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342년 10월 8일 목요일 아침 뉴스를 시청하던 중 강원도 양구군의 대암산과 도솔산 구간의 산행로와 용늪을 60년만에 일반에 공개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용늪은 꼭 한 번 가서 구경하고 싶었던 곳이기에 동서울 터미널 홈페이지에 들어가 10월 10일 아침 06:30발 양구행 버스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하였다.
토, 일요일, 휴일 강원도 방면의 이른 아침 첫차표는 미리 예매를 하지 않으면 군인들 면회가는 승객들 때문에 출발시각 임박해서 가면 살 수가 없다. 11,300원을 결제하고 1매를 구입하였다.
다음날 10월 9일 21:00에 기상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양구군 동면 지역의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10월 10일 토요일 03:00 ~ 18:00사이의 날씨는 맑고, 강수확률 0%에 북동풍 내지 북서풍이 초속 2 ~ 3m로 불며 아침 최저기온 5도, 낮 최고기온 21도의 산행하기에는 서늘하고 쾌적한 날씨이다.
그리고 인접한 인제군 북면의 날씨를 검색해도 마찬가지이다.
인제군까지 검색하는 이유는 대암산과 도솔산의 위치가 강원도 양구군 동면, 해안면, 인제군 북면, 서화면 등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해. 달 출몰시각> 게시판에 들어가 10월 10일의 상태를 검색하니 광명제원(光明諸元)은,
낮 시간 시민박명(市民薄明) 06:06, 일출(日出) 06:32, 일몰(日沒) 17:59, 시민박명 18:25이고,
밤 시간은 월출(月出) 22:17, 남중(南中) 05:00, 월몰(月沒)은 다음날 12:45이다.
낮 시간동안은 맑은 날씨이니 시민박명 시간을 포함하여 낮의 길이가 12시간 20분쯤 되겠고, 밤 시간의 달빛은 하현달이어서 별로 기대할 게 없겠다. 아무튼 어둠이 찾아오는 저녁 시각은 18:25이 되겠다.
▼ 도솔산과 대암산 지도
단기 4342년 10월 10일(토) 새벽 03:20.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입고 산행 준비를 한다.
60년만에 개방한다는 곳을 산행을 하게 되니 기대감에 마음이 설레지 않을 수 없다.
04:10에 집을 나서서 큰길로 나간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수원역에서 04:30에 출발하는 7770번 좌석버스를 기다리니 04:35경에 버스가 도착한다. 1,800원을 내고 승차하여 자리에 앉아 잠을 청하였으나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잠이 들지를 않는다.
버스는 05:00에 사당 지하철역 종점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역 출구 근처의 편의점에서 연양갱 8개를 5,600원(1개당 700원)에 구입하고 그 옆의 24시간 김밥집에서 김밥 2줄을 3,000원에 구입하여 배낭에 수납하고 지하철역에 들어가 강변역까지 1,100원에 지하철 승차권을 구입하여 개찰구를 통하여 2호선 대합실로 들어가 조금 기다리자 05:42에 잠실방면 전동차가 들어와 승차한다.
05:55 지하철 전동차가 강변역에 도착하여 하차 후 길 건너 동서울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서 인터넷으로 예약하였던 양구행 버스표를 매표구에서 찾은 다음 터미널 구내 1층 식당에 들어가 해장국(4,500원)을 시켜 아침 요기를 한 후 버스에 승차하니 06:30에 출발한다.
버스는 새로 난 경춘 고속도로를 통하여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 번 정차 후 46번 국도로 소양호반을 따라 진행하여 양구 시외버스터미널에 08:45에 도착한다.
산행 경로를 처음에는 동면 원당리의 생태식물원을 들머리로 하여 → 능선 → 솔봉(1,122. 4m) → 대암산 갈림길 → 대암산(大岩山, 1,304m, 일설은 1,310m) → 대암산 갈림길 → (용늪을 바라보며 진행) → KBS, MBC 중계소 안테나봉(1,304m) → 도솔산(兜率山, 1,147. 9m) → 돌산령으로 북진을 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나 양구에 도착하는 순간 생각이 바뀐다. 원당리 생태식물원에서 출발하면서 주변 경관을 사진촬영하면서 진행하면 9 ∼ 10시간이 걸려 18:00경에나 돌산령에 도착한다면 어차피 양구까지 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한다. 그렇다면 산행 들머리를 해발 900m쯤 되는 돌산령까지 택시를 타고 올라가 남진을 하면 힘이 덜 들 것이라는 계산이 나와 택시를 타기로 한다.
