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비의 버릇은 종의 고민(士習慣奴壅癖)
한 선비가 두 벗과 만나 더불어 앉아 있다가 선비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한가지 고상한 버릇이 있기 마련이니 우리 각자 말해 보기로 하세."
한 벗이 말했다.
"나는 바야흐로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 나이 젊은 몰이꾼 몇 명과 더불어 팔뚝에 해동청 보라매를 올려놓고 나아가 산마루에 서서, 방울을 찬 개를 놓아 채색 빛 깃털에 아름다운 무늬를 가진 꿩을 찾아 수풀에서 날아오르게 하면, 금빛 눈동자와 칼 같은 깃을 가진 매가 번개처럼 날아 비단결 같은 꿩의 목을 푸른 절벽이나 푸른 시냇가에서 잡아채어 날아오면 꿩을 수습하고 다시 팔뚝에 올려놓지. 이것이 나의 버릇이네."
다른 한 벗이 말했다.
"나는 천금을 쏟아 한 마리 준마를 마련했네. 용 같은 몸 봉황 가슴에 안개·바람 같은 갈기를 휘날리며 귀는 마치 깎아놓은 대쪽같고 눈은 샛별 같지. 거기에 금색 굴레를 매달고 옥 안장으로 단장한 뒤, 손에 산호로 만든 채찍을 들고 번화한 거리를 치닫지. 이것이 나의 버릇일세."
이윽고 선비가 말했다.
"나에게도 한가지 버릇이 있는데, 자네들이 가진 버릇과는 다르네."
두 벗이 말했다.
"무슨 버릇인가 ?"
"나에게는 종(奴婢)이 있는데, 그의 아내가 무척 아름답네. 진실로 진흙탕에서 피어난 백련 같고 두엄자리에서 피어난 흰 꽃 같지. 그녀를 대하면 마음이 미혹해지고 그녀를 생각하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라네. 밤이 깊어 사람의 자취가 조용해진 곳에서, 북두칠성이 기울 시각에 남몰래 그녀와 더불어 즐기니, 그 즐거움이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네. 이것이 나의 버릇일세."
이 때 선비의 종이 이 말을 몰래 엿듣고는 급작스럽게 앞으로 나아와 아뢰었다.
"주인 선비님의 버릇이 소인에게는 진실로 옹벽(壅癖)이옵니다."
대개 "옹벽"이라 함은 속된 말로 몹시 고민스럽다는 뜻이었으니 이 말을 들은 두 벗은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77화 (0) | 2007.10.16 |
---|---|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78화 (0) | 2007.10.16 |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80화 (0) | 2007.10.16 |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81화 (0) | 2007.10.16 |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82화 (0) | 2007.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