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향대와 반야봉, 이끼폭포
◇ 지리산을 수십차례 산행을 했어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묘향대 - 그래서 평생 숙원사업이 되어버린 묘향
대를 벼르고 별러 산행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산행은 묘향대가 주된 목표점이고, 부수적인 목표점은 반야봉, 그리고 이끼폭포가 된다.
부끄럽게도 지리 주능선 종주를 11차례나 하면서도 노루목이나 삼도봉에서 반야봉을 들어갔다 다시 나오려
면 두어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니 귀찮아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엉터리 산행의 오명을 이번에 씻게 되고,
이끼폭포는 묘향대를 방문하고 하산하는 길에 저절로 얻어지는 이삭줍기인 셈이니 오늘의 3대 특선요리 아
닌 3대 특선산행이 되는 셈이다. 이번의 산행으로 그동안 오매불망하던 숙원사업 하나가 해결되는 것이다.
◎ 산행 개요
○ 일자 : 단기 4337년(2004) 5월 23일. (일) 맑음.
○ 산행인원 : 2인(박달령, 양평에서 초청한 홍수염님)
○ 산행구간 : 성삼재 → 노고단고개 → 임걸령 → 노루목 → 반야봉(1733. 5) → 중봉 → 묘향대 → 이끼골
→ 이끼폭포 → 뱀사골 주계곡 → 반선
○ 산행기
☆ 산행지 접근
△ 5월 22일
22 : 00. 수원역 - 역 매점 가게에서 간식거리 구입
22 : 19. 수원역 출발 무궁화호 침대석 5호실 입실. 홍수염님 6호실 입실 (1인당 60, 000원 - 돈은 아깝지만
무리한 무박산행을 하다 병이 나면 치료비가 몇배에서 몇십배는 들어갈테니 울며 겨자먹기로 침대석을 구입
했다.)
△ 5월 23일
02 : 50. 구례구역이 얼마 안남았으니 내릴 준비를 하라고 승무원이 깨운다.
03 : 00. 구례구역 하차하여 택시 승차 (택시비 30,000)
03 : 30. 성삼재 도착. 휴게소 뒤편의 수도꼭지는 예전 그자리에 그대로 있다. 빈 물병을 꺼내 식수를 준비.
☆ 산행
03 : 40. 성삼재 출발. 어두운 새벽길이다.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쉬엄쉬엄 걸으니 얼마 가지않아 먼동이 터오는지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
다.
코재를 지나 무넹기 전망대 밑은 백두대간의 북쪽 남원 방면으로 흘러야 하는 개울물이 오늘도 억지로 대간
마루금을 넘어 남쪽 구례 화엄사계곡으로 졸졸 흘러넘어가고 있다. 왜정(倭政) 식민지시대에 명분은 화엄사
계곡의 수량을 풍부하게 한다 하였지만, 대간 마루금을 잘라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였다는 의문이 제기
되고 있는 곳이다. "물넘기는곳"의 호남 사투리 "무넹기"라는 이곳의 지명도 인위적인 공사에 의해 억지로
물을 넘겼다 해서 이 때부터 얻어진 이름이다.
몇번의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면서 이 인위적인 수로를 관찰한 결과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난 도로 땅밑으
로 수로를 묻어 횡단한 다음 도로 왼편을 약 5 ∼ 10 m가량 사이를 두고 나란히 진행하다가, 굽어돌게 되는
도로를 버리고 노고단 산장으로 질러가는 산길 갈림길 직전에 만나는 큰 개울이 수로가 만나는 지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무넹기 수로의 시작점은 산사태 방지를 위하여 도로 아래로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한 곳인데 노
고단 산장쪽 계곡에서 흘러오는 개울로, 큰 비가 내려 수량이 불어나면 수로 제방 너머로 넘치는 물이 남원
방면으로 흐르고, 평상시에는 인위적 수로를 따라 무넹기로 흘러 화엄사계곡으로 넘어가도록 만들어져 있
다. 노고단 산장으로 가는 지름길인 산길은 아직 어두워 도로를 따라 쉬엄쉬엄 걷는다.
