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 종주기 [제9회] (상)
◇ 제9회 총 산행 기간 : 단기 4334년(2001) 11월 3일 (토) - 11월 4일 (일) 2일간
◇ 제9회 총 산행 구간 : 지름티재 → 하늘재
◇ 배낭 중량 : 약 12 Kg
◇ 산행지로 출발
단기 4334년(2001) 11월 2일 (금)
18 : 13 충주 거쳐 점촌으로 가는 17 : 30발 버스를 간발의 차이로 놓치고, 청주로 돌아서 가기 위해 청주행 버스를 타고
수원 터미널 출발.
버스 차비 5,400원
날씨가 추워져 대간 종주이래 처음으로 내복을 입고 나오다.
19 : 50 청주 터미널 도착
19 : 50 출발하는 충주행 직통버스를 놓치고 그 다음 직행에 승차하다.
20 : 00 충주행 버스 출발(경황이 없어 차비는 얼마인지 잊었다.)
21 : 40 충주 터미널 도착
터미널에서 물어보니 연풍으로 가는 첫차는 대구행인데 아침 06 : 00이고 그 다음차는 06 : 10이라 한다. 터미널 근처의
식당에서 올갱이해장국(5,000원)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보송장 여관을 소개받다.
가까운 곳에 있는 김밥집에서 김밥 3줄(6,000원) 찐계란 5개(1,000원) 등을 내일 아침과 점심 식사용으로 구입 후 여관을
찾아가다.
23 : 00 보송장 여관에서 찐계란 3개 소주 안주하여 먹고 마신 후 김밥은 여관방 냉장고에 넣고 취침(숙박료 25,000원)
◇ 산행
○ 단기 4334년(2001) 11월 3일 (토) 흐리다가 15 : 00 경 맑아짐. (제20일)
- 금일 산행구간 : 지름티재 → 이화령
04 : 30 기상.
면도, 세수 후 라면 1개 끓여 김밥 1줄, 찐계란 2개로 아침식사를 하 고 여관 수돗물로 식수를 준비한 다음 충주 터미널로
나가다.
06 : 00 대구행 버스 승차(연풍까지 2,400원)
버스는 수안보에서 한번 정차 후 연풍면으로 간다.
06 : 45 연풍 터미널에서 하차
터미널 마당 건너편 외딴집에 사는 주인 남자가 터미널 문을 잠그고 나오기에 택시 전화번호를 물으니 자기가 개인택시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집 쪽을 보니 집 앞의 비닐하우스 비슷한 가건물 안에 택시가 있다.
터미널도 운영하고 터미널 안의 가게도 하고, 개인택시도 하고 틈틈이 자그맣게 농사도 짓는다고 한다. 내가 계열회사가
참 많으신 회장님이시라고 농담을 건네니 허허 웃는다. 옛날에는 연풍 터미널이 손님이 많았는데 근래에는 자가용이 많아
지면서 손님이 별로 없다고 한다. 명함을 한 장 청하여 받아 넣다.
연풍에는 개인택시가 4대라 한다.
연풍 개인택시 : 김영대씨 011 - 418 - 5131, 043 - 833 - 5135.
06 : 55 은티마을 가게 앞 도착.(택시비 4,000원)
07 : 00 은티마을 출발
10월 30일 지름티재에서 하산하면서 생각하니 은티마을은 은치재, 주치봉 너머, 그리고 희양산 정상, 시루봉 등에서 하산
하는 길과 만나는 마을이어서 다음에 지름티재로 다시 오를때에 길을 잘못 들까봐 내려오며 적당한 나무와 전주, 돌 등에
"지름티재" 라 쓰며 화살표도 그려 놓았으므로 오늘은 이 표시를 살피면서 따라 올라가다.
그런데 갈림 길 한곳은 길가에 놓여있는 돌에다가 표시를 하여 놓았는데 누군가 지나가면서 장난을 하였는지 반대편 길 쪽
으로 화살표가 향하도록 돌려 놓았으나, 직감으로 알아내고 바른길로 진행한다.
산길에 가까워질수록 농로는 홍수에 많이 훼손되어 차량이나 농기계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농로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드는데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면서 산행을 계속 할 것인지 포기 할 것인지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이 빗방울은 지름티재에 도착할 무렵에 그친다.
08 : 00 지름티재 도착
좁은 바위를 통과하여 희양산으로 오르며 "구름나그네" 표지기가 두 번 보인다. 이 구간은 듣던 대로 봉암사에서 표지기
청소를 하였는지 최근에 걸린 표지기만 어쩌다 하나씩 보이고 거의 볼 수가 없다.
