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민담 수렵사 - 산골아이들과 산양새끼(하) - (글 : 김왕석)
- (중편에서 계속) -
그때 멀리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준이야 ! 갓난아 !"
포수마을 사람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마을 아이들의 보고를 받고 아침까지 기다리기보다 횃불을 들고 아이들을 찾으러 나선 것이다.
"여기요 ! 여기에 있어요 ! 빨리 와요 ! 늑대들이 덤벼들고 있어요 !"
준이의 소리가 들린 듯 곧 이어 화포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발 두 발 세 발, 총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지자 어느새 동굴 입구에 있던 불빛들이 사라져버렸다.
늑대들이 겁을 먹고 도망가버린 것이다.
"만세 ! 만세 !"
갓난이가 춤을 추면서 소리쳤다.
산양새끼는 그후부터 큰 말썽을 부리지는 않았다.
하긴 갓난이가 긴 목줄 끝에 굵은 막대기를 묶어두었기 때문에 그 막대기가 바위틈이나 나무뿌리 등에 걸려 도망칠 수도 없었지만 그 자신도 염소 떼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산양새끼는 그해 가을에는 훌륭한 산양이 되었다.
머리에는 날카로운 뿔이 솟아올랐고 몸집도 야생 상태의 산양보다 오히려 컸다.
산양은 다른 염소들과 같이 어울려다녔고 지켜야 할 규칙도 지키고 있었으나 그래도 산양은 산양이었다.
다른 염소들처럼 다정하게 노는 친구가 없었으며 어쩌다 암염소를 보고 가까이 가도 암염소는 기급을 하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산양은 언제나 염소들과는 좀 떨어진 곳에서 혼자 있었으며 심심하면 오히려 준이나 갓난이와 놀기 위해 가까이 다가왔다.
갓난이는 몇 번이나 다른 염소들과 벗을 만들어 주려고 해봤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겨울이 되자 산양은 이제 완전히 성장한 수컷이 되었으나 그의 고독은 더했다. 가을까지는 그래도 산야에 나가서 혼자라도 뛰어놀 수 있었으나 겨울에는 언제나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준이야 ! 저 산양은 자기의 엄마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러보내 줘야겠어."
"그건 안돼 !"
준이는 냉정하게 말했으나 그 자신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데 그해 겨울에 큰 눈이 내렸다.
강원도에는 늘 그런 대설이 있기는 했지만 그때는 연 나흘이나 내린 폭설로 포수마을 집들의 처마까지 쌓였고 사람들은 눈 속에다 터널처럼 길을 뚫어야만 했다.
준이도 마을사람들과 함께 눈길 뚫는 작업에 참가하여 나흘 후에는 아랫마을까지 가는 길이 뚫렸다.
아랫마을까지의 길이 뚫리자 그들은 사람들의 환대를 받으면서 그 마을에 도착했는데 그때 준이는 아랫마을 촌장집 뒷마당에 세 마리의 산양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준이는 촌장집 아들과 친구였으므로 산양을 어떻게 사로잡았느냐고 물었다.
"저놈들이 배가 고파 먹이를 구하려고 높은 산에서 내려오다 눈 속에 빠진거야."
그런 일은 종종 있었다.
"저놈들을 어떻게 할거야 ?"
"눈이 좀 녹으면 장터로 데리고 가서 팔 거야 ! 산양은 몸에 좋다고 해서 비싼 값으로도 잘 팔려 !"
"얼마나 받지 ?"
"그건 잘 몰라 !"
준이의 머리에는 벌써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세 마리의 산양중에 한 마리가 암컷인 것을 확인하고 촌장 아들에게 부탁했다.
"내가 저 암컷을 사갈 테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산양들을 팔지 못하게 해 !"
"언제 돌아올 거야 ?"
"이틀 후에 꼭 돌아올께 ! 돈을 가지고 말이야 !"
촌장 아들과 약속을 한 준이는 그 길로 돌아와 갓난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그 암컷만 데리고 오면 저놈은 외롭지 않아 ! 둘이서 놀 수 있고 또 짝을 지어 새끼를 낳을 수 있어 ! 그럼 우리는 그 새끼들도 키우는 거야 !"
그건 갓난이를 기쁘게 해 주는 말이었고 갓난이를 또한 흥분케 했다.
"그러나 그 암산양을 무슨 돈으로 사지 ?"
둘이서 모아둔 돈이 좀 있었으나 그걸로는 어림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갓난이는 포수마을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호소했다.
"산양이 새끼를 낳으면 돈을 벌 수 있잖아 !"
포수마을 아이들은 정이 많아서 모두들 이 말에 찬성했다.
준이는 아이들의 돈을 받아 곧바로 아랫마을 촌장 아들에게 달려갔다. 촌장 아들은 그날 아침에 산양들을 시장에 내다 팔려는 사람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는 다음날 가도록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준이와 촌장 아들은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그 암산양을 사려고 했으나 그 사람은 시장에 내다 팔면 훨씬 비싼 값으로 팔 수 있다면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잘라 말했다.
