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등산상식

포천 국망봉의 조난 참사 기사

by 박달령 2009. 6. 14.

[라이터도, 랜턴도, 보온파카도 지참하지 않은 국망봉 일가족 조난 사망사고의 전말 ]

 

2003년 2월1일 설날 경기도 포천 국망봉(1,168m)에서는 세 형제의 부부 6명이 산행에 나섰다가 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포천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사고도 결국은 허술한 산행 준비가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중 악천후가 갑자기 몰아닥쳤다던가 하는 돌발상황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국망봉 사고는 방심이나 준비 소홀로 인한 겨울 산악사고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포천소방서가 밝힌 사고 경위에 따르면 노갑순(56)-안기송(51), 노갑덕(50)-이혜숙(49), 노갑경(44)-조진형(41) 세 노씨 형제 부부는 오전 11시경 국망봉 서쪽 장암저수지를 출발, 정상으로 향했다. 애초부터 이들은 등산을 하려고 길을 나섰던 것이 아니라 베어스타운 스키장에서 스키를 즐기다가 자녀들은 두고 어른들만 산행에 나섰다고 한다. 등산 경험 여부를 떠나 등산 준비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일행 중 아이젠을 가졌던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고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밝히고 있다.


국망봉은 해발 1,168m로 특히 포천쪽이 가평쪽보다 험하고 가팔라 여름철에 걷는 시간만 따져도 왕복 6시간이 소요되며, 쉬는 시간을 감안하면 최소 8시간은 잡아야 하는 산이다. 눈이 쌓이고 빙판이 지는 겨울이면 산행 시간이 한결 더 길어진다. 포천소방서 119구조대는 사고 수습 후 일요일 여러 대원이 함께 산행해 보았는데, 늘 운동을 하는 대원들임에도 7시간30분이 걸리더라며 겨울 국망봉 산행이 만만찮음을 환기시킨다.

 

[남쪽 협곡 발자국을 등산로로 착각 ]


자신이 오르려는 산의 높이나 산행 소요시간 등 자세한 사전 정보 파악은 겨울 산행에서는 기본이다. 이들은 이 점을 또한 소홀히 했던 것 같다. 조난자들이 정상에 다다른 시각은 결국 오후 5시가 가까와서였고, 이에 이들은 당황한 것 같다고 사고 조사를 맡았던 경찰은 추측한다.


이들은 정상을 지나 신로령 방면 하산길에 접어들었다가 정규 등산로를 따르지 않고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는 북서쪽 협곡으로 내려섰다. 구조대는 “이들은 능선에서 협곡으로 다른 등산객이 잘못 접어들었다가 되돌아선 족적을 보고 제 길인 것으로 착각했다더라”고 전한다. 겨울 산에서는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주능선의 정규 등산로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눈이 날려 쌓이며 족적이 지워졌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능선 남쪽의 발자국은 그대로 남아 있었을 확률이 높다.


사실 이런 실수는 등산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한 비상의류나 랜턴, 간단한 버너와 코펠 등의 준비가 없었다는 점이다. 구조대원들에 따르면, 남자 세 명 모두 비흡연자였기에 이들에게는 불을 피울 간단한 라이터도 하나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바윗덩이 투성이 급경사 계곡 중간에서 결국 탈진한 일행이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한 시각은 오후 5시35분경. 조난자는 “너무 많이 내려와서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길을 모르겠다”며 길 안내를 부탁했다. 2분쯤 뒤 조난자는 다시 전화,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다른 전화로 하는 것”이라며 위치 파악을 부탁했다. 119구조대는 “이 때 전화한 사람이 너무도 침착했고 살려달라고도 하지 않아 그렇게 상황이 급박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곧 해가 저물 시각이라 혹 모를 일이어서 출동을 지시했다”고 밝힌다.


생존자들에겐 이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포천소방서 이동파견소의 대원 1명과 민간인 의용소방대원 3명을 우선 출동시킨 뒤 포천소방서 119대원 7명 중 4명도 현장으로 갔다.


올 따라 눈이 유독 많이 내린 탓에 차량 진입이 되지 않아 국망봉 자연휴양림 입구부터 걸어오르던 구조대는 휴양림 입구로부터 5km쯤 되는 협곡 입구의 주계곡가에서 노갑덕씨를 발견했다. 이때가 오후 7시30분경. “노씨가 횡설수설 하는 등 많이 지치긴 했지만, 서서 걷기에 발자국이 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라고 하고는 위급한 지경에 처했을 나머지 사람들을 찾아 위로 올라갔다”고 파견소 대원들은 말한다.


파견소 대원들은 노씨가 명확히 방향을 짚어주지 못하자 조난자들이 있던 협곡이 아니라 주등산로가 난 신로령쪽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곧장 올라갔다. 한편, 뒤따라 오르던 119대원 4명은 조난 현장인 협곡쪽으로 짚어 올랐다.



