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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9화 -

by 박달령 2007. 10. 23.

♥ 서로 마주 볼뿐 할말을 잊다. (相顧無言)

어떤 사람이 이튿날 산소에 벌초하러 가려고 여종에게 새벽밥을 지으라 분부하고 안방에서 잠을 잤다.

 

이튿날 일찍 여종은 새벽밥을 지어놓고 상전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나 동녘 하늘이 밝아와도 아무런 동정이 없어 조용히 창밖에서 엿들어 보니 상전의 부부는 안방에서 교합(交合)을 하느라 한창이었다.

여종은 감히 조반을 드시라는 말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면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오른다.

 

그러자 집안의 닭들이 뜰 아래에 내려와 암수가 교합을 시작 하였다. 이에 여종이 분기가 탱천하여 교합하는 닭들을 걷어 차면서 왈,

"너희 닭들도 산소에 벌초 가려고 이런짓을 하느냐 ?"

일갈하니 상전 내외가 안방에서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 마주 볼뿐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