촌장 아들은 그 사람과 한참동안 말다툼을 하다가 도저히 그 사람과는 타협이 안되겠다 생각하고는 준이와 함께 그의 어머니에게 찾아갔다. 그의 어머니는 마음씨가 착한 부인이었으며 준이의 이야기를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깥에 있던 그 사람을 불러 준이에게 그 암산양을 주라고 일렀으나 그 사람은 촌장에게 꾸중을 듣는다며 머리를 갸우뚱했다.
"어허 ! 무슨말이 그리 많아 ! 나리에게는 내가 말씀 드릴 테니 빨리 내줘 !"
그리하여 준이는 암산양을 끌고 포수마을로 돌아왔다.
준이가 휘파람을 불며 마을 가까이에 이르자 갓난이와 다른 아이들이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성을 질렀다.
"온다 ! 준이가 암산양을 데리고 온다 !"
"까불이 놈의 신부가 온다 !"
10여명의 마을 아이들이 갓난이집 염소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암산양이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신랑산양과 신부산양의 정다운 만남을 상상하고 있었으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그때까지 목에 걸려 있던 줄이 풀리자 암산양은 울타리 안에서 탈출구를 찾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고 염소들은 그 사나운 손님에게 겁을 먹은 듯 한 구석에 모여 구경만 하고 있었다.
신랑산양도 별로 흥미가 없는 듯 먼 산만 보았다.
"임마 ! 너의 색시가 왔는데 그게 뭐야 ? 가까이 가봐 !"
멋적어진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으나 워낙 암산양이 사납게 굴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산양은 가까이 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참동안 구경만 하다가 크게 실망하고 하나 둘 가버렸다.
그러나 갓난이만은 혼자서 계속 산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암산양은 아무리 날뛰고 다녀봐야 탈출구가 없음을 안 듯 좀 조용해졌다. 그리고 비로소 그곳에는 자기와 같은 종족의 짐승이 한 마리 있다는 걸 깨달은 듯 숫산양을 바라봤다. 숫산양에게는 그것이 기회였다.
그놈은 슬그머니 암산양에게 다가섰고 암산양은 뒤로 물러서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암산양은 결국 동족이라는 걸 확인한 듯 경계를 풀고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했다.
사이가 좋아 뵈진 않아도 좌우간 산양 두 마리가 같이 있다는 사실에 갓난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마을 아이들을 불러다가 그 광경을 구경시켰고 마을아이들, 특히 준이는 고생한 보람을 느껴 만족해 했다.
폭설이 내린 후 처음으로 멧돼지 사냥에 나갔던 마을 포수들이 멧돼지가 아닌 늑대 두 마리를 잡아 돌아왔다.
그들은 멧돼지의 발자국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늑대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건 늑대야 ! 내버려두고 멧돼지 발자국이나 찾아 !"
사냥꾼들은 그렇게 말했으나 이포수는 그놈들이 평소에 염소나 산양을 노린 놈들이었고 더구나 마을 아이들을 해치려고 한 놈들임을 알고 있었다.
"이놈들을 잡아야 해 ! 그래야만 아이들이 안심하고 염소몰이를 할 수 있어 !"
두 사람의 다른 포수들도 그의 말에 동의하여 늑대 발자국을 따라갔다.
포수들은 얼마 안 가서 늑대들이 살고 있는 동굴을 발견했다. 몇 년 전 반달곰이 겨울잠을 잤던 동굴이었는데 늑대들은 그곳에 있었다.
늑대들은 전날 밤에 사냥을 하러 돌아다닌 피로 때문인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사람들이 아주 가까이 왔을 때에야 비로소 눈치를 챘다.
늑대들은 얼핏 동굴에서 뛰쳐나왔으나 이미 세 개의 총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수마을 아이들에게는 그날은 두 개의 경사가 생긴 셈이 되었다.
산양에게 짝을 지어 주었고 자기들을 못살게 굴던 늑대들이 죽은 것이다.
아이들은 크게 기뻐했으나 그 기쁨은 다음날 아침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암수산양들이 울타리에서 탈출해 버린 것이다.
울타리를 탈출한 산양들은 동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동북쪽에는 설악산 등 험준한 산들이 있었고 그곳 산정에는 산양떼들이 살고 있었다.
갓난이는 배은망덕한 산양들에게 몹시 화를 내면서 이번에 잡히면 두들겨 패주겠다고 하면서도 추적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정오께가 되자 그만 지쳐버렸다.
"좀 쉬었다가 가…"
그들은 동의한 다음 불을 피운 후 가지고 있던 고구마를 굽기 시작했다.
그때 저쪽 산정에 산양 두 마리가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암컷이 앞장을 서고 수컷이 뒤따르고 있었으나 수컷이 잠시 멈춰 연기가 오르는 이쪽을 바라 보았다.
"이리 와 ! 이 못된 것들 같으니."
갓난이가 고함을 질렀으나 수컷은 머리를 흔들면서 암컷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빨리 일어나 ! 그리고 저놈들을 쫓아가자."
준이가 서둘렀으나 갓난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뭘 하는 거야 ! 빨리 따라가야 해"
"난 다리가 아파 ! 이젠 못따라가겠어."
"저놈들은 어떻게 해."
"산양 같은 건 내버러 둬 ! 고향으로 가겠다는 걸."
그 말에 준이와 그 사촌동생도 한참 생각하다가 찬동했다.
산양들은 정말 사이 좋게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잘 가 ! 말썽꾸러기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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