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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산행

산속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홍천 아미산

by 박달령 2009. 10. 18.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있는 아미산(峨媚山)을 지난 7월부터 올라 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으나 여의치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단기 4342년(2003) 10월 17일 토요일로 날을 잡고 기다렸으나, 비가 내린다고 하는 일기예보에 하루를 연기하여 10월 18일 일요일로 계획을 변경한다.

 

▼ 아미산(峨媚山) 산행지도

 


드디어 단기 4342년(2009) 10월 18일 새벽 03:30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세수하고 옷을

주워입고 배낭을 메고 04:15에 집을 나선다.

버스 정류장에 나가서 04:30에 수원역을 출발하는 사당행 7770번 좌석버스를 기다리니 같은 사당행이기

는 하되 777번 입석버스만 지나간다.

 

한참을 기다려도 좌석버스는 오지 않고 04:40에 다시 777번이 지나간다.

더 기다리니 04:50에 777번 입석버스가 오기에 세워서 승차한다. (버스요금 1,500원)
버스 기사에게 물었더니, 7770번 좌석버스는 일요일에는 04:30 첫차를 운행하지 않고 05:30에 첫차를 운행한다고 한다. 더 기다렸다가 시간만 까먹을뻔 했다.

 

입석버스 777번은 좀 더디긴 해도 이른 새벽이라서 비교적 빨리 달려 사당역에 05:30에 도착한다. 지하철역에 들어가 강변역까지 1,100원에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하여 개찰구를 통하여 2호선 대합실로 들어가 조금 기다리자 05:42에 잠실방면 전동열차가 들어와 승차한다.

 

05:55 지하철 전동열차가 강변역에 도착하여 하차 후 길 건너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홍천행 버스시각을 물어보니 06:30에 있다고 한다. 5,800원에 버스표 1장을 구입한 후 터미널 1층 식당에 들어가 해장국(4,500원)을 시켜 아침 요기를 한 후 양갱 6개를 4,200원에 사서 배낭에 넣고 버스에 승차하니 06:30 정시에 출발한다.

 

버스는 홍천 터미널에 07:45에 도착한다. 매표창구에 서석행 버스시각을 물어보니 08:00에 첫차가 있다 한다. 4,200원에 버스표 1장을 사서 시내버스에 승차하고 기다리니 08:00에 출발한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산행객 일행 두 사람이 타고 있기에 나처럼 아미산을 가려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들은 중도의 홍천군 동면 노천리 삼거리 공작산 입구에서 하차하면서 기사에게 이 정류장에 저녁때 홍천행 버스가 몇시에 나오느냐고 물으니 기사 말이 서석에서 15:30에 출발하니 15:45까지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 홍천 터미널

 


버스는 계속 달려 08:40경에 서석면 종점에 도착한다.
신발끈을 조이고 기타 준비를 마친 후 매표하는 가게에 들어가 오후에 홍천으로 나가는 버스 시각표를 살펴보니 15:10, 15:30, 16:30, 17:00, 18:00, 19:00 등이다.


  

▼ 서석  버스정류장

 

 

서석 버스종점을 출발하여 고양산으로 가기 위하여 56번 도로를 따라 서석파출소 앞을 지나 용두안1교를 향하여 걷는다. 도중에 용두안1교 못미친 지점에 <풍암2리 정류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미리 알았더라면 여기서 하차하여 약 1. 5 Km 정도 발품을 팔지 않았을터인데 억울한 생각이 든다.
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은 기사에게 미리 부탁하여 풍암2리에서 하차하면 되겠다.

 

 

▼ 고양산을 가기 위해 서석파출소 앞을 지난다.

 

 

▼ 고양산을 가기 위해 내려야 하는 서석 못미쳐 있는 풍암2리 정류장

 


용두안1교를 건너 조금 가니 길 건너편에 체육공원 비석이 서 있는 곳에 체육시설과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조금 더 가니 용두안2교를 건너게 되고 건너자 마자 춘천, 구성포 방면의 직진길에서 상남, 내촌 방면으로 444번 지방도로가 갈라지는 삼거리 도로표지가 서 있다.

