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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202화

by 박달령 2007. 10. 7.

♡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니라. (天下之癡者士類也)

 

어떤 한 선비가 금강(錦江)의 나룻배 안에서 전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공산(公山 ; 공주의 옛 이름)의 기생과 이별하는데, 기생이 통곡을 하며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하자 선비 또한 눈물을 흘리며 기생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달래었다.

 

"얘야, 얘야.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는 말아라."
그리고는 행낭(行囊)에서 수백 냥 값어치가 나가는 은 주발을 꺼내 기생에게 정표로 주었다.


강을 건너 선비와 작별하고 되돌아오는 나룻배 안에서 기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장가(長歌)를 부르며 희희낙락하였다.

 

이를 본 기생의 벗이 책망하였다.
"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태연히 노래를 부르다니 너의 정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구나."


기생은 웃으면서 은그릇을 꺼내어 두드리며 말했다.
"통곡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노래를 부른 것 또한 이것 때문이었단다."

 

이 말을 들은 뱃사공이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천하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지.  한 번 보고 말아버릴 과객(나그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창기(娼妓)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


이를 들은 어떤 나그네가 시를 한 수 지어 조롱하였다.

 

물에 빠져죽겠다는 창기의 꾀 믿지 마소. (莫信娼妓墮水謀)
은 주발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웃으리니, (箇中可笑爲銀器)
지금도 뱃사공들은 이야기하네. (至今留得 工話)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라고. (天下癡者是士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