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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산행

애증(愛憎)의 추억을 되씹게 한 강원도 금학산~경기도 고대산 종주

by 박달령 2007. 10. 23.

단기 4338년(2005) 9월 11일 맑음

산행 인원 : 나 홀로

산행 경로 : 철원여고 정문 앞 →  금학정 → 매바위 → 금학산 → 대소라치고개 → 보개봉 → 고대산 → 3등산로로

               하산 → 표범폭포신탄리역

 

강원도 철원의 금학산은 나의 20대 초반부 젊음의 시작 부분 34개월 15일간을 그 산자락 아래에서 군대생활을 마친

애증이 교차하는 추억이 담겨있는 곳이어서,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접근을 꺼려했던 산이었으나, 이제 그 추억도

지나간 세월만큼 빛바랜 수채화처럼 되어버린 지금에 와서까지 기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금학산에서 능선따라

고대산까지 종주하여보기로 계획을 세워 드디어 실천에 옮겨볼 기회를 마련하여 산행지로 출발을 한다.                                                                                                                                                                

▼ 산행 개념도

 

 

◎ 산행 이야기와 추억담들

 

03 : 00 기상

03 : 30 집을 나서다. 

03 : 57 수원역에서 용산행 열차 승차(요금 2,800원)

 

04 : 26 용산역 도착

의정부행 지하철을 기다리며 오늘 새벽부터 지리산 서북능선 산행을 하는 추백팀들을 격려하기 위해 밤도깨비님

에게 전화를 하니 전화기가 꺼져있다기에, 에버그린님에게 다시 전화를 하니 회사 사정상 오늘 추백팀 산행에 불

참하느라 한참 새벽잠에 취하여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으신다.

 

05 : 47 의정부행 지하철 승차 (요금 1,200원)

06 : 30 의정부역 도착

06 : 45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 도착 (택시요금 2,000원)

 

의정부터미널에 도착하니 06 : 40 동송행 첫차는 이미 출발한 직후이다.

(후에 알고보니 교통수단 이용에 판단착오를 일으킨 것이다.  수원역에서 04 : 30에 출발하는 서울 사당역행 7770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사당역에서 하차하여 지하철을 갈아타고 가다 강변역에 내리면 강변역 바로 앞의 동서

터미널에서 06 : 20에 출발하는 동송행 첫차를 탈 수 있는데 몰라서 이렇게 법석을 떨게 된 것이다.)

 

07 : 00 동송행 직행버스 승차 (요금 5,600원)

의정부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포천 시외버스터미널을 들러 양문리를 지나 운천으로 향한다.  양문리는 북위 38

도선상에 있는 마을이다.  6. 25 한국전쟁 전에는 북한땅이었던 곳으로 올라가는 셈이다.

 

08 : 10 운천 시외버스 정류장 도착

운천은 행정구역이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로서 영북면 소재지이다.

내가 군생활을 할 당시 운천 인근에는 미 7사단(부대명 “캠프카이저”)이 주둔하고 있던 기지촌이었다.  미군 기지

이 다 그러하듯 운천도 양공주들이 들끓었다. 

 

우스개소리로 “미군 1개사단에 양공주 1개연대”라고 했을 정도였다.

운천의 양공주 숫자가 공식 통계로 2천명이라 했으니 1개연대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셈이다.

 

기지촌 경기로 흥청거리던 운천은 내가 제대 후 몇년 뒤에 닉슨독트린에 의하여 미 7사단이 철수하면서 급격한

막길을 걷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쓸쓸한 한촌(寒村)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운천을 떠나 한탄강 근홍교 다리를 건너 08 : 20경 관인시외버스정류장(경기도 연천군 관인면 소재지)을 통과하

바로 강원도 철원군이다.

 

08 : 30 동송 시외버스터미널 종점 도착.

이 일대와 지나온 관인면, 운천 북쪽 등지가 군생활을 하였던 ×사단이 지금도 주둔하고 있는 곳이다.  터미널에

북쪽으로 잠시만 걸어가면 철원군 동송읍 이평리와 철원읍화지리의 경계인 화지리 사거리이다.

 

동송읍과 철원읍 경계지점 일대는 시가지가 연결되어 있는데 군생활 당시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가시고 깨끗한

현대식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차 있다.  군부대 주둔지 경기가 있어서인지 비교적 활기찬 시골 소도읍 풍경이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순대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24시간 김밥집에서 김밥 2줄을 사서 점심으로 준비한 후 길

을 물어가며 철원여고로 향한다.

