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345년(2012) 6월 2일(토) 새벽 02:30에 잠에서 깨어 일어난다.
어제 저녁에 설악산 서북릉 중 장수대~한계령 구간을 걸어보고 싶어 동서울 종합터미널에서 06:30과 06:40 등에
출발하는 한계령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예약하려 하였으나, 승차권이 이미 매진되어버려 구입하지 못하게 되어 예
전에 금학산~고대산으로 종주하였던 코스를 반대로 고대산~금학산으로 종주해 보기로 하고, 산행준비를 한다.
▼ 고대산~금학산 종주 산행지도.
04:55경에 집을 나서서 수원역으로 향한다. 수원역에서 소요산까지 전철 승차를 위하여 1회용 교통카드(2,350원)
를 1장 구입하고 플랫폼에 입장하여 05:15에 출발하는 전철 첫차에 승차한다. 수원에서는 소요산으로 가는 전철
이 없으므로 청량리역에 하차하여 갈아탄다. 아침 첫차라서 그런지 승객이 많지 않고 좌석에 여유가 있다.
동두천역이 가까워지자 옆좌석의 승객에게 신탄리행 통근열차를 타려면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문의하니, 동
두천역이 시발역이고, 소요산역에서 타도 된다고 일러준다. 소요산역까지 가지 않고 그 직전역인 동두천역에 하
차하니 07:45이다.
수원역에서 두시간 반이나 걸렸다. 화장실에 들른 다음 매표창구에 가보니, 08:03에 신탄리역으로 가는 열차가 있다.
곧바로 승차권을 1장(1,000원) 구입하여 플랫폼에 입장하니 열차가 출발 대기하고 있다.
신탄리행 열차에 승차하여 약 40여분을 달려 08:50에 신탄리역 종점에 도착한다.
열차에서는 약 50여 명의 등산복 차림 승객이 하차하여 고대산 가는길로 향한다. 역광장에 철원군 동송읍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출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이 버스에 승차하는 산행객도 많다. 아마 금학산으로 가는것 같다.
신탄리역을 나가서 살피니 한적한 시골동네다. 역 주변에 아침식사를 할만한 식당이 있는지 둘러보니, 보리밥집
과 보신탕집이 문을 열었다. 힘든 산행을 하는데 보리밥은 먹고나서 일어서는 순간에 배가 꺼져서 힘을 쓸 수가
없을거라 보신탕집으로 들어가 탕 한 그릇을 시켰는데, 도시의 보신탕집보다 분량이 두 배 가까이 될만치 많다.
처음 주문시에 차림표를 보니 1만원이라 웬 보신탕 한 그릇에 1만원씩이나 하는가 의아했는데, 분량으로 보아
결코 비싸지 않다. 수원역에서 출발한지 3시간 반이나 되어 허기가 지던참에 허겁지겁 먹어 치우니 배가 부르고
든든하다. 모처럼 포식했다.
▼ 신탄리역 플랫폼
▼ 정면에서 본 신탄리역사
▼ 신탄리역에서 길건너에 보이는 뚝배기 보신탕집
▼ 허겁지겁 배를 채우다가 중간에 찍어본 아침식사 보신탕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서 09:30경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신탄리역에서 북쪽방향으로 도로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
도로표지판에 고대산 등산로도 안내가 되어 있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라고...
▼ 고대산 가는 길을 안내하는 도로표지판
▼ 고대산 가는 길은 철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로를 건너간다.
▼ 신탄리역에서 약 1Km쯤 걸으니 고대산 매표소가 나온다. (현재는 무료입장으로 바뀌었다.)
▼ 매표소를 지나서도 약 400여미터가량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걸으니 3등산로 입구가 나와 그늘로 들어간다.
▼ 그늘에 들어서자 마자 군훈련용인지 청소년 수련용인지 10여 개의 훈련시설이 나타난다.
▼ 오늘 제일 많이 눈에 띄는 야생화
▼ 3등산로 제1호 산악구조 표지
▼ 제2등산로와 제3등산로 갈림길 능선을 넘어 3등산로를 따른다.
▼ 개울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간다.
▼ 다리를 건너면서 개울을 내려다 보니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날씨가 오래 가물었다.