양구 터미널 앞에서는 토요일, 일요일, 휴일 등에는 택시 잡기가 좀 힘든다.
군부대에서 외출 나가는 장병들이 여기 저기서 택시를 부르는데다가, 군부대로 가족 면회를 가는 사람들이 모두 택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약 10여분 기다려서야 한 대 도착하는 택시에 승차하고 돌산령 조금 못미쳐 해병대 위령탑 입구로 가자고 하였으나 지리를 잘 모르는지 택시는 해병대 전적비가 올려다 보이는 돌산령 정상까지 가서 내려준다. (택시요금 25,000원)
▼ 오늘 산행한 경로의 지도(주황색 실선이 실제 산행경로, 점선부분은 처음 계획경로)
▼ 돌산령 정상 (해발 900m)
이 돌산령은 양구군 동면에서 해안면으로 넘어가는 45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지점인데, 얼마전에 돌산령 밑으로 터널을 뚫어 통과하도록 새로운 길을 내어놓아서 지금은 돌산령 정상에 주둔하는 군부대 왕래용으로만 사용되고 있는 도로이다.
돌산령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도솔산 정상과 그리로 오르는 길이 바로 코앞에 올려다 보인다.
신발끈을 조르고 지팡이를 꺼내 조립하는 등 산행 준비를 마치고 도로 건너 돌산령 길가의 군부대 위병소로 다가가서 내가 지금 도솔산을 오르려고 하는데 통제를 하느냐고 근무자에게 문의하니 입산통제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되돌아 길을 건넌 후 09:40에 해발 900m의 돌산령을 출발하여 도솔산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경사는 상당히 급하나 잘 다듬어진 산길을 헉헉대며 약 25분 가량 걸려 도솔산 정상에 이른다. 정상 변두리에는 도솔산전투위령비 0. 8 Km, 용늪 4. 5 Km, 솔봉 10. 3 Km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서 있고 정상 중앙에는 「海兵兜率山地區戰跡碑」라고 쓰인 비가 서 있다.
그런데 이 이정표가 잘못 표기되어 있다. 도솔산전투위령비는 제대로 방향이 맞는데, 용늪과 솔봉은 반대편인 북쪽으로 가라고 표시가 되어 있어 초보산행자들에게는 상당한 혼란을 주겠다.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이정표다. 이정표는 양구군청에서 이 일대를 관광자원화 하기 위해 세운지 얼마 안되는 시설 같다.
도솔산은 근래에 산악인들이「도솔지맥(兜率支脈)」이라고 명명한 지맥이 지나는 경로이다.
도솔지맥은 백두대간 중 금강산 북쪽의 매자봉(1,144m)에서 분기하여 매봉 → 가칠봉 → 대우산 → 도솔산 → 광치령 → 사명산 → 청평산(오봉산) → 용화산 → 수청산 → 우두산까지 연결된 지맥이다.
지난 6. 25 사변(한국전쟁) 당시 도솔산지구 전투는 한국 해병대의 역사에 빛나는 승리의 전투였다. 당시 도솔산 일대는 북한 인민군 제5군단 예하의 12사단 및 32사단 정예부대와 교전하여 별다른 전과 없이 교체된 미군 해병대 제1사단 제5연대를 대신하여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그 해 6월 4일부터 6월 20일까지 17일간에 걸친 혈전 끝에 적을 패퇴하게 만든 전투이다.
