로 쓰도록 말이야."

매는 다른 맹금류와는 달리 썩은 고기는 먹지 않았다. 그를 잡으려면 살아있는 미끼를 써야만 했다.
신영감은 꿩이 좋아하는 콩을 미끼로 삼아 장끼 한 마리를 사로잡았다. 신영감은 그 꿩을 미끼로 매를 잡을 틀을 숲속에 설치했다.

우선 나뭇가지에 그물을 쳤다.
가느다란 명주실을 몇번이나 꼬아 만든 실로 짠 그물이었다. 그물 밑에는 미끼인 꿩이 산 채 말뚝에 묶여 퍼득이고 있었다.
매가 그 꿩을 잡으려고 덤비면 나뭇가지에 연결되어 있던 그물이 떨어져 매를 덮치게 되어 있었다.

신영감은 다음날 아침부터 산을 돌아다니면서 꿩들을 틀이 있는 곳으로 몰았다.
야산에서 아침 식사를 끝낸 꿩들이 틀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는데 천리안을 갖고 있다는 매가 미끼인 꿩을 못볼 리가 없었다.

매는 그날 정오께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미끼인 꿩을 발견한 듯 그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됐어 ! 이제 저 매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신영감의 말대로 잠시 후 나무 위에 숨어 있던 몰이꾼이 붉은 깃발을 좌우로 흔드는 것이 보였다. 매가 미끼를 덮친다는 신호였다. 그리고 이내 깃발을 상하로 흔드는 것이 보였다. 매를 잡았다는 신호였다.

신영감은 노인답지 않게 빠른 걸음으로 그쪽으로 달려갔다. 매가 틀에 걸린 채 그물 속에 있었다.
몰이꾼들은 멀리서 그걸 지켜보고 있을 뿐 매를 잡아내지 않고 있었다. 잘못 다루면 매가 상처를 입거나 심한 충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일은 신영감이 해야만 했다.

매는 적의에 찬 눈으로 그물 속에서 사람들을 노려보면서 퍼득이고 있었다.
"끄 끄 끄…"
나직한 소리를 내면서 신영감은 접근했다. 그러자 매는 조용해졌다.

신영감은 살그머니 매의 겨드랑이를 잡더니 가위로 그물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매를 새장에 조용히 넣었다.

그 새장은 사방 모두 검은 헝겊으로 가려져 있었다. 어둠은 매를 진정시킨다는 것이었다.

"매는 어둠 속에서는 잠을 자고 쉬는 법이다. 다른 새들은 어둠 속에서도 불안해 하지만 매는 그렇지 않아 ! 어둠 속에서 감히 자기에게 덤벼드는 천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신영감은 그렇게 해서 새로운 매를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