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이가 바로 그 스님이라오. (當日山僧)
윤생(尹生)이라는 사람이 관서지방을 객유(客遊)하다가 어떤 촌가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를 만나 계속 묵게 되었다. 안주인은 비록 나이 들었으나 말씨와 모양과 거동이 시골 노
파같지 않았는데, 하루는 그 안주인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아마도 심심하실 터인데, 내가 옛날 이야기를 해 드리겠으니 한 번 웃어 보시는 것
이 어떻겠습니까 ?" 한다.
"그것 참 좋소이다." 하고 윤생이 대답하자, 주인 남자가 나서며,
"좋지도 않은 이야기를 또 하려고 하오 ?" 하며 말렸으나, 노파는,
"이제 당신과 저는 다 함께 늙었는데, 그 말을 해서 해로울 것이 있겠소 ?" 하고는 이야기
를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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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본시 초산(楚山) 기생으로서 나이 열 여섯에 초산 사또에게 홀려, 그의 총애를 받아 그
의 방에서만 함께 지냈는데, 뜻밖에 사또가 갈려가게 되어, 이별에 임하여 쓰고 있던 집물
(什物)을 모두 나에게 주며, 또한 후하게 먹을 것을 준 후에 말하기를,
"내가 돌아간 후에 너도 곧 뒤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함께 백년을 지내는 것이 좋으리라."
하기에 나는 울면서 그것을 허락하였지요.
사또가 떠난 후 그 애틋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가 준 것을 패물로 바꾸어 동자 한 놈을
데리고 떠났는데, 겨우 며칠 길을 가다가 때마침 겨울이라 큰 눈이 내리고, 가던 길을 잃게
되어 동자로 하여금 말을 버리고 길을 찾게 하였더니 잘못하여 눈 속에 빠져 그 속에서 헤
어나지 못하고 죽고 말았지 뭡니까 ?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다리는 얼어 걸을 수조차 없었
는데, 주위는 점점 어두워져 갔습니다.
그런데 멀리 숲 사이로 깜박거리는 등불이 보였습니다. 옳거니, 사람이 사는 게로구나. 하
고 그리로 기다시피 가서 문을 두드리고 보니 부처님을 모신 암자였습니다. 그러나 방안은
탁자 위에 부처님 한 분이 계실 뿐 아무도 없어 조용하기만 한데, 아랫목이 따뜻하고 등불
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누가 있기는 있는 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인지라,
주인 승낙이고 뭐고 알 바 없이 말안장을 풀고 죽을 쑤어 먹인 뒤 나도 방 한가운데 퍼져
누웠습니다.
언 몸이 녹으면서 이번에는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보는 사
람도 없고 해서 치마, 저고리를 다 벗어제치고 속옷 바람으로 누웠더니 좀 열이 가셔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스님 한 분이 내게 달려들어 겁탈을 하니 도저히
항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깊은 산중이라도 누가 와서 도와 줄 리도 없고 …….
본래 이 스님은 이미 십 여세 때부터 삭발 출가하여 생식을 하면서 혼자 암자를 지키며 살
아왔는데 그 때 나이 28세로, 바로 탁자 위에 있었던 부처님처럼 보였던 분이었어요. 계행
(戒行)이 비록 높았으나 정욕이 움직이게 되니 그것을 어떻게 억제하지 못하였지요.
이튿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이 처마에까지 쌓여 돌아가고자 하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럭저럭 암자에서 겨울을 나니 두 사람의 정이 함께 흡족하여져 스님이 말하기를,
"나도 당신을 찾지 않았고 당신 또한 나를 찾지 않았건만 길에 쌓인 눈이 나로 하여금 당신
을 만나게 하여 준 것이오. 나의 계행은 당신으로 인해서 훼손되고 당신의 절개는 나로 인
하여 이지러졌소. 이는 하늘이 당신과 나의 좋은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라 아니 할 수 없
으니 어찌 꼭 옛 낭군을 찾아가서 첩이 되려고 하시오 ? 나와 함께 해로(偕老)하여 안락을
누리는 것이 어떻소 ?"
하기에 또한 생각 하여보니 이치에 맞는 듯하여 환속(還俗)하는 그 스님을 따라 여기 와서
살았는데, 아들과 딸을 낳아 집안이 넉넉하니 이 어찌 하늘의 이치가 아니겠소 ?
저 노인네가 바로 그 날의 환속한 스님이라오.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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