 

09 : 35 철원여고 정문앞 통과

 

 

산행 시작지점으로 가는 길은 차 두대가 교행할만 한데 철원여고 정문 왼쪽으로 나 있다.



▼ 오늘의 산행 시작 출발지점「철원여고」정문 앞

 

 

 

09 : 45 금학정 입구 지나 체육공원 도착

배낭을 벗어놓고 식수를 준비한다.

 

잠시 휴식을 하는데 에버그린님에게서 전화가 온다.  나는 지금 금학산 산행 시작점에서 출발준비 중이라고 하니,

추백팀은 세동치를 지나고 있다 한다.  진행이 상당히 빠르다고 하니, 상위마을에서 만복대로 올라 정령치를 통과

하는 경로는 생략하자는 산행대원들의 청원에 따라 정령치부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인지라 밤도깨비님께서도 계획변경을 하신 것이리라.

 

 

 

▼ 체육공원 샘터 시설   

 

 

 

 

 

 

 

 

 

 

 

 

 

 

 

 

 

 

 

 

 

10 : 00 체육공원 샘터 출발

금학산 오르막길은 초반부터 가파르게 올려치기를 하여 사람의 진을 뽑아 놓는다.

날씨는 땡볕 삼복더위인데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나뭇잎조차 까딱도 하지 않는지라 몇걸음 가지 않아 온 몸이 땀

으로 범벅이 된다. 능선을 휘감도는 임도를 건너니 매바위 650 m라는 팻말이 서 있다.

 

▼ 매바위 안내 이정표

 

 

 

 

매바위에 도착하여 매바위 옆의 평평한 바위위를 보니 누군지 안경을 얌전하게 벗어 놓았다.

누가 잃어버린 것일까 궁금해 하고 있는데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 부인과 함께 내려오면서 “아 ! 안경

이 그대로 여기 있군.”하면서 주워 쓴다.   그 부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진다.

 

매바위 옆에 올라서니 넓은 철원평야가 금학산을 중심으로 동남쪽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하여 북쪽을 감돌아 신

탄리까지 이어진다. 6. 25 한국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지역이었던 곳인데 휴전이 되면서 남한땅이 되어버린 평야

이다.  신병으로 부대배치를 받아 전입을 하니 고참병들이 하는 말이 “김일성이가 이곳 철원들을 빼앗기고 대성통곡

을 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지역에 이렇다 할 평야가 몇군데 없는 형편에 드넓은 철원들을 남한측에 빼앗겼으니 그럴만도 할 것 같다. 

지금의 식량부족에 의한 북한 대기근 사태의 원인 중의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만큼 넓은 평야이다.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여 수도로 삼았음도 수긍이 가는 평야이다.

 

매바위를 지나서, 다지 위험한 곳은 아니나 밧줄이 설치된 급경사 아래 공터가 있어 잠시 쉬면서 숨고르기를 하는데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등산복 차림 젊은이 둘이 하산을 한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학사장교로 군복무중인 군인들이었다.

 

휴식을 끝내고 밧줄지대를 지나서 한참 진행하니 “능선 700 m, 매바위 550 m 팻말이 서있고 이 지점부터 경사가 완만해지기 시작하여 숨결이 부드러워지기는 하나, 이미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진을 다 뽑고 난 뒤인데다 역시 바람 한점 없는 땡볕의 무더운 날씨여서 힘들기만 하다.

 

▼  매바위와 그 너머 어렴풋이 내려다 보이는 철원평야

 

 

 

 

▼ 길 안내 이정표

 

 

12 : 00 금학산(946. 9m) 정상 도착

콘크리트로 포장한 헬기장에는 내가 복무하였던 ×사단의 마크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10여 m 옆에 아담한 금학산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정상표지석 남쪽 가까이에는 군부대 초소가 있고 초병 근무중인 병사들이 서 있다.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에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사방에 군 시설물이 사진에 잡힐까봐 마음대로 촬영을 못하고

정상표지석만 겨우 한장 찍는다.

 

금학산(947m) 정상 표지석

 

금학산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철원평야가 끝나는 지점부터 낮으막한 연봉(連峰)들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저 낮은 연봉들 중에 백마고지도 있겠지.  그리고 그 너머 북녘땅은 개스가 끼어 가물가물하다.

 

철원평야의 북단에 위치한 백마고지(395m)는 6. 25 한국전쟁시 9일동안 중공군 1개군단과 아군 1개사단이 쟁탈

전을 벌여 24차례(어떤 자료는 12차례)나 주인이 뒤바뀌면서 중공군 약 1만5천명, 아군 약 3,500여명이 전사한 끝

에 아군의 승리로 끝나 철원들을 빼앗기게 된 김일성을 통곡하게 한 격전이 바로 백마고지 전투였던 것이다.