노고단 산장에 이를 무렵 어둠이 제법 걷혀간다.
도로 왼쪽으로 올려다보이는 콘크리트 잔해 폐건물이 보여 도로를 버리고 그쪽으로 난 산길을 20여m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폐건물 잔해를 둘러본다. 이 잔해만 남은 폐건물은 교회 건물이라 한
다. 건물 끝벽 한쪽 가에 높이 솟은 부분은 십자가를 얹어 놓았던 첨탑이다.
이 부분을 십자가 첨탑이라는 전제하에 현재 남아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관찰하면서 이 콘크리트 잔해 벽
체 목조 부분과 지붕의 목조 부분을 상상하여 보면 불타 없어진 교회의 그림이 대강 그려진다.
일제 강점으로 인한 한일합방 직후 건축된 이 교회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세운 건물이다. 교회는 현재의 노
고단 산장 앞쪽으로 질펀하게 형성된 평지와 다름없는 일대에 목조 억새풀지붕을 한 별장 50여채와 함께
지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큰 마을을 이룬 별장촌이었으며 여름 한철 이곳에서 피서를 하던 수백명 미국인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피서기간동안 예배를 보던 교회였던 것이다.
이 노고단 별장촌은 한여름에는 찬 샘물이 솟고 기온이 서늘하며 경치가 아름다워 당시 동양 제일의 피서지
로 알려졌다 하는데, 미국인 선교사들은 화엄사나 천은사 방면에서 이곳 별장촌을 오를때 구례읍 일대의 사
인교를 세내어 타고 오르고, 사인교의 차례가 오지 않은 사람들은 지게꾼의 등에 타고 앉아 오르기도 하였다
한다.
건장한 미국인들의 체중은 80 ∼ 100 Kg은 될것이다. 옛날 쌀한가마 무게는 쌀 150근 + 가마니 5근 등 합
하여 155근이었으니 93 Kg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벼운 배낭을 메고도 비지땀을 흘리면서 숨이 턱에 차
서 헐떡러리며 올라야 하는 화엄사 → 코재의 그 험한 길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몇푼의 품삯을 벌기 위
해 쌀 한가마 무게의 미국인 선교사를 지게에 짊어지고 비오듯 흐르는 땀에 절어 꼬질꼬질해진 베잠방이 핫
바지 차림으로 헉헉대었을 당시의 우리 민초들의 몰골을 지금 상상을 해보면서 솟아오르는 처연한 마음에
콧날이 시큰해진다.
이 별장촌은 해방 후까지도 존속하다가 6. 25 한국전쟁당시 소실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 동양제일의 별장촌을 잊지 못한 미국인 선교사들은 노고단 일대가 점점 불어나는 등산객으로 소
란해지자 노고단에서 10여Km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 왕시리봉(1243)의 1 Km 남서쪽 아늑한 곳에 몇 채
의 별장, 교회, 테니스코트, 간이풀장 등 별장촌을 재건하여 왕시리봉 남서쪽에 "외국인별장"이 표시된 등산
지도를 볼 수 있다. (조선일보사 발행 "실전 백두대간" 지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교회 폐건물에서 30여 m 길따라 노고단 산장 앞을 지나 노고단 안부로 오르니 바람이 제법 세다.
04 : 40. 노고단 안부(작은 노고단 또는 가짜 노고단) 도착
잠시 휴식후 걷는 산길은 금년에 일찍 찾아온 더운 날씨에 예년보도 훨씬 빠르게 나뭇잎이 무성하다.
돼지령을 지나고 임걸령을 지나니 임걸샘이 나온다.
06 : 10. 임걸샘 도착
임걸샘의 물을 한바가지 받아 마시니 시원하다.
06 : 20. 길가에 적당한 곳에 바위가 있어 멈춰서 식사를 하고 06 : 40에 출발하다.