 

이 도로표지를 지나치지 않고 그 직전에 우측으로 갈라지는 콘크리트 포장 제방길로 접어들어 진행하면 멀리 풍암교가 보이고 그 위에 고양산도 보인다. 한참 걸어서 풍암교를 건너면 왼쪽에 고양산 정상 2. 3 Km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따라 좌회전하면 제방길이고 더 걸어가면 오른쪽에 인삼밭이 있고 제방길 끝에서 약간 우회전하면 고양산 1. 8 Km 이정표가 서있는 곳이 바로 산행 들머리이다.

 


▼ 용두안1교

 

 

▼ 체육공원

 

 

▼ 용두안2교

 

 

▼ 56번 도로와 444번 도로가 갈림길 이정표(이 이정표 직전에서 우측 제방길로 가야 한다)

 

 

▼ 콘크리트 포장이 된 제방길

 

 

▼ 멀리 보이는 풍암교(좌하단)와 고양산, 그리고 장막마을

 


▼ 아미산도 보인다.(우측 끝)

 

 

▼ 풍암교.

 

 

▼ 풍암교에서 바라본 내촌천

 


▼ 풍암교를 건너자 마자 왼쪽에 서있는 고양산 이정표(이 곳에서 제방길로 들어서게 된다.)

 


▼ 고양산 들머리로 가는 제방길(왼쪽이 내촌천, 오른쪽은 인삼밭)

 

 

▼ 산행 들머리

 

 

▼  들머리의 이정표

 


09:40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마사토가 깔려 있기는 하나, 어제 약간의 비가 내려 땅바닥이 축축해서인지 미끄럽지는 않다. 한참 오르니 경사가 약간 급해지면서 스테인리스 말뚝을 박고 굵은 밧줄을 연결한 시설물이 길게 나타난다.

이 시설은 아마 홍천군청에서 한 모양이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스테인리스 제품 말뚝을 땅에 박지 않고 살아있는 나무에 밧줄을 비끌어매서 나무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이렇게 산나무에 비끌어맨 밧줄은 수시로 군데군데 무수히 나타난다.



▼ 고양산 오르는 길

 

 

▼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안전시설

 

 

▼ 밧줄 위에 앉아있는 잠자리

 

 

▼ 하산길만 가리키는 이정표

 

 

▼ 살아있는 나무를 괴롭히는 밧줄

 

 

▼ 고양산 오름길


 

고양산으로 향하는 주능선 가까이 이르니「천조단」이라고 쓴 자그마한 비석이 바위 위에 서 있다. 뒷면에는「나라민족 화합단결」「단기 4331년 무인년 윤오월 29일 경오 신유 8월 8일 신시」「청남 안승순」이라고 쓰여 있다.  제단을 조성하고 올려놓은 비석이 아니고 바위벼랑에 세워놓은 것인데 무슨 목적으로 조성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금부터 11년 전에 세워진 비석이다.


 

▼ 천조단 비석

 

 

▼ 천제단 비석의 뒷면

 

 

▼ 하산길만 가리키는 이정표

 

 

▼ 전망이 트인 곳에서 보이는 고양산 맞은편 산

 


▼ 동남쪽에 펼쳐진 능선

 


능선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지만 남쪽과 동남쪽으로만 전망이 트인다.
고양산 정상 0. 9 Km 앞둔 지점 4거리에 이르니 벤치가 놓여있고 이정표가 서 있다.
내가 걸어온 길은「풍암리 장막」마을이 1. 4 Km이고, 또 다른 길은「풍암리 장막」마을이 1. 3 Km로 표시되어 비슷한 거리인데 1. 3 Km로 안내된 길은 내가 올라온 길보다 상태가 양호한 듯 보이지만 들머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능선 북쪽 비탈 아래 방향으로「샘터(무궁화나무)」0. 5 Km로 표시된 곳은 물 보충이 필요하지 않아 가지 않기로 한다. 이 샘터는 무궁화나무 자생지(自生地)라 한다.
내가 만약 식물학을 연구하는 처지였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일 것이다.