이 전투로 북한 인민군 3,263명을 사살하고 포로 700여명 포획, 아군 해병대는 전사 123명, 부상자 600여
명의 피해가 발생하였으니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 짐작이 간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하였다면 아군은 춘천까지 후퇴하여야 할만큼 이 도솔산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한국 해병대가 전투를 개시할 때 처음에는 주간공격을 행하였으나, 높은 지형에서 각종 화기를 갈겨대는 인민군에 의하여 피해가 너무 커지자 아군은 뒤늦게 야간공격으로 전환을 함으로써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만 하여도 야간전투는 북한 인민군의 전유물이었으나, 이 전투로 아군도 야간전투를 활용하는 선구자적 전투였던 것이다. 한국 해병대는 이 전투의 승리로「귀신잡는 해병」또는「무적해병」이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 돌산령에서 올려다본 도솔산
▼ 산 중턱의 이정표 (군부대에서 세운 것 같다.)
▼ 도솔산 정상의 이정표(양구군에서 세운듯한데 용늪과 솔봉의 방향이 반대편을 가리키고 있다.)
▼ 정상의 도솔산지구 전투 설명 안내판
▼ 도솔산지구 전투 전적비
▼ 전적비 기단부의 앞면
▼ 기단부 측면
▼ 기단부 측면
▼ 가야 할 대암산 방향의 능선
▼ 도솔산 남쪽의 암릉
▼ 암릉에 설치된 안전시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는 해안면의 분지인「펀치볼(Punch Bowl)」이 내려다 보인다.
이「펀치볼」은 권투연습 기구의 하나인 펀치볼이 아니라,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해안분지의 생김새가 유리나 크리스탈로 만든 평평하고 넓적한 화채그릇 같다고 해서「주발 모양의 분지(盆地)」라는 뜻으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을 따라 온 어느 종군기자가 붙인 이름이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는 것이라 한다.
해안분지는 남북 길이 11.95km·동서 길이 6.6km에 면적은 44.7㎢로 여의도의 6배가 넘는다. 해발고도는 400 ~ 500m이다. 차별 침식 분지라는 주장도 있고,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도 있다. 분지 안에는 펀치볼마을(양구군 해안면 만대리·현리·오유리)이 있다.
운석 충돌 분지라는 주장에 의하면 이 해안분지는 4,500만 년 전에 대기중의 대형 운석이 떨어져 움푹 패인 지형이 되어 물이 고여 있었던 곳이라 하여 지명에 바다해자를 써서 해안(海安)이라고 불리웠는데, 차츰 물이 빠져 없어지고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되었으나 이 분지 안에 뱀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자 사람들이 뱀의 천적인 돼지를 대량 방목하여 이 돼지들이 뱀을 무차별로 잡아먹어 없어지게 하자 지명을 돼지해자로 바꾸어 해안(亥安)이라구 부르기 시작한데서 오늘날의 지명이 유래가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전적비 앞에서 잠시 전사한 호국영령들께 묵념을 올리고 대암산 방면으로 향한다.
산길은 암봉을 너덧개 넘거나 우회를 하면서 남쪽으로 향한다.
▼ 해안면 분지(일명 펀치볼)
마루금을 타고 남쪽으로 진행하는 도중에 갑자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려 놀라서 좌우를 살피니 자그마한 바윗돌처럼 생긴 구멍이 숭숭 뚫린 물체에서 나는 소리였다.
이 물체를 처음에는 군부대에서 지나다니는 사람의 숫자를 체크하기 위해 설치한 관찰장비로 생각하였다. 진행 도중 이 물체를 3번 볼 수 있었다.
▼ 사람이 옆을 지날때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시설물
▼ 사람이 옆을 지날때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또 다른 시설물
한참 진행하니 5 ∼ 6명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커다란 돌을 일부러 옮겨다가 4개소나 조성한 쉼터가 나타난다. 쉼터의 옆에는「도솔산전투위령비 1. 5 Km」「도솔산 0. 7 Km」「용늪 3. 7 Km」「솔봉 9. 6 Km」라고 쓰인 도솔산 정상의 것과 같은 형태의 이정표가 서 있다. (도착시간은 10:30.)
쉼터 근처에는 6. 25 한국전쟁의 흔적인 3개의 폭발물 등을 길가에 놓아 전시하고 있다.
하나는 아군 수류탄, 또 하나는 북한 인민군들이 사용하던 방망이수류탄인 것은 알겠는데, 나머지 하나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 원통인데 그 용도를 모르겠다.
쉼터에 도착하니 아침을 먹은지가 오래 되어 허기가 진다.
