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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想·雜談

『강도와 사다리의 이론』-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by 박달령 2008. 1. 1.

제목 :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만행
부제(副題) : [식민지배기간 일본의 한반도 수탈 현황 통계자료]
글쓴날 : 2001년 7월 24일

 

자료 게재문헌 : 민족문제연구소 발행 계간지 "민족문제연구" 1996년 봄호
자료 정리자 :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김민철
자료 출처 : 조선총독부 발행자료,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의 보관자료,
                 재일사학자 박경식 저서 "재일조선인관계자료 집성"
                 1954년 한국 외무부 작성 "대일배상 요구조서", 기타

 

일본이 35년간 한국을 식민통치하면서 한국으로부터 수탈하여 간 현황을 통계자료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한다.

 

[1] 인력 수탈

    1. 군(軍) 관계 강제동원
       육군 특별 지원병  약  17,000 명
       강제 징병         약 210,000 명
       학도 지원병            4,385 명 (대학생)
       해군 특별 지원병  약  22,000 명
       군속(軍屬)         약 150,000 명 (남양군도 등 전투지역의 징용보국대)
       여자정신대(挺身隊) 약 200,000 명 (처녀공출 종군위안부)

        [합 계]          약 603,385 명

 

    2. 노동력 강제동원
       석탄광산          약   600,000 명
       금속광산          약   150,000 명
       군수공장          약   400,000 명
       토목건축 분야     약   300,000 명
       항만운수 분야     약    50,000 명
       
       [합 계]         약 1,500,000 명

 

       ○ 당시 노동자 평균임금이 월 100엔이었으나, 강제저축, 강제보험, 협화회 가입비, 국방애국헌납

           금, 물품구입대, 식대 등 갖가지 명목으로 공제 수탈하고 실제로는 월 10 - 20엔 정도 지급 후

           해방이 되자 강제저축과 보험 등은 지급 불능이 되어버린다.  (미지급 임금총액은 약 13억 4,500

           만엔으로 55년전인 1945년 당시의 미화(美貨)로 환산하여 약 9,000만 달러에 해당한다.)

 

[2] 물자 수탈
    1. 농산물 :  미곡 공출액                 184,932,920 엔
                       맥류(밀,보리 등) 공출액        4,767,570 엔
                       면화(목화솜) 공출액            2,336,282 엔

    2. 축산물 :  우피(소가죽) 공출액          39,166,660 엔
                       축우(식용 소) 공출액        218,056,760 엔
                       건초(말 사료, 기타용도)       41,100,997 엔

 

    3. 임산물 공출액                        493,057,029 엔
    4. 수산물 공출액                       1,011,450,763 엔
    5. 지하자원(광산물 등) 수탈             4,273,937,582 엔
    6. 유기(총탄제조용 놋쇠그릇등) 공출액     89,684,635 엔
    7. 기타 전쟁으로 인한 물적 피해액      8,430,136,612 엔 
 
     [합 계]                           14,788,627,811 엔
    (55년전 1945년 당시의 미화(美貨)로 환산하여 약 10억달러 해당)

 

[3] 자금 수탈

    1. 재정부문
       전비(戰費) 징수                        약  17억 8천만 엔
       식민통치를 위한 일본인 일반관리 급여  약  15억 엔
       사법경찰 유지 급여                    약   3억 7천만 엔
       도로, 항만, 군사시설 확충비            약   4억 엔
       공채 발행 후 지급불능                 약   7억 5천만 엔
       [소 계]                               (약  48억엔)

 

    2. 금융부문
       일본계 유가증권 지급불능              약 106억 2천만 엔
       일본인에게 대출 후 회수불능           약  58억 엔
       대일 환거래 잔고 지급불능             약  30억 2천만 엔
       보험회사 보험적립금 지급불능          약   4억 7천만 엔
       일본국고금으로 유출액                 약  12억 6천만 엔
       조선인 보유 사용불능 일본화폐         약  15억 1천만 엔
       기타 유출액                           약   8억 9천만 엔

       [소 계]                               (약 255억 엔)

 

   [자금수탈 합계]                           약 303억 엔
    (55년전 1945년 당시의 미화(美貨)로 환산하면 약 20억 2천만 달러)
    (위 자금수탈 총액 303억엔은, 일제 35년간 조선의 GDP 총액 약 550억엔 중 55%에  이르고 있어 그

    야말로 『강도질』을 해 갔다는 표현이 거짓이 아님을 웅변하여 준다.) 

 

※ <일제 수탈의 총합계액> 노임착취 + 물자수탈 + 자금수탈 = 31억 1천만 달러(1945년 당시 가치)

 

[4]  일제가 위와 같은 수탈을 목적으로 주로 일제 초기에 사회간접자본시설(철도, 항만, 도로, 전력시설

       등)을 위하여 한반도에 유입 투자한 금액은 약 70억엔(1945년 당시 미화 환산액 약 5억달러)에 불

       과하다.  혹자는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의 허구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강도와 사다리의 이론』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강도와 사다리의 이론> : 강도가 사다리를 가져다가 남의 집 담벼락에 걸쳐놓고 담을 넘어 들

          어가 집안 사람들을 묶은 다음 재물을 강탈하여 대문을 열고 도망가면서, 몇푼 값어치도 안되는

          대신 되가져가기에는 거추장스럽기만 한 사다리를 그냥 두고 가버렸다. 재물을 다 털린 집에서는

          강도가 버리고 간 사다리를 주워다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집(한국)에서는 사다리(철도, 항만시

          설, 도로, 전력시설 등)를 놓고 간 강도(일본)에게 사다리를 잘 쓰고 있다고 감사하여야 하는가 ?
          아니다. 한반도는 일본의 만주, 중국대륙 정복을 위한 병참기지이자 군사적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하며 무자비한 수탈을 강요당한 것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5]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일제 수탈 총액 약 31억 1천만달러 - 일제의 한반도 투자액 약 5 억달러

       = 약 25억 1천만 달러』가 1945년 당시 미화로 환산한 순 수탈액이다.

 

       물론 이 액수에는 군(軍) 관계 인력동원에 따른 인건비와 배상금, 위자료 등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만약 이 분야까지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몇 배가 될지 아니면 몇 십배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분야는 주관적 감정만으로 계산 할 수 없는데다 객관적인 계산기준 또한 애매하여 계산

       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일 뿐이다.  특히 군 관계 인력동원 중에서도 일본군의 정액 배설용기 역할

       을 하였던 여자 정신대(挺身隊 ; 종군 성노예)의 지옥의 고통과 같았던 끔찍스러운 피해를 금전으로

       환산한다면 과연 얼마가 될 것인가 ?


       위와 같은 수탈에 대하여 그 20년 후인 박정희 정권 당시 1965년 한일회담을 통하여 받아낸 배상

       은 무상 3억 달러가 전부였고, 그 한일회담의 주역을 맡았던 JP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다.  이 배상

       액은 순 수탈액 25억 1천만달러에 대한 20년 간의 이자도 안되는 소위 『껌값』에 불과한 액수였

       던 것이다.

 

  ※ 누군가 한 말이 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