 

▼ 길가에 놓인 벤치

 

 

▼ 사거리 이정표 - 1

 

 

▼ 사거리 이정표 - 2

 

 

▼ 사거리 이정표 - 3


 

▼ 내가 올라온 길과 다른 장막마을에서 오르는 상태가 더 좋은 길

 


고양산 정상 0. 5 Km 앞둔 지점 4거리에 이르니「샘터(무궁화나무)」0. 2 Km로 표시된 이정표가 서 있다. 여기서부터 능선길은 경사가 급해지고 암릉이 자주 나타나 길이 험해진다.

고양산 정상에 이르니 10:50이다.

 

고양산(675. 2m) 정상에는 표지석은 없고 이정표에 정상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
남동쪽으로만 전망이 트이고 다른 방향은 울창한 수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정상 언저리에「동학혁명의 얼이 깃든 서석」이라고 써서 서석농협에서 세운 자그마한 팻말이 이채롭

다.  이곳 서석면 일대가 동학혁명군의 격전지였었다.

 

서석면사무소 북쪽 100m거리인 자작고개는 1894년 강원도 내륙지역 동학농민군들이 관군과 가장 치열하

게 싸웠던 장소다. 1893년 3월 보은에서 촉발된 동학농민운동에 강원도에서는 관동 대접주 이원팔, 인제

대접주 김치운, 홍천 대접주 차기석 등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듬해 1894년 초 호남지역에서 녹두장군 전봉준이 주도한 제1차 동학농민전쟁이 났을 때 아직 강

원도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 강원도에서는 그 해 9월4일 강릉부가 동학농민군에 점령당한

뒤부터 11월까지 농민군 활동이 전개됐다.

 

1894년 가을 강릉, 양양, 원주, 횡성, 홍천 등 5개읍 접주로 불리던 차기석이 10월13일 밤 홍천군 내촌면 물

걸리 동창을 습격해 불태웠다. 이후 10월 중순을 넘기면서 관군과 지배세력들은 농민군에 적극적으로 반격

하게 된다. 이에 대항하던 농민군은 10월21일 화촌면 장야평(장평)에서 지평 현감 맹영재가 이끄는 포군(砲

軍)을 갖춘 세력과 맞섰다.

 

이때 30여 명의 희생자를 남기고 서석으로 후퇴한 농민군은 10월22일 추격해온 횡성 현감 유동근이 끌고

온 관군과 맹영재가 이끌고 온 민보군(民保軍)과 맞서 이곳 진등(자작고개)을 중심으로 처절한 싸움을 벌였

으나 역부족으로 수백 명의 희생자를 남겼다.

 

11월9일부터 11월14일 사이에는 내면, 창촌, 원당, 청도, 약수포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벌였고, 이후부터 농

민군은 오대산과 계방산 험준한 산악지대로 숨어들어 마지막까지 항전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바로 수백 명의 희생자가 난 자작고개에서 1976년 새마을사업으로 길을 닦던 주민들이 수많은 유해를 발견하게 됐고, 이듬해인 1977년 1월 주민들과 홍천군에서 뜻을 모아 동학혁명위령탑을 세웠으며, 강원도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양산에서 아미산까지 4. 5 Km로 이정표에 안내가 되어 있다.
나무그늘은 춥고 하여 햇볕이 잘 드는 고양산 정상에서 도시락을 꺼내어 비빔밥으로 이른 점심요기를 한다. 그리고 11:15에 고양산을 출발하여 아미산을 향하여 능선길을 간다.