희양산 정상 아래에 이르니 밧줄도 없는 거의 직벽의 급경사가 나타나는데 약 30 - 40여 미터 이상의 급경사를 나뭇가지,
나무뿌리, 바위틈, 바위 모서리 패인 곳 등등을 붙들고 젖 먹던 힘까지 소진하여 가며 간신히 올라간다. 대간 종주이래 최
악의 험난한 코스를 만난 것 같다.
다행인 것은 10여 미터쯤 올라가면 잠시 휴식을 할만한 공간이 나타나 가끔 물을 마시며 숨고르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간쯤 오르니 아직도 직벽 오르막은 까마득한데, 대간 종주의 의지가 꺾이고 그만 하산하고 싶다. 그러나 이제 하산을 하
려니 내리막길이 더 위험할 것 같아 차라리 그냥 오르는 게 낫다 싶어 앉아 쉴만한 공간이 나타나면 쉬며 물을 마시기를 너
덧 차례나 하면서 오른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최근에 이곳을 올랐던 경험담에 의하면 분명히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 같다.
막바지 직벽 5 - 6미터를 남겨놓고 우측을 바라보니 상당히 굵은 밧줄이 저 아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드리워져 있고 사람
이 많이 다닌 흔적이 뚜렷하다. 내가 올라온 길과 합쳐지는 길이다. 기가 막힌다.
이종원님의 백두대간 종주기와 OK마운틴에 올린 필명 구름나그네님의 종주기에서 그분들도 나와 똑같은 코스로 올라오
면서 엄청난 고생을 하다가 능선 거의 다 올라와 나처럼 우측에 매달린 밧줄을 보고서 황당하다고 썼었는데 이 글을 두번
세 번 읽어서 예습을 충분히 한 나도 똑같은 전철을 밟아버린 것이다.
어느 지점의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밧줄이 설치된 길을 놓치고 이 고생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전날의 대야산은 아주
양반길이다. 나머지 5 - 6 미터는 매달린 밧줄을 붙들고 오르니 거저먹기다.
09 : 00 희양산 능선 도착.
우측으로 5 - 10분이면 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희양산 정상 구경을 포기하고 그냥 좌회전하여 성터쪽으로 내빼버린다.
얼마나 고생을 하였으면 희양산이 꼴도 보기 싫고 뒤도 돌아보기 싫다. 방금 지나온 그 절벽 길은 꿈에라도 다시 나타날까
겁이 난다.
성곽을 통과하고 암릉을 몇 개 지나서 땀을 닦으려고 배낭끈에 매달은 수건을 더듬으니 수건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희양
산 아래의 급경사를 오르면서 몸부림을 치다가 수건이 무엇엔가 걸려 빠져 나가는지 도 모르고 올랐던 것 같다. 주머니에
서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다.
시루봉까지의 사이에 나타나는 몇 개의 암릉은 보통 때 같으면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을 길이었는데 희양산 능선의 직벽을
올라오면서 하도 고생을 하여서 그런지 편안한 길처럼 느껴진다.
10 : 20 시루봉 갈림길 배너미평전 도착.
"괴산의 명산 시루봉 10분"이라는 안내 표지판을 괴산군에서 세워 놓았다. 백두대간 길을 안내하는 골판지에 비닐을 씌
워 만든 이정표도 걸려 있다. 길 한쪽에는 서원대 산악회에서 세운 고(故) 지현옥 산악인을 추모하는 빛 바랜 글씨의 나
무비(木碑)가 서 있다.
지현옥(池鉉玉) 산악인은 1961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청주 서원대학을 나온 여성으로, 1993년에 국내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그 후 1998년에는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의 가셔부룸 11봉(8035m)을 무산소 단독등정하
였고, 1999년 4월 29일 국내 여성 최초로 안나푸르나(8091m) 등정 후 하산하던 도중 실종돼 시신을 찾지 못하고 말아
버린 애석한 사연이 있는 여성산악인다.
시루봉 구경도 생략하고 그냥 전진하다.
암릉을 몇 개 지나면서 "괴산의 명산 이만봉"이라는 괴산군에서 세운 안내 표지판이 있는 이만봉을 지나고 곰틀봉도 지
난다. 사다리재에 이르니 "희양산 90분, 백화산 140분"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12 : 00 사다리재를 조금 지나 찬바람이 지나가지 않는 9부능선 아늑한 곳이 있어 어제 저녁에 충주에서 사서 넣은 김밥
두 줄을 꺼내 점심식사를 하다. 오늘은 집에서 내복을 입고 오기를 잘 했다. 내복을 안 입었더라면 추워서 고생할 뻔했다.