쉼터의 돌에 걸터앉아 배낭에서 아침에 서울 사당에서 산 김밥 2줄을 꺼내어 허겁지겁 입안에 우겨넣고 물을 마시니 허기가 좀 가신다.
▼ 쉼터에 설치된 이정표
▼ 쉼터 가에 진열된 6. 25 전쟁당시의 폭발물(왼쪽이 인민군의 방망이수류탄, 가운데가 아군 수류탄)
▼ 쉬기 좋게 돌로 조성한 쉼터
▼ 쉼터의 암봉
김밥을 다 먹고 다시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니 길가에 수백미터에 걸쳐 철조망을 쳐 놓았는데 철조망에는 지뢰지대 팻말이 군데군데 붙어 있다. 이 지뢰 표지를 보니까 옛날 군대생활 할때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강원도 철원 전방에서 근무할 당시 전북이 고향인「왕상수」라는 이름의 나보다 3 ∼ 4개월 후임병이 있었는데, 근무 초소에서 목이 말라 30여 m 떨어진 샘터에 물을 마시러 길이 아닌 풀밭으로 급히 질러가다가 속칭「발목지뢰」를 밟아 한쪽 발목이 날아가 없어져 불구가 되는 사고를 당하여 의병제대(依病除隊)를 한 일이 있었다. 목발을 짚고 제대복을 입은채 절뚝거리며 고향으로 가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지금도 살아 있을까?
미국 케네디대통령 정권 당시 소련이 미국의 코밑인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기 위해 해당 장비를 적재한 선박을 운항하자 이것을 막기 위해 쿠바 해역봉쇄를 단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미국은 소련과 핵전쟁까지 각오하면서 봉쇄작전을 벌이느라고, 미국의 우방진영들 모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고, 한국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북한과 일전 각오를 하면서 미군이 원조하여준 발목지뢰를 대량으로 매설하였는데, 단시간에 지뢰를 급히 매설하느라 매설지점의 도면도 작성하지 못하여 나중에 비상이 해제된 이후에 지뢰를 회수하지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군생활 할 당시에는 전방에서 수시로 장병들이 길 아닌 곳으로 발걸음을 잘못 내딛어 지뢰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지휘관이 문책을 당하는 사례도 빈번하였었다.
그런데 이때 매설한 지뢰는 6. 25 한국전쟁 당시에 사용하던 인마살상용 대인지뢰가 아니라 제작비가 아주 근소하게 들고 크기도 주먹만 하여 가벼워 운반이 쉬운 미군이 새로 개발한 소형 지뢰로서 사람이 밟아서 폭발하더라도 파편이 넓게 퍼지지 않고 발목만 날아가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이 병사들의 전투능력만 배제시키는 지뢰라서 속칭「발목지뢰」라고 불리웠던 지뢰의 일종이다.
이 발목지뢰는 매설지점을 표시한 도면도 없었을뿐더러 사실인지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지뢰 몸통을 포장한 재료가 플래스틱이어서 지뢰탐지기로도 탐지가 안되어 캐낼 수도 없다고들 말하였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길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가 많은 장병들이 발목이 날아가는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 지뢰지대 표지판(옛날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 가야 할 1304봉
▼ 지뢰지대 표식
▼ 길가의 야생화
진행하던 도중 기괴한 형태를 띈 갈매나무가 있기에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왔다는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산행객 3인이 도솔산 쪽에서 진행하여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사진을 찍다가 서로 인사를 한다. 산행객들은 서울에서 왔는데, 처음에는 내가 출발하였던 돌산령 공터에 몰고 온 차를 주차하고 내가 올라온 길로 도솔봉을 오르려 하는데 군부대 위병소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이 제지를 하므로 다시 후진하여 군부대에서 보이지 않는 위령비쪽 광장에 주차를 하고 위령비를 출발하여 도솔봉을 오른 다음에 진행하였다고 한다.
내가 돌산령에서 오를 때에는 제지를 하지 않다가 산 사면에서 부대가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게 안되겠다 싶었는지 제지를 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이 3인방 서울 산꾼들은 용늪을 구경하고 대암산까지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도솔봉 아래의 원위치로 돌아갈 예정이라 한다. 차량회수 문제 때문에 종주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길가의 3개소에 짐승 울음소리를 내는 바윗덩이 같은 시설물을 보았는지 물으니 보았다고 한다. 군부대에서 통과 인원 점검용 시설이 아닌지 물으니 양구군청에서 설치한 관광용 시설이라고 한다.