 


▼ 고양산 정상 0. 5 Km  앞둔 지점의 샘터 갈림길 삼거리

 

 

▼ 자주 나타나는 암릉

 

 

▼ 길 옆의 절벽

 

 

▼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들판

 

 

▼ 고양산(高陽山 ; 675. 2 m) 정상의 삼각점

 

 

▼ 고양산 정상의 이정표

 

 

▼ 이정표 밑에 붙인 산행지도(이정표마다 이렇게 지도를 붙여놓고 현위치를 표시하여 놓았다.)

 

 

▼ 고양산 정상에서 조망되는 동남쪽 능선

 

 

▼ 고양산 남쪽의 산과 능선

 

 

▼ 북서쪽으로는 전망이 막히게 하는 나무들

 

 

▼ 서석면이 동학혁명 전쟁터였음을 말하는 표지판

 

 

▼ 아미산으로 가는 길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 안부에 이르니 아미산 정상 3. 7 Km, 「풍암리 장막」마을 2. 2 Km라고 쓰인 갈림길 삼거리에 이른다.  그러나 여기는 덕밭재가 아니고 장막마을로 내려가는 길만 있는 곳이다. 덕밭재를 가려면 큰 봉우리를 더 넘어가야 할 것 같다.

 


▼ 덕밭재 직전의 안부 삼거리 이정표

 


봉우리 하나를 넘어 상당히 경사가 급한 길을 한참 내려가니 덕밭재가 나타난다.  아미산이 3. 1 Km 남았고, 남쪽으로는 풍암2리가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여기서부터 850봉까지는 2 Km의 거리에 약 350m를 올라서야 한다.

 

덕밭재를 출발하여 산마루 한 개를 넘으니 암릉이 자주 나타나고 험한 곳에는 밧줄이 매어져 있기도 하다. 쓰러져 썩어가는 고사목이 길을 막고 예절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정중하게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통과하지 않으면 밝은 대낮에 별을 보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겠다.

 

길가에는「서석에 오신 분들 모두 행복하세요 !」라고 쓰인 서석농협에서 세운 자그마한 팻말이 눈길을 끌기도 한다. 고양산에서 아미산에 이르는 능선에는 수목이 울창하여 전망이 거의 트이지 않는다.

 

 

▼ 덕밭재 이정표 아래의 지도에서...

 

 

▼ 예절교육을 시키고 있는 길위에 쓰러진 고사목

▲ 길 위에 이러한 나무가 놓여 있으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굽혀가면서 공손함이 극치에 도달하는 최상급의

    예절을 갖춘 자세로 나무의 아래를 천천히 지나가지 않고서, 자존심을 앞세워 그냥 지나가다가는 나무에다

    박치기를 하게 되어, 밝고도 밝은 대낮에 별빛이 반짝이는 상황을 맞이하는 불행한 사태를 경험하게 된다.


 

▼ 서석농협에서 세운 환영 간판

 

 

▼ 길가에 쓰러진 고사목

 

 

아미산 정상 1. 0 Km라고 쓰인 고색창연한 이정표가 초라하게 서 있는 삼거리를 지나자 길 위로 무지개처럼 휘어져 쓰러진 고목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약 100여미터 진행하니 스테인리스 재질의 새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아미산 정상이 앞의 초라한 이정표의 거리와는 다른 1. 1 Km로 되어 있으니 앞서 본 이정표가 아마 틀렸나보다.

 

이 지점이 850봉인 모양인데 아무 표지도 없다. 이 850봉에서 검산1리 4. 8 Km가 갈려나가는 삼거리가 된다. 그리고 이 850봉에서 삼형제봉을 지나 아미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1. 1Km구간은 특히 암릉이 자주 나타나고 밧줄에 매달리는 회수가 빈번해진다.

 

아미산 정상 바로 밑의 안부에 이르니 경사 약 70도 이상은 됨직하고 높이 약 5 ∼ 6m는 되어 보이는 바위절벽이 나타나는데 굵은 밧줄이 한가닥 매달려 있다.  절벽을 올라 경사가 급한 길을 헉헉대며 걸으니 아미산 정상 바로 아래에 검산1리 4. 8 Km 갈림길 삼거리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다.

