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33화

by 박달령 2007. 10. 23.

♥ 동방삭 류의 음담익살이로다. (東方朔滑稽之類)

비록 무슨 사정이 있어 대궐에서 사가(私家)로 내보냈거나 내쳐진 궁녀라 하더라도 상통(相通)하면 중죄로 다스리도록 되어 있었다.  대궐에 살 때에 왕이나 왕세자 등과 혹시나 관계를 맺은 전력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였다.

 

그런데 선조(宣祖)때에 궁녀와 상통한 사람을 특사하여 준 일이 있었다.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이 "지신(知申)"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그의 집 청지기가 궁녀와 상통하는 죄를 범하여 벌을 받게 되었다. 오성은 불쌍히 여겼으나 그것을 해결할만한 계책이 없었다.

이때 마침 왕이 오성을 불렀다.
오성은 일부러 늦게 들어가서 입시하니 왕이 "경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는고 ?" 하고 물었다. 이에 오성이,

"상명(上命)을 받자옵고 들어오는데 종로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고 웃는 것을 보게 되어 신(臣)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발길을 멈추고 들으니 한 사람이 말하기를, 모기란 놈이 말벌(馬蜂)과 서로 만났는데 벌이 모기를 보고 '내 배가 너무 불러서 수놈이 찔러야 배설을 하겠으니 시험삼아 너의 그 날카로운 주둥이로 구멍을 뚫어 주면 어떠한가 ?' 하자 모기가 '벌의 네 말이 어찌 나쁘다고만 할 수 있겠나. 그러나 요즈음 들리는 말에는 이승지(李承旨)의 집 청지기는 본래부터 있는 구멍을 뚫었어도 중벌을 면치 못하는데, 만약 없는 구멍을 뚫는다면 그 죄 더욱 무거우리니 내 어찌 감히 감당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신은 이 말을 듣느라고 이렇게 늦었사옵니다. 대죄를 지었사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에 왕은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동방삭의 골계(滑稽)에 속하는 말이로다."
하더니 다시 "그 청지기의 죄를 용서한다."고 어명을 내렸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