06 : 50. 노루목 도착
천왕봉쪽 주능선을 버리고 반야봉쪽 갈림길로 접어들어 조금 진행하니 인체신경통제사령부에서 긴급 작전
명령이 하달된다. 작전명령의 내용은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5분 이내에 지뢰매설을 하라는 긴급명령이다.
산길을 벗어나 한참 진행하다 은폐와 엄폐가 적당한 지점을 만나 낙엽과 부엽토를 헤치고 급하게 지뢰를 매
설한 후 삐라를 3장 살포한 다음 다시 부엽토와 낙엽을 덮어 긴급작전명령의 임무를 차질없이 완수하고 나
니 심신 상쾌로다.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룬 오르막길을 오르고 삼도봉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 경사가 거의 없이 평탄한 능선길
을 한참 가다 다시 오르막을 만나고 급경사 철계단을 올라 돌자갈길을 걸으니 반야봉이다.
07 : 50. 반야봉 도착
수십번 지리산을 찾고, 11번이나 노고 -> 천왕 주능선 종주를 하며 옆으로 스쳐가면서도 처음 올라온 반야
봉이니 부끄러우면서도 절경의 조망에 감개가 무량하다.
자그마한 묘지를 지나고 잘룩하게 꺼진 안부를 지나 중봉으로 향한다.
08 : 10. 중봉 도착
중봉 바로 밑에 대형 헬기장이 있고 연안김씨 묘비석이 서있는 큰 묘지가 있다.
삼각대 등의 카메라 장비를 챙기는 40대 초반의 키크고 인물 잘 생긴 호남 말씨의 남자 사진작가가 보인다.
반야봉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일찍 온 사람인가보다.
캔맥주를 꺼내 반야봉에서 못한 반야봉 정상주를 마시다.
08 : 20. 중봉 출발
삼거리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는 달궁계곡길이 아닌 북동쪽 길로 내려선다.
길은 산꾼들의 통행이 제법인듯 흔적이 완연하나 황폐하지는 않다.
한참 능선길을 따라 내려가다 왼쪽 마루금에서 "어디를 가십니까 ?" 하는 말소리가 들려 올려다 보니 승복
차림의 두사람이 나물 채취를 하는지 자루를 들고 서있다.
한사람은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얼굴이 넙적하고 키가 큰 삭발 스님이고, 한사람은 몸매가 가냘프고 얼굴
이 곱상한 머리를 기른 동행 처사인듯 하다.
스님께 합장하여 인사를 올리고 묘향대를 찾아간다 하니, 스님의 말이 자신이 묘향대 수행승려라 하며 아래
로 내려가다 갈림길을 만나면 오른쪽 길로만 가면 묘향대로 가게 된다고 일러준다.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질문을 한다.
"스님은 이곳에서 생식(生食)을 하십니까 ?, 아니면 화식(火食)을 하십니까 ?"
하고 물으니 화식을 하고 계신다기에,
"제가 오늘 묘향대를 방문할때 스님의 정진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죄의 뜻으로 스님께
시주 하려고 지금 배낭속에 스님께서 꼭 필요하실 것으로 생각되는 쌀 한말과 소금 1 Kg을 짊어지고 왔
습니다. 묘향대에 도착하면 놓고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니 스님은 거듭 감사를 하며 묘향대에 가면 절 일을 해주러 오신 처사님 한분이 계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제야 내가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워 낑낑대며 헐떡거리던 수수께끼가 풀린 듯한 홍수염
님의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스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스님이 일러준대로 뚜렷이 난 길을 따라 갈림길을 만나면 오른쪽을 택하여 두번
째 삼거리 갈림길에 멀리서 보이는 작은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그래 오른쪽을 바라보니 무성한 숲사이로
언뜻 집 건물 같은 것이 비친다.
삼거리 갈림길에 가까이 다가가니 가로 50Cm, 세로 40Cm 가량의 자그마한 목제 안내표지판에 "묘향대.
