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약칭 신종 플루)>를 예방하기 위한 위생 안전수칙이라는 것이 공표되어 이를 시행하느라 범국민적으로 열중하고 있는 듯하다.
그 위생 안전수칙이라는 게,
- 외출에서 돌아온 후, 화장실에 다녀온 후, 건물 계단 난간이나 에스컬레이터 난간등을 만진 경우, 또는
기침을 한 뒤에는 반드시 비누로 손 씻기,
- 물을 사용할 수 없는곳에서는 손 세정제를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손 위생 실천,
- 가능하면 아픈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기,
- 잘 먹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자주 운동하기,
- 외출시에나 아픈 사람을 간호시 마스크 착용하기
등등이다.
이 위생안전수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하루에 10 ~ 15회 정도 손을 씻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것도 비누를 사용하거나 세정제를 써서 말이다.
한 번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가서 씻은 다음 수건에 닦거나 건조기를 이용하여 손을 말린 후 하던 일에 복귀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약 5분으로 잡는다면 하루에 50분 ~ 1시간 15분 정도의 시간을 손 씻는데에만 할애하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러한 위생안전수칙 준수만이 능사인지 의문이 들게 하는 칼럼을 신문에서 읽게 되었다.
한겨레신문 2009년 10월 5일자 26면에 오철우 기자가 쓴 <위생의 역설>이다.
그 요지는 <위생의 역설(逆設)>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생의 가설>이라고도 표현한다.
내용인즉,
인체의 면역체계가 강해지려면 적당한 외부 자극이 필요한데, 위생 안전수칙의 철저한 준수가 지나치다 보면 병균과 접촉할 수 있는 감염의 기회가 너무 적어져 면역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생 안전수칙은 당장 눈앞에 등장한 위험한 전염병균을 물리치는데는 미덕이 되겠지만, 먼 장래의 관점에서 보면 야성(野性)에 적응하여야 하는 우리의 몸을 허약하게 만드는 일이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 실례로 영국 노팅엄대학 연구팀이 베트남에서 농촌 학생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십이지장충 같은 장내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한테는 천식이나 알레르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약을 먹어 기생충을 박멸한 뒤엔 집먼지진드기에 대한 알레르기 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영국 <BBC방송>이 최근 보도했다고 한다.
기생충이 인체에 기생하며 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천식과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나친 면역 반응’을 억누르고 적절한 면역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긍정의 구실도 한다는 게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이른바 <기생충 가설>이다. 위생이 발달한 도시일수록 천식과 알레르기가 많은 이유를 설명해준다.
물론 <가설> 딱지가 붙은 건 다른 연구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이뤄진 연구에선 기생충을 없앴더니 이 가설과 달리 천식 증세가 개선됐다는 보고도 있다는 것이다.
(칼럼의 원문 주소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80015.html)
이 칼럼을 읽고 생각 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중국 오지로 장기간 배낭여행을 떠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눈을 피하여 마을 구멍가게나 길거리 노점 등에서 온갖 불량식품을 섭렵하며 배탈, 설사로 고생을 하면서 장(腸)을 단련시킨 학생은 현지에서 아무 음식이나 식수를 먹어도 끄떡 없었는데, 부잣집의 깨끗한 환경에서 위생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성장한 학생은 여행 내내 배탈, 설사를 달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은 기억이다.
또 하나는 30여년 전 직장생활을 할 때 동료 한 사람이 위생에 지나치게 예민한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인즉,
길가에서 뒹굴며 흙을 주무르고 장난을 하면서 거칠게 자란 아이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위생지도를 받으면서 자란 의사의 자식들보다 훨씬 면역력이 강하고 질병에 잘 걸리지 않으니 나더러도 너무 예민하게 위생을 내세우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위의 이야기를 듣던 당시에는 반신반의 하였으나 이번의 신문 칼럼을 읽고서 어느정도 수긍이 갔다.
과연 호들갑을 떨면서 위생 안전수칙을 지나치게 철저히 지켜나가는 것만이 능사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칼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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