▼ 기괴한 모습을 한 갈매나무
▼ 외로이 서 있는 단풍나무
▼ 훼손되지 않아 정감이 흐르는 산길
▼ 능선 서편의 동면 팔랑리 마을
▼ 훼손되지 않아 정겨운 산길
▼ 훼손되지 않아 정겨운 산길
▼ 뒤돌아본 도솔봉과 그 뒤로 멀리 보이는 대우산
▼ 농익은 나무 열매
▼ 농익은 나무열매(참빗살나무 ?)
전망 좋은 곳에 멈추어서서 다시 한번 해안면의 분지 펀치볼을 뒤돌아 본다.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능선 중 흰구름 아래편의 북쪽 방면의 능선 너머에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 아군의 최전방으로 보인다. 그 능선 너머로는 비무장지대(DMZ)가 전개되어 있고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고 있겠고...
내가 군대생활 할 당시 비무장지대 철책선 근처 GP 주변에 시계청소 작업을 딱 한번 나가본 일이 있었다.
시계청소라는건 경계초소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초병에게 전방 시야가 양호하게 보이도록 나무와 풀을 깨끗하게 베어내는 작업을 일컫는다. 그 때 하루 종일 작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군과 북한군들은 대형 스피커를 30 ~ 40개씩 한데 연결시켜 멀리서 보면 꼭 벌집모형처럼 설치해놓고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비방선전을 하기도 하고 노래도 틀어주기를 반복하기도 하였었다.
이러한 대형 스피커 방송은 그 소리가 5 ~ 6 Km정도 멀리 울려 퍼져 나갔다.
당시 북한군쪽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사 전부는 기억이 안나지만 첫머리가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으로 시작되는 소위 <김일성장군 노래>이거나, 아니면 "민중의 기 붉은기로 전사의 시체를..."
로 시작되는 <적기가> 또는 "아침은 빛나라 이강산 은금의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조국..."으로 시작되는 북한 애국가 등등만을 식상하게 반복하는 대신에, 남한쪽에서 북한쪽으로 틀어주는 노래는 당시의 유행가요를 모두 다양하게 방송해 주어 서로 대비가 되었었다.
북한군쪽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의 첫머리를 기억하는 까닭은 6. 25 한국전쟁당시 다섯살이었던 내가 이웃 친구들과 함께 마을에 주둔하였던 북한 인민군들이 주는 과자를 얻어먹으며 그들이 가르쳐 주는 이런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배웠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코흘리개들은 이렇게 배운 노래를 신나게 부르면서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지금의 기억으로 이 노래를 배우고 상당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부터 인민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 어머니께서 이제부터 그런 노래 부르고 다니면 큰일난다고 말씀하신걸 깜빡 잊고 집 앞에서 부르다가 어머니한테 붙들려 회초리로 먼지가 나도록 맞았었다. 그 후 어른이 되어 그 때 일을 생각해 보니 9. 28 수복이 되어 북한 인민군이 후퇴를 해버린 시기가 아니었던가 추측 된다.
수복 이후에 그런 노래를 부르고 다니다가 아군 군경에게 걸리면 가족 전체가 빨갱이로 의심받던 시절이었으니 나의 이런 철부지 행동에 어머니께서 나를 매질 하신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다섯살 코흘리개시절 배웠던 노래를 군대생활할 때 북한군의 대남방송을 통하여 다시 들으면서 기묘하고 착잡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도 떠오른다.
▼ 다시 바라본 해안면 분지(펀치볼)
▼ 한창 자태를 뽑내는 단풍
▼ 단풍
▼ 단풍
계속하여 진행하다 만난 헬기장에는 연습용 대인지뢰 하나가 길가에 뒹굴고 있다.
진행하다 시야가 트일때마다 길 좌우를 내려다보면 산비탈에 현란한 색깔의 단풍이 눈을 부시게 한다. 드디어 KBS, MBC 중계소 안테나가 서있는 1,304봉이 가까이 보인다.