12 : 20 점심식사 마치고 출발
뇌정산 갈림길 삼거리에 이르니 뇌정산으로 가는 지도에 없는 길이 능선 따라 아주 잘 나있다. 길가에 목조 이정표가 쓰러
져 땅에 쳐박혀 있다. 평전치까지는 길이 좋다.
13 : 15 평전치 도착
괴산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서 있다.
1,012봉을 지나 백화산 정상 200여미터 못미쳐 나타나는 암봉을 우회하여 통과하다. (우측인지 좌측인지 우회방향은 기
억이 나지 않는다.)
14 : 10 백화산(1063. 5) 도착
돌로 만든 표지석이 서 있다. 속리산을 지나고 처음 만나는 1000미터급 정상이다.
904봉으로 가는 도중에 나타나는 암릉 세개 중 첫번째와 세번째 암릉은 좌측으로 우회로가 있으나, 가운데 암릉은 우회
로가 없다.
억새밭 끝 지점의 갈림길은 지도상에는 삼거리이나, 우측 오시골로도 내려가는 사거리이다. 길가 우측에 쓰레기가 더미를
이루고 쌓여있다. 등산객 특히 대간 종주객들이 버린 쓰레기는 아닌 것 같고, 막걸리병 등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시설물 설치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버린 것 같기도 하다.
14 : 50 황학산(910) 도착
누군가가 그곳에 있던 길이 40여cm가량의 돌을 세워서 매직펜으로 "황학산 910미터" 라고 써 놓았는데 글씨가 비바람에
빛이 바래있다. 매직펜을 꺼내어 다시 덧 글씨를 써서 보완하여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하고 출발하다.
황학산을 지나 조금 더 가니 황학산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이 연풍면 분지리 안말 부락이다.
지도에 없는 길이다. 한참 더 전진하니 대간 능선으로 이화령 쪽을 향하여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가 나타난 지점이 어느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좌우로 10미터 이상 되는 키 큰 나무가 우거진 임도를 따라 500미터 이상 1 Km는 전진한 것 같은데 대간 표지기가 안 보
인다. 혹시나 길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불안감이 엄습한다. 전에 무주 빼재에서 소사고개로 넘어가다 삼봉산에서 길을
잘못 들어 보충수업을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다시 새로워진다.
표지기가 오랫동안 안보이니 어쩌다 땅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만 보여도 사람의 체취가 느껴져 반갑기만 하다. 불안감을
느끼며 능선의 임도를 계속 따라가니 대간 표지기가 갑자기 나타난다. 안도감이 든다. 언제부터인가 표지기가 200여미터
이상만 안보여도 불안해지는 습관이 생겼다.
15 : 30 이화령과 각서리가 갈라지는 삼거리 도착.
지도상에는 "조봉"이라고 표시된 지점인데 산봉우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아서 의아스럽다.
문경시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이화령 1. 5 Km, 각서리 1. 2 Km라고 쓰여 있고 이화령 방면은 통행금지라 써 놓았다.
여기서 이화령이 실전 백두대간에서 설명한 군부대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구간인가보다.
그러나 대간 표지기는 이화령 쪽으로 걸려 있다. 그냥 이화령 쪽으로 전진을 할까 하다가, 혹시나 머리가 허옇게 세어 가는
처지에 도중에 젊은이들한테 무슨 수모를 당할지 몰라서 커닝을 하기로 하다.
대간 종주 시작이래 다섯 번째 커닝을 결정하다.
각서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고냉지 채소밭이 보이는 지점에 도달하니 높이가 무릎 정도 되는 철조망을 쳐서
길을 막아놓고 "백두대간의 생태계 관찰을 위하여 출입을 통제한다."는 요지의 경고 판을 설치하여 놓았다. 철조망의 높이
로 보아 사람 출입을 통제하는 것은 아니고, 오프로드 차량 통제를 위한 것 같다. 철조망을 넘어서 고냉지 채소밭 옆으로
구불거리는 임도를 따라가다.
16 : 10 양옥집 민가 한 채가 나오고 바로 아스팔트 포장도로에 도착하다.
이 민가가 지도상에 "우리농산물 판매점"인가 보다.
