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 : 단기 4340년(2007) 6월 6일 (수 ; 현충일)
산행인원 : 고독한 방랑자 박달령 혼자서...
산행경로 : 금산읍 계진리 족실마을 -> 선공암 -> 계곡 -> 수리넘어재 갈림길 삼거리 주능선 -> 진악산
(732.3m) -> 737봉 -> 도구통바위 -> 영천암 -> 보석사 -> 주차장
6월 6일 현충일 휴일에 영동에서 가까운 인접 금산군 금산읍과 남이면 경계지역에 우뚝 솟은 충남에서
네 번째로 높다는 진악산을 오르기로 하였다.
충남 금산군은 충북 영동군과 동서로 나란히 이웃한 지역이기는 하나, 왕래하는 대중교통편이 없어 가까
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부득이 자가운전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진악산 산행을 하여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하산을 하여 보석사에 들렀다가 큰길로 나가는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에는 버찌가 주렁
주렁열렸는데 반은 검게 익어 있고, 반은 빨간 색으로 아직 덜 익어 있었다.
문득 어렸을 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어렸을 때 시골은 너나 없이 거의 모두가 X구녕이 찢어지게 가난과의 전쟁을 벌이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처럼 군것질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뛰놀다 보면 배는 쉬이 고파오니 아이들은 집안의 쌀독에서 생쌀을 몰래 훔쳐 바지 주머니에 담고 다니며
조금씩 꺼내어 씹기도 하고, 칡뿌리도 캐어먹고, 뽕나무에서 오디도 따먹고, 누룽지를 바지 주머니에 담고
다니다 꺼내어 씹어먹기도 하는 등 간식거리가 궁하였었다.
그래서 초여름에 길가 벚나무 가로수나 산벚나무에 열려 까맣게 익어가는 달콤한 버찌 열매는 어린 아이
들의 맛 좋은 군것질꺼리였다.
▼ 주렁주렁 열린 버찌가 반은 익고 반은 덜 익었다.
▼ 벚나무에 주렁주렁 흐드러지게 열린 추억의 버찌
▼ 까맣게 익은 열매만 골라 한 주먹 따서 한 입에 털어넣고 우물우물 씹으면 꿀맛처럼 달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버찌를 실컷 따서 먹고 난 다음 웃을 때 입안의 혀가 새까맣던 꼴을 서로 보면서 낄
낄거리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 버찌를 따먹고 혀를 내밀었을 때 버찌의 물이 새까맣게 혀에 물든 모습
▼ 그리고 손바닥에 묻어있는 버찌 물이 피로 얼룩진 것 같은 것도 어렸을 때의 추억을 떠올린다.
- 각설하고....
08:00에 차를 몰고 영동을 출발하여 68번 도로를 따라 금산군 제원면을 거쳐 금산읍에 도착한다.
금산읍에 도착하여 진악산 진입로를 찾으면서 진땀을 흘리게 된다.
영동군의 도로 이정표만 생각하고 금산읍을 찾은 것이 차질을 빚게 될 줄이야.....
영동군에는 천태산, 백화산, 민주지산 들머리인 물한계곡 등등, 유명한 산행지는 도로 이정표에 초컬리트
색으로 표시하여 20Km 이내에서는 이정표만 보고서 산행 들머리를 찾아가도록 해주고 있기 때문에 금산
군에서도 유명한 진악산 안내는 도로 이정표상에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금산군, 읍내의 도로 이정표에는 진악산을 비롯한 등산로를 안내하는 문귀는 어느 이정표에도 없
었다.
금산읍내를 무작정 눈앞에 나타나는 도로를 따라 3바퀴를 돌아 4바퀴째 뱅뱅 도는 순간 어느 지점인지는
모르겠으되 길가에 손바닥만한 "진악로"라고 쓰인 페인트 색깔이 거의 퇴색되어가는 자그마한 안내표지
가 눈에 보였다.
그래서 순간 '이 진악로만 따라가면 진악산 가는 길을 만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운행을 하여
한참 가니 휴대한 지도에 표시된 "상류교'라는 다리가 왼쪽 좌측 길로 눈에 보였다.
▼ 진악산 가는 방향의 상류교
(지도상의 목표지점을 이제야 찾았다. 서서히 좌회전하여 상류교 다리를 건넌다.)
▼ 상류교 다리를 건너자 마자 왼쪽에 보이는 장승들...
▼ 그리고 바로 나타나는 4거리에서 때마침 만난 주민에게 물어 좌회전하여...
▼ 이름 없는 다리를 또 건너고...
▼ 다시 3거리에서 우회전하면...
▼ "인삼골 건강마을" 과...
▼ 선공암, 관음사, 그리고 복천암 등의 안내표지판을 지나 한참을 진행하면...
▼ 족실마을과 서당골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 3거리에 접근하면...
▼ 오른쪽(족실마을) 길이 진악산 가는 길이라고 안내하는 표지판이 서 있다.
▼ 족실마을 회관 겸 경로당 옆의 넓은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10:00에 비로소 산행을 시작한다.
▼ 경로당에서부터 걸어서 길을 따라 오르면 족실길 72번 표찰이 붙은 집 문앞을 지나고...
▼ 다시 나타나는 삼거리 밭둑가에는...
▼ 오른쪽이 진악산 가는 길이라고 안내표지가 서 있다.
▼ 복천암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나면 복천암쪽으로 가지 말고 직진해야 한다.
▼ 한참 직진하면 요즘 새로 지은 선공암 건물이 나타나는데 절로 들어서기 전에 우측길로 오르면...
▼ 표지기가 많이 걸린 나무가 나오고 조금 진행하면...
