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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203화

by 박달령 2007. 10. 7.

♡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 없도다. (忍凍吟寒悔可追)

 

영남에서 고을살이를 하던 사또가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새재(鳥嶺)에서 정을 통하였던 애기(愛妓)와 이별하는 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곁에 있던 노파가 또한 같이 통곡하는지라 사또가 물었다.

 

"자네는 왜 우는가 ?"


"이 늙은 것이 저 기생이 이곳에서 정인(情人)과 이별하는 것을 족히 20여 차례는 보았습죠. 예전에는 그리 슬퍼하지 않아 실낱같은 가는 눈물을 흘릴 뿐이더니, 오늘은 여러 갑절을 슬퍼하여 통곡까지 하여 눈물 줄기가 대나무처럼 굵습니다.  사또께서는 얼마나 방중술(房中術)이 훌륭하시고 정력이 절륜 하시기에 저 기생의 마음을 이처럼 사로잡으셨는지요 ?  이 늙은 것이 감동되고 부러워 부지불식중 눈물을 흘렸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기뻐하며 옷을 벗어 노파에게 주었다.
이별을 마치고 새재를 넘어 한참 길을 가는데 풍설(風雪)이 치므로 추위를 견디느라 신음하며 혼잣말로 말했다.


"할망구 술수에 빠졌군.  그러나 후회한들 어쩌겠나."
지나가는 어떤 자가 있어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새재에서 가인과 이별할 적에, (鳥嶺佳人泣別時)
어떤 노파 또한 울었네. (老婆何物亦啼爲)
마음 미혹되어 옷 벗어 주고, (解衣一贈緣心惑)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없네. (忍凍吟寒悔可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