본 묘향대는 참선수행 도량이므로 소란 및 취사행위를 금합니다." 라고 쓰여있다.
08 : 45. 묘향대(妙香臺) 도착.
오른쪽길로 내려가니 몽매에도 그리던 묘향대가 윤곽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라고 하는 묘향대. (그러나 나는 설악산 봉정암과 묘향대 중 어느쪽이 더 높은지는 잘 모르겠다.)
묘향대는 건평 약 15평 ∼ 20정도로 짐작되는 목조 함석지붕의 퇴락한 건물이다. 왼편 처마끝쪽에 샘물이
흐르고, 거기서 30여m 비탈 아래로 한평 반 정도의 해우소(解憂所)가 있고, 암자 앞마당 정면 끝부분 돌계
단을 내려서면 매방석만한 넙적한 큰 돌을 올려놓은 참선대(參禪臺)가 있다.
절마당에 들어서니 인기척을 느낀듯 50대 남자가 방문을 열고 내다본다. 서로 합장하여 인사를 하고, 조금
전 산위에서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다고 말하고 4Kg들이 비닐포장한 쌀 두포대와 0. 5Kg들이 소금 두포대
를 배낭에서 꺼내 놓으니 마루 안쪽 중앙의 큰방문을 열고 들고 들어간다. 따라 들어가니 정면의 벽에 괘불
(掛佛) 탱화가 걸려있고 그 앞에 불상(佛像) 형체의 바위돌을 올려놓고 천으로 감싸 놓은 단 위에 쌀과 소금
을 올려 놓기에 삼배를 올려 참배를 하다.
절 안의 청소와 잡일을 하는 처사님에게 조금전 산위에서 만난 스님이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읽은 진묵스님
인지 물으니 3주 전에 새로 오신 호림(湖林)스님이라 하며, 진묵스님은 수년동안의 정진 수행을 끝내고 지
난 달에 만행길을 떠났다 한다. 묘향대는 구례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의 생필품 지원을 받는다 한다.
어떻게 이 무거운 쌀과 소금을 가져왔느냐기에 내 생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험준한 곳이기에 마음먹
고 시주 하려고 짊어지고 왔다며 내 나이를 말하니 처사님은 자신도 나와 동갑이라며 반가워 한다.
마루에 비치된 방명록에 기록을 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채 묘향대 경내 여기 저기를 바람 부
는대로 싱그러운 금속성을 내는 처마끝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두루 돌아보느라고 한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10여명 일행인듯한 산행객들이 도착하고, 중봉 헬기장에서 만났던 무거운 배낭을 맨 사진작가도 묘향대에
도착한다.
▼ 모습을 드러내는 묘향대
▼ 묘향대의 옆모습
▼ 묘향대의 정면 모습
▼ 마당끝 한가운데 정면 돌계단을 내려서면 내려다 보이는 참선좌대(參禪座臺)
09 : 50. 묘향대 출발
묘향대에 진입하던 삼거리를 만나 이번에는 하산을 위하여 오른쪽 아래편 길로 5분쯤 진행하여 나가니 사람
키가 훨씬 넘는 상당히 큰 돌탑이 나타나고 돌탑 뒤편으로 30여평쯤의 검은 비닐이 밭고랑에 씌워진 채소밭
이 보인다.
이 돌탑은 채소밭을 일구면서 나오는 돌들을 쌓아올린것 같다.
밭 가에 서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니 이 밭 한 뙈기를 일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돌을 캐냈는지 짐작이 간다.
10 : 00. 돌탑 채소밭 출발
길따라 조금 진행하니 삼거리길이다. 중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길인듯하다. 선답자들의 산행기에는
이곳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돌탑을 먼저 만나고 묘향대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아마 중봉에서 내려오다가
처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내려오면 이 삼거리를 만나는 것 같다. 우회전하여 하산하다.