나를 추월하여 간 3인의 서울 산꾼들이 1,304봉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나도 이들을 뒤따라 바로 1,304봉으로 올랐다가 방송중계소 철망담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봉우리를 올라선다. 봉우리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대암산이 지척에 보이고 용늪 습지도 보이며 습지 변두리를 따라 조성된 임도인지 군사도로인지 찻길도 보인다. 그리고 아래쪽 안부에는 무장군인 4명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고, 나를 추월해 간 서울 산꾼 3인이 이 초병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멀리 보인다. (시각은 11:30)
이때까지는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진행하여 양구군청에서 제대로 일을 하여 정말로 완전 개방된 등산로가 된 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생각은 곧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다.
나도 초병들이 근무중인 곳으로 내려가 다가가서 산꾼들과의 대화를 들어보니, 이곳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인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서 통과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 산꾼들은 인터넷에서 출력하여 온 개방사실을 알리는 자료와 지도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자 초병들 중 고참 병장이 약 300여미터 아래쪽에 위치한 부대 막사로 동행하여 당직책임자에게 통과 여부를 문의해 보자는 제안에 따라 우리 산꾼들 4인은 초병을 따라 가는데 좌우를 살펴보니 능선 일대가 군부대 영내이고 이 군영을 통과하지 않으면 대암산 쪽으로 종주를 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초병은 우리를 연병장에 나와 서 있는 당직사관 완장을 두른 상사에게 안내를 하고서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군부대에서는 양구군청에서 협의 요청은 있었으나 등산로 개방 허용을 승낙한 사실이 전혀 없고, 따라서 상부의 개방허가가 된 등산로가 아니어서 경계책임상 우리 일행을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한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용늪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니 연병장 바로 밑이 작은 용늪이고, 큰 용늪은 그 아래쪽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철탑이 서있는 1304봉이 대암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남쪽의 지척에 보이는 대암산을 가리키며 저곳이 대암산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여기에서는 그곳을「원대암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 길가에 방치된 연습용 대인지뢰
▼ 단풍
▼ 암릉
▼ KBS, MBC 중계소 안테나가 서있는 1,304봉
통과가 불가능한 군부대 영내를 지나갈 방법이 없어 우리 일행은 초병들이 근무하는 초소로 되돌아나와 서울의 일행 3인은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도솔봉으로 돌아가고 나는 초소 앞에서 시작되는 수십차례 구불거리는 콘크리트 포장이 된 군용도로를 따라 양구군 동면 팔랑리로 12:15부터 하산을 시작한다.
땡볕이 내려쬐기는 해도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과히 덥지 않은 날씨여서 땀은 거의 나지 않지만 딱딱한 콘크리트길을 한참 걸으니 신발속 발바닥에서 불이 날 지경이다.
역시 산꾼은 산길을 걸어야지 딱딱한 포장도로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
하산 도중 허기가 져서 배낭에서 인절미떡을 꺼내어 늦은 점심요기를 한다.
그러나, 하산길에 산 아래로 내려갈수록 현란한 색깔을 자랑하는 단풍이 눈부시게 전개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453번도로를 따라 걷다가 마을을 만나니 팔랑2리이다. 마침 지나가는 주민에게 양구로 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을 물으니 도로변의 가까운 가게를 가리키며 저곳이 시내버스 종점이라고 일러준다. 15:10이 되었으니 하산에 거의 두시간을 소모할 만큼 먼 거리를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군부대 초소에서부터 아마 8 Km 쯤은 걸은 것 같다.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하산길의 단풍
▼ 야생화와 나비
▼ 야생화
가게 벽에 붙어있는 버스 시각표를 보니 15:00 버스는 좀 전에 출발하여 버리고 15:40 버스를 기다리다가 가게에 들어가 캔맥주 한 개를 사서 마시며 기다린다. 시내버스는 제 시간에 들어와 되돌려 회차하여 승객을 태운다. 양구까지 차비 2,700원을 내고 승차하여 양구로 향한다.
양구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6:20이다.
동서울행 버스는 17:20에 있어 너무 오래 기다리게 된다.