 

금학산 정상에서 동쪽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군생활을 보냈던 곳이어서인지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추억들로 가

슴 한구석에 뜨거운 무엇인가가 뭉클거린다.

 

구타행위가 공공연시 되었던 시절 악질고참들에게 곡괭이자루 빳따(몽둥이)로 떡치듯 얻어맞은 쫄병들이 가수

이미자씨가 부른 [“동백아가씨”]를 개사(改詞)하여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서러움을 달랬던 철원땅의 6사단

에서,  개사(改詞)를 하여 가수 이미자씨가 부르던  개사한 [동백아가씨]가사는 다음과 같다.)

 

[개사하기 전에 부르던 가사]    [개사하여 부르던 가사]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빳따,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엉덩이를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얼마나 울었던가 육군 졸병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빳따 맞다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엉덩이는 빨갛게 멍이 들었소.

(주 : [“빳따”]는 [“배트[Bat]” 즉 몽둥이의 일본식 발음인데 요즘 신세대들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가장 추억에 남는 군대 음식으로는 황우도강탕(黃牛渡江蕩)이 있었다.  잊을만 하면 가끔 보급되는 쇠고기가 중간

에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증발되어 버리고 중대 취사장에 도달할 무렵이면 기름덩이만 남는다.  이 기름덩이를 가마

솥에 넣은 다음 무우나 기타 채소등을 썰어넣고 국을 끓이면 고기는 한점도 없고 기름만 둥둥 떠다니는 국물인데,

 

이걸 먹으면서 황우도강탕이라 불렀다.  황소가 강물을 헤엄쳐 건널때 그 몸에서 배어나온 기름을 떠다가 국을 끓인

것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쌀은 중간에서 증발하여 30%도 안되는 시커먼 깡보리밥을 황우도강탕에 말아서 굶주린 허기를 달래가며 게걸스럽

게 먹어치우던 서러운 추억들 … .

 

당시 철원땅은 한겨울이면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추위가 엄습했다.

내가 군대생활 3년 중 강원도 철원 땅에서 가장 추웠던 때가 영하 28도였다.

 

눈이 한번 내리면 녹지 않고 계속 쌓여 제설작업을 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다.  중대 담당구역 작전도로까지 제설

작업을 하여야 하니 눈이 원수같던 시절...

그 눈밭에서 한밤중 팬티만 입은채 포복을하는 기합을 받던 서러운 추억들...

 

12 : 10 금학산 정상 출발

금학산을 뒤로 하고 헬기장 동쪽으로 난 길을 찾아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내려선다.

조금 내려가다 그늘을 만나게 되어 정상에서 하지 못한 정상주 음복행사를 위하여 배낭에서 캔맥주 한개를 꺼내 마

신다.

 

정상주를 다 마시고 일어서려니 나하고 같은 경로로 산행을 하는 서울 어느 남녀 혼성팀 산악회원 18명과 자연스레

일행이 되어버린다.

 

금학산 정상에서 고대산 방면 비포장도로까지는 약 450 m 높이를 1. 5 Km 짧은 거리에서 쏟아붓는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내려가는 도중 약 한평 정도의 콘크리트박스 건물이 있고 그 위에 병사 둘이 앉아 있는데, 콘크리트

박스는 식수탱크이다.

 

13 : 20  대소라치고개 비포장도로 도착

이 비포장도로는 금학산과 고대산 사이의 능선을 가르며 남북으로 난 도로이다.

고개마루 능선상의 군부대 훈련시설물 규모가 제법 크다.

 

군시설물 우측의 축대 밑으로 길을 찾아 오르는데 동행하게 된 산악회원 선두가 적당한 그늘을 발견하고 점심식사

를 같이 하고 가자고 한다.

 

나는 장소가 적당치 않은 것 같아 조금 더 진행하다가 식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혼자서 진행한다.  드문드문 매달린

표지기를 따르면서 길 찾기는 어렵지 않아 한참 진행하는데 쉬기 좋은 곳을 만나 김밥을 꺼내 점심식사를 한다.

 

교대로 덤벼드는 파리떼와 모기떼를 쫓기 위해 배낭에서 줄부채를 꺼내 부채질을 하며 식사를 하려니 김밥 두줄

먹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14 : 00 고대산을 향하여 대소라치고개 출발.