 

몇 발짝 올라서니 아미산(960. 8m) 정상이다. 시각은 13:30이 되었다.
아미산 정상은 주변에 수목이 울창하여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정상에는 표지석과 삼각점이 있고, 동쪽으로 940봉을 향하는 능선은「등산로 아님」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 이정표 옆으로 진행하면 940봉 옆을 거쳐 690봉을 지나 검산1리로 하산하는 길이다. 한 달 전에 에버그린님이 지난 길이다.  에버그린님 산행기를 읽으니 간벌한 나무를 길 위에 무질서하게 깔아놓아 고생스러웠다고 하기에 나는 아미산 정상에서 검산1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하기로 한다.

 

약 30분동안의 간식과 긴 휴식을 끝내고 하산을 14:00에 시작한다.
아미산 정상에서 바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할 것은 예상하였으나 험난한 암릉이 나타날까봐 걱정을 했는데, 암릉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오늘은 우연히 내가 선호하는 산행경로가 되었다.

 

암릉은 오르막길에서는 험난하더라도 우격다짐으로 어떡하든 붙들고 매달려 오를 수 있으나 내리막길에서 험한 암릉을 만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리기 때문에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산행시 되도록 이면 오를 때는 험난하더라도 하산시에는 길이 좋은 곳으로  가려고 하는 것인데 오늘 산행이 그렇게 되었다.

 


▼ 고색 창연한 묵은 이정표

 

 

▼ 길 위에 무지개처럼 쓰러져 썩어가는 고사목

 

 

▼ 850봉의 이정표

 


▼ 850봉 이정표 밑의 가까이 본 산행지도

 


▼ 울창한 잡목숲

 

 

▼ 아미산은 붉은색 단풍이 없다. 오늘 본 단풍중에 가장 붉은색을 띤 단풍

 

 

▼ 아미산 정상 직전의 높이 5 ~ 6미터쯤 되어 보이는 바위절벽

 

 

▼ 아미산 정상 약 10미터 아래의 이정표 (이곳에서 검산1리로 하산하였다)

 


▼ 아미산(峨媚山 ; 960. 8 m) 정상의 삼각점

 


(아미산 정상 표지석을 찍었는데 후에 귀가하는 버스에서 카메라를 꺼내 불필요한 사진을 제거하는데 오조작으로 날려버렸는데 이 사진 한장때문에 아미산을 다시 오를 수 없어 한달 전에 에버그린님이 찍은 사진 한장을 얻어다가 메워본다)



▼ 아미산 정상 표지석 (한달 전에 찍은 에버그린님의 작품)

 


▼ 동쪽 940봉 방면으로 가는길(등산로 아님 방향 - 한달 전 에버그린님이 가신 길)

 

 

약 2 Km가량 급경사의 산길을 내려서니 농기계가 통과할만한 임도가 나타나고 인가도 한 두 채씩 보이기 시작한다. 검산1리의 마을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미산 정상 2. 4 Km, 검산1리 국도 2. 4 Km라 쓰인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부터는 콘크리트 포장이 된 농로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한 자리에 고정하여 설치한 토종꿀 벌통이 자주 눈에 띈다.

 


▼ 하산길 임도

 


▼ 하산길의 중간지점에 서있는 이정표

 

 

▼ 위 이정표에서 시작되는 콘크리트포장길

 


▼ 자주 보이기 시작하는 토종꿀 벌통

 

 

▼ 뒤돌아본 아미산

 

 

콘크리트길을 약 400여미터 더 내려가니 850봉에서 하산하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가 서 있다. 내가 내려온 길은 아미산 정상까지 2. 8 Km인데 850봉을 거쳐 오르는 길은 3. 9 Km로 되어 있다. 이정표 옆에 민박집 안내간판에 쓰인 별초롱 쪽이 내가 내려온 길이고, 검산마루 쪽이 850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 850봉에서 하산하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 이정표