시외버스 시각표를 보며 새로운 계획을 짜본다. 16:40에 춘천행이 있다. 이 춘천행을 타기로 하고 버스표를 6,000원에 한 장 산 후에 20분을 기다려 춘천행 버스에 승차하니 정시에 출발하여 46번 국도를 따라 배후령을 넘어 춘천 시외버스터미널에 17:40에 도착한다.
18:20에 출발하는 수원행 직통버스표(8,700원) 1장을 구입하여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라 귀가길에 오른다.
오늘은 양구군청의 거짓된 개방 홍보에 속아 기대를 크게 하고서 가슴 설레며 찾아온 도솔산 → 대암산 종주산행이 군부대의 제지로 중도 포기를 하여 비용 총액 74,700원을 들이고도 아쉽게 반토막 산행으로 끝나버렸다.
군부대와의 협의가 무산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개방 홍보 뉴스를 발표하여 멀쩡한 산꾼들을 괴롭힌 양구군청의 행위는, 짝사랑하는 처녀에게 프로포즈를 해보았으나 거절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사람을 만들기 위해 처녀 몰래 혼인신고를 해버린 얼간이 총각의 행위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충북 청주에 살 때에 실제로 어느 얼간이 총각이 이런 잔머리를 굴렸다가 나중에 들통이 나서 형사고소를 당하여「공정증서 원본 부실기재죄」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사실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혼인신고시에 호적공무원에게 부부 쌍방이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인감증명을 첨부한 신고서에 인감을 날인한다던지 하는 제도가 없어서 아무나 신고를 하여도 제한없이 받아들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가 잦았던 것이다.
피해를 당한 처녀 입장에서는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호적에 평생을 따라다니게 될 거짓 혼인신고 사실의 기재사항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더욱 처녀의 집안에서는 장래를 위해 형사고소를 하여 그 남자의 처벌받은 판결문을 확보하여 보관하면서 혼담이 오갈때마다 변명의 자료로 제시할 필요가 절실하였는지도 모르겠다.
▼ 오늘 사용한 동서울 -> 양구, 양구 -> 춘천, 춘천 -> 수원 간의 버스 승차권들
<추신> 참고로 신문에 발표된 양구군청의 개방 홍보기사를 올려본다.
한겨레/ 뉴스/ 사회/ 지역/ 2009-10-05
최전방 ‘청정자연’ 개방
양구군, 대암산에 ‘탐방로’ 차한필 기자
강원도 양구군은 체류형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60여년 동안 민간인의 접근이 쉽지 않았던 최전방 대암산에 생태탐방로를 개설했다고 4일 밝혔다.
탐방로
1코스(2시간30분)는 광치자연휴양림 ∼ 옹녀폭포를 순환하는 6.2㎞이며,
2코스(3시간30분)는 광치자연휴양림 ∼ 옹녀폭포 ∼ 옹폭삼거리 ∼ 후곡약수 6.7㎞다.
3코스(4시간30분)는 광치자연휴양림 ∼ 옹녀폭포 ∼ 솔봉 ∼ 소나무원시림 ∼ 생태식물원 7.8㎞이며,
4코스(8시간)는 광치자연휴양림 ∼ 옹녀폭포 ∼ 용늪 ∼ 도솔산 ∼ 도솔산 전투위령비16.7㎞다.
군(郡)은 7 ∼ 8일 국내 여행사 관계자 등을 초청해 두타연을 시작으로 을지전망대, 박수근미술관 등을 돌아보고 대암산과 용늪 일대를 둘러보는 팸 투어를 실시할 예정이다.
군(郡) 관계자는 “대암산 생태탐방로 곳곳에 동식물 조형물과 각종 편의시설, 야생화 단지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차한필 기자 hanphill@hani.co.kr
'강원권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난동으로 실망을 안겨준 선자령 눈산행 (0) | 2009.12.13 |
---|---|
산속에서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홍천 아미산 (0) | 2009.10.18 |
일기오보(日氣誤報)에 속아 실패한 설악산 산행 (0) | 2009.09.27 |
인간성이 나빠지게 만드는 설악산 (12t선녀탕계곡->대승령->장수대) (0) | 2009.09.13 |
춘천 오봉산을 10여년먄에 두 번째 찾아가다. (0) | 2009.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