▼ 10:20 길가의 고대산 약수터 도착 (약수터는 그래도 물이 잘 나오는 편이다. 여기서 식수를 준비한다.)
▼ 고대산 약수터의 수질검사 성적서 게시판
▼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乾川)
10:35경 표범폭포 입구에 도착한다. 표범폭포는 길에서 약 100m쯤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예전에는 바위벼랑
에 밧줄을 매어 좀 험했었는데, 오늘 와보니 목재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표범폭포로 내려가 보니 폭포수가 흐르
던 절벽에 물은 많이 흐르지 않고 습기만 번져있는 정도이다. 폭포는 높아서 비가 많이 와 수량이 불어나면 장관
을 이루겠다.
▼ 표범폭포 상단부.
▼ 표범폭포 하단부
▼ 표범폭포 좌우의 절벽
▼ 표범폭포에서 짧은 휴식 후 되돌아 올라가는 계단길
▼ 길바닥의 토양 유실 방지용 계단길이 자주 나타난다.
11:45경 고대산 정상이 0. 5Km 남았다는 이정표 앞 지점 도착
표범폭포를 출발하여 된비알을 쉬엄쉬엄 올라서자 고대산 정상이 0. 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군부대 정
문이 멀리 보이는 삼거리 지점 오르막길에서 어이없는 실족사고를 당한다. 이정표를 바라보며 한눈을 팔면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발이 헛디뎌져 몸의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면서 비탈길에서 한 바퀴를 굴러버린다.
머리 뒤통수가 땅에 가볍게 부딪친 것 같고 다친데는 없는 것 같은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의 흙을 털어내는 중
에 앞 이마에서 시뻘건 피가 흘러 땅에 흥건하게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차 싶어 머리 여기 저기를 만지
고 짚어가며 상처 부위를 찾으니 왼쪽 뒤통수에 상처를 입은 것을 알게 된다.
넘어질때 뒤통수가 가볍게 땅바닥에 부딛친 것 같음을 느끼던 순간 길바닥에 박힌 날카로운 돌모서리에 찍힌
모양이다. 피는 멈출줄을 모르고 계속 솟아나 상의를 적시고 번져나간다. "당황하지 말자~!" 마음속으로 되뇌
이면서 급하게 배낭을 열고 두루말이 화장지를 꺼내어 한웅큼 풀어 접어서 뒤통수 상처부위로 짐작되는 부분
에 대고 지긋이 누르며 압박을 하여 지혈을 시도하니 응급조치가 주효하여 그제사 지혈이 된듯 피가 멈춘다.
지혈이 되고 나니 마음이 놓이면서 이대로 머리를 싸매고 금학산으로 진행을 해버릴까 어찌 할 것인가를 생
각하면서 눈길을 돌려가며 살펴보니 상의고 하의 바지고 배낭이고 간에 온통 피칠갑이 되어버려 나 자신은
괜찮을지라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의 처참한 몰골에 놀랄 일을 생각하니 더 이상 진행 할 수가 없어 신탄리
로 그냥 하산을 하여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상처를 꿰매던지 아무튼 치료를 하기로 결정하고 배낭에서 노끈
을 찾아 새로이 화장지 뭉치를 갈아 댄 다음 머리를 싸매려고 시도해 본다.
그런데 이때 마침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들 7~8인이 고대산 정상쪽에서 하산을 하다
가 나의 이 처참한 몰골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119구조대에 구조헬기를 불러야겠다고 서두른다. 나는 곧
바로 지금 다른데는 다친데가 없고, 뒤통수만 상처를 입었는데 이제 지혈이 되었으니 이대로 하산하여 병원
을 찾아가 치료하면 괜찮을테니 제발 소방서의 구조헬기는 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조로 말한다.
그러나 이 남자 산행객들 일행은 막무가내로 나의 하산길을 막고, 환부를 압박 중인 화장지 뭉치를 치우고
환부를 살펴보더니 지혈은 임시로 되었지만 날카로운 돌모서리에 뒤통수가 약 7Cm가량 깊이 찢어져 언제
또 다시 피가 솟구칠지 모르고, 피가 아주 멈췄더라도 지금까지 나의 옷 상,하의와 배낭과 땅바닥에 흘린
핏자국으로 봐서 출혈이 과다하여 도보로 먼거리를 하산하다가 의식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안된다고 내 배낭을 빼앗아버린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더니 내 뒤통수 상처부위를 중심으로 이마로 돌려
묶어 지혈붕대 대용으로 사용하여 지혈이 계속되도록 조치하여 준다.