 


▼ 이정표 옆의 민박집 안내간판 (별초롱 방향이 내가 하산한 길이다)

 


▼ 노랑색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아미산 (아미산에서는 붉은색 단풍을 볼 수 없었다)

 


▼ 길가의 꽃에 앉아서 꿀을 빨고 있는 나비 (1)

 

 

▼ 길가의 꽃에 앉아서 꿀을 빨고 있는 나비 (2)

`

 

▼ 길가에 핀 꽃


 

▼ 길가의 꽈리 (잎과 줄기는 시들고 열매만 살아 매달려 있다)

 

 

조금 더 내려가자 아스팔트 포장이 된 2차선 도로가 나타나고 콩나물공장 옆을 지나서 한참 더 내려가니 가운데에 정자가 있는 노송지대를 지나자 56번도로이다.

그런데 도로 옆에 어느 산악회에서 타고 온 대형 관광버스(에버그린관광) 한 대가 길가에 주차해 있고 등산복장을 한 사람 둘이 서성거리고 있고 버스 안은 텅 비어있다.

 

이 산악회 사람들은 어디로 오른 것일까 ?

버스가 주차된 지점으로 보아 아미산을 오른 것은 분명한데, 나와는 마주치지를 않았다.
오늘은 산에서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무인지경의 산행이었는데 이상하다.
아마 내가 여기 도착하기 전에 850봉 가는 길로 올라간 모양이다.


 

▼ 아스팔트 포장 2차선길 (왼쪽 승용차 옆이 콩나물공장)

 


▼ 노송지대의 정자

 


▼ 산악회에서 타고온 버스 (아미산을 오른 모양인데 나와는 마주치지 않았다)

 

 

풍암리의 서석 버스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거리가 약 3 Km 정도 된다. 풍암리로 가는 버스편이 있는지 알아보니 없단다. 그래서 서석면에 택시가 있는지 물었더니 이마저도 없고 택시를 부르려면 홍천에 연락해야 된다고 한다.

 

별 도리 없이 56번 도로에서 풍암리 방면 서쪽으로 놓인 검산교 다리를 지나 딱딱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하염없이 걷기 시작한다.  지루한 길을 쉬엄쉬엄 걸어 서석 버스정류장에 16:10에 도착하니 버스표를 파는 가게가 문이 닫혀있다.


 

▼ 검산1리에서 풍암리까지 걸어간 56번도로에서...

 


▼ 서석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 시간표

 

 

조금 있으니 16:30에 서석을 출발하는 시내버스가 들어와 기사에게 가게가 문이 닫혀있어 버스표를 살 수 없다 하였더니 현금을 내고 타면 된다고 한다.
4,200원을 내고 승차하여 16:30에 서석을 출발한 시내버스는 홍천에 17:10경에 도착한다.

 

홍천에서 17:45에 출발하는 수원행 직행버스가 있기에 11,800원에 버스표 1장을 산 다음 의자에 앉아 쉬면서 버스가 올 때를 기다렸으나 18:00이 되어도 안 들어온다.  터미널 안내사무실에 문의하니 이 버스가 속초에서 출발하는데 설악산 일대의 관광차량 폭증으로 교통이 마비되어 지금 설악산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수원행 버스표를 반환하고 5,800원짜리 동서울 터미널행 버스표를 사서 버스에 오르니 18:10에 출발하여 귀가길에 오른다.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길도 가을철 행락객 차량들로 인하여 교통체증이 심하다.

 

오늘은 산속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않은 고독한 방랑자 혼자만의 호젓한 산행이 되었다.

 


▼ 홍천 터미널에 게시된 수원행 버스 시각표 (행락철 성수기에는 제시간에 운행을 못한다)

 


▼ 오늘 승차한 <동서울 홍천> <홍천  서석> <홍천  동서울> 간의 버스 승차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