경사가 상당히 급한 내리막으로 능선, 계곡 등이 번갈아 나타나고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암벽을 한차례 지나
니 너덜길이다. 너덜에 익숙치 않은 산꾼들은 지겹겠으나 백두대간 종주시 마등령 → 황철봉 → 미시령 구
간에서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원도 없고 끝도 없이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너덜을 이미 겪어본 터이라
별게 아닌 기분으로 너덜길을 내려선다.
11 : 00. 이끼폭포로 생각되는 지점 도착.
배낭을 벗어놓고 한참을 감상하고 있는데 중봉 헬기장에서 만났던 사진작가가 내려온다. 이곳이 이끼폭포
인지 물으니 아니라고 하며 10여분 더 내려가야 한단다. 이끼폭포는 이 계곡과 다른 지계곡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이 계곡물과 합수지점에 있는데, 이 계곡수의 현재 수량(水量)으로 보아 이끼폭포의 수량이 빈약하
여 오늘의 경치는 별로일것이라 한다.
이 계곡물이 알탕을 할 정도는 되어야 이끼폭포의 경치가 절경으로 느껴질만큼의 수량이 된다는 것이다.
계곡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작가는 이 계곡을 자주 찾는듯 하다.
11 : 15. 이끼폭포 도착
사진작가의 말대로 역시 이끼폭포의 수량은 풍부하지 못한 편이다. 그러나 명불허전이라 이끼폭포는 처음
보는 나에게는 그저 마냥 신비롭기만 하다.
그런데 사진작가의 설명이 흥미롭다. 폭포의 큰 돌이나 바위 군데군데 이끼가 끼지 않은 곳으로 보이는 곳
이 있는데 그곳은 이끼가 끼지 않은게 아니라 상당히 오래전에 이곳을 촬영한 사진작가들이 인위적으로 벗
겨낸 것이라 한다.
사진속을 자세히 관찰하면 억지로 이끼를 벗겨낸 대머리돌들이 군데군데 많이 보인다.
그 이유는 완벽하게 이끼가 끼어 신비로운 절경을 연출하는 장면을 충분하게 필름에 담은 사진작가들이 자 신들의 사진에 대한 희소가치를 지닌 독점적 저작권을 비싼 값에 확보하기 위해 군데군데 이끼를 손상시켜 대머리돌을 만드는 잔인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라 하며 다시 복원되는데는 수십년의 세월이 걸려야 할 것이 라 한다. 악랄한 인간의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 신비로운 이끼폭포
▼ 인간의 탐욕에 훼손되었어도 신비롭게 아름다운 이끼폭포 - 조금 멀리 본 모습
이끼폭포 앞 너른 바위위에서 점심식사.
사진작가까지 세사람이서 배낭에서 줄줄이 꺼낸 김밥, 과일, 소주, 맥주, 잎새주 등등으로 얼큰하게 대취
하는 점심식사였다.
12 : 05. 이끼폭포 출발
12 : 35. 뱀사골 주계곡 등산로 합수지점 도착
12 : 45. 제승교 통과
13 : 10. 병풍소 도착
펑퍼짐한 바위에 배낭을 베고 드러누워 달착지근한 낮잠을 실컷 즐기다 잠이 깨어 다시 일어나 캔맥주를
마시고 병소, 뱀소, 탁용소, 요룡대 등등 절경을 음미하며 하산하니 성삼재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이고 이
곳이 곧 반선이다.
이로써 마음속에 오래 그리던 오늘의 3대 특선요리 아닌 특선산행 (1)묘향대, (2)반야봉, (3)이끼폭포 산
행을 마치니 가슴이 뿌듯해진다.
☆ 귀가
15 : 00. 반선 도착
15 : 15. 전주행 버스 승차 (1인당 3,000원)하여 인월 거쳐 남원 터미널 하차.
남원터미널 앞의 목욕탕에 들어가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아니지 시원하게 목욕을 한 다음 택시를 타고
남원 광한루에 들어가 관람 후 광한루 옆의 보신탕집에 들어가 저녁식사.
19 : 35. 남원역에서 새마을호 승차
23 : 20. 수원역 도착 - 도보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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