▼ 길은 한 사람 걸어갈만한 정도로 좁아지면서 호젓한 산길이 된다.
▼ 계곡길에는 옛날 집터였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 한가로이 망중한을 즐기는 두꺼비도 보인다...
▼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무속인의 기도터 주변은 여기 저기 널린 쓰레기로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 기도터의 샘물...
▼ 쓰레기가 널린 기도터 풍경
▼ 기도터의 이 돌탑 옆을 지나 조금 오르면...
▼ 또 다른 기도터와 쓰러져가는...
▼ 움막 두채가 나타나고, 그 옆을 지나 몇 발짝 오르면...
▼ 방치된 움막이 또 한 채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자 산길은 비로소 깨끗하고 호젓해진다.
산길은 사람이 많이 다닌 듯, 뚜렷하나 경사가 40 ~ 45도 이상이나 되는 급한 오르막을 진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고 한참을 올라야 수리넘어재에서 오르는 능선길 3거리와 만난다. 수리넘어재에서 올라오는 길은
이쪽 선공암에서 오르는 길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닌 듯 더 넓다.
▼ 이 삼거리 능선에서 좌회전하면 성터 비슷한 돌담이 나오는데 여기가 진악산 정상이다.
▼ 논산소방서 금산소방파출소 119 구조 1번 안내표지도 나타나고...
▼ 논산소방서 무선기지국 안내판도 보인다.
▼ 논산소방서 무선기지국 시설
▼ 누군가 망치로 쳐서 모서리를 깨부순 것 같은 생각이 들게하는 진악산 정상 삼각점
▼ 진악산(해발 732. 3m) 정상 표지석
(표지석 뒤로 조망되는 금산 읍내 시가지는 개스가 끼어 잘 보이지 않는다)
▼ 진악산 정상보다 높다는 737봉을 향하여 남진하다 되돌아본 진악산 주능선
▼ 진악산 정상에 서서 남쪽을 보았을 때 진악산보다 더 높아보이는 이 봉우리가 737봉이다.
▼ 737봉은 진악산(732. 3) 정상보다 4. 7m가 더 높은데 아무 표지도 없고 돌탑만 서 있다.
(키 크다고 1등하는 게 아닌가 ?)
▼ 돛단배의 돛처럼 보이는 도구통바위.
마침 지나가던 금산읍에 사시는 산꾼이 있어 이 바위가 절구통 같아 보이지 않는데 왜 이름을 도구통바위
라 붙였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요 아래 북동쪽 성곡마을에서 바라보면 절구통처럼 보여서 그랬다고
한다.
▼ 도구통바위 옆에 유치환(호 : 청마) 시인의 "바위" 라는 시를 써 놓은 간판이 나타난다.
▼ 도구통바위 밑에 금산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
▼ 남쪽에서 바라본 도구통바위의 모습
▼ 도구통바위에서 남쪽 보석사 계곡으로 한참 내려서면 나타나는 영천암 갈림길 삼거리
▼ 영천암 갈림길에 세워진 이정표
▼ 영천암에서 비포장도로를 1 Km 쯤 따라 내려서면 보석사 정문인 범종각이 나타난다.
▼ 범종각 밑을 들어서서 뒤돌아본 범종각
▼ 넓은 마당가의 선원(禪院)
▼ 대웅전
▼ 대웅전 옆의 전각
▼ 보석사 앞길 맞은편에 서있는 은행나무 안내표지석
▼ 은행나무 유래 안내표지판
▼ 보석사 은행나무
영규대사 의승병장 비각은 사진촬영 후 조작을 잘못하여 사진 저장에 실패하였다.
보석사는 임진왜란 직전 승병장 영규대사가 수도하던 사찰이라 하여 그 연고로 비각이 세워졌다 한다.
임란 당시 서산대사는 선조왕으로부터 "8도 승군 도총섭"이라는 직함의 승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기는
하였으나 이미 70고개를 넘어 80을 바라보는 노스님이었고, 실제 전투는 세분의 승병장이 지휘를 하였
으니 그 3대 승병장은 사명대사, 처영대사, 영규대사 등이었으며 그 중 한분인 영규대사는 500여 명의
의승군을 일으켜 거병을 함으로써 항일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영규대사는 거병 초기에는 관군을 도와 청주성 탈환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왜군들이 경상도에서 전
라도로 향하는 길목인 금산땅을 지키기 위해 의병장 중봉 조헌선생과 연합군을 조직하고 권율장군을 기
다리다가, 약속한 기일에 서로 만나지 못하여 조헌선생의 의병과 함께 금산에서 왜군과 수일간 혈전 끝
에 옥쇄하니 현재 금산의 700의총이 그 의병 전사자 묘소이다.
오늘이 현충일이니 항일 유적지를 찾아 답사하는 뜻깊은 산행이 된 셈이다.
▼ 은행나무 앞을 지나 조금 내려가면 단청이 칠해지지 않은 보석사 일주문을 지난다.
▼ 보석사 주차장 입구에 세워진 진악산 등산 안내도
보석사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내려가면 폐교된 석동초등학교 앞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서 114에 금산읍
개인택시 사무실 전화번호를 물어 택시를 불러 타고 족실마을 회관까지 14,000원 택시비를 지불하고
하차하여 산행을 마감한다. 이로써 충남에서 4번째로 높다는 진악산을 오르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씻어
본다.
진악산은 산행 도중 만난 산꾼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외지에서 오는 산행객도 많다는데, 금산읍내나
남이면 일대에 서있는 도로 이정표에 진악산 들머리를 안내하는 표시가 전혀 없어 자가운전을 하는 이들
에게 많은 불편을 주고 있음에 대하여 금산군청에서 배려하여야 할 문제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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