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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선인들의 해학 - 고금소총(古今笑叢) - 제64화

by 박달령 2007. 10. 22.

♥ 집안이 가난한 탓에 … (家貧未娶)

옛날에 어떤 의원(醫員)이 있었는데 평생 웃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마을 소년들이 모여서 의논하기를,  "아무개 의원을 우리들 가운데서 누가 웃게 하면 크게 한 턱을 내기로 하자." 라고 하니,
"약속을 어기지 않겠지 ?" 하고 한 소년이 말하였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 하고 여러 소년이 말하니 그 소년은 곧 비단 수건으로 왼손을 겹겹이 싸매고 친구 소년들과 함께 의원의 집으로 찾아갔다.

의원이 단정히 앉아,
"그대는 무슨 일로 왔는가 ?" 하고 묻자 소년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내환(內患)이 아무래도 중한 것 같아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병세가 어떠한고 ?" 의원이 묻자,
"무어라고 형언할 수도 없는 속병(內患)이 제 몸에 있습니다."

소년의 이 말은 도통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괴이하게 생각한 의원이,
"내환(內患)이 그대의 몸에 있다니 그게 농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 하고 다시 물었다.
"어떻게 농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 소년은 이렇게 말하고서는 왼손을 펴 겹겹이 싸맨 곳 을 풀어 보이니 손바닥에 큰 종기가 있었다. 의원은 괴상하게 여겨,
"손바닥의 종기가 무슨 내환(內患)이란 말인가 ?" 하고 묻자 소년은,

 

"제 집이 가난하여 아직도 장가를 들지 못해 음심(淫心)이 일 때마다 항상 왼손으로 손장난(手淫)을 하여 왔는데 이 제 손바닥에 종기가 나서 손장난을 못하여 음심을 풀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게 어찌 내환(內患)이 아니겠습니까 ?"
하고 시치미를 떼고 말하니 의원이 그만 자신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함께 따라와서 이를 지켜본 여러 소년들 또한 크게 웃고 약속한 대로 푸짐하게 한턱을 내었다 한다.