대간 능선에서 이곳까지 지도에는 거의 직선으로 500미터 남짓한 길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여러 차례 구불거리는
먼 길이다. 아까의 그 갈림길 이정표 1. 2 Km가 맞는 것 같다.
도로에 나서니 이화령까지 1 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포장길 따라 좌회전하여 이화령을 올라가니 군부대로 올라서는 계단길이 나오고, 곧 이어 이화령 정상이다.
커닝이 끝난 것이다. 내일 아침 진입할 대간 들머리의 표지기를 확인하고 고개 넘어 충북땅에 있는 "이화령휴게소"로 향
하다. (이 커닝 구간은 후일 황학산 -> 이화령 구간 종주로 땜질을 하였다.)
16 : 30 이화령 휴게소 도착
캔맥주 1개, 오징어 1마리 사먹으며 휴식. 수안보로 갈까 문경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문경에서 숙박키로 결정하다. 아무
래도 앞으로 문경에서 숙박을 몇 번 하여야 할 것 같아 지리를 익히기 위해서이다.
17 : 00 지난번 대야산 오를 때 이용하였던 문경택시 양승달씨 호출.
택시가 와서 승차하다.
양승달씨 011 - 536 - 2822 (문경까지 택시비 7,000원)
양승달씨에게 여관을 한군데 소개해 달랬더니 "수림파크 여관"으로 안내한다. 여관에 들어가니 여관비가 40,000원이란다.
문경새재 도립공원과 온천지대라서 바가지를 씌우나보다. 너무 비싸다. 전에 속리산 아래 화북면의 화북장여관은 보일러
고장으로 고생시키더니, 이곳은 바가지를 씌워 불쾌감을 준다.
방안에 들어가 보니 시설도 다른 여관이나 고만고만 할 뿐이다. 앞으로 등산정보 교환시 이 "수림파크 여관"은 절대로 들
어가지 말라고 말려야겠다.
여관에 여장을 풀고 시내를 여기 저기 돌아다니니 문경읍은 시가지가 넓지 않다. 대형 편의점 할인매장이 한군데 눈에 띄
어 들어가 등산용으로 적당한 작은 세수 수건을 찾으니 두께는 빈약하나 크기는 등산용으로 안성맞춤인 수건이 한 장에
700원이라 한다. 2장을 사서 오늘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다. 오늘 낮에는 희양산을 오르다가 세수 수건을 잃어버려 손수
건으로 땀을 닦았다.
시장입구 서울 출생 아주머니가 경영하는 장모님순대집에서 순대국밥(3,500원)과 소주 반주로 저녁식사를 하고 김밥집
을 찾아 나서다.
시가지를 두어바퀴 돌아다녀도 택시기사 양승달씨는 분명히 김밥집이 있다고 하였는데 눈에 띄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어느 가게에 물어보니 100여미터 떨어진 새마을금고를 가리키며 그 옆골목으로 들어가라 한다.
새마을금고 옆의 비좁은 골목을 10여 미터 들어가자 허름한 작은 식당이 있는데 간판은 "영 분식"이다. 문경읍내의 유일
한 김밥집이다. (문경 "영분식" : 054 - 572 - 1950)
김밥은 두 줄 1인분에 2,500원이라 하여 60세쯤 되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에게 2인분만 싸달라고 하니 주문량이 많지
않아서 미리 재료를 구비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을 받으면 재료를 사다 만들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안되고 내일 아침에
가져가야 한단다.
아침 몇 시에 문을 여는지 물어보니 저녁에는 21 : 00이면 영업을 끝내고 그 대신 새벽 04 : 00에 일찍 문을 연다고 한다.
초저녁잠이 많고 새벽잠이 없어 그렇다 한다. 그럼 내일 새벽 4시 반 경에 가지러 오겠다 하고 선금 5,000원을 미리 주고
나오다. 신뢰를 주기 위해서 일부러 선금을 지불한 것이다.
수림파크 여관으로 돌아와 방바닥을 만져보니 따끈따끈하지 않다. 이 정도로는 취침에는 별 지장이 없겠지만 런닝셔츠와
팬티, 등산양말 등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으면 방바닥이 따끈해야 빨리 마르는데 걱정이다. 카운터에 물어보니 22 : 00
넘으면 심야전기를 가동하므로 절절 끓을 거라 한다. 이 말을 믿고 빨래를 빨아 널어놓고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푸욱 담
그고서 피로를 풀다.
처음 계획했던 태백산까지는 못가더라도 11월 15일 산불방지 입산통제가 시작되는 전날까지 소백산이나 갈까 걱정이다.
20 : 30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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