[라이터도 랜턴도 하나 없었던 일행]


밤 9시경 구조대는 계곡 상단부에서 이혜숙씨와 그의 아랫동서인 조진형씨 두 여성을 먼저 발견했다. 그러나 이미 조진형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이혜숙씨는 몹시 지친 상태였지만 의식이 있었다. “이씨는 자신도 몹시 지쳤음에도 조씨의 몸을 마사지하며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며, 간혹 스스로 제자리 뛰기를 하여 체온저하를 막는 등 놀라울 정도로 상황에 잘 대처하고 있더라”고 대원들은 전한다.


이씨에게 다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이씨는 막연히 저 위에 있다고 하여 대원 2명은 남아 불을 피우며 이씨를 돌보는 한편 다른 대원 2명은 위로 올라가다가 노갑경씨를 발견했다. 이때가 밤 10시경.


노씨는 이미 몸이 굳어 있었고, 20여m 저 위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노갑순-안기송 부부가 있었다. 노갑순씨도 이미 숨진 상태로 보여 구조대는 안기송씨의 응급처치에 힘을 쏟았다. 이 때 안씨가 가슴이 아프다고 하여 하산 도중 부상을 입었음을 알았다고 대원들은 말한다.


대원들은 우선 안씨를 40m 아래쪽으로 옮겨 조난자들을 한 데 모아 모닥불을 피워 보온조치를 했다. “대원 4명이 의식이 가물거리는 사람 1명을 포함해 조난자 2명을 가파른 협곡을 따라 옮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어 후속 지원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구조대는 자정 무렵 들것으로 안기송씨를 이송하기 시작했다. 이혜숙씨는 상태가 좋아져 걸어서 하산시켰다. 커다란 바윗덩이가 깔려 있고 그 위를 깊은 눈이 덮고 있는 상태라 들것 하산은 늦어졌다. 하산 도중 안씨의 상태를 보아 좋지 않으면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들것을 든 대원이 지치면 곧바로 다른 대원이 교대하는 방식으로 하산을 서둘러 새벽 5시40분 일동국군병원으로 옮겼으나 30분쯤 뒤 안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살았더라면…”하고 구조대원들은 새삼 안타까워한다.


구조대에 의하면 조난자들은 모두 등산화는 신고 있었으나 몇 사람은 복장이 부실한 상태였다고 전한다. 반수가 등산용 겉옷을 입지 않았고, 스패츠는 거의 하지 않았다. 사망한 노갑경씨가 그래도 재킷과 모자 등 제대로 복장을 갖춘 상태였으나 발견 당시에는 옷이 찢어져 무르팍과 엉덩이가 노출된 한편 손에는 얼음덩이가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안기송씨는 캐주얼 점퍼 차림에 쫄바지 얇은 것을 입고 있었다. 다른 조난자 모두 옷가지가 흠뻑 젖거나 얼어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구조대원들은 무엇보다 일행 중 라이터나 랜턴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 특히 안타까웠던 점이라고 말했다. 협곡 중간엔 잔 나뭇가지가 많았다. 그러므로 라이터가 있었다면 불을 피워 보온도 하고 휴식도 취하며 조난 현장도 좀더 빨리 알려 어떻게든 살아날 수 있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수많은 등산객들 사고 무방비 상태]


생존자들은 “우리는 평소 함께 등산을 즐겨온 가족으로서 이 근처의 산들을 여러 군데 올라보았는데, 국망봉만 못 가보았기에 이 날을 택해 올랐던 것”이라고만 말한 뒤 “사고를 당한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달라”며 더 이상 전화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 국망봉 조난자들에 대해 어쩌다 그런 무모한 산행을 했느냐고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그러나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한 보온의류나 보온구를 지니고 겨울 산을 오르는 사람을 요즘 근교 산에서 잘 살펴보면 그렇게 많지 않다.


한겨울 깊은 산중에서 발목이라도 접질려서 걷지 못하게 되어 속절없이 밤을 지새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약초꾼들처럼 길고 가는 나뭇가지를 열십자로 묶어 세우고 그 위에 펀초나 큰 비닐을 덮어 씌운 뒤 안에서 작은 가스버너만 피워도 금방 훈훈해진다. 요즘은 초소형 고기능인 가스버너와 펀초는 어렵잖게 구할 수 있다. 일행 중 초심자가 있다면 이런 준비는 필수다.


하도 산불조심에 화기지참 금지를 강조해서인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기본을 무시하고 가벼운 배낭만 달랑 맨 채로 수십 명이 북풍한설 속을 한두 명 산행리더만 뒤따르는 아찔한 방식의 산행이 유행하고 있다. 대형 산인 국립공원에서 이런 겨울 산행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산림청은 이제부터라도 12월~3월에 걸친 한겨울에 한해서만큼은 위급시를 대비한 기본 장비를 지참토록 홍보해야 할 것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잃었음을 안 그 순간 발길을 되돌려 주등산로를 찾아갈 것, 산행 도중 다쳐 하산이 늦어질 상황을 대비한 랜턴, 보온의류, 버너, 코펠, 비상식은 반드시 챙길 것. 이번 국망봉 조난사고는 교과서적이라 하여 등한시하기 일쑤인 이와 같은 등산 기본수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우쳐주고 있다.


포천 119구조대에 따르면, 포천 국망봉에서는 2년 전에도 정상에서 부부가 조난, 동사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같은 산에서 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