지금까지는 강원도 철원 땅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경기도 연천 땅이다.

고대산으로 오르는 길은 금학산 같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여 힘은 덜든다.

752고지를 올라서니 고대산 정상까지는 고도의 차이가 거의 없어 편안한 길이 된다.

 

그러나 752고지에서부터 길 양옆의 억새풀이 덮어 길이 보이지 않아 풀을 지팡이로 들추어가며 진행하려니 진도

나가질 않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와있는 뱀을 발견할 수 없어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752봉과 고대산 사이 중간쯤에 있는 헬기장 바로 아래에서 풀숲을 지팡이로 쳐드니 뱀 한 마리가

놀라 후다닥 도망쳐 사라진다.  빠른 동작으로 도망치는 걸 보니 독이 없는 뱀인 모양이다.

 

고대산 정상 바로 밑에서 정상까지 경사가 급하여 그늘에서 15분가량 휴식을 하면서 캔맥주 1개를 마시고 있으려니

금학산에서 동행하였던 18명 산악회원중 선두 한분이 도착한다.

나를 보더니 참 빠르다고 한다.  참 별 일을 다 겪는다.  나 같은 굼벙이 산꾼을 보고 빠르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다

있다.  하긴 나도 동네에서는 번개같다는 칭찬을 듣기는 한다.  그러나 이런 칭찬을 들을때면 낯이 간지럽다.

 

15 : 50 고대산(832. 1 m) 정상 도착

고대산 정상은 금학산과 달리 산꾼들로 북적인다.

어느 산꾼 일행들이 물이 떨어졌다고 하기에 내 배낭을 점검하니 500 ㎖짜리 한병 반이 남았다.  반병이면 하산이

가능할 것 같아 한병을 꺼내 주니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다섯명이 한모금씩 돌려 마시며 갈증을 푼다.

나는 정상주 음복행사를 위해 캔맥주 한개를 꺼내어 마신다.

 

여기서도 군시설물이 사진에 잡힐까봐 제대로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고 아담하게 서있는 정상표지석만 한장 찍는

다. 산꾼들 여럿에게 물어보니 하산로는 3등산로가 제일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 좋다기에 3등산로로 하산길을 잡

아본다.

고대산(831m) 정상 표지석

 

 

▼ 고대산 정상에서 뒤돌아본 금학산                                                                                                     

 

 

16 : 00 고대산 정상 출발

언제나 그렇듯이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지도상의 거리보다 더욱 멀게 느껴지고 지루하다.

 

표범폭포 안내팻말이 서 있는 곳을 지나면서도 더위에 지쳐 귀찮아 그냥 지나친다.

얼핏 생각하면 하산길은 땀이 나지 않을 것 같지만 막상 하산을 하여보면 힘은 안들어도 땀나는건 오르막길과 마찬

가지다.  마침 길가에 석간수가 용출되는 곳이 있어 잠시 쉬면서 물을 마시고 빈 병에도 받아 담는다.

 

17 : 40 고대산 매표소 도착

그늘에서 잠시 휴식 후 신탄리역으로 향한다.

 

▼ 고대산 매표소 풍경

 

 

 

 

▼ 고대산 매표소에 설치된 고대산 등산로 안내판

 

 

 

 

신탄리역을 약 200여미터 남긴 지점에 있는 철도 건널목에서 내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나를 앞질러 역으

로 뛰어가는 사람이 있어 흘깃 고개를 돌려 얼굴 모습을 바라보니 지난 연말 수도권 송년산행때 인사를 나누었던

시인으로 이름이 나신 "남강" 님이시다.

 

열차를 놓질까봐 전력질주 뛰어가시는 분을 불러 세울수도 없고 이미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만큼 멀어져간 거리

라서 나는 그저 속보로 신탄리역으로 향한다.  신탄리역에 도착하여 의정부행 열차표를 1,400원에 구입한다.

 



신탄리역 입구

 

 

 

 

▼ 신탄리역에서 더 이상 북진을 하지 못하고 멈춘 조국 분단의 상징 경원선 임시종점

 

(철마는 달리고 싶다 !!!  통일 후 원산, 그리고 함경도 청진, 경성역까지...!)

 

17 : 57 의정부행 열차 승차

먼저 뛰어오신 남강님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열차는 18 : 00에 출발한다.

너무 늦게 열차에 오른 바람에 자리가 없어 바닥에 퍼질러 앉아 의정부 종착역까지 가서 청량리행 지하철을 갈아

타고 청량리에서 다시 수원행 지하철을 갈아타고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