이때부터 이 남자 산행객들과 구조헬기를 부르자커니 말라커니, 배낭을 내가 짊어지고 가겠다커니, 자기
네들이 가지고 가겠다커니 하면서 약 10 여분동안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렇게 하다가 한 남자가 좀 떨어진
장소로 이동하여 119 구급대 구조헬기를 호출하였는데 용인 기지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오자면 약 30분
쯤 걸릴거라며 하산은 그만 두고 헬기장이 있는 고대산 정상으로 이동하자고 한다.
결국은 내가 이 젊은 남자 산행객들에게 지고 말았다. 그래도 배낭만은 빼앗기지 않고 내가 짊어지고 고
대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그들과 함께 정상으로 오르면서 물었다. 헬기가 한 번 뜨려면 비용이 최소한 백
여만원 이상이 소요될텐데 왜 그렇게 구조헬기 호출에 집착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랬더니 그들이 하는 말이 자신들은 경기도 내 각 소방서에 근무하는 소방공무원들인데, 오늘 토요휴무
를 맞아 친목회원들끼리 고대산을 올랐다가 하산을 시작하는 즈음에 나를 발견했다 한다.
그런데 내 옷자락이고, 배낭이고 온통 피칠갑이 되어 있는데다가 땅바닥에 흘린 피의 양으로 보아 만약
에 나를 그대로 방치했다가 사고가 나서 잘못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자신들이 소방공무원이었다는 사실
이 후일 밝혀지면 씻을 수 없는 과오로 처리되어 큰 문책을 받기 때문이라 한다. 그제야 그들의 행동이
십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도 고대산 정상까지 약 500여미터를 나를 에워싼 소방공무원들과 앞서거니 뒤
서거니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의식도 말짱하고, 기운도 떨어지지 않고 다치기 전 그대로다.
나는 TV에서 사극을 보거나 전쟁드라마를 시청할때에 병졸들이 칼에 맞거나 화살에 맞고 쓰러져 많은
피를 흘리는 장면, 또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가 많은 피를 흘리고도 일어나 다시 싸우는 장면
들이 있을 수 없는 허구인줄 알았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든다.
12:15경 고대산 정상 도착
약 20여분간 걸어서 고대산 정상에 이르니 정상일대 평지 약 50~60여평에 목재 마루를 깔아놓고 가
운데 부분에 페인트로 헬기장 표시를 해놓았다. 전에 안보이던 헬기장 시설이다. 나를 억지로 구조하
여 동행한 소방공무원 친목회원 일행과 헬기 탑승 후의 스케줄을 협의해본다.
헬기는 나를 내려놓고 용인 기지로 돌아가야 하는데, 나의 집이 수원이라 했더니, 그럼 수원시내에서
유일하게 아주대학병원 응급실 앞마당에 헬기장 시설이 되어 있으니 나를 아주대학병원 응급실로 후
송하겠다고 한다.
스케줄 협의를 마치고 약 10여분 동안 고대산 정상에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몰골로 사방을 조망하며
경치를 감상해 본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구조헬기가 들이닥쳐, 황급히 헬기장 아래로 몸을 피해 헬기
가 앉을 자리를 비켜주니 나를 정상까지 동행해주었던 소방공무원들이 헬기 구조요원들과 잠시 이야
기를 나눈 후 나를 헬기에 탑승시킨다. 헬기에서 나는 굉음때문에 그들과 인사도 제대로 못나눴다.
