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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190화

by 박달령 2007. 10. 9.

♥ 박색이었더라면 틀림없이 침을 뱉었을 것이다. (若汝妻之薄色 方伯必唾)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판서에까지 오른 송언신은 위인이 흉활(兇猾)하고 탐비(貪鄙)하여 음패(淫悖)스러운 행실이 많았다 하며 호색하였다.

 

스스로 말하기를 평생에 반드시 여색(女色) 일천(一千)을 채우리라 호언하고 비록 병든 할미나 한쪽 얼굴에 혹이 달린 추녀라도 가리지 않은 까닭에 물건 파는 여자나 나물 캐는 아낙네라 해도 감히 그 동네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일찍이 강원감사가 되어 관동지방을 순시하며 돌다가 원주(原州)의 흥원창(興原倉)에 이르렀을 때, 관아의 객사는 병화(兵火)로 불타 없어졌으므로 이방(吏房)의 집에서 묵게 되었다.


이방에게는 과년한 딸이 있었는데 송언신이 마음을 두고 곁눈질을 하는데도 응하지 않았다.


이날 밤에 언신은 몰래 그들 모녀가 누운 곳을 눈여겨 두었는데 딸이 총명하였던지라 언신이 눈독들이고 있는 뜻을 알아채고서 어머니와 누운 자리를 바꾸었다.

 

밤이 깊어 언신이 옷을 추켜 잡고 들어가 그 어머니를 딸로 알고 덮치자 어머니가 도둑으로 여기고 소리를 질렀는데 언신이 급히 입을 막으면서 말했다.


"나는 감사이지 도둑이 아니다."
어머니는 언신의 위세에 겁먹어 언신이 하자는 대로 응해 주었다.

 

그 뒤에 이방이 이웃 사람과 싸우는데 이웃 사람이 이 일을 들어 꾸짖었다.
"너의 하는 짓이 이러하니, 네 아내를 방백(防伯)이 겁탈하여 마땅하지."


그러자 이방이 말하였다.
"내 처가 예쁘니까 감사가 가까이 하였지, 네 처같이 박색이었더라면 감사가 틀림없이 침을 뱉었을 게야."


듣는 자들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