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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49화

by 박달령 2007. 10. 22.
♡ 세 사람의 마음 속의 추억 (三者勝地)

옛날 두 재상이 우연히 만났는데 모두 일찍이 영남의 수령방백(守令方伯)을 지낸 일이 있었다. 그 중 한사람이 진주 기생을 사랑하였으므로 진주의 촉석루가 승지강산(勝地江山)이라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밀양 기생을 사랑하였으므로 밀양의 영남루가 가장 좋다하여 서로가 자랑하며 우열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그 자리에 한 낭관(郎官)이 이르러, 두 재상의 말을 듣고는,
"영남루와 촉석루는 비록 승지다운 데가 있기는 하오나 제가 보니 모두 상주(尙州)의 송원(松院) 같지는 못하옵니다." 하였다.

두 재상이 놀라며 말하기를,
"송원으로 말하면 거친 언덕이 끊어져 후미진 사이에 있고, 논과 밭두렁 위에 있으니 먼 산과 넓은 들을 볼 수 없고, 대나무와 저녁 연기의 멋이 없을 것이니 올라가서 바라보아도 흥을 돋구기 어려울 것이다. 그대의 말이 이러하니 대체 어떤 별다른 이야기라도 있는가 ?"
하였다. 이에 낭관이 말하기를,

"소생이 남쪽에서 놀며 정을 상주 기생에게 주었다가, 마침 돌아오는 길에 감히 헤어지지 못하고 말을 함께 쫓아 서쪽으로 가서 송원에 도달하니 해는 이미 져서 어두워지고 찢어진 창 허물어진 집에서 베개를 나란히 하여 누워 운우지정(雲雨之情)은 깊어가기만 하는데, 가을비는 하늘에 뿌리고 미풍은 나뭇잎 사이에 불어 와 온전히 잠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토록 좋은 밤이 쉽게 밝아 새벽이 되니 서로 이별할 때가 되어 끊어진 골짜기를 열 걸음에 아홉 번이나 뒤돌아보다가 고개를 넘은 후로 날이 가기를 이미 여러 달 지냈는데, 그 언덕, 그 쓸쓸한 황야의 정경이 지금에 이르도록 새록새록 눈앞에 아롱거릴 따름입니다. 그러나 일찌기 소생이 구경하였던 촉석루와 영남루는 꿈에도 한번 나타나지 않으니 어찌 송원(松院)의 승경을 촉석루나 영남루에 비교 하겠사옵니까 ?" 하였다.

두 재상이 배꼽을 잡으며 말하기를,
"그러니 송원은 곧 그대 낭관의 승지강산이요, 촉석루와 영남루는 우리 두 사람의 승지강산이로다."
하며 탄식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