▼ 온 몸에 피칠갑을 한 몰골로 고대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학산(왼쪽 봉우리)
▼ 고대산(832) 정상 표지석
▼ 당겨서 찍은 금학산
▼ 금학산 줄기 너머로 조망되는 철원군 동송읍내
▼ 이쪽은 백마고지 방향인데, 백마고지는 개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 내가 아침에 출발하였던 신탄리 방면
헬기에는 소방서 구조 승무요원들 셋과 나 등 넷이서 타고 이륙한다. 헬기 승무원들은 내 상처의 지혈을 위하여
나를 처음 발견한 소방공무원들이 머리에 묶어주었던 손수건을 벗기고, 구급낭에서 압박붕대를 꺼내어 다시 잘
묶어준 다음, 나에게 큰 소리로 인적사항을 질문하여 기록을 한다.
인적사항 기록이 끝나고 나서 헬기의 소음이 워낙 시끄러워 더 이상 대화를 중지하고 그냥 앉아서 가자니,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가 끝나고 나서 그 이후의 사태가 몹시 걱정이 된다. 나의 온 몸과 배낭에 칠갑을 한 피를 만약
집의 처가 보게 된다면 놀라서 까무러칠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산행도 만류할 것이 뻔하다. 이제부터는 상처가
걱정이 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처가 놀라지 않도록 사태를 수습할지 깊은 궁리에 빠진다.
약 20여분 이상 비행하던 헬기는 아주대학병원과 교신을 하더니 병원 응급실 앞마당 헬기장에 착륙을 한 다음
헬기 승무원과 병원 직원들이 나를 들것에 태우더니 응급실로 내달린다. 응급실에 도착하여 헬기 승무원들과
병원 직원들간에 나에 대한 인계인수가 끝나자 헬기승무원들은 급히 떠나버린다. 이 와중에서 나는 시간이 없
어 헬기 승무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할 수가 없었다. 매우 죄송스럽다.
아주대학병원 응급실 접수실 직원이 나의 인적사항을 기록하더니, 나를 수발할 보호자에게 병원으로 오시라고
연락하라고 한다. 천만에 절대로 안될 말이라서 가족들은 집을 비우고 멀리 친척집에 여행을 가버려 연락이 불
가능하니 그냥 치료만 해달라고 요구했더니 이요구가 먹혀들어 간호원들이 압박붕대를 풀고 상처 소독을 한다.
상처 소독을 하는 간호원한테 상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약 4Cm가량 찢어졌다고 한다. 조금 전 고대
산에서 만났던 소방공무원들은 7Cm라고 했는데 그들이 잘 못 본 것 같다. 소독 후 의사에게 안내되어 의사가
상처를 살펴보더니 간호원한테 꿰매라고 지시한 다음 항생제와 소염진통제를 처방 조제하여 주겠다 한다.
수술실로 안내한 간호원 둘이서 상처를 궤매는데 봉합용 실이 아닌 철사를 사용하여 스태플러처럼 찍는 방식
으로 봉합을 한다. 마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봉합을 하니 스태플러에서 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따끔거리고
아프다. 이렇게 스태플러로 철사를 눌러대기를 여섯차례 했으니 봉합용 실로 말하자면 6바늘을 꿰맨 셈이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진료비 본인 부담 98,840원을 지불하니 조제 포장한 4일분 알약을 준다.
그리고 10일 후에 봉합한 철사를 빼내야 하는데 그 동안 매일 한차례씩 상처 소독을 하고 항생제 연고를 바
르라고 한다.
ㅡ 아주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받은 약 ㅡ
* 항생제 : 세파메칠정 500mg(1일 3회, 1회 2정씩 식후 30분 복용)
* 소염진통제 : 솔레톤정 80mg(1일 3회, 1회 1정씩 식후 30분 복용)
* 소화제 : 스티렌정 60mg(1일 3회, 1회 1정씩 식후 30분 복용)
* 상처에 바르는 항생제 연고 : 빅토르반연고(10g) (상처 소독 후 도포)
치료가 끝나니 시각은 14:30이 되었다. 자~! 이제부터 집의 처가 놀라지 않도록 오늘의 돌발사고 사실을 최
대한 은폐 조작하는 과업이 기다리고 있다. 한참 생각 끝에 병원 안의 화장실로 배낭을 들고 들어간다.
배낭에서 타올을 꺼내어 물을 흠뻑 적신 다음 먼저 배낭에 묻은 피를 정성들여 닦아낸다. 팔이 뻐근하도록
열심히 작업을 하였더니 피는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닦여졌다.
지저분했던 핏자국을 말끔히 씻어낸 배낭을 한쪽에 치워놓고 한참 궁리를 하다가, 먼저 윗도리부터 해결을
하기로 하고, 남방셔츠를 벗고 살펴보니 러닝셔츠에 피가 떡이 되어 말라붙어 있다. 러닝셔츠를 벗어 세면
대에 물을 받아 담그고 주물럭거리니 핏물이 세면대에 받은 물에 시뻘겋다.
이렇게 등산용 기능성 러닝셔츠의 핏물을 빼느라고 세면대의 물을 흘려보내고 다시 받아 헹구기를 15차례나
한 다음에야 맑은 물이 된다. 출혈이 상당해서 나를 처음 발견한 소방서 직원들이 놀란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수건으로 얼굴과 머리 그리고 윗몸통에 묻은 핏물을 깨끗이 닦아내고 러닝셔츠를 꼭 쥐어짜서 그대로 입는
다. 그리고 겉에 입었던 남방셔츠를 세면대에 물을 받아 담그고 주물럭거려 시뻘겋게 우러나오는 핏물을 헹궈
내기를 20여차례나 해대니 맑은물로 바뀐다. 남방셔츠도 등산용 기능성 소재여서 물기를 쥐어짠 다음 그냥 입
어버린다. 산행 도중 소낙비 맞은 셈치고...
그러고 나서 이제는 바지를 살펴본다. 윗도리 옷에서 피를 다 흡수해서 그런지, 바지에는 앞뒤로 살펴봐도
피가 떡이 된 곳은 없고, 머리에서 얼굴을 타고 흐르다가 턱끝에서 몇방울씩 떨어진 자국만 눈에 띈다.
벗어서 빨 필요까지는 없겠다.
물을 흠뻑 적신 수건으로 바지에 군데군데 묻은 핏자국을 따라가며 문질러 지우니 바지도 말끔해졌다. 끝으로
등산화에 튄 몇 방울의 핏자국까지 닦아내고 나니 이젠 온 몸이 깨끗해져 많은 피를 흘렸던 흔적은 아무데도
없다. 이 정도면 귀가를 하더라도 처가 놀라서 까무러치는 사태는 절대로 발생하지 않을거라는 자신감이 생긴
다.
사고 출혈사실의 은폐 조작이 감쪽같이 끝나고 화장실을 나서서 병원 밖으로 나가 나무그늘에 휴게용 벤치로
가서 시계를 보니 15:30 이다. 이때까지 점심을 굶었더니 배가 몹시 고프다.
배낭에서 도시락을 꺼내니 두개다. 한개는 점심으로 또 한개는 오후에 새참으로 먹기 위해 두개를 싼 것인데,
그냥 집으로 가져가면 처가 수상쩍게 생각할것 같아 도시락 두 개를 펴놓고 천천히 모두 먹어치운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포식을 한 끝이라 졸음이 쏟아진다. 벤치 끝에 배낭을 베고 드러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
다. 한참을 넋을 놓고 곤하게 자다 깨어보니 시각은 17:30이 되었다. 일어나서 살펴보니 배낭과 물에 빨았던
상의가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보송보송하게 말라버렸다. 다시 한 번 온 몸을 살펴봐도 핏자국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 정도면 완전범죄 수준으로 증거인멸이 완성되었다.
배낭을 들쳐메고 병원 정문을 나서서 시내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여 뒤통수에 붙인 반창고는 뭐냐고 묻는 처
에게 날씨가 더워 산행을 일찍 시작해서 빨리 하산하여 집에 빨리 돌아와 쉬려고 가까운 광교산에 올랐다가
하산을 거의 다 마친 지점 가파른 비탈에서 모래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뒤통수에 상처가
나서 병원에서 서너바늘 꿰맸노라고 천연덕스럽게 대수롭지 않은듯 지나가는듯한 말투로 둘러대니 처는 나
의 이 거짓말에 깜빡 속아 넘어간다. 낄낄낄...
완벽한 증거인멸 작업을 통하여 마누라를 감쪽같이 속였다.
만세~!